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격파한 프랜시스 드레이크에 대해 올립니다.
펠리페 2세가 드레이크를 해적으로 간주하고 그의 인도를 요청하자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했따고 하는 내용을 보고 그에 대하여 조사해 보았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은 인물이더군요,.,.
그의 말년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1586년경 펠리페 2세가 이른바 '영국에 대한 보복 계획'을 위해 함대를 준비중에 있으며, 또한 교황 식스투스 5세로부터 이단의 섬나라 영국을 정복, 로마 교회의 지배 아래 들어오게 만들라는 축복을 받은 사실이 알려졌다. 한편 드레이크는 여왕에게서 '영국에 대한 공격을 준비중인 스페인을 응징'하는 전권을 위임받았다. 이듬해 드레이크는 약 30척으로 이루어진 함대를 이끌고 스페인을 공격, 엘리자베스 여왕이 드레이크에 대해 가졌던 신뢰가 헛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드레이크는 스페인의 카디스 항을 공략, 36시간 만에 수천t에 달하는 선적화물과 보급품을 파괴했는데 파괴된 이 물품들은 모두 스페인 무적함대를 위해 사용될 물자였다. 드레이크가 이를 두고 "펠리페 2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행위"라고 비웃었던 것처럼 이 공격의 결과 스페인측은 영국 침공 함대의 발진을 1년 미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스페인은 풍부한 재력을 이용해 1588년 7월 영국해협에 무적함대를 등장시켰다. 하워드 경이 영국 해군 제독에 임명되고 드레이크는 부제독에 임명됐다. 그러나 정작 전세를 일순간에 결정지은 것은 바로 드레이크의 돌격이었다. 그는 오랜 시간에 걸친 해전 끝에 스페인 선박 1척을 직접 나포했다. 또한 화공선(火攻船)을 동원, 스페인 무적함대가 대피해 있던 칼레에서 무적함대를 격퇴시킨 장본인도 바로 드레이크였다. 프로테스탄트인 드레이크의 마음이 기쁘게도 당시 '신의 바람이 불어와서' 스페인 함대는 뿔뿔이 흩어지고 거의 대부분이 난파했다. 드레이크는 200년 후에 호레이쇼 넬슨 제독이 나타날 때까지는 그 어느 누구도 필적하지 못할 인기를 얻은 영국의 영웅이었다. 헤아릴 수 없는 선물이 그에게 답지했으며 그는 시(詩)와 선전인쇄물 등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인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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