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장기는 전쟁을 본 딴 놀이이다.그 전략과 전술의 구사가 마치
전장 같다. 장기의 기원은 두 가지가 전해지고 있다. 그 발생지가 인도와 중국이라는 설이다. 인도에서 장기는 기원전 200년 무렵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어떤 왕이 바라문의 고승에게 '생각을 깊이하고 앞을 내다보는 슬기를 갖추되 끝을 미리
알 수 없는 놀이'를 만들라고 명했다. 고승은 이 조건에 알맞는 것이 전쟁이라고 생각하고 장기를 창안했다고 한다.
중국 발생설은 춘추 전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춘추전국시대는
말 그대로 크고 작은 나라들끼리 뺏고 뺏기는 전쟁의 소용돌이 였고, 치밀한 전략과 전술이 요구되는 시기였던 것이다. 이것이 후주의 무제때에 오늘날의 장기형태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에 전래되었는데, 조선 중기 이전에는 장기를 상희라고 불렀고 상희는 중국에서 나온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장기의 종류는 대,중,소 세가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소장기만이 남아 있다.장기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서 바둑과 쌍벽을 이루며 대중오락으로 인기를 누려왔다. 바둑이 조용하고 점잖은 놀이라면 장기는 활발하고 서민적인 놀이라 할 수 있다. 바둑은 주로 실내에서 많이 두지만 장기는 밖에서 많이 둔다.
<장기의 기원과 역사>
장기는 약 3천여년전 인도에서 비롯 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인도의 불교도(佛敎徒), 즉 승려들이 전쟁이나 살생을 금기(禁忌)로 하는 그들의 계율 때문에 인간 본연의 어떤 파괴 본능을 달래고,수도(修道)를 하는시간외에 잠시라도 세속에 흐르기 쉬운 잡념을 떨어버리기 위해 전쟁을 모의 (模擬)로 한 소재(素材)로 장기가 발명하였다고 한다.
또 일설에 따르면 버마 사람들은 자기들의 고대국(古代國)이었던“타이링”의 한왕비가 발명 한 것이라 주장한다. 왕을 지극히 사랑한 왕비가 전쟁만을 일삼아 싸움터에만 나다니는 왕을 궁중에 머물게 하기 위해 궁리 끝에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장기라는 것이다.
서양학자들애 따르면 고대 인도에서 지금의 장기의 시조(始祖)인 것이 발명되었는데, 그 최초에 명칭은 챠툴앙가(chaturanga)로서 고대 인도어, 즉 산스크리트어(sanskrit:楚語)이다.챠툴(chatur)은 넷(四),앙가(anga)는 원(員)을 뜻하므로 이는 군대의 네가지 구성원인 차(車),마(馬),상(象),보졸(步卒)이니 전군(全軍)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상의 몇 가지 설이 그런데로 일리가 있기는 하지만 지금 우리가 두고 있는장기는 역시 중국을 발상지로 보는 것이 타당한 것 같다.장기 조각 자체가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을 상징하는 초한(楚漢)으로 새겨져 있는 것만 보아도 짐작 할 수 있다.따라서 지금으로부터 약 2천여년 전인 삼국 시대 이후 인 것을 알 수 있다.
장기는 인도를 발생지로 서양으로 건너간 것은 체스(chess)로 통일되었고, 동양으로 넘어온 것은 중국을 거켜 우리나라와 일본 등지로 전파되어 각기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천 했다.중국에서는 원래 장기를 “상희(象戱)”라고 하였는데 장기가 지금의 비슷한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육조(六朝)시대 이후 인 것으로 추측한다.
육조 시대 이전의 것은 중국 학자 유신의 상희(象戱)에 나타난 문헌으로 미루어 지금의 장기와는 다름을 알 수 있고, 그 이후 당(唐)의 증증유 (中憎儒)의 《현경록(玄經錄)》에 나타난 것을 보면, 상희에는 금상(金象).사장(士將).천마(天馬). 보졸(步卒) 등이 있고 그 행마법(行馬法)도 지금과 비슷하며, 송대(宋代) 유쥰촌(劉俊村)의 상혁시(象奕詩)에는 포(包),상(象). 마(馬) .차(車)사(士). 졸(卒)등 지금과 같은 말의 이름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가장 흡사함을 알 수 있어, 장기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춘 것은 송대 이전일 것이라 추측한다.
또《잠확유서(潛確類書)》에는 기원전 1천8백년경 하(夏)의 폭군 걸왕(桀王)의신하였던 오증(烏曾)이 장기와 바둑을 만들었다고전하며, 《유원총보(類苑叢寶)》에는 진대(晋代) 사람인 도간(陶侃)의 고사가 적혀 있는데 은(殷) 나라의 폭군주왕(紂王)이 만들었다고 전한다.
이같은 사실로 미루어 보아 중국 장기, 곧 동양 장기는 고대 중국 시대인 하(夏)나라나 은(殷)나라 말에 고안된것으로 보아도 될 것 같다. 우리나라에는 삼국 시대 초기인 한사군(漢四郡) 시대에 수 많은 한인(漢人)들이 이주해 오면서 장기를 퍼뜨린 것으로 추측된다. 그들은 8년 동안 계속되었던 초(楚)와의 패권 다툼에서 승리하고 난 뒤, 조선에 한사군을 설치하고 자기들의 치열했던 초한전(楚漢戰)의 이야기를
피지배인들인 조선인(韓人)들에게 들려줌으로써 그네 민족들의 우월감을 자랑 했을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 초한전을 가상하여 우리 체질에 맞는 장기로 연구하고 개량하여 지금 우리가 두고 있는 장기로 발전시켰다. 우리나라의 장기에 관한 문헌으로는 서거정(徐居正)의 <필원잡기(筆苑雜記)》와《세조실록(世祖實錄)》 등에 상희(象戱)라는 이름 아래 장기에 얽힌 이야기가소개되어 있고 중종대(中宗代)의 문신 심수경(沈守慶)의《견한잡록(遣閑雜錄)》에 보면 비로서 “장기”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를 설명하기를 “象棋 用車包馬象士卒 以木磨造 而刻字진彩...皆是消日之戱也”란 기록이 있다.
이밖에 선조 때 장유(장유)의 《상희지(象戱志)》가 있고 장기의명수(名手로는 《식소록(識小錄)》에 전하는 금강산 백전암(白田庵)의 지암대사(智巖大師가있고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소개된 종실 서천령西川令이 특히 유명하여 서천령 수법이라는 장기의묘법을 남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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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꽤 유명한데... 기원을 찾아 보니 없네요...
이힛~ 그래서 올렸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