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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래간만에 쓰는 후기.
그것도 대회 끝난지 거의 두 달여만에 쓰는 때늦은 뒷 이야기이다. 대회 끝난 후 엄청 바빴고, 그 사이 다녀온 또 몇 개의 후기가 밀려있어서 그냥 "기억"으로 남길까 하다가, 제1회 대회이자 그래서인지 주최측에서 여러모로 이벤트를 많이 준비했던, 무엇보다 지금껏 경험했던 10여차례 풀코스 중 가장 특별했던 코스를 달렸던 대회라 "기록'으로 남기기로 한다.
제 1회 정읍 동학 마라톤 대회.
풀과 하프 주자가 대략 1200명, 10k 주자까지 합치면 대략 2000여명이 넘어간다. 지방 중소도시에서 진행된 대회치곤 근래에 보기 드문 참가자수이다. 무엇이 이렇게 많은 주자들을 불러 모았을까? 물론 1회 대회라 그런지 주최측에서 여러가지 준비를 많이 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인 듯하다. 종목별 시상폭도 넓었고(30위까지 상금), 각 종목별 단체전 시상에 무엇보다 풀 3시간 20분(남자 기준), 하프 1시간 45분 이내로 들어오면 특별상(쌀 10kg)이라고 하니, 최고수가 아니더라도 한번쯤 욕심을 내 볼 만하다. 날씨도 (내 기준에) 달리기 딱 좋은 2~6도에 동아 마라톤을 3주 앞 둔 주말이니 메이저 대회를 앞두고 장거리 훈련 하기도 딱 좋은 시기이다. 누가 기획했는지 몰라도 여러모로 사람들이 몰릴 수 밖에 없는 대회이다.
우리 클럽도 그런 이유로 일찌감치 정읍 대회를 상반기 LSD 대회로 점찍었다.
개인적으로 올해는 동마에 참가하진 못하지만, 4월에 계획하고 있던 (결국엔 못 뛰었지만) 새만금 대회에서 나름 목표했던 기록이 있었기에, 조금 무리인 줄 알면서도 풀 코스를 신청했다. 그런데...
풀 코스 접수를 한 것이 1월 11일. 대회까지는 대략 6주 정도 남았으니 완벽한 준비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략 300km 정도는 충분히 훈련할 수 있는 기간이였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 총 30km를 달렸다. ^^;; 마지막 일주일을 남겨놓고 "마무리 훈련을 어떻게 해야하나?"는 커녕 "대회를 갈 수 있나?"라는 고민을 더 많이 했다. 늘 풀 대회 직전주에 했던 것처럼 화, 목 가속주 형태로 6~7키로를 달린 것을 나름 위안으로 삼고, 대회 당일 정읍 가는 단체 버스에 올랐다.
목포에서 대회장인 정읍 종합 운동장까지는 대략 1시간 정도.
클럽에서는 대략 20여명의 회원분들이 함께 달린다. 그러고 보니 풀코스는 재무님과 철인하는 친구 문철, 그리고 나 꼴랑 3명이다. 그 중에서 객관적 기록을 보면 내가 꼴지. 무엇보다 훈련도 전혀 안된 상태에 코스까지 난이도가 있다고 하니...ㅠㅜ 문제는 클럽 회원분들이 대부분 하프를 뛰시니 나보단 최소 2시간은 빨리 들어올텐테...내가 더 늦어지면 다들 2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다... 30k만 뛸까 백번 생각하다... 회장님께 4시간 안엔 어떻게든 들어올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 출발점으로 향했다.
정읍 마라톤 풀 코스도와 고저도
내장산 국립공원과 인접한 정읍시 지형적 특성 때문인지, 코스가 왕복 코스가 아닌 삼각형 모양의 순환 코스이다.
하프코스는 삼각형을 따라 돌면 되고, 풀 코스의 경우 삼각형 좌측과 우측 꼭지점에서 각각 6K, 14K를 더 나갔다 들어와야 한다. 이 코스의 하일라이트는 하프는 8키로, 풀은 14키로 지점에서 만나는 내장산 터널 오르막. 정상이 250M라 하니 여지껏 풀코스에선 겪어보지 못한 오르막이다. 또한 풀은 그 후로도 내장산 국립 공원내 내장사 일주문까지 올라가는 코스 또한 만만찮은 오르막이라고 하니 고저도만 보아도 숨이 가쁘다. ^^;;
출발
9시 정각. 풀코스 출발 직전인데, 준비한 경품이 너무 많아서(?) 인지 초청 내빈들의 경품 추첨행사가 계속 진행된다. 앞 주자들은 벌써 출발을 하는데, 마지막 경품 당첨 번호를 부른다. "삼백...십.....ㅇ....." 어, 내 배번이 316번인데... 설마하니 하면서도,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일단 달리기에 집중 하기로 하고 운동장을 빠져나간다.
언제부턴가 풀을 뛰는데 소위 "무대포"로 뛴다. 작년 동아때까지만 하더라도 각 구간별 목표 페이스를 꼼꼼히 만들고 팔목 잘 보이는 곳에 적어서, 그 페이스대로 뛸려고 최대한 노력했었는데... 풀 이제 겨우 몇 번 뛰어봤다는 자만감인지, 아님 귀차니즘인지, 몸 가는데로 뛴다. 언제간 큰 코 다칠 날이 있으리라...^^;; 그래도 초반엔 최대한 오버페이스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쌀쌀한 날씨탓인지 아님 탁 트인 주로 때문인지 초반부터 4분 후반대가 나온다. 조금 속도를 줄여 볼려고 하는데, 내 몸 가는 속도에 대한 감이 전혀 안온다. 확실한 연습 부족이다. 연습이 충분히 되었을 경우, 맘 먹은 속도랑 손목 GPS 속도가 비슷하게 가는데.... 어떻게든 초반 5km는 5분 페이스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0~5km: 평균 4분 57초)
7K 지점부터인가 은근한 내리막의 시골길로 접어든다. 그리곤 9.5키로 지점에서 1차 반환점을 돌아, 왕복 4차선의 넓은 고가 오르막을 오르는데 초반이라 페이스를 유지한 채 달려진다. 앞으로 30km는 이 페이스로 달려야 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빠르다. 10K, 0:48:45 통과. 오버 페이스가 겁이 나긴 했지만 낮은 기온 때문인지 아직 땀이 많이 나지 않는다는 건 좋은 징조이다. 두 번 정도의 작은 오르막을 올라 내리막을 달릴 때는 4분 40초까지 나온다. 13키로 지점에서 다시 하프 코스와 합류한다. 그리고 급경사가 있다는 내장산 터널로... (5~15km: 평균 4분 48초)
14K 지점에서 크게 우회전을 하여 내려가니, 400~500 미터 정도되는 오르막이 눈에 들어온다. 경사도는 부주산 수영장 앞 도로 경사보다는 조금 덜 급한 듯 하지만 훨씬 길다. 힘겹게 오르는 주자들의 뒷모습을 보니, 하프 후미 주자들과 풀 주자들이 섞인 듯 하다. 일찌감치 언덕 초반부터 걷는 주자들이 있는 반면, 속도야 어떻게 되었든 악착같이 뛰어서 그 고개를 넘고자 하는 그룹이 있다. 후자 그룹 중 낯익은 이름이 박힌 싱글렛의 여성 주자가 눈에 들어 온다. "이혜수"씨. 광주 클럽에서 활동중인 유명한 울트라 러너이다. 산악이나 울트라 때 몇 번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아는 체를 하며 추월했는데... 정상을 100여미터 앞두고 더 이상 뛰어지지가 않는다... ;;; 그 사이 혜수씨가 다시 추월 해 가며 한 마디 건넨다.
"하프 뛰세요?"
하긴 그도 그럴 것이, 그가 기억하는 내 모습은 하프 2시간대 주자일 것이다. 더욱이 아무리 오르막이라도 아직 풀코스 초반인 15km 지점에서 걷고 있는 모습을 보였으니... 당연히 하프 후미 주자였으리라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16km 랩 페이스가 6분 30초까지 떨어지는 사이, 혜수씨는 한 번 쉼없이 오르막을 올라 터널속으로 사라진다. 간신히 오르막을 올라 터널을 통과하니, 올라온 거리만큼의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고자 내리막에서 속도를 내어 보는데도 한 명의 여성 주자에게 다시 추월 당한다.
18km 표지판이 보일 무렵, 두 번째로 하프와 풀 주자들의 코스가 나뉜다. 하프는 직진, 풀코스는 우회전하여 내장산 국립 공원으로 진입한다. 여기서부터 내장사 일주문 앞까지 7km, 결코 짧지 않은, 길고 은근한 오르막이다. 아까 오르막을 넘어 오면서 힘을 너무 쓴 탓인지, 아니면 훈련량 부족한것이 드디어 효과(?)를 내는 것인지, 발걸음이 현저하게 느려짐이 느껴진다. 더욱이 국립 공원 초입은 넓은 4차선 직선 코스라 무척 지루하다. 어떻게든 5분 페이스를 넘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본다. 아까 먼저 보냈던 혜수씨를 다시 추월. 20K 1:39:14 통과. (15~20km: 평균 5분 13초)
마라톤 하다 처음으로 국립공원 매표소(검표소?)를 통과하는 신기한 경험도 해보고... 계곡을 거슬러 오를수록 양쪽으로 아름드리 단풍나무들이 빽빽한 (가을이였으면 정말 환상적이였을...) 멋진 주로가 주자들을 반기지만... 이미 힘이 빠질대로 빠진 선수에게는 끝날 것 같지 않은 고행길이다. 자동차 과속 방지턱도 힘들게 느껴지니 페이스가 5분 30초까지 떨어진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분명 2차 반환점을 돌고 나왔을 재무님도 보지 못했다. 24키로 지점을 막 지났나? 간만에 보는 현익형과 잠시 뒤 문철이가 화이팅을 외쳐주고 지나간다. 드디어, 내장사 일주문 앞에서 2차 반환점을 돈다. (20km~25km: 평균 5분 21초)
반환점 바로 앞에 있던 급수대에서 파워젤과 물 한 잔을 털어 넣었다. 앞으로 17km나 더 가야 하는데 체력은 바닥.
회수차를 탈까 심각하게 고민하는데, 발을 앞으로 뻗는 것이 조금 수월해진 느낌이다. 아, 내리막이다. 올라올땐 많이 느끼지 못했던 오르막이, 내려갈때 보니 뛰기 딱 좋은 내리막이다. 아, 아까 이 경사를 올라왔으니 그래서 더 힘이 들었구나... 갑자기 떨어진 페이스에 대한 핑계거리가 하나 생기자, 없던 힘이 막 솟아난다. 앞으로 나가는 건 중력에게 맡기고, 보폭을 최대한 크게 했더니 최고 4분 26초 페이스까지 랩이 찍힌다. 30K, 2:30:18 통과. 올라오며 추월당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추월하고, 다시 하프와 만나는 32km 지점에 도착했다. (25km~30km: 평균 4분 52초)
시계를 보니 2시간 40분을 막 지났다. 딱 5분 페이스
이제 10키로 남았으니 6분 페이스로 가도 3시간 40분에는 골인... 이라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하프 코스와 합류하는 지점에서 짧지만 급한 경사를 오르니, 이제부터는 1키로 정도의 내리막이다. 속도가 조금 줄기는 했지만, 내리막이라 뛸 만하다. 두 번째(첫번째는 15km 지점에서) 아미노바이탈을 먹고 물로 입을 헹궜다. 언제부턴가 풀 코스 뛸 때면 으레 파워젤 5개, 아미노바이탈 2개를 운용하는 것 같다. 파워젤은 10, 20, 25, 30, 35K 지점에서, 아미노바이탈은 15. 30K 지점에서 사용한다. 보충제들이 속도를 막 올려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체력 저하는 조금 막아주는 것 같다. 플라시보 효과도 무시 못하고...ㅎㅎ
내리막이 끝나니 이제 길고 긴 평지가 나온다. 마라톤 입문땐 평지 코스가 좋았는데, 짬밥 좀 먹었다고 평지는 지루해서 더 힘들다는 건방진 생각이 든다. 오르막은 오르막이라 힘들고, 내리막은 내리막이라 무릎이 조심스럽고... 안 힘든 게 없네..ㅎㅎ 33키로 지점까지는 그래도 5분 페이스로 선방했는데, 그 이후론 "걷지만 말자"라는 심정으로 거리를 줄여 나간다. 마지막 남은 파워젤을 주머니에서 꺼내려는데, 손가락이 얼어서 집어지질 않는다. 장갑을 벗고 한참을 손을 녹인 후 간신히 꺼내 먹었다.35K, 2:56:38 통과. 마지노라 여겼던 3시간은 넘지 않았다. (30K~35K: 평균 5분 16초)
파워젤 꺼내르라 장갑 한 쪽을 벗었다.
남은 거리를 6분 페이스로 가도 3시간 40분 안에는 들어가겠다는 생각이 드니, 몸이 딱 6분 페이스로 맞춰진다. 아니 더 늦어진다. 한가지 위안이 되는 것이 손목 GPS에 찍히는 거리가 거리 표시판보다 800m 정도 적다. 손목 알람이 35km 지점을 알린 후 200여 미터만 가면 36km 도로 표지판이 나오는 식이다. 완전 개이득.ㅋㅋ (물론 이 반대의 경우에는 지옥을 경험한다. ㅎㅎ) 6분 40초까지 떨어졌던 페이스를 다시 다잡아 5분 30초 근방에서 버틴다. 손목 GPS가 41키로를 막 찍었는데, 저 멀리 출발지였던 정읍 종합 운동장이 보이는 듯 하다. 운동장 한 바퀴를 돌아 골인. 3:32:58.
거리가 조금 짧은 듯 했지만, 부족한 훈련량과 코스 난이도를 고려해 보면 나름 "선방"했다. 막 결승점을 통과하니 진행 요원이 풀 완주자 선물이라고 커다란 타월 하나를 주고는, 힘들어 죽겠는데 행운권 뽑기를 하고 가라고 붙잡는다. 아, 사람의 욕심이라는 게... 서 있을 힘도 없는데, 그걸 뽑겠다고 또 줄을 선다. ㅋㅋ 결과는 당연히 꽝. ㅎㅎ
회장님이 마중 나오셨고, 출발 직전 추첨했던 행운권에 당첨된 것 같다 했더니, 대신 가시더니 커다란 박스를 하나를 받아 고맙게도 버스까지 손수 실어 주신다. ㅎㅎ 이번 대회 유일한 단점이였던, "행사장에서 무척 멀리 떨어진 물품 보관소"에서 물건을 찾아, 바로 옆 샤워실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까지 했더니 이제야 살 것 같다. 정읍에서 한 시간 떨어진 부안 곰소로 이동, 나눔 정진채 선배 누님이 하신다는 식당에서 맛있는 갈치조림으로 점심까지 마치고 목포로 복귀했다. 이제 코스를 알았으니, 내년에는 좀 더 연습해서 풀 특별상을 노려보자! ^^
손목 GPS에 찍한 풀코스 고저도. 많이 과장되긴 했지만, 무척 "재미"있있던 코스였다. ㅎㅎ
2018년 2월 25일 전북 정읍에서 생애 10번째 풀코스를 완주하다.
첫댓글 이라고 멋진글이 짬지나니 감흥이 짬 덜해지요~~아프론 쪼깐더 일찌거니 올릿쑈~~ㅋㅋ
언제나 당신 후기는 명품이요~ㅎㅎㅎ
그치? 역시 예리해~^^
일본 대회도 얘기거리가 많은데, 그건 언제 써질까 몰라 ㅎㅎ
암튼 댓글 감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