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보던 아이 /전수림
신문을 끊었다. 남편 직장에서 보는 것과 겹쳐서다. 금방 다른 신문을 구독한다는 것이 어찌하다보니 몇 달이 훌쩍 지나갔다. 사실 TV나 인터넷, 휴대폰을 통해서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할 수 있으니 신문이 없어도 상관없다. 그런데도 막상 신문을 끊고 보니 아쉽고 이가 빠진 것처럼 하루가 허전했다.
요즘 TV프로그램 중에 신문을 읽어 준다는 남자가 있다. 그렇다고 신문 속속들이 다 읽어주는 것은 아니다. 전문패널들을 초대해 이슈가 되는 뉴스들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프로다. 쟁점이 되고, 논쟁이 되는 것들만 골라서 분석하는 것이니, 엄격하게 따지면 신문을 읽어주는 것은 아니다. 자고로 신문이란 기름 냄새 풀풀 풍겨가며 양손으로 활짝 펴들고, 샅샅이 일어봐
야 제 맛이지 않던가. 뭐 어쨌든 생소하게도 신문을 읽어준다는 남자가 키도 (사진 인터넷 펌)
훤칠하고 목소리도 좋아 눈길끌기엔 충분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신문을 보기 시작한 역사도 꽤 길다. 아마도 초등학교 4학년 때였지 싶다, 신문을 구독하기 전에는 나달해진 책들을 보고 또 보아왔다. 그것도 보는 책만 계속 보는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앞뒤가 뜯겨나간 만화책도 책상서랍에 넣어두었다. 그냥 뒀다가는 화장실 안 철사 줄에 매달려 휴지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만화책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이었다. 선생님은 신문(소년동아일보)을 보여주며, 보고 싶은 사람은 신청을 하라고 했다. 신문은 새로운 세계였다. 눈이 번쩍 뜨였다. 나는 신문을 꼭 보고말리라는 다짐했다. 라디오를 통해 귀로만 듣던 세상은 내가 근접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고, 고기 살 때 둘둘 말려 딸려오던 신문은 한참 지나간 것이지 않았던가. 이 시골구석에까지 신문이라니. 그 신문의 주인이 된다니…. 생각할수록 전율이 일이었다. 사실 어린이 신문이 있는 줄도 몰랐고 본 적은 더더욱 없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신문을 보게 해달라고 조르고 졸랐지만, 엄마는 무슨 신문이냐고 냅다 소리만 질러댔다. 믿을 구석이라곤 아버지 밖에 없었다. 나는 날쌔게 아버지에게 쫓아가 신문을 보게 해 달라고 말하는데, 마음이 들떠서인지 목소리가 자꾸 떨리었다. 혹시 엄마한테 퇴자 맞듯 할까봐 아버지 눈치를 봐가며 조심스레 허락해줄 것을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왜 봐야하는지 그 이유를 말하라고 했다.
“그건…그건, 아부지! 음… 신문은 새로운 것들을 알려주고, 또 내가 모르는 것을 알게 해주고, 또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빨리빨리 알 수 있게 해주고……”
하여간 생각나는 대로 신문에는 온갖 좋은 것들만 많다고 설명하면서, 최대한 진심어린 눈으로 아버지의 눈을 마주보았다. 그러던 중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아버지는 너무 쉽게, 선뜻 그러라고 하셨다.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어깨가 저절로 으쓱해지고, 뭔가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우월감도 생기는 것 같았다.
신문 오는 날은 아침부터 설레었다. 그날 아침에는 깨우지 않아도 벌떡 일어났다. 세숫대야에 손을 담그고 있으면 눈앞에서 신문이 펼쳐지기도 했다. 나는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학교로 내달렸다. 공부시간에도 자꾸 창밖을 힐끔거리었다. 점심시간쯤 자전거를 탄 우편배달부아저씨가 보이면 단숨에 쫓아나가곤 했다.
신문은 우리 반에서 두 명만이 본 것으로 기억한다. 신문을 받아들면 아이들이 내 앞으로 몰려들었다. 신문엔 다양한 뉴스와 짤막짤막하게 볼거리도 제법 많았다. 아이들이 궁금해 할 만 한 것들과, 스포츠 소식, 인기 좋은 만화로는 소년007, 쌕쌕이와 이솝우화나 동화 같은 것들이 실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때의 추억이다. 지금이나 그때나 노는 것에 빠지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글쓰기와 사색의 시간을 즐겼고, 일기는 물론, 뭔가를 만들어 붙이는 것도 꽤 좋아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밤이 깊었다. 잠이 저쯤 달아났다. 신문을 뒤적이다보면 기름냄새 향수처럼 퍼지고, 스르륵 잠이 찾아오곤 했는데…그럴 일은 없겠지만, 부스럭부스럭 신문 넘기는 소리도 추억이 되지 않을까 쓸데없는 근심이 길어진다.
아! 내일은 신문구독 신청이나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