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일은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 면에 있는 방장 산 자연휴양림을 탐방하는 날이었다.
그래서 설날이 지나면 날씨가 따뜻해 지기 만을 기대했다.
그러나 일기예보 방송은 설날 이후에도 날씨가 궂을 것이라고 에보하여 걱정이 태산같았다.
이미 방장산 자연휴양림 숙소를 예약했기때문이다.
설날 이후 날씨가 점점 악화되어 영하의 날씨가 반복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2017년 2월 1일 10시에 집사람과 함께 양재동 집을 출발했다.
설이 이미 지났기때문에 고속도로가 원활 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고속도로가 상상외로 정체되고 있었다.
하는 수없이 서울과 용인간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남쪽으로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온 산하가 하얀 눈으로 덮여있었다.
다행이 도로는 눈이 모두 녹아 차량의 이동은 불편이 없었다.
오산에서 경부고속도로 도로를 전환했다.
천안과 논산간 민자도로를 이용하여 이동하다가 다시 공주와 서천간 고속도로로 방향을 전환했다.
시간은 오전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배가 촐촐하여 식당을 찾아야했다.
그래서 인간극장에 등장했던 까치내흥부가든 식당으로 이동했다.
까치내흥부가든 식당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청양 I∙C 에서 빠져나와 39번 지방 국도로 전환해야 했다.
다시 장편면사무소에서 645번 지방국도로 좌회전하여 지천을 따라 20여분 동안 이동 했더니 작천교가 나타났다.
까치내흥부가든 식당은 작천교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
까치내흥부가든 식당을 유독 찾았던 이유는 주인부부의 유별남때문이었다.
주인은 무명에서 유를 창조하여 유명식당으로 변신시킬 만큼 직업 관이 투철했다.
그러한 인물을 만나보는 것도 삶의 윤활제가 될 듯싶었다
그래서 시간을 허비해가며 식당을 방문했다.
그러나 식당은 생각과 달리 고속도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거기다 식당은 도로 변에 위치하지 않고 마을 안에 있었다.
지리에 문외안이라면 식당을 찾을 수 없을 것같았다.
식당이 관광지인 칠갑산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식당 주인과 특별한 인과 관계가 아니라면 식당을 찾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같았다.
하지만 성능이 우수한 내비게이션이 충실한 안내견이 되어준 덕분에 식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식당은 조용했다.
식당을 경영하고 있는지가 의문 스럽기 까지 했다.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때문이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식당으로 들어갔다.
바쁘게 영업해야할 시간에 부부는 식당 안에서 한가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영업이 신통치 않았기때문일 것이다.
식사가 되느냐고 물었더니 특유의 충청도 말로 “되지 유" 라고 말을 해 웃음을 금할 수 없었다.
집사람과 함께 식당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식당 안은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많은 종류의 사주가 장식품처럼 나열되어 있었고 장곡 사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사진이 마음을 흔들기도 했다.
메뉴는 다양했으나 청정하천 지천에서 채취한 참게를 재료로 해서 만들어낸 참게탕이 메인 요리라 할 수있었다.
그래서 참게탕을 주문했다.
음식은 아주 정갈하고 일품이었다.
식사 중에 주인에게 인간간극장을 시청하고 감화를 받아 여기까지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젊어보인다고 했더니 인간극장에 나오 신 분은 자신의 형님이라고 했다.
인간극장에 자신의 형님부부와 조카딸 두명이 등장했는데 형님부부는 연로해서 사업을 그만 두고, 두 조카 딸은 결혼해 새로운 삶을 추구하고 있다고 했다.
인간극장에 등장한 인물이 자신의 형님이라고 해서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가슴이 허전했다.
모든 삼라만상은 수시로 변한다.
영구 불변은 있을 수 없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손으로 잡을 수없는 허공을 바라보며 서해안고속도로로 이동했다.
방장산 자연휴양림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다.
고창 I∙C에서 빠져나와 15번 지방 도로를 따라 방장산 자연휴양림 방향으로 이동했다.
강풍이 휘몰아쳤다.
겨울인 데도 낙엽이 도로 중앙에 흩날렸다.
모든 것이 음침하고 쓸쓸했다.
점점 고도가 올라가고 있었다.
석정온천 삼거리를 지나자 구절 양장의 가도가 전개되고 있었다.
도로는 눈이 깔끔하게 치어져있었으나 응달진 곳은 얼어있었다.
경사진 도로는 계속되고 있었다.
얼어있는 도로가 나타날까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방장 로 오르막 길이 거의 종점에 가까웠을 때 고창군 관광안내소(양고살재)가 있었다.
여기서도 산행이 가능했다.
반등산 정상을 거쳐 국립 방장산자연휴양림으로 하산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고창군 관광안내소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다시 관광안내소로 회귀했다.
국립 방장산자연휴양림은 고창군관광안내소에서 다시 계곡으로 내려가야 했다.
도로가 얼어있지 않을까 두려웠으나 그것은 기우였다.
20여분 동안 계곡쪽으로 내려갔는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들렸다.
계곡은 깊지 않았으나 운치가 있었다.
그리고 계곡 사면에 있는 숲속의 숙박시설이 장난감 같았다.
오밀조밀하고 화사했기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끌렸다.
이곳이 바로 국립 방장산자연휴양림 이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있고 오염원이 없어서 청정지역이라 할 수있었다.
서울과는 공기 부터가 달랐다.
계곡은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가슴을 더욱 설래게 했다.
우리가 예약했던 방은 하늘 아래에 있었다.
손만 뻗으면 별을 붙잡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예약했던 숙소는 자귀 나무동이었다.
거의 산 정상까지 올라가야 했다.
도로만 트이고 주변은 온통 눈밭이었다.
이곳도 서울처럼 눈 세상으로 변해있었다.
한 발자국만 옮겨도 눈밭으로 굴러떨어 질 것 같았다.
산 비탈진 숲속의 공간에 숙소를 지었기때문에 주차공간이 넓지못했다.
그래서 주차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으나 그것도 삶의 한 방법이었다.
바람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내일은 또 다시 천관산자연휴양림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날씨가 개고 좋았으면 했으나 추위때문에 마음마져 점점 굳어져 가고 있었다.
승용차 트렁크에 실려있는 쌀과 반찬 거리를 대충 추스려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는 썰렁하고 한기가 엄습해왔다.
온도를 조절하여 20도로 상회 시켰더니 온기가 차츰 회복되기 시작했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까지만해도 후회가 되었다.
날씨가 너무 추웠기때문이다.
그러나 실내온도가 상승하자 차츰 안정되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친 후 서울에 있는 딸에게 페이스타임을 연결시켰다.
딸 가족과 화상 통화를 하기 위해서다.
가족 모두가 화상에 나와 기뻐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놓였다.
다음날 아침 식사 후 방장산 산행에 나섰다.
그러나 매서운 혹한이 지속되었다.
강풍이 덩달아 불어 체온이 급강하했다.
그러나 정오부터 날씨가 풀린다는 소식을 듣고 희망을 가졌다.
이곳에 온 것은 심신과 체력단련을 위해서다.
심신과 체력단련을 위해서는 등산만 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등산을 꾸준히 해왔다.
등산을 강행군 하면 무리가 간다.
그래서 자신에게 맞은 페이스대로 지속하는 것이 좋다.
방장산 산행 출발 시간은 오전 09:45분 이었다.
임도를 따라 걷기시작했다.
임도는 눈으로 덮여있었다.
쉼터도 보였다.
묵묵히 호흡을 조절하며 걸었다.
그런데 갈림길이 나타났다.
나는 직진 하기로 했다.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금방 계단이 나타났다.
이곳만 올라서면 능선이 나올 것 같았다.
능선에 도착했다.
고창군 신평리쪽으로 넘어갈 수 있는 고개가 나타났다.
고창고개였다.
이곳에 이정표도 있었다.
우리 부부는 고창고개에서 우회전하여 방장산 정상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산행을 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눈이 쌓이고 날씨가 추웠기때문일 것이다.
정적속에서 우리 부부 두사람만 산행을 하고 있었다.
등산로 좌우를 살펴보고 놀랐다.
좌우가 파헤쳐져 있었기때문이다.
필시 멧돼지 소행이라 단정했다.
사람들의 산행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아 두려웠다.
두사람의 호흡소리만 적막을 깨뜨리고 있었기때문이다.
이러한 산행 속도라면 12시 이전에 하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겨울 산행을 강 행군하면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그래서 방 키를 사무실에 미리 반납하고 쉬엄쉬엄 산행을 했다.
이것이 마음 편하고 홀가분했다.
패러글라이딩 활공 장이 눈에 띄었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세상이 한눈에 내려보였다.
산행길은 햇볕이 들지 않았다.
음지라 눈이 얼어있었다.
또한 바람도 강했다.
어서 이 지대를 벗어나고 싶었다.
철탑이 보였다.
몇만볼트 고압선이 연결된 철탑이었다.
고압선은 우리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우리들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는 전선 이었지만 늘 고압선 밑을 지날때는 공포를 느껴야했다.
산행은 어렵지 않았다.
그져 평법한 산이라 할 수 있었다.
큰 바위가 있었다.
바위들이 주변에 없었기때문에 이 바위가 돋보인 것 같다.
다시 얼마동안 걸어가니 전망대가 있었다.
사방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세상의 모든 집들이 개미집 마냥 작게 보였다.
이렇게 작은 집에서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짊어지고 있는 듯 고뇌하는 사람들의 한숨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는 듯했다.
전망대는 이러한 인간들의 고통을 해소시키는 역할을 했다.
산행을 해 이곳에 오르 면 가슴이 뚫리고 상쾌한 느낌이 들었기때문이다.
다시 방장산 정상으로 이동했다.
방장산의 정상은 743m다.
벽오봉이라 불리는 방문 산과 능선이 연결되어 있으며 옛날에는 도적떼가 많았던 것 같다.
방등산이라고 불리다가 산이 넓고 커서 백성을 감싸준다는 뜻으로 방장 산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산기슭에 세 개의 계곡이 있다.
이 중 서쪽 기슭의 용추폭포가 가장 유명하다.
수심이 깊어 용이 승천 했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별로 높지는 않지만 봉우리가 많고 경사가 심한 편이다.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를 가르는 고개인 장성갈재에서 497m봉에 오른 뒤 안부로 내려오면 정상에 닿는다. 정상에서 내리막길을 걸으면 고창고개에 이르는데, 여기서 북쪽은 용추폭포로 가는 길이고 남쪽은 장성군 북이면 청운리로 가는 길이다.
방장산 자연휴양림을 탐방 하려면 고창고개에서 왼쪽으로 내려와 편백나무 숲을 지나면 된다.
방장산 산행은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과 쉽게 동화될수 있어서 하루가 행복했다.
방장 산에서 자연휴양림으로 내려오니 오후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승용차를 타고 다시 천관산 자연휴양림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