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대대로 모든 사내아이는 집에서 태어난 자든지 또는 네 씨에서 난 자가 아니라 타국인에게서 돈으로 산 자든지 태어난 지 여드레가 되면 너희 가운데서 할례를 받을지니라.(창 17: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개정개역)"
창세기 17장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우시고, 그 언약의 증표로 그와 그의 후손들은 할례를 받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언약이 그들의 육체에 새겨져 있어 영존하는 언약이 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할례가 처음 시행될 당시에 아브라함은 이미 99세였고 이스마엘은 13세였습니다. 할례 언약이 세워진 당시 사람들은 "바로 그날"(창 17:23) 할례를 받았지만, 그후로 태어나는 모든 사내아이는 태어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7장 12절은 개역처럼 "남자"가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하기보다 킹제임스 흠정역성경과 같이 "사내아이"가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할례는 남자가 생후 8일에 받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행하라고 하신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할례를 시행하느라 칼로 아이의 몸에 상처를 내면 반드시 피를 흘리게 되는데 신생아는 피가 쉽게 멎지 않아 과다 출혈로 건강과 생명에 위협을 줄 수도 있습니다. 혈액을 빨리 응고시켜 출혈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혈액 내에 있는 프로트롬빈이라는 응고 단백질입니다. 프로트롬빈은 간에서 형성되는데 혈액 응고에 필수적인 프로트롬빈의 양은 생후 3일이 되면 성인의 30% 정도가 되고, 그 이후 계속 증가하여 생후 8일째가 되는 날에는 성인의 110%에 달하게 됩니다. 그후에는 다시 프로트롬빈의 양이 감소하여 일반 성인과 같은 수준을 평생 유지하게 된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태어난 지 여드레가 되는 날은 일생에 단 한 번 혈액 응고 단백질인 프로트롬빈의 양이 최고치에 달하는 날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날 할례를 받으면 혈액이 빨리 응고되어 출혈도 적고 상처도 빨리 아물게 됩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런 과학적인 사실을 잘 알고 계시기에 사내아이가 난 지 여드레가 되면 할례를 받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할례의 언약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자손들 사이에 맺은 언약입니다(창 17:10). 물론 여기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아브라함의 몸에서 난 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신약교회 성도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말씀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구속받은 신약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스라엘 대체 신학을 믿고 따르는 개신교회들은 성경 말씀을 영해하여 "신약교회가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더 나아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라는 증표로 어린 사내아이에게 "할례"를 행한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므로 "유아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것은 성경 말씀을 바르게 나누지 않고, 교회와 이스라엘을 구분하지 않은 데서 빚어진 오류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씨, 이스라엘 민족을 택했다고 할 때의 택함이란 그들을 구원받을 자로 택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이루는 과정에 그들을 택하여 사용하신다는 뜻입니다. 즉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 이 땅에 메시아가 오시게 하고, 그들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맡겨서 보존하게 하고 그것을 온 세상에 전파할 민족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택하셨다는 뜻입니다. 만약 이런 택함이 개인을 구원하기로 택한 것이라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구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다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적 아브라함의 자손과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사람들을 혼동해서는 안 되며, 선택이라는 단어가 민족을 선택하는 것과 개인을 선택하는 것,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선택과 구원을 위한 선택 중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르게 나누어서 이해해야 합니다.
또한 할례는 육신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난 사내아이는 누구나 자기 몸에 받아야 하는 증표이지만, 침례는 육적인 증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구원받은 자들이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성과 분별력을 가지고 자기 자신의 의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고백할 수 없는 어린아이에게 물을 뿌리는 유아세례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종교의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어린아이에게 일방적으로 물을 뿌려주고, 유아세례를 주는 자들이 "이 아이가 하나님의 택함받은 자가 되었음을 선포한다.", "어릴 때부터 유아세례를 줘서 하나님의 것으로 인을 쳐 두어야 마귀가 손을 못 댄다.", "오늘 이 아이의 이름을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하소서." 라고 하는 것은 모두 비성ㅇ적으로 잘못된 교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이 침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행 8:37). 그러나 로마카톨릭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세례를 주고, 로마카톨릭 교회가 그들의 구원을 보장해준다고 가르치기 위해 이 중요한 구절을 삭제해 버렸습니다.
개역: (없음)(행 8:37)
흠정역: "빌립이 이르되, 만일 그대가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받을 수 있느니라, 하매 내시가 응답하여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노라, 하니라."
이스라엘의 사내아이가 할례를 받아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처럼 "유아 세례를 받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주장하거나, "유아 세례를 받으면 그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된다"고 하는 주장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지 않아도 침례(세레)를 받으면 구원을 받은 것이다."라는 잘못된 교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침례를 통한 중생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라는 복음의 핵심 메시지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사악한 가르침입니다.
교회는 교회이고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입니다. 둘은 서로 같지 않으며 서로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세대주의 신학의 핵심입니다. 할례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의 증표이고,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구원받은 자들이 공개적으로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음을 고백하는 의식입니다. 그러므로 할례는 할례고 침례는 침례입니다. 둘은 서로 다른 것이며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부디 유아세례의 성경적 근거를 구약시대의 할례에서 찾으려고 하는 어리석은 자들의 가르침에 현혹되지 마시고, 성경 말씀에 기초한 바른 교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