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암맨들이 알아야 할 97년 사건의 진상
작성일: 2001/08/24 17:33:42
작성자: 김민호
초보 암맨들이 알아야 할 상식 하나.
'97년 사건'을 잘 모르는 분들이 많아 이 글을 올립니다.
현재 암맨들은 '97년 사건'에 대해 아래의 기사 하나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인 양
자랑스럽게 코팅해서 가지고 다니고 있습니다.
이 사과문 내용은 암웨이 후원용 자료에도 실려 있고, 따로 대문짝만하게 확대복사 코팅되어(성내IP앞에서 팔고 있음) 암사업자들이 가지고 다니면서 '97년사건은 우리가 이겼다'는 식으로 떠벌리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97년 사건을 잘 아는 한국암웨이 본사 직원이나 암웨이 사업자 고위 핀들은 초보 암맨들 처럼 그렇게 떠벌리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합니다.
먼저 그 기사 내용부터 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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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비누세제공업협동조합은비방광고행위를 한 사실이 있음"
저희 조합은 `97.4.9~4.28. 기간중에 중앙일간지 등을 통하여 조합 회원사의 경쟁사인 한국암웨이(주)에 대해 "암웨이의 실체를 파헤친다!"라는 제목으로 광고함에 있어, 다단계판매원의 비교실험행위에 대해 "날조" "사기"등과 같은 자극적이고 의도적인 용어를 사용한 표현, 유엔환경프로그램(UNEP)에서 받은 상을 "돈을 주고 산 감사패"라고 표현한 내용, 디쉬드랍스에 대해 "환경파괴의 주범"이며 "범용 국산세제에 비해 무려 3배 비싸다"는 내용, 암웨이사에 대해 "무역역조의 주범"이고 "우리의 건전한 공동체 의식까지 파괴하고 있다"라는 내용과 같이 광고함으로써 소비자를 오인시킬 우려가 있는 비방광고행위를 하여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았습니다.
앞으로는 공정거래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998년 1월 5일
이 사 장 김 만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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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기사는 1998년 1월 5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한국비누세제공업협동조합'측이 한국암웨이지사 측에 사과 광고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97년 사건의 논쟁의 축은 '한국비누세제공업협동조합'이 아니고, '다단계판매 암웨이 제품 시민대책위원회'(이하 '시민대책위원회')와 한국암웨이사 였습니다.
다시말해 당시 시민대책위원회의 활동과 한국비누세제공업협동조합의 활동은 별개였습니다.
'한국비누세제공업협동조합'은 당시 암웨이 제품의 확산으로 위축된 한국대기업 중심으로 암웨이사에 대응하기 위한 자신들의 협력기구였고, 시민대책위원회의 활동에 편승해서 충분한 근거자료없이 암웨이사측을 공격하다 한방 맞은 것이죠.
97년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민대책위원회'의 활동에 주목해야 합니다.
시민대책위원회는 당시 암웨이 피해사례가 전국적으로 접수되면서 비정부기구인 소비자보호단체협의회와 한국환경사회전체회의가 중심이 되어 암웨이사측의 불법판매행위에 대항하고 한국소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1997년 3월 20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강당에서 82개의 단체로 구성된 기구였습니다.
한국암웨이사측에서는 사장(당시 브라이언 찰머스)과 홍보부장(이용학), 영업부장(마복룡), 영업추진과장 2명, 통역1명 등 6명이 참석했습니다.
(본인은 당시 간담회 녹취록 자료를 어렵게 구했습니다. 추후 적절한 때에 공개하겠습니다.-김민호)
이 자리에서 암웨이사측은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5월1일까지 한국국민에게 사과광고를 하겠다는 것을 전제로 문안을 만들어 오기로 하였으나, 암웨이사측은 메이데이인 5월1일 약속날짜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5월2일, 브라이언 찰머스 사장은 다시 시민대책위의 대표를 찾아 애초 약속과는 다른 변명성 사과문을 제시하였고, 시민대책위는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브라이언 찰머스 사장은 미국 본사와 의논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다시 5월9일까지 시간을 달라고 하였으나 정작 5월 9일 그 약속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시민대책위 중심으로 암웨이 제품에 대한 전국적 불매운동에 들어가게 되었고, 방송 및 언론의 시사프로에서도 대대적으로 다루어지게 되어 한국암웨이가 급격히 위축되는 계기가 된 것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의 시민운동가 무까이 미도리씨는 한국암웨이에 대한 시민닽에의 대대적 공세에 대해 "한국은 역시 활기찬 나라다. 일본은 암웨이의 폐해를 아는데 17년이 걸렸지만 한국은 5년만에 여기까지 왔다"라고 감탄하였다고 합니다.
또 현재 암웨이 사업자들이 떠벌리는 '방송언론의 공세'라는 말도
"암웨이에 대한 신문의 반응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비판에 인색하다"라는 당시 시민대책위원회 관계자 의 말과 함께 곱씹어 들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