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방석> 박효미 장편동화/ 오승민 그림/ 사계절
아이들도 어른들도 각자 숨을 쉰다.
2016.2.18. 조혜진
요즘 한가하여 집안에 있는 동전을 모두 모아 종이돈으로 바꿨다. 은행에 가면 아주 똑똑한 동전/지폐 교환기가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오백원짜리, 백원짜리, 오십원짜리, 십원짜리 구분을 했다. 아이들과 함께 단위별로 돈을 나누고 봉투에 각각 나눠 담는데 그 전에 이제 막 일곱 살이 된 아들이 알고 있는지 보려고 문제를 내본다. 십원짜리 17개를 펼쳐 놓으며 이 금액과 같은 금액인데 가장 적은 수의 동전으로 집어보라고 했다. 아들은 일단 백원을 집었다. 그리고 십원짜리 동전 7개를 집으려다가 옆에 오십원짜리를 슬쩍 보더니 이내 오십원짜리 한 개와 십원짜리 두 개를 집으며 맞게 집었는지 확인한다. 너무 잘했다며 칭찬해주자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10개씩 쌓아 올렸던 동전을 단위별로 봉투에 담았다. 10원짜리를 담기 전에 또 물었다.
“십원짜리 동전 1묶음이 10개씩이지? 십원짜리 동전이 열 개면 백원이야. 이 묶음이 52개가 있어. 그럼 이 십원짜리 모두 합한 금액은 얼마지?”
이렇게 말하고 10살난 딸과 7살난 아들을 번갈아 쳐다봤다. 아이들은 맞추려고 눈동자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생각했다. 십원짜리를 만지작거려보기도 한다. 딸이 눈동자를 무척 바쁘게 움직이고 손가락으로도 이리저리 재보며 생각하는 사이 아들이 외친다.
“오천이백원이요!”
“그래 맞아! 잘 아네. 우리 아들~”
난 여기까지만 말했어야 했다. 그런데 입이 방정. 나는 딸에게 이 말을 하고야 말았다.
“그런데 넌 왜 몰라? 이거 진짜 몰라? 이게 얼만지? 십원짜리 10개씩 쌓아올린게 백원이잖아. 이 묶음이 52개면 얼마야~~ 오천이백원이잖아~ 아 왜 열 살인데 그것도 몰라 아직까지? 너 너무 모르는 거 아냐? 세상에... 이것도 모르면 어떡해. 공부 아예 안하더니. 어휴- 너 공부 좀 해야지 안 되겠다 진짜.”
내 말이 끝나자마자 딸 얼굴이 일그러지며 눈에는 눈물이 한 두 방울 맺힌다. 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내가 너무 심했나 싶기도 하다. 얼른 수습하려고 봉투에 담아서 은행에 가서 바꿔보자고 했다. 딸아이가 느꼈을 속상한 마음을 위로해주지 않고 그날은 그렇게 잠자리에 들었다. 아니 오히려 불을 끄고 아이들과 누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딸에게 한마디 했다.
“내일부터 공부 좀 할래?”
“어떤 공부요?”
“수학이나 영어나 뭐 그런 거~”
“영어는 싫어요.”
“그래 그럼. 수학만 해 일단. 아... 피곤하다. 자자.”
이렇게 잠자리에 든 후 퇴근하고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온 남편 덕분에 새벽 세시에 잠에서 깼다. 깊이 잔건지 나도 이제 나이를 먹는 건지 한 번 잠에서 깨면 쉽게 다시 잠이 오지 않는다. 뭘 할까 고민하다 며칠 전 빌려놨던 <길고양이 방석>을 집어 들었다. 중간쯤 읽는데 어제의 내가 나왔다. 공부 좀 하라고 그것도 모르냐고 면박 주며 내일부터는 공부시켜야지 안 되겠다고 다짐하던 내 모습이 말이다.
초등학교 5학년 지은이는 쉬는 시간에도 학습지를 푸는 공부벌레다. 물론 거의 반강제로 엄마가 시켜서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거부하지도 않는 지은이. 학교에서 주는 거의 모든 상을 휩쓴다고 친구들이 ‘상쓸이’라는 별명도 지어줬다. 지은이의 짝꿍은 수업시간, 쉬는 시간을 구분하지 않고 잠만 자는 잠꾸러기 민기. 지은이는 그런 민기를 보며 한심해한다. 어느 날 지은이네 반에 유리라는 친구가 전학을 오는데 지은이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아이다. 시간이 지나고 지은이와 유리는 친해지는데 그 때부터 지은이가 조금씩 달라진다. 아니 원래의 지은이로 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은이가 지은이로 돌아오는 과정 속에 친구도 있고, 동생도 있지만 사실은 지은이가 스스로 무지 애쓰고 힘들게 버텨낸 과정들도 있다. 지은이가 지은이의 삶을 사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지은이의 삶 속에 어른의 자리가 너무 컸기 때문에 그 과정들이 더 힘든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들을 우리와 하고 싶은 모양이다.
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사교육을 지독히도 많이 시키는 부모 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그룹과외를 하고 피아노에 태권도, 미술, 수학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내 아이가 초등3학년인 지금은 그런 것들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려한다. 보통은, 초등 고학년이 되면 공부하기에도 바쁘기 때문에 예체능은 초등 저 학년 때 열심히 해놔야 나중에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계획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나름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부모도 있겠지만 아이가 쉬고 싶어 해도 ‘어쩔 수 없이’ 보낸다는 부모들을 많이 봤다. 나는 이 책에 나오는 지은이의 엄마처럼 많이 시키지 않는데도 아니 오히려 이 반대로 가고 싶어 하는데도 날마다 고민 속에 살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후회 할텐데... 어른이 되어 재미 없을텐데... 지금 여유로울 때 배워놔야 나중에 잘했다 생각 될텐데... 그래도 적당히 하고 싶은 것 위주로 하게 하자. 쉬고 싶을 땐 잠깐 쉬어가게 하자.’ 생각은 이렇게 하지만 딸아이가 배우고 있는 것을 그만하겠다고 하거나 이것도 저것도 다 하기 싫다고 할 때는 난감해진다.
작년 딸아이가 피아노 콩쿨에 나가고 연주회를 하며 굉장히 부담스러워했다. 무대에 서는 것도, 드레스를 입는 것도 너무 싫어했다. 공연은 이번까지만 하자며 구슬리고 있는데 딸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그렇게 좋으면 엄마가 하든지요.” 기가 막혀 웃기면서도 뒷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렇지 않다 생각했는데 어느새 나도 억지로 시키는 어른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책 속에서 지은이가 얘기했다. “엄만, 엄마도 하기 싫은 건 안 하고 살면서.”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쯤 눈물 콧물 다 흘리고 훌쩍거리며 읽는 모습을 보더니 딸아이가 궁금해서 “엄마 왜 울어요?”하고 묻는다. 아빠가 퇴근하고 오자 딸아이는 그 책을 아빠에게 들고 가 읽어달라고 했다. 첫 번째 이야기를 읽고 나더니 하는 말
“이 엄마, 엄마랑 똑같아요.” 거기다 남편까지 거든다.
“진짜 xx엄마랑 똑같다~~”
하아... 나 또 반성해야 된다. ‘그래... 숨 좀 쉬고 살게 하자. 좋은 추억이 있어야 커서도 행복한거지. 그래. 맞아.’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첫댓글 엄마 노릇이 참 힘들지요! 좋은 엄마는 어떤 엄마일까? 아들, 딸 친구들이 네 엄마가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한다는 말을 아주 많이 들었는데 난 내가 애들을 잘 못 키우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