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도봉 정상은 넓고 평평한 낫날 형태의 마당바위.
낫날 절벽 아래로 섬진강을 향해 흘러내린 불무장등.
탁 트인 주변경관이 아름다워 전망대 겸 좋은 휴식장소.
삼도봉의 원래 이름은 낫의 날을 닮아 낫날봉.
그 발음이 쉽지 않아 '날라리봉' 또는'늴리리봉'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명명한 새 이름이 삼도봉.
'날라리봉은 낫날봉에서 비롯된 지명이라는 주장.'
마당바위가 '낫날 모양 같아 '낫날봉'에서 와전 설.
'날라리는 남의 이목을 무시하고 까불대는 사람.'
날라리봉은 약간 천박한 느낌을 주는 듯한 지명.
원래, 날라리는 태평소 또는 호적(胡笛)이란 악기.
피리보다 혀(舌)가 작은 깔때기 모양 놋쇠 악기.
작지만, 음이 강하고 높아 군중(軍中)에서 쓰였다.
충무공 시조 중에서 "일성 '호가' 남의 애를 끓나니~"
<한산섬 달밝은 밤에>에서
호가(胡笳)가 날라리.
북소리 징소리에 비해 경박한듯한, 날라리 곡조.
발정난 개가 이목을 무시하고 아무데서나 교미하듯.
다소 천박한 느낌을 주는 악기라 하여 날나리라 명명.
군중(軍中) 신호가 필요할 경우
시도 때도 없이 불어대는 날라리.
날라리 소리는 고음이라 그 파장이 멀리 간다.
군중 신호를 위해 날라리를 불던 곳이 삼도봉.
옛부터 고대국가 간 영역 경계선이었던 삼도봉.
옛부터 접경 지역이라 영역 다툼이 많았던 곳.
하여, 전쟁 중 날라리 소리가 끊이지 않던 고지.
자연 발생적으로 접경지역 간 지역감정이 많던 곳.
삼도봉 점령군 날라리 소리는 신바람 났겠지만
고지를 빼앗긴 패전군에겐 애닯았을 날라리 곡조.
전쟁 때마다 희비의 쌍곡선이 교차했던 삼도봉 고지.
하여, 날라리봉은 날라리 악기에서 비롯된 지명.
삼도봉은 날라리봉이라 부를 만큼 삼국시대 격전지.
한반도 역사 상 수많은 고대국가들의 흥망성쇄 현장.
삼한시대를 비롯 삼국시대 격전 흔적을 느낄 만한 곳.
'삼도봉의 별칭이 다양한 이유는 무엇일까?'
3도의 경계선이 만나는 지점이기 때문인듯 싶다.
옛부터 역사적 배경이 서로 다른 3도의 문화 풍습.
각 지역마다의 전통적 고유 특성에 따라 이름 붙인듯.
삼도봉은 삼한시대 이전부터 소국들의 경계선.
현재, 삼도봉은 전남, 전북 경남 삼도의 경계선.
삼도봉 정상 마당바위 가운데., 창끝 같은 청동조각.
'청동기시대부터의 격전지 임을 상징하듯.'
전남 나주목은 동아시아 해상왕국의 고려 거점
전북 전주부(비사벌)는 후백제 견훤 세력 중심
경남 진주목은 옛 가야 세력과 신라 세력 중심.
삼도봉은 삼도가 합쳐지는 지점이지만
지리산 5개 시 군 중에서 3개 군은 경남.
사실 상 지리산은 경남의 비중이 더 큰 산.
경남은 산청군·함양군·하동군 3개군이 있고
전북은 남원시, 전남은 구례군 등 5개 시와 군,
그리고, 15개 면 행정단위로 지리산은 형성된다.
경남은 삼도봉-불무장등-통족봉-촛대봉-섬진강 경계선.
전남과 구분되며 전북은 삼도봉-토끼봉-명선봉-삼각고지.
그곳에서 영원령-삼정산을 연결하는 능선을 경계로 한다.
전남과 전북 경계는 삼도봉-반야봉-도계삼거리-만목대
지리산의 계곡과 산등성이를 경계로 형성된 마을들.
오랜 세월이 흐르며 서로 다른 풍습과 전통을 형성.
자연스럽게 타 지역과 서로 경쟁의식을 갖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신라는 경남 경북 일대 영토에서 유래.
백제는 전북 전주(비사벌) 마한 영역에서부터 유래.
고려는 전남(나주목)을 발판으로., 해상왕국을 건설.
삼도봉에 오르면 사투리가 다른 사람들을 쉽게 만난다.
3도에서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만나기 때문
매년 10 월10 일에는 삼도 화합을 기원하는 삼도제 행사.
삼도봉은., 삼도 화합의 상징.
전라남도, 전라복도, 경상남도
전라남도
삼도봉 서남쪽 전라남도.
한국의 대표적인 곡창지대.
농업 인구의 비율이 높은 편.
광양제철소·여천공업단지·순천공업단지로 이루어진
광양만 공업지대가 한국의 새로운 임해공업지대로 성장
광양-순천-여천-여수를 잇는 지역은 도시화 공업화가 진전
중국과의 국교수립으로 목포항은 국제 무역항으로서 큰 역할
행정구역은 5개시 17개군 30개읍 199개면으로 구성되어 있고,
도청소재지는 광주광역시 동구 광산동. 남북간 거리는 188.5km,
동서간 313km(면적 1만 1,901㎢= 남한의 11.96%)
인구 2,024,422(2003), 인구밀도 168.1명/㎢(2003).
[연혁]
삼한시대 마한(馬韓)의 땅이었고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역이었다.
백제가 660년(의자왕 20) 나당 연합군에 멸망 후
당나라(중국)의 관할에 있다가 신라에 귀속되었다.
685년(신문왕 5) 지방행정 9주 5소경 제도에 따라
전라남도 지역에 무진주(武珍州:光州)가 설치되고,
반남군·양무군 등 14개 속군과 44개 속현권에 포함.
757년(경덕왕 16) 행정제도 개편 때 무주(武州)로 개칭.
995년(성종 14) 전라남도 지역을 해양도(海陽道)라 했다.
1018년(현종 9) 전북 지역 강남도와 합해 전라주도)라 개칭.
전주와 나주의 첫글자를 딴 전라도 지명
이조 시대에 들어와서도 전라도라 불렸다.
1895년 23부(府) 체제로 바뀌어
전라남도는 나주부와 남원부 관할
1896년 13도제 실시로 전라남도라 하고
광주군 광주로 도청 소재지를 이전했다.
1896년에 도서 지방에 3군을 신설해 행정구역을 편제.
영암군·강진군·해남군·장흥군 소속 도서를 완도군에,
흥양군·낙안군·순천군·광양군 소속 도서를 돌산군에,
나주군·영광군·부안군·만경군·무안군 도서를 지도군.
1897년 순천군으로부터 여수군을 분리해 신설,
무장군·흥덕군·고창군을 전라북도로 이관했다.
1908년 옥과군을 폐지 담양군 일부와 함께 창평군에 합속
화순군을 폐지해 능주군에 병합했다. 또 낙안군을 폐지해
행정구역을 각각 순천군과 보성군에 분할하여 편입시켰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지도군·남평군·동복군·
능주군·창평군·돌산군·정의군·대정군을 폐지
행정 구역을 목포부와 22개군으로 통합하였다.
1935년 광주읍이 부로 승격되고,
광주군을 광산군으로 개칭했다.
946년 제주군이 제주도로 승격
전라남도에서 행정구역을 분리.
1949년에 여수읍·순천읍이 부로 승격되었고,
여수군을 여천군으로, 순천군을 승주군으로 개칭
광양군 광양면을 읍으로 승격했다.
또 광주부·목포부·여수부·순천부를 시로 개칭.
1955년에 영광군 영광면, 해남군 해남면이 읍으로 승격,
1957년에 광산군과 담양군의 일부가 광주시로 편입했다.
1963년에는 영광군 위도면을 전라북도 부안군으로 편입하고,
광주시의 일부가 광산군에 편입되어 서창면·대촌면을 설치했다.
구례군의 구례면, 화순군의 화순면, 함평군의 함평면이 읍으로 승격.
1969년에 무안군을 나누어 신안군을 신설하고,
1973년에 고흥군 도양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6년에 전라남도 여천지구출장소를 설치했다.
1979년 곡성군 곡성면, 고흥군의 고흥면,영암군 영암면,
무안군 무안면, 진도군의 진도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0년에 여천군 돌산면·삼일면, 장흥군 관산면 대덕면,
무안군 일로면, 영광군 백수면, 완도군 노화면·금일면,
신안군 지도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1년 나주군 나주읍 일원과
영산포읍 일원을 통합 금성시 설치,
1986년에 전라남도 여천지구 출장소를 여천시로,
금성시를 나주시로 행정구역 명칭을 바꾸었으며,
전남 광양지구 출장소와 광주직할시 및 송정시 설치.
1988년에 송정시 및 광산군을 광주직할시에 편입,
1989년에 광양지구출장소를 동광양시로 승격했다.
1995년 순천시와 승주군, 나주시와 나주군, 동광양시와 광양군이 통합
각각 순천시, 나주시, 광양시라는 새로운 형태의 도농통합시를 이루었다.
1998년 여천시와 여천군을 통합하여 도농통합형태의 통합 여수시가 출범.
[자연환경]
월출산 천황봉, 전남 영암군 영암읍과 강진군 성전면 경계.
지리산 변성복합체를 제외하면 대부분 소백산변성복합체이며,
노령산맥 서쪽과 소백산맥에 해당하는 지리산 일대를 중심으로
신안군·함평군·무안군·해남군 지역까지 넓게 분포하고 있다.
이 지층은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기반암을 이루고 있다.
화순군 강진군에는 고생대 석탄기 및 페름기 암층이 두껍다.
이들 암질은 중생대 쥐라기에 일어난 대보조산운동의 지각변동
또한 백악기말 화산활동의 영향으로 화산암류가 관입된 지역이다.
전라북도 군산에서 완도까지 이어진 서쪽 해안과 다도해의 섬,
광주에서 해남까지는 유천층군 안산암과 응회암 등 화산성 물질.
광양시·순천시 주변과 목포시 북쪽에는 신생대 제3기층 분포,
장흥군과 섬진강·영산강 일대는 신생대 제4기층이 분포한다.
자형은 북쪽으로 노령산맥, 동쪽으로 소백산맥이 뻗어 있어
북쪽과 동쪽이 높지만 대체로 소백산맥이 노령산맥보다 높다.
동부는 소백산맥의 지리산(智異山:1,915m)을 중심으로
토끼봉(1,534m)·노고단(老古檀:1,507m)·반야봉(1,732m)
고봉들이 이어져 남한에서는 가장 높은 고산지대를 이룬다.
이곳에서 크게 동부지맥·중부지맥·서부지맥으로 갈라지는데
동부는 왕시리봉(1,243m)·백운산(1,218m)·영취산(510m) 등으로,
중부는 조계산(曹溪山:884m)·팔영산(609m) 등으로 각각 이어진다.
서부는 월출산(月出山:809m)·대둔산(大屯山:672m)·두륜산(703m) 등
한반도의 최남단인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토말에서 바다와 연결.
노령산맥이 전라남북도와 경계를 이루면서 서쪽으로 뻗어 있으며
노령산맥의 줄기를 따라 추월산(秋月山:731m)·병풍산(屛風山:822m)·
백암산(白巖山:722m)·입암산(笠巖山:626m)·방장산(方丈山:734m) 등.
팔공산의 북쪽 1,080m 지점 서쪽 계곡에서 발원한 섬진강
전라남도에 이르러 동부산지를 흐르면서 오수천·심추천·
경천·옥과천과 합류, 섬진강 유역에 넓은 평야는 없으나
침식분지가 발달, 곡성군 구례군은 침식분지가 발달한 곳.
보성강은 보성군 웅치면 대산리 제암산
남동쪽 계곡에서 발원 북동쪽으로 흐른다.
장평천·노동천을 합류해 보성저수지를 이루고
북쪽으로 유로를 바꾼 다음 율어천·동복천을 합류
곡성군 죽곡면과 오곡면 경계에서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특히, 이 강 유역의 산록은 차나무 재배의 최적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다원이 조성되어 있다.
1935, 1990년 건설된 보성강 댐, 주암 댐은 농업용수원
영산강은 담양군 월산면 병풍산 북쪽계곡에서 발원해 장성호
남서쪽 극락강·지석천과 합류하고 영산호 지나 서해로 흘러든다.
영산강은 감조하천으로 조수의 영향이 나주에까지 미쳤으나
1976년 담양 댐, 장성 댐, 나주 댐, 1981년 영산강 하구둑 건설
영산강 따라 나주평야·서석평야·학교평야 등의 충적평야가 발달.
장흥군 강진군 지나 강진만으로 흘러드는 탐진강
탐진강은 군동평야와 장흥평야 젖줄이 되고 있다.
해안은 전국에서 가장 심한 지절률(支節率)을 보여
직선거리에 비해 무려 8.5배나 되며 리아스식 해안.
유인도 273개, 무인도 1,694개로 총 1,967개 섬이 분포
전남 해안은 섬으로 둘러싸인 세계적인 다도해.
여수·고흥·장흥·해남 4대 반도가 남해로 뻗어 있고,
그 사이에 수심이 얕은 광양만·순천만·보성만·강진만 등
또한 북서부에는 무안반도와 해제반도가 서해로 돌출해 있고,
그 주변에 신안군에 속한, 유서 깊은 많은 섬들이 흩어져 있다.
기후
서해와 남해에 면해 있어 전체적으로 온난
해안지방과 내륙지방 간의 기후차가 나타난다.
목포·함평 등 서해안일대와 나주평야를 중심으로
연평균 12~14℃ 내외이며, 1월평균기온은 -0.2~2.0℃
연평균강수량은 1,100~1,300㎜ 정도이며,
강설일이 30~40일에 북서계절풍이 강하다.
순천·곡성·담양 등 영산강·섬진강 중상류는
북서계절풍이 불지만, 바람은 비교적 약한 편.
여름 최고기온이 30℃ 이상, 겨울엔 -4~-7℃
특히 섬진강 유역은 연강수량이 1,500㎜ 다우지역
완도·장흥·해남·고흥은 1,300~1,500㎜에 달하고
기온이 높아 연평균 13~14℃, 1월평균기온이 0~2℃.
예로부터 강수량이 많아 홍수피해가 큰 지역,
특히 태풍내습기에 많은 피해를 입기도 한다.
[인구·도시]
1925년에 215만 8,351명이던 인구가
1935년에는 250만 8,346명을 기록했으며,
1944년에는 274만 9,949명으로 늘어났다.
1935~44년에는 9.6%의 인구증가율을 나타냈으나,
전국 평균 인구증가율 17.5%에 비하면 매우 낮다.
1949년에는 약 304만 2,000명으로 인구가 급증했다.
6·25전쟁으로 줄어들었으나 1960년대 꾸준한 인구성장
1968년 최고 413만 8,366명 이후 대도시로 향한 이농현상
1970년 400만 5,735명, 1975년 398만 4,849명,
1980년 377만 9,475명, 1985년 374만 8,484명
1986년 광주시가 직할시로 분리되며 인구가 감소,
인구밀도는 183명/㎢로 전국평균 460명/㎢에 못 미친다.
목포는 5,204명/㎢로 가장 높고, 완도군이 192명/㎢로 높다.
곡성군·구례군·장흥군·화순군 등 동부산간지역은
100명/㎢ 미만이며, 곡성군이 76명/㎢으로 가장 낮다.
[산업·교통]
1970년대 영산강지구 농업종합개발사업이 추진되면서
1976년 담양 댐, 장성 댐, 광주 댐, 나주 댐의 건설,
1981년 영산강 하구둑의 완공 등으로 홍수 피해 해소.
쌀 생산량은 86만 7,529t으로 전국 쌀생산의 18.5%
쌀보리는 6만 4,771t 전국 생산량(9만 9,300t)의 65%
배의 주산지로 전국 생산량의 24.3%를, 감은 28.4% 생산
서해와 남해에 면해 있어 수산업이 활발하다.
특히 남해는 연중 수온이 높고 어종이 다양하다.
어업 인구는 총 13만 1,219명으로 전국의 36.9%,
김은 완도군·해남군·고흥군·신안군,
미역은 완도군·고흥군 중심으로 생산,
김은 전국 생산량의 70%, 미역은 91%
목포·여수·녹동·완도·진도·마량항 등이 주요어항
영광군의 법성포는 이조시대 조창과 조운의 역할까지 맡아
번성했던 항구였으나, 지금은 항구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
전국 20개 국립공원 가운데 지리산·월출산·내장산·
한려해상국립공원·다도해해상 국립공원 등의 전지구
또는 일부 지구를 보유해 전체 국립공원 면적의 39.2%
도립공원으로 무등산·조계산·두륜산이 지정되어 있다.
노고단·반야봉·피아골·불일폭포 등 높은 산과 계곡들.
화엄사·송광사·선암사·백양사·연곡사·천은사 등 사찰
내장산 일대의 단풍과 월출산의 기암괴석을 비롯해
홍도·거문도·백도·오동도·돌산도·소록도·보길도
................
나주목(羅州牧)
.................
삼한시대 마한 54국 중 임소반국 신운신국
나주지역에, 불미지국이 반남 지역에 비정.
삼국시대 백제 발라군(發羅郡)에서 죽군성(竹軍城)
백제멸망 후 당나라가 이곳에 대방주(帶方州)를 설치
지류 군나 도산 반나 죽군 포현 등의 영현을 두었는데,
죽군현(竹軍縣) 포현현(布賢縣)이 나주지역에 위치했다.
통일신라에 들어 686년에 통의군(通義郡)으로,
757년 금산군으로 고쳐 무주(武州:광주)에 예속
영현은 회진현(會津縣) 여황현(艅縣) 철야현(鐵冶縣)
진성왕 대에 견훤의 후백제에 속했으나,
왕건이 점령한 후 나주의 세력이 커졌다.
왕건이 나주의 호족 오다련의 딸과 결혼
제2대 혜종이 되자 나주 위치가 확고해졌다.
983년 광주를 대신해 전라도 계수관이 되었다.
995년에는 나주진해군절도사(羅州鎭海軍節度使)
1018년 5개 속군(무안·담양·곡성·낙안·남평)
11개 속현(철야·반남·안노·복룡·원율·여황·
창평·장산·회진·진원·화순)을 거느렸다.
이조시대 나주목으로 전라도 남부의 행정문화 중심
선조 때 기축옥사를 비롯해 영조 때 유림들이 처벌.
1657년(효종 3) 나주는 전라 우영(右營)으로서 개편.
1895년 16개 군을 관할했다가 이듬해 전남 1등군
................서남해 해양세력과 왕건.................
전남 해안은 9세기 장보고 청해진 체제의 중심
그 이전부터 고대 동아시아 문물교류의 중심지.
하여, 이 지역은 일찍부터 해양세력이 크게 성장
장보고가 암살당하고 청해진체제가 해체된 이후에도
서남해 일대에는 해양 세력이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서남해 지역의 해양세력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섬 지역 중심의 '도서 세력’
연안 지역 중심의 '해양 세력’
이들은 후백제 견훤의 침략 위협에 처하자
혼연일체가 되어 이에 저항했던 듯 보인다.
견훤의 공격이 장기화하고 강도도 거세지자,
이에 대한 이들의 대응 방식이 달라지기 시작.
'도서 세력'은 끝까지 비타협적 저항의 노선
'연안 해양세력'은 점차 실리적 타협을 모색
전자의 중심에는 압해도 능창(能昌)
후자의 중심에는 나주 호족., 오다련(吳多憐)
오다련은 견훤과는 타협할 수 없었던지,
새로운 타협의 파트너로서 왕건을 선택.
왕건 역시 오다련 세력을 서남해 발판으로 생각
왕건이 오씨 딸과 혼인해 타협의 증표로 삼았다.
반면, 능창은 왕건과도 대결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여, 왕건은 연안 세력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견훤과 '도서 세력'을 무력으로 굴복시키려 추진.
903년 3월 왕권은 주사(舟師 : 해군)를 이끌고
광주 해안상륙 후 금성군(현재, 나주)을 접수하고
10여 군현을 점령하고 군대를 주둔시키고 돌아갔다.
견훤의 집요한 공략에도 요지부동이던 나주 세력
왕건의 한차례 공격에 무너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연안 세력'과 평화적으로 이루어진 점령이었던듯.
그러한 사실을 짐작하게 하는 사례들.
왕건과 나주호족 오다련의 딸과의 결혼 동맹.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고려 제2대 혜종
나주의 위치는 고려시대 내내 확고했기 때문.
..........................................................
전라북도[全羅北道]
동쪽은 경상남북도, 남쪽은 전라남도,
북쪽은 충청남북도, 서쪽은 서해 이다.
과거 국내 최대의 농업 생산력을 가졌으나
공업화정책의 혜택을 크게 입지 못해 낙후
행정구역은 6개시 8개군 14개읍 145개면,
도청소재지는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이다.
남북간 약 70㎞, 동서간의 거리는 약 120㎞.
총면적은 8,058.03㎢로 남한 면적의 8.1%.
인구 1,962,867(2003), 인구밀도 243.8명/㎢(2003).
[연혁]
삼한시대 마한 땅이었으며, 삼국시대 백제 영역.
660년(의자왕 20) 당의 관할에 있다가 신라에 귀속.
685년(신문왕 5) 9주 5소경 제도에 의해 완산주가 설치
고부군·김제군 10개 속군과 31개의 속현, 소경으로 남원경
757년(경덕왕 16) 완산주는 전주(全州)로 개칭되었다.
진성왕대 원종 애노의 난을 계기로 각 지방에서 호족세력
새로운 사회세력으로 후백제를 주창한 견훤 영향권에 들었다.
북쪽은 경상북도, 서쪽은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동쪽은 울산광역시, 남쪽은 부산광역시와 남해
소백산맥 서부와 태백산맥 동부 및 낙동강 연안.
예로부터 부산과 더불어 남쪽의 관문 구실을 했으며,
울산·부산·창원·마산을 연결하는 남동연안공업지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중화학 공업지대 밀집지역.
남북간 거리가 약 194㎞, 동서간 거리가 약 173㎞.
행정구역은 10개시 10개군 22개읍 177개면 128개 동리
로 되어 있으며, 도청소재지는 창원시 사림동이다.
면적은 1만 511㎢로 남한 면적의 10.6%
경상북도·강원도·전라남도 다음 넓다.
인구 3,162,190(2003), 인구밀도 300.6명/㎢
[연혁]
삼한시대에 북동부는 진한, 남서부는 변한에 속했으며,
그후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6가야가 할거한 가야문화권
삼국시대에는 532년(진흥왕 24) 신라에 합병되었고,
통일신라시대 757년(경덕왕 16) 양주와 강주가 속했다.
고려시대 955년(성종 14) 전국을 10도로 개편함에 따라
경주 관할의 영동도(嶺東道)와 진주 관할의 산남도(山南道)
1106년(예종 1) 경주·상주·진주 관할 경상진주도(慶尙晉州道).
1171년(명종 1) 경상주도(慶尙州道)와 진합주도(晉陜州道)
1186년(명종 16) 2도가 합쳐지면서 경상진주도로 다시 개칭
몇 차례 개편을 거쳐 1314년(충숙왕 1)에 경상도 지명이 확정.
이조시대 경상도는 1413년(태종 13)에 8도의 하나
초기에는 삼포(三浦)를 중심으로 일본과 잦은 접촉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7년 동안 특히 많은 피해.
1895년(고종 32) 전국을 23부로 개편할 당시
경상도 대구·안동·진주·동래 4곳에 관찰부
오늘날 경남 진주부와 동래부 외 대구부 일부 포함.
1896년(고종 33) 전국을 13도로 개편함에 따라
경상남도를 진주에 관찰사를 두고 29개군을 관할
1914년 경남은 부산·마산의 2개부와 19개군으로 개편
1925년에 도청이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겨졌다.
1931년에 진주 김해·울산·진해·통영(충무)·삼천포,
1936년 장승포, 1937년 거창, 1938년 고성이 읍으로 승격.
1939년 진주와 하동이 각각 부와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42년에는 진영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해방 후 1949년에는 종래의 부가 시로 개칭되었고,
1955년에는 진해와 충무가 시로 승격되었으며,
1956년에는 삼천포와 사천이 각각 시와 읍으로
1960년에는 창녕이 읍으로,
1962년에는 울산이 시로,
1963년에는 남지와 삼랑진이 읍으로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분리되었다.
1973년에는 동래군과 양산군이 합쳐지는 한편 하남이 읍으로,
1979년에는 의령·가야·양산·신현·남해·산청·합천이,
1980년에는 기장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다.
신도시로 건설된 창원은 1980년에 시가 되었으며
이때 창원군이 의창군으로 개칭되었다.
1981년에는 김해가 시로 승격되었고,
1983년에는 도청이 부산에서 창원으로 옮겨졌다.
1985년에는 장안이 읍으로,
1989년에는 밀양과 장승포가 시로 승격,
1991년에는 의창군이 다시 창원군으로 개칭.
1995년 울산시·울산군, 진주시·진양군, 충무시·통영군,
장승포시·거제군, 밀양시·밀양군, 창원시·창원군 일부,
마산시·창원군 일부, 김해시·김해군, 삼천포시·사천군 통합
울산시·진주시·통영시·거제시·밀양시·
창원시·마산시·김해시·사천시가 되었다.
1996년 양산군이 도농복합형태 양산시로 승격.
1997년 울산시는 광역시로 승격·분리되었다.
[자연환경]
약 80%가 중생대 후기 퇴적된 경상계(慶尙系) 지층으로 덮여 있다.
경상계는 하부의 낙동통(洛東統)과 상부의 신라통(新羅統)으로 구분.
낙동통은 셰일·사암·역암 등으로 이루어졌으며,
진주에서 산청을 거쳐 합천까지 북북동방향으로 띠 모양
진주지방에서는 낙동통의 두께가 1,000m에 이르기도 한다.
신라통은 이암·사암·역암·분암·응회암 등으로
낙동통 동쪽의 대부분을 덮고 있고 위로 올라갈수록
화산활동에 의한 안산암·유문암·응회암 화산암이 분포
한편 서쪽 지리산 일대 편마암복합체 변성암류과 화강암
중생대말 불국사 화강암이 곳곳에 소규모로 노출되어 있다.
이 암석은 건축재·비석재, 석영맥에서는 납·아연·구리 금
소백산맥이 서쪽에 우뚝 솟아 전북 및 전남 도계
이 산맥을 따라 지리산(智異山 : 1,915m)을 비롯
덕유산(德裕山 : 1,614m)·남덕유산(南德裕山 : 1,508m)·
대덕산(大德山 : 1,290m)·백운산(白雲山 : 1,279m) 등 고봉
대덕산에서 동남쪽으로 갈라져나온 소백산맥의 지맥에는
가야산(伽倻山 : 1,430m)과 수도산(修道山 : 1,317m) 등.
육십령과 팔량치는 옛부터 영 호남을 이어주는 주요 고개.
태백산맥은 경상남도에 이르러 현저히 낮아지지만
밀양의 천황산과 양산의 원효산을 중심으로 동부고지
소백산맥 중심으로 서부산지와 동부고지 사이에
낙동강(洛東江) 연안의 중앙 저지대가 펼쳐진다.
낙동강은 경남에 이르러 황강(黃江)·남강(南江)·
밀양강(密陽江) 등의 주요지류와 합류하는데,
매년 홍수피해를 크게 일으켜왔으나
1969년 남강 댐, 1976년 안동 댐 건설로 완화.
서부산지의 남강 상류지역은 비가 많이 내려
낙동강 하류의 저지대에 상습적으로 심한 홍수
진주의 남강 댐은 홍수시에 남강 상류를 유역 변경
남해안의 사천만으로 직접 방류하도록 건설되었다.
낙동강 연안에는 곳곳에 충적평야가 발달되어 있으며,
낙동강 양안의 하남평야(河南平野)와 대산평야(大山平野),
그리고 낙동강 하구의 김해평야(金海平野)가 가장 넓다.
김해평야는 낙동강 삼각주 충적평야로서
지금은 거의가 부산광역시에 편입되었다.
낙동강은 조석(潮汐) 영향이 삼랑진까지 미쳤으나
1987년 낙동강 하구둑 건설 후 그 영향이 사라졌다.
이밖의 하천으로 전라남도와 도계를 이루면서
남해안의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섬진강이 있다.
남해안은 해안 출입이 심하고 섬이 많다.
해안선의 총길이는 2,166.9㎞이다.
유인도 78개, 무인도가 349개
거제도는 우리나라 제2위
남해도는 우리나라 제4위 섬.
[산업·교통]
남해는 수온이 높아 어종이 다양
각종 패류와 해조류가 풍부하다.
1995년 46만 7,053t이 잡혀 전국어획고의 13.4%
통영·삼천포·진해·장승포 등의 어항을 중심으로
멸치·고등어·갈치·쥐치·도미·정어리·가자미 등
난류성 어류가 주로 잡히며, 멸치는 남해어장의 대표 어종
한편 거제·통영·한산도 일대의 해역은 청정수역
수산양식이 활발하며 전국 굴양식 어획고의 77.8%
그러나 진해만은 오염이 심해 연안 어업도 큰 타격
철·중석·금·은·납석·고령토 산지이나
고령토를 제외하면 생산량이 보잘 것 없다.
도자기 원료 고령토는 산청·하동뿐만 아니라
밀양·양산·고성·함양·합천에서 고르게 생산.
제조업의 부가가치는 전국의 16.8%
경기도·서울특별시·부산광역시 다음.
창원의 기계, 온산의 유정제·비철금속제련,
진해의 비료, 진주의 농기계 등 경남공업을 대표
마산과 김해는 섬유공업, 통영과 사천은 수산가공업.
통영의 나전칠기, 의령·진주의 한지공업이 유명.
삼랑진양수(60만kW)·남강(1만 3,000kW) 등의 수력
영남(40만kW)·사천(112만kW) 화력 및 고리 원자력
총 527만kW의 발전설비는 전국의 33.7%에 해당한다.
문화재는 1997년 현재 국보 9점, 보물 93점, 사적 42개소,
천연기념물 30종, 중요무형문화재 17점, 중요민속자료 12점
등의 국가지정문화재와 유형문화재 286점, 무형문화재 18점,
기념물 147점, 민속자료 18점 도지정문화재 및 문화재자료 230점
백두대간 국토 지리적 산세에서의 중심은 백두산.
고조선 시대에 이르러 단군신화의 성역은 묘향산.
이조 단군신화의 성역은 강화도 마니산과 태백산.
'우리나라 민족사상의 중심은 지리산.'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적인 역사의 중심 또한 지리산.
역사는 현실을 토대로 세워야 국제사회에 설득력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리산에 관한 역사는 매우 중요하다.
백두산에서 천왕봉까지 뻗은 백두대간.
해가 떠오르는 곳에 위치한 동방의 나라.
타골이 '동방의 빛'이라 표현한 우리나라.
태평양 북서풍 모진 풍파를 견딘 우리나라.
30억년 전 지축이동으로 바다에서 솟은 산세.
히말라야 산맥은 5~6억년 전 태평양 바다 속.
그곳 암모나이트 자갈 속 물고기와 조개의 화석.
그것은 히말라야 산맥이 바다였다는 사실을 입증.
백두대간 산맥 역시 해마다 그 높이가 치솟고 있다.
백두대간은 지질학적으로 6천 5백만년 전 화산 폭팔.
지리산 일대는 3천만년 동안 용암이 뒤끓었던 용광로.
화산폭팔 이전까지 지리산 일대는 공룡의 천국이었다.
공룡은 9천만년 전 지구 상에서 짧은 동안에 멸종됐다.
한반도에서 사라진 공룡은 약 2천 5백만년간 지구를 방황.
공룡이 어떤 이유로 멸종되었는지 아직 밝혀진 바 없다.
중동지역 유전으로 보아 그곳 일대에서 멸종된 듯 보인다.
유전은 중생대 백악기 지질층에서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석유는 쥬라기시대 공룡과 식물들 화석의 잔존 퇴적물.
지하 3000 ~ 4000m 또는 5000 m에서 쏟아져 나오는 석유.
지구상의 자동차를 보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석유 매장량.
공룡시대와 빙하시대가 끝난 후 지구의 주인은 인류가 된다.
바다가 육지로 변하고, 육지가 바다로 뒤바뀐 장구한 세월.
열대지역이 온대지역으로 변하고, 한대 지역으로 순환 변화.
화산 폭팔로 용광로 같던 지구 표면이 빙하로 덮이기를 반복.
한반도에서 인류의 기원은 60만년 전으로 추정된다.
46억년 지구 역사에 비하면 인류의 역사는 짧은 셈.
구석기시대 중국(북경)의 유물과 제주도 유물은 유사.
구석기시대, 빙하시대를 거쳐 대홍수 이후 신석기 시대.
현재 한반도 해안 형태는 7천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약 1만 8천년전 빙하지대였던 한반도.
오늘날, 남북극 만큼 빙하가 덮혔을듯.
지구 온난화로 인해 7천년 전까지 빙하가 녹아 흘렀다.
현재, 한반도 해안선은 빙하가 녹아 형성된 7천년전 모습.
한반도의 해안, 산, 강의 모습은 7천년전에 갖춰진 형태이다.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진 후 들이닥친 대홍수.
대홍수가 일어나자 지구상의 동물들은 산으로 피난.
당시 인류는 휴화산에서 불씨를 얻고 수렵, 농사로 연명.
대홍수가 끝난 후에야, 점점 강쪽으로 생활터전을 옮긴 듯.
높은 산에서 다시 강가나 바닷가 쪽으로 이주를 한 것 같다.
구석기시대 유물들은 대부분 빙하가 흘러내리며 사라진듯.
수천 미터 두터운 빙하 층이 녹아 흘러 골짜기를 깎은 흔적.
한반도 지표면은 빙하시대 이후 수백 m 이상 깍인 흔적이 있다.
'한반도에서 흔적 조차 사라진 화산의 분화구들.'
현재 한반도의 구석기 시대 유물이 출토되고 있는 제주도.
제주도는 화산 분화구의 형태가 대부분 원형대로 유지된 상태.
빙하가 녹아 지표면이 깍여나간 흔적이 크게 없음을 알 수 있다.
동해는 동북아시아 빙하가 흘러내리며 패인 물골.
남해는 진도 서쪽과 제주도 서쪽까지 평균수심 101m.
서해는 아시아 대륙을 덮었던 빙하에 훓고 지나간 흔적.
불과 만년전부터 7천년전 사이 빙하시대 이후 형성된 바다.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해수면 아래로 잠기기 전까지는 육지.
특히, 서해는 빙하가 녹기 전까지 사람들이 거주했던 곳이다.
'해수면 상승으로 저지대가 서해 속으로 잠긴듯.'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서해가 저지대 육지였음을 알수 있다.
그당시 서해 지역은 바다 속으로 해마다 수십리씩 사라져간다.
하여, 서해 저지대로부터 고지대로 차츰 민족 이동이 시작된다.
저지대 민족의 대이동으로 인해
고지대 유목민과 벌어진 영역다툼.
고대 국가가 형성되고 전쟁이 벌어지며 흥망성쇄의 역사가 시작.
한반도 역시 그 역사의 소용돌이에 맛물려 고대국가가 형성된다.
삼한시대(마한 변한 진한) 형성 전, 역사의 한 시점으로 추정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존재는 물에서 비롯되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자라게 하는 비와 눈의 근원도 바다.
바다는 원초적인 공포감을 일게 하는 무질서와 혼돈의 세계.
바다에 얽힌 전설이 많은 이유는 한없는 넓이와 깊이 탓.
사나운 폭풍우, 짙은 안개 그리고 배를 삼키는 바다의 괴물.
바다는 옛날부터 신비한 베일에 싸인 지하세계로 통하는 관문.
바다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는 곳이 많다.
지구 상 가장 높은 히말라야 최고봉보다 깊은 바다속 신비.
한반도는 삼면의 바다가 대륙붕으로 둘러 싸인 특수한 지형.
'마치,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같은 안전지대.'
......................노아의 방주................................
7000년전 40일 간 비가 내렸던 대홍수 기록(구약성서 창세기)
하느님으로부터 방주를 만들라는 지시를 받은 노아와 그의 가족,
노아가 고른 동물 만이 피난할 수 있었다는 전설 속의 방주이다..
빙하가 녹아 흐르고 대홍수에 패인 자국이 그랜드 캐년.
지구 온난화로 빙하시대가 막을 내리며 해수면의 급상승.
그당시 지구는 높은 산봉우리 말고는 거의 물에 잠긴 듯.
...................................................................
중국 최초의 고대국가인 하나라 역사에도 대홍수 기록이 있다.
기원전 1660년에는 한반도 역사상 최초의 대홍수 기록이 있다.
단군도 아사달(평양) 도읍지에서 묘향산으로 대피했던 역사기록.
....................역사기록..................................
단군은 기원전 3,898 년에 배달국을 개천(開天).
고구려 고주몽에게 양위한 때가 기원전 58 년이다.
기원전 1661년(15대 단군 51년) 은나라가 화친을 구했다.
기원전1660년 홍수가 크게 일어나 피혜 입었다.
이에 단군은 곡식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BC 1660년 양운국과 수밀이국이 조공을 바쳤다.
(수밀이국은 메소포타미아와 인접한 양운국 인근.)
.....................................................................
'단기 역사로 보아 대홍수 시기는 약 4천년 전.'
빙하시대후 대홍수는 지구 곳곳에서 여러 차례.
대홍수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곳은 화산지대 뿐.
구약성서의 '소돔과 고모라' 멸망은 화산폭팔 흔적.
그후 대홍수에 사해바다 속으로 흔적도 없이 잠긴 도시.
'노아의 방주'는 배 형태의 분화구였을 듯.'
대홍수의 재앙으로부터 생명체를 보호했을.. 화산 분화구.
용암이 끓고 뜨거운 온천이 솟는 휴화산은 생명체들의 피난처.
인류는 그곳에서 악펀후를 피하고 불씨를 얻고 수렵을 했을 듯.
우리나라에서 '노아의 방주'같은 곳은 창녕의 화왕산.
화왕산 분화구 역시 '노아의 방주' 같은 피난처였을 듯.
창녕은 '비야 가야' 도읍지이자
우포늪 공룡발자국 화석 유적지.
화왕산은 휴화산이 거의 원형으로 보존되어 있는 곳.
제주도의 한라산 및 백두산 개마고원 역시 같은 맥락.
서해안 일대는 밀물 썰물에 의해 해마다 침하작용.
남해안 리아시스식 해안은 빙하시대에 패여나간 흔적.
한반도는 해마다 북쪽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고 한다.
남극과 북극은 빙하 지대이고,
남극점은 위치가 매일 변한다.
남극점 탐험가들은 그탓에 방황.
햇볕을 가장 적게 받는 지구의 양극
남북극은 지구 중력의 축이기도 한 곳.
그 중심축은 46억년간 조금씩 꾸준히 이동.
'이런 지각변동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햇볕에 의해 지구는 온대 열대 한대가 형성된다.
달의 인력에 의해 밀물과 썰물의 조류가 형성된다.
무거운 물질은 북쪽으로 몰리게 하는 태양계 원심력.
북극 빙하지대에 막혀 위로 솟구친 히말라야 산맥.
혹한에 팽창된 북극의 빙하와 지구 원심력의 조화.
지구의 육지는 북반구 북극 방향으로 점점 몰려간다.
남극 방향으로는 점점 더 넓은 바다가 형성된다.
호주가 한반도 방향으로 다가오는 이유도 같은 맥락.
지구의 지각변동으로 생긴 틈을 비집고 용암이 분출된다.
화산폭팔로 지구 무계의 불균형을 46억년간 잡아준 용암.
지구가 태양계 궤도로부터 벗어나지 않게 하는 화산폭팔.
우주 궤도에서 벗어난 별은 유성처럼 한순간에 사라진다.
삼면 바다 속에 대륙붕 몸집을 숨긴 한반도.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진 한반도의 골격.
백두산 금강산 지리산을 중심 축으로 하는 지형.
옛부터 신이 살고 있다는.. 성스러운 삼신산.
백두산 영주, 금강산 봉래, 지리산 방장, 3신.
백두대간은 3면의 바다에서 솟은 '天神의 남근'.
백두대간의 머리를 다스리는 백두산 산신령은.. 영주
백두대간의 뿌리를 보호하는 지리산 산신령은.. 방장.
백두대간의 허리 지킴이 황홀경 금강산 산신령.. 봉래.
백두산은 정상 주위가 흰눈에 덮여 있어 명명된 백두.
천신의 정기가 백두를 통해 분출된 산정호수가 천지(天地)
'영주'라는 산신령은 백두대간 천신의 정기를 지키는 지킴이.
금강산 수호신 '봉래'는 무릉도원 황홀경 지키는 산신령.
지리산 수호신 '방장'은 그곳의 불로초를 지키는 산신령.
'천신의 정기'가 지리산에서 만들어진다는 뜻으로도 해석.
'우리나라 영역을 상징하는 백두대간.'
동해 남해 서해 3면의 바다까지 우리나라 영역.
백두대간 뿌리는 백두산이 아니고 지리산인 셈.
따라서, 백두대간 제 1구간은 지리산에서 시작.
지리산 우리 말 이름은 ..달룰뫼.
'위에서 내리 누른다.'는 뜻이다.
天神의 정기가 天王聖母 몸속으로 들어감을 상징하는 이름.
천왕성모는 '천신의 정기를 이어 받은 거룩한 어머니'란 뜻.
즉, 사람이지만 천신의 정기를 받은 '지리산 토속신앙의 대상.
'두류산(頭流山)·방장산(方丈山)·지리산(地理山) '
현재 지리산의 옛 이름 3개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두류산> 이름 속에는 음양오행설 숨은 뜻을 담고 있다.
두류산은 백두산 '머리 頭'를 향해 흐르는 발원지를 의미.
'즉, 두류산은 천신의 정기 백두대간에서 뿌리.'
백두산과 별개가 아닌 한 줄기로 해석하여 두류산.
<방장산>은 3 신이 살며 지킬 만큼, 불로초 많은 곳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려고 삼천 동자를 보냈던 명산.
'진시황의 조상은 서해 저지대에 거주했던 민족.'
저지대가 서해에 잠기자 민족 대이동을 거쳐 중국 중원을 점령.
대홍수에서 물을 잘 다스린 우씨 가문이 중국 최초 하나라 창건.
하 은 주를 고대국가를 거쳐 진나라가 중국을 천하통일하게 된다.
중국 역사는 저지대 어,농업 민족과
고지대 유목민간 영역 다툼으로 점철.
한반도 역시 고대국가가 형성되기 전까지
저지대 민족과 유목민 민족과의 영역 다툼.
삼신산(지리산) 지명은 진시황에게도 알려진 이름.
서해 저지대가 물에 잠기며 중국으로 이동한 민족들.
진나라 조상도 지리산은 옛날부터 삼신산으로 여긴 곳.
즉, 우리나라로 이주한 민족과
진나라를 이룬 민족은 이웃사촌.
한반도에서 단군신화와 고대국가가 형성되기 이전 시대.
구석기시대 말에서 신석기시대 초기 사이의 어느 한 시점.
즉, 빙하기 후 대홍수로 서해가 바다에 잠길 무렵 민족 이동.
서해지역에서 피난 온 민족에겐 지리산 일대가 정착지였을 듯.
하여, 그당시 모계사회에서 천왕봉의 천왕성모는 숭배의 대상.
삼한시대 이전부터 거주했던 토박이들이 아니었을까 추정된다.
그후 가락국을 창건한 김수로왕이 불교문화를 도입한 듯.
변한 영역이 가락국을 거쳐 신라에 합병되며 불교가 번창.
반야봉은 한반도 불교문화의 산실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한반도에서 불교가 본격적으로 꽃핀 시기는 통일신라 시대.
당나라에서 귀국한 장보고가 신라에서 해상왕국을 이룬 시기.
가락국 불교는 인도에서 들어왔고 신라 불교는 당나라에서 유입.
'이조 중기의 유학자 남명 조식'
그는 평생 지리산을 떠나지 않고
지리산에서 살다가 뼈를 묻은 인물.
'看山看水 看人看世' - 남명.
'산을 보고 물을 보고,
인간을 보고 세상을 본다’
그에게 지리산은 영원한 정신적 지주이자 표상.
지리산은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의 축소판인 곳.
한반도 사상의 산실이고, 선도성모를 섬긴 성역.
지리산은 민족 정기와 불교가 합쳐진, 문화의 산실
<통일신라 선종불교인.. 실상산문>
<고려의 천태종과 조계종..종파 본산>
모두 지리산에서 싹텄고 이조 후반 유교와 합쳐진다.
임진왜란 당시 지리산은 우리나라 의병활동의 중심지.
동학혁명, 일제시대 형평사 운동 등의 거점은 지리산.
한반도 조상은 바이칼 호 설원에 살던 백의민족.
생명의 근원은 백색에서 태어나 백색으로 돌아간다는 토탬.
한반도 상복이 전통적으로 백색인 사실은 그 사실을 뒷받침.
낙동강 유역에서 출토된 구석기~ 신석기시대의 다양한 유물들.
낙동강 유역과 중국 북경 유물은 거의 비슷하다.
고대사회에서부터 뿌리가 같은 문화를 공유한 때문.
고대국가가 형성 되기까지 성씨에도 그 흔적이 보인다.
이름의 첫째 글자(돌림 자)는 그곳 씨족사회의 혈연관계
이름의 끝 글자는 자기 존재를 타인에게 알리는 고유명사.
'배달민족의 민족 정기를 담고 있는..백두대간'
지형으로는 백두산이 머리 이지만 뿌리는 '지리산'이다.
'백두대간 1 구역'은 천신으로부터 물려받은 민족 정기.
불교 관점에서 보면, 백두대간 민족정기의 뿌리는 지리산.
한반도는 삼한시대에서 삼국시대까지
동아시아의 해상왕국으로서 군림했다.
고려시대에는 세계적인 해상 무역왕국.
오늘날까지 '코레아'로서 불리울 정도.
이조시대 해금 정책때문에 해상무역 쇠퇴.
임진왜란 이후 강화된 이조의 공도 정책.
해상무역 패권은 일본으로 넘어가고 만다.
현재, 38선에 가로 막힌 동아시아 실크로드.
'막힌 실크로드 육로가 다시 열리면,
한반도는 타고르 시처럼 '동방의 등불.'
동방의 등불 ( 타고르 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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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될지니.
마음 속에는 두려움이 없고,
이상은 하늘 높이 솟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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