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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고목 숲, 불나면 타버린다”
새 기업가정신을 찾아서 / 안철수 교수 인터뷰
2011년 05월 01일(일) 조계완 economyinsight@hani.co.kr
‘企業家精神’이란 말은 일반 經濟學原論 책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윌리엄 보몰은 “經濟學 領域에서 ‘企業家’라는 槪念은 존재하지 않는다. 數理的 모형에 의해 利潤極大化를 追求하는 기업은, 投入要素의 價格變數에 따라 利潤을 最大로 하는 最適의 産出量이 自動 計算된다. 여기서 企業家라는 한 사람이 나름대로 冒險을 하고, 리스크를 안고 革新을 하는 과정은 經濟分析對象에 들어갈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조지프 슘페터 이후 企業家精神은 현실 경제에서 經營 및 財界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膾炙돼왔다. ‘法人資本主義’를 주창한 經營學의 대가 앨프리드 챈들러는, 革新을 追求하는 經營人을 경제의 ‘보이는 손’이라고 말했다. 경제를 이끌어가는 企業家의 積極的인 役割을 설파한 것이다.
韓國에서는 故 鄭周永 會長 이후 韓國的 企業家精神의 원형과 쇠퇴에 대해 많이 이야기해왔다.
<이코노미 인사이트>는 ▵新興經濟權의 浮上 ▵技術의 融合과 스마트화 ▵ 疏通이 重視되는 ‘마켓 3.0 시대’ 등 世界經濟의 뉴 노멀(New Normal) 시대에 필요한 韓國 企業家精神의 表象을 찾아 나섰다.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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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완 國內編輯長
지난해 5월 <이코노미 인사이트>는 創刊號에서 經濟專門家 70명(經濟學界 40명, 硏究機關・市長 이코노미스트 30명)을 상대로 設問調査를 한 적 있다. ‘創造・革新・進取的인 企業家精神을 가장 훌륭하게 구현한 財界人物(복수 응답)’ 항목에서 1위는 鄭周永 前 現代그룹 會長(총 42명)이었고, 安哲秀 카이스트(KAIST) 碩座敎授(21명)가 2위였다. 이어 李炳哲 전 삼성그룹 創業主(19명)가 3위로 꼽혔다.
安哲秀 敎授가 國內言論과 처음 인터뷰한 건 1988년이다. 지난 23년간 安 敎授는 ‘大韓民國 젊은이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사람’이자 ‘企業家精神의 살아 있는 神話’로 불렸다. 安 敎授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 最高經營者 MBA 과정을 공부한 후 카이스트에서 ‘企業家精神’을 강의해왔다. 安 敎授는 <이코노미 인사이트>와의 인터뷰에서 “새싹이 자라지 않고 枯木만 있는 經濟는 한번 불이 나면 숲 全體가 다 타버린다”며 “새싹을 키우려면 個人이 가진 危險度를 社會的으로 덜어 分散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韓國에서는 眞正한 意味의 ‘最高經營者(CEO) 풀’이 不足하다. 오너들이 投資決定에 관한 모든 權限을 專門經營人에게 넘겨줘야 한다.”고 强調했다. 최근의 카이스트 사태와 관련해 安 敎授는 “우리 社會의 수많은 社會的・構造的 문제가 카이스트라는 조그만 창을 통해 불거져 나온 것”이라며 “決定權을 가진 사람들이 하면 할 수 있는 일인데, 생각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4월12일 安哲秀硏究所에서 했다.
鄭周永 會長, 李炳哲 會長 등 韓國經濟 제1세대 創業主들이 ‘할 수 있다’는 精神 아래 企業家 神話를 이뤄냈다면, 2세대에서는 選擇과 集中, 벤처精神이 强調됐다. 이제 韓國 企業家들이 追求해야 할 ‘新企業家精神’이 있다면?
企業家精神의 本質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치 않았다. 企業家精神을 經營者 마인드로 잘못 誤解하는 傾向이 있는데, 企業이란 말이 본래 ‘일으킬 起’(기)에 ‘업 業’(업)字다. 어려운 危險이 많음에도 스스로 判斷하고 行動으로 옮겨 지금까지 存在하지 않던 價値나 일자리를 만드는 일련의 行動이 企業家精神이다.
우리는 지금껏 남들이 안 한 일을 해서 發展했다기보다는 남들이 이미 해온 일을 좀 더 빠른 速度로 效率的으로 쫓아가서 成功했다. 세계 10위권 經濟强國이 된 것은 ‘빠른 追擊’(Fast Follower)에서 잘해왔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 별로 없는 狀況에서 잘못 試圖해 失敗하면 그나마 가진 것도 잃을 수 있으니, 남들이 한 것 중에 可能性이 보이는 分野에 集中投資하고 가장 빠른 時間에 效率的으로 그 일들을 해온 것이다. 이때 重要한 건 失敗하면 안 되고, 失敗나 失手를 容納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大企業과 經濟의 成功要因이었다.
그러나 이 方式은 이제 限界에 到達했다. 國民所得 2만달러에 지난 5년간 계속 머물고 있는 건 과거의 ‘빠른 追擊’ 方式이 이미 最高點에 到達했음을 말해준다. 과거의 방식을 넘어서야 한다.
이제는 ‘先導者’(First Mover)가 돼야 한다. 아무도 試圖하지 않은 分野에서 成功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선 失敗를 容認하는 文化가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 해도 100개 중 하나만 成功하기 마련이다. 失敗를 經濟・社會的으로 容認하지 않고, 失敗하면 당장 處罰하는 文化에서는 아무도 새로운 試圖를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면 先導者가 될 수 없다. 韓國經濟가 빠져 있는 딜레마가 이것이다. 社會・文化的 측면이나 企業・制度的 측면에서 과거의 成功神話 틀을 깨고, 이제 失敗를 容認하는 文化와 制度를 正立하는 것이 지금 韓國社會가 직면한 도전이고, 企業家精神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실패를 容認한다는 건 무슨 뜻인가?
企業家精神을 쇠퇴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이유는 낮은 成功確率, 그리고 한 번 失敗했을 때 재기할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시스템에 있다. 結果보다 過程을 더 重視해야 한다. 설령 失敗했더라도, 誠實하게 道德的으로 企業을 運營했는데 失敗했다면 다시 機會를 주자는 것이다. 우리나라 大企業을 보면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나 試圖했다가 失敗하면, 즉각 인사책임을 물어 해당 임원을 해고하는 일이 많다. 이런 文化에서는 새로운 試圖나 先導者가 생겨날 수 없다. 이것이 社會的으로 企業家精神의 쇠퇴를 초래한다. 한 번 失敗하면 敗家亡身하고, 金融事犯이 되고, 평생 재기할 수 없는 환경 아래서는 아무도 創業 같은 危險度 높은 試圖를 할 수 없다. 우리나라 大企業 構造에서는 雇用과 革新이 일어나기 어렵다. 失敗를 容認하지 않는 초단기 목표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다. 失敗를 容認하지 않는 構造가 결국 우리나라 大企業들의 自滅을 가져올 것이다.
그동안 公的資金 등을 투입해 失敗한 大企業을 救濟해준 일도 많았는데….
中堅 以上 大企業은 國家가 많이 救濟해주고 있는데, 사실 中堅企業 이상의 기업들은 國家의 ‘품’ 또는 國家라는 ‘搖籃’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들을 救濟해주는 건 企業家精神을 북돋운다는 면에서도 옳지 않다. 國家의 존재 이유는 社會的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면이 강해야 한다. 이것이 ‘정의’다. 요즘 세상에서 경제・社會的 강자는 國家도 필요 없지 않은가? 기존 大企業이 아니라 새로운 試圖를 하는 모험적인 企業家에게 재도전할 기회를 줘야 한다. 실리콘밸리가 그런 곳이다. 우리나라 언론들이 실리콘밸리에 취재 가서 성공한 기업들만 보고 그 성공 요소만 뽑아 기사화해 실리콘밸리는 ‘성공의 요람’이라고 말해왔는데, 핵심을 제대로 못 본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 100개 벤처기업 중 1개만 성공하고 99개는 失敗한다. 失敗한 기업을 그 뒤 어떻게 취급했는지가 핵심이다. 실리콘밸리는 ‘실패의 요람’이며, 이들에게는 재도전의 기회를 준다. 사람은 대체로 한 번은 실수하지만, 다시 기회를 잡으면 예전의 失敗를 반복하지 않는다. 그러면 중소・벤처기업의 성공 확률이 점점 높아지게 마련이다. 失敗의 경험이 오히려 ‘社會的 자산’이 된다. 이것이 실리콘밸리 성공의 本質이다. 企業家精神을 살리려면 失敗의 요람에서 배워야 한다. 한 번 失敗하면 전부 금융사범이 되는 환경에서는, 제정신인 사람은 도전적인 創業에 뛰어들 리 없다.
2007년 3월 安哲秀연구소에서 젊은이들과 대화 중인 安哲秀 敎授.
슘페터적 의미의 전통적 企業家精神에는 빠져 있는, ‘社會的 책임’과 ‘지속 가능 경영’이란 측면에서 企業家精神은 무엇인가?
‘창조적 파괴’가 企業家精神의 원조 격 콘셉트이긴 한데, 내가 즐겨 쓰는 용어는 아니다. ‘파괴’하지 않은 채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만들 수 있고, 기존 가치도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도전과 혁신 외에 企業家精神의 本質로 몇 가지 보탠다면 △社會的 책임 의식 △사람들의 삶에 혜택을 줄 수 있는 새로운 것을 만들겠다는 마음가짐 △급변하는 트렌드를 앞서 읽는 통찰력과 비전이다. 社會的 책임 의식 측면에서 보면 ‘社會的 企業家’가 존재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企業家들이 자사의 수익만 追求했다면, 社會的 企業家는 기업 자체뿐 아니라 그 기업을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자, 그리고 지구 환경과의 조화까지 고려한다. 따라서 社會的 企業家는 난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社會的 기업을 하면 國家에서 인건비 보조를 받을 수 있고, 創業이 쉽다고 여겨 뛰어드는 일이 많다. 하지만 난이도가 높아서 도전하기에 힘들다. 우리나라의 社會的 벤처기업 제1호가 安哲秀연구소라고 생각한다. 社會的 벤처기업을 하다 보니 난이도가 높았고, 고생도 많이 했다. 당시에 이른바 ‘어음깡’을 하러 은행에 얼마나 많이 다녔는지 모른다. 그러나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 존경받는 기업이다.
企業家精神을 企業家 한 개인의 번뜩이는 아이디어 차원을 넘어 점진적이고 오래 누적되는 ‘프로세스’(과정)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느리고 지루하고 점진적인 과정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탄생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초창기에 한 번일 뿐이다. 그다음부터는 현실에서 구체화하고 실행하는 것인데, 그것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고 해도 사용자에게는 좋지 않을 수 있다. 수많은 失敗에서 배우고, 사용자와 시장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반영하면서 자신을 능동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어떻게 9999번 失敗하고도 계속 전구를 만드려는 용기를 가졌느냐?’는 질문에 에디슨은 “전구라는 게 원래 1만 번의 失敗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우리나라 중소・벤처기업들이 失敗하는 중요한 원인은 무엇인가?
한국에서는 創業하는 한 개인이 모든 리스크를 떠안아야 한다. 은행과 國家 등 우리 사회의 어느 부분에서도 그 리스크를 부담하지 않는다. 이것을 고쳐야 한다. 물론 創業에 돌입한 사람의 失敗 확률이 높은 원인은, 남 탓할 필요 없이 創業자 스스로 경영 능력이 부족하고 자신이 뭘 모르고 있는지 모른다는 데 있다.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팀을 이뤄 같이 나가면 좋은데, 혼자 하는 경우 많이 失敗한다. 인프라 構造 쪽으로 눈을 돌려보면 創業 기업을 도와주는 인프라가 부실하다. △인력을 공급하는 대학 △벤처캐피털 △자금대출 금융권 △정부 정책 등 모두 부실하다. 기업 혼자 하기에는 부담이 많다. 이 부담을 사회에서 덜어줘야 한다. 정부 쪽의 연구・개발 지원이 없다 보니 기업이 모두 부담해야 한다. 企業家적 도전 精神은 한국인이 미국인보다 더 높다. 그런데 그것을 사회구조적 모순이 더 큰 힘으로 억누르고 있다. 장기적으로 새싹이 나오지 않게 해 國家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구조적 모순에는 大企業 중심의 경제구조도 포함히는가?
위험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개인들이 創業에 나서지 않으면 경제적 활력이 일어날 수 없다. 새싹이 자라지 않고 고목만 있는 환경에서는 한 번 불이 나면 숲 전체가 다 타버린다. 새싹도 없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새싹을 키우려면 개인이 가진 危險도를 社會的으로 덜어 분산해줘야 한다. 꼭 大企業 중심의 경제구조를 혁파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大企業이 일자리를 200만 개도 못 창출하고, 그 일자리조차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앞으로 절대로(!) 더 늘리지 못할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들이 새로운 創業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 이는 우리 미래와 직결된 문제다. 청년실업, 중산층 붕괴, 빈부 격차 심화 등 모든 문제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사람들이 創業을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제도와 文化를 바로잡고, 기존 벤처・중소기업의 성공 확률을 높여야 한다. 大企業에 유리하게 환율을 계속 고정하는 정책을 펴는 ‘大企業 친화적 정책’은 중단해야 한다.
리스크는 주주나 은행이 어느 정도 부담하지 않는가?
은행은 國家에서 영업 허가를 받아 독점적 혜택을 누리는 기관인데, 돈을 빌려줄 때 법인의 리스크를 정확하게 측정해 관리하면서 거기에 맞게 적절한 이자율을 매겨야 한다. 그게 본연의 은행 역할이다. 그런데 은행이 리스크 측정 실력이 없으니까 그 부담을 전부 創業 기업에 전가한다. 또 간단히 연대보증을 세우는 식으로 리스크를 쉽게 해결하고 있다. 공짜로 돈장사할 수 있는 면허를 國家에서 받은 만큼 실력을 갖춰야 하는데, 실력은 키우지 않고 연대보증으로 해결하다 보니 사업에 한 번 失敗하면 금융사범으로 전락해 재기가 불가능해진다.
기업가들의 危險 회피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 企業家精神 약화는 벤처의 퇴조에 따른 것인가, 주주가치 경영 등 韓國經濟의 構造적 문제 때문인가?
주주 중심 경영이 자본주의의 정답은 아니다. 주주 중심 경영은 미국식 자본주의일 뿐이고, 유럽은 이해관계자 중심 경영이 대세다. 우리나라에 아무런 비판 없이 미국식 자본주의가 정답인 것처럼 들어왔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어떤 모델이 우리 현실에 맞는지 기업의 社會的 책임과 함께 공론화해야 한다. 그동안 압축성장을 향해 달려오면서 이를 고민하지 못했다. 이해관계자 경영을 중시하는 유럽 기업이 미국 기업보다 약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경제 유형은 社會的 공감대 형성에 따라 방향을 잡아나간다. 한 방향으로만 갈 수 없고 조정이 필요한데, 이제 논의할 때가 됐다. 기업은 장기 존속을 위해 社會的 책임을 다해야 한다. 주주 중심 경영이 극단적으로 표출되면 불량식품을 만들어 파는 회사가 된다. 많은 수익을 내고 주주에게는 보탬이 되지만, 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건강을 해치는 나쁜 존재, 즉 범죄집단이 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빠지지 않으려면 이해관계자를 생각하는 경영이 정착돼야 한다. 安哲秀연구소는 지금까지 이를 행동으로 보여줬다. 말은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가 주주가치 극대화를 표방했다면 일반인에게 백신을 무료로 배포하지 않았을 것이다. 國家적인 ‘인터넷 대란’이 발생했을 때 우리 연구소 직원들이 전부 공공기관에 파견돼 방어하는 데 투입됐는데, 인건비를 한 푼도 못 받았다. 사실은 인건비를 줘야 하는데 예산 편성이 안 됐다는 이유로 공공기관에서 인건비를 안 주더라. 철저하게 주주 중심 경영을 했다면, 직원들은 안 보냈어야 한다.
전반적으로 韓國 CEO들의 企業家精神을 평가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전문경영인들을 보면 最高經營者(CEO)보다 최고운영책임자(COO・Chief Operating Officer)가 많다. CEO는 기업의 큰 전략적 방향을 결정하고 企業家精神을 갖고 투자 결정을 하는 사람이다. COO는 일단 커다란 분야에 투자 결정이 이뤄진 뒤 매일매일 기업을 잘 경영하고 효율을 높이고 인사관리를 하는 사람이다. 그런 관점에서 오너경영인이 진짜 CEO이고, 전문경영인은 CEO 역할을 못하고 있다. 하고 싶어도 스스로 투자 결정을 못하고 지시만 받는 것으로, 韓國 기업 構造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CEO 풀’이 부족하다. 진정한 전문경영인 풀을 넓히려면 오너가 투자 결정에 관한 모든 권한을 전문경영인에게 넘겨줘야 한다.
이건희 會長의 신경영 가이드라인이 ‘지행33훈’(知行33訓)으로 정리돼 많은 기업인들이 지침으로 읽고 있다. 이 會長의 企業家精神을 평가한다면.
이건희 會長님 (잠시 생각하더니) 企業家精神을 갖고 계시죠. (安 敎授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재벌 해체를 주창하는 사람은 아니다. 전문경영인이 나은지 오너경영이 나은지 정답은 없다. 두 유형이 경쟁해서 실력 있는 쪽이 선일 뿐이다. 실력 있고 사리사욕만 채우지 않는 사람이 경영인이 돼야 한다. 출신 성분은 중요하지 않다. 재벌기업이 韓國經濟에 나름대로 공헌한 것이 있고, 재벌 해체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다만 國家경제 리스크란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포트폴리오 투자를 왜 하는가. 여러 주식에 분산 투자해 危險을 낮추는 것인데, 國家경제 운용도 마찬가지다. 지금 韓國經濟는 중소기업・벤처 기업은 거의 다 죽어버리고 大企業만 남아 있는 형국이라서 危險이 매우 크다. 외환위기 때 國家경제가 한 방에 다 날아가버리지 않았는가. 大企業 중심의 커다란 構造가 한쪽에 튼튼하게 자리잡고 있되, 그 옆에 중소기업・벤처 기업이 거의 같은 규모로 튼튼하게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한쪽이 힘들 때 다른 쪽이 버텨줄 수 있다. 大企業과 중소기업・벤처 기업이라는 튼튼한 두 기둥으로 가야 한다. 그러려면 大企業의 중소기업 착취 構造를 없애야 한다.
어디선가 “삼성동물원에 韓國經濟와 시장이 갇혀 있다”고 했는데, 재벌기업 삼성을 비판하는 이유는?
삼성뿐 아니라 전체 大企業의 문제를 언급한 것이다. ‘삼성동물원’만 말한 게 아니고 ‘LG동물원’ ‘SK동물원’도 말했다. 중소기업과의 거래에서 전반적인 착취 문제가 재벌 大企業 중심으로 묶여 있는 현상을 동물원에 빗대 표현한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새로 創業해 매출액 1조원이 넘은 회사는 웅진과 NHN밖에 없다. 이 둘은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직접 매출을 올리는 기업만 살아남을 수 있고, B2B(기업 간 거래)로 大企業에 납품하는 기업은 피가 마른 것이다. 정부가 大企業 위주로 정책을 펴오고, 중소기업은 깔아뭉개고 중견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한 무법천지를 방조해왔다.
지난해 12월 서울 리츠칼튼 호텔에서 열린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 2010' 행사에서 安哲秀 敎授가 '벤처기업 성공의 조건'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기업들이 단기성과주의에 빠지지 않고 장기적 안목에서 ‘인내하는 자본’을 투자하게 하려면 제도적으로 무엇이 필요한가?
주주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는 경영이 문제다. 이해관계자 관점의 경영으로 바꿔가야 한다. 정부조차 단기적 시야에 빠져 비정규 노동을 고용하고 있다. 정부 부처가 다양한 이유는 각 부처가 맡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다른 분야와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데 있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지식경제부 장관은 산업체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서로 열심히 싸워야 한다. 둘이 같은 목소리를 내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그동안 민간 大企業의 불공정거래만 자꾸 언급하는데, 공공기관도 불공정거래 주범 중 하나다. 정부가 대-중소기업 상생을 외치는 와중에도 공기업들이 거래 중소기업에 대해 불공정거래를 일삼고 있다.
동반성장과 초과이익공유제 논란에 대한 생각은.
초과이익 공유는 결과를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이야기인데, 우선 순위가 바뀌었다. 결과보다 과정의 정당성 문제가 먼저 이야기돼야 한다. 이익을 나누는 문제는 현행법상 불법적 거래 관행을 먼저 엄하게 다스린 다음 논해야 한다. 새로 법이나 제도를 만들 필요가 없다. 현행법 아래서 불공정거래를 하면 가차 없이 처단하고 한 번 적발되면 불공정거래로 취한 이익의 10배, 100배를 과징금으로 매겨야 한다. 시혜성은 곤란하다. 나아가 시야를 넓혀야 한다. 핵심은 중소기업과 거래하는 大企業 내부 관련 부서의 인사평가 기준에 있다. 그 팀에 속한 실제 담당자의 인사평가가 단기 성과에 맞춰져 있다면, 아무리 대통령이 대-중소기업 상생을 외치고 大企業 총수가 돈을 내놓아도 안 된다. 더 많은 실적을 못 내면 자신의 일자리를 잃게 되는데, 거래 중소기업을 더 쥐어짜지 그 누가 상생에 참여하겠는가. 동반성장 구호를 외치고 납품 결제만 빨리 해준다고 바뀌는 건 아니다. 그건 단기 처방일 뿐이다. 우리 사회의 인센티브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安 敎授에게 ‘공정’과 ‘정의’란 무엇인가?
이론적으로야 社會的 약자뿐 아니라 가진 사람도 불이익을 당하면 안 되는 것이 공정이다. 하지만 한국적 상황에서는 사회・경제적 약자 편에 기울어야 하는 게 ‘정의’다. 한쪽에 너무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로마 시대에 전쟁이 나면 사회 지도층의 전사자가 더 많았다. 社會的 강자일수록 군대 가는 사람이 훨씬 적은 우리 현실은 정의롭지 못하다. 지도층이나 강자일수록 법의 심판을 더 혹독하게 받아야 한다. 불공정거래 같은 불법적 이익 약탈 행위는 企業家精神을 해치고, 사람들을 겁나게 하고 도전 精神을 가로막는 핵심 문제다. 이것만 해결되면 중산층 붕괴 등 많은 문제가 연쇄적으로 풀릴 수 있다.
‘시장’이란 무엇인가?
한국적 환경에서는 시장에 ‘심판’이 있어야 한다. 시장에서 규제를 없애는 건 좋다. 대신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 여러 규제를 풀어놓고 기업들이 자유롭게 시장에서 활동할 수 있게 내버려두면 약육강식의 동물원과 정글이 된다. 축구 경기에서 룰이 복잡하면 재미가 없기 때문에 룰을 줄이지만, 최소한의 규칙이 지켜지는지 잘 봐야 한다. 자유시장의 기능에는 찬성하지만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
개별 기업이 성공 확률을 높이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우선 創業자를 2~4명으로 하기를 권한다. 혼자 創業하면 부족한 면이 많아 失敗 확률이 높다. 1인 創業기업일수록 失敗 확률이 높다. 2명 이상을 권한다. 한편 5명 이상이면 의견 일치가 어렵다. 민주주의를 하면 배가 산으로 간다. 가장 바람직한 건 만장일치다. 그래서 4명을 넘는 건 좋지 않다. 創業자 수는 그렇고, 내부에 있는 사람들도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 전부 연구원 성향이거나 전부 내성적인 사람 일색은 좋지 않다. 성격, 전문 분야, 리스크 감수성이 서로 보완되도록 다양하게 구성하는 것이 좋다. 특히 시장을 고려해야 한다. ‘좋은 제품’이란 만들 수 있거나 만들고 싶은 제품이 아니다. 사용자와 시장이 원하는 제품이다. 創業자 대부분이 기술자고 기존 회사에서 거부당한 것을 가지고 나와 創業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 失敗하는 일이 많다.
우리 시대 청년과 대학 이야기를 해보자. 카이스트 학생들이 최근 잇따라 자살하면서 큰 이슈가 되고 있는데….
(잠시 생각에 잠긴 채 침묵하다가) 학생들이 불쌍하다. 어떻게 하면 자라나는 학생들을 보호할 수 있는지 생각하면서 사람들이 이번 사태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카이스트 내부 사정이야 내가 잘 알고 나름대로 생각도 있지만, 곧 학교를 옮기게 된 입장(安 敎授는 조만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 갈 예정이다)이라서 카이스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적절치 않다. 나중에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다만 카이스트 브랜드도 國家의 큰 자산인데, 이번 일로 브랜드가 망가지면 모두 손해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이번 카이스트 사태는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문제의 종속변수다. 여러 가지 社會的・구조적 문제가 카이스트라는 조그만 창을 통해 불거져나온 것이다. 그 속에 사회구조적 문제가 모두 잠재해 있다. 현상만 보여준 채 넘어가거나, 사람 몇 명을 바꾸고 지나가면 안 된다. 構造적 문제까지 들어가서 카이스트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대학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몇 사람만 바꾼 채 끝나고 또 잊어버린다면 발전은 없다. 전 국민의 엔터테인먼트인 양 그렇게 지나가면 안 된다.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하면 할 수 있는 일인데, 생각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대학 강의와 청와대 모임이 겹칠 경우 강의를 더 중시한다고 들었다.
갑자기 청와대에서 ‘와서 조언을 해달라’고 간혹 요청하는데 학생들과의 강의 약속이 우선이다. 어차피 청와대에 가서 조언해봤자 내가 있으나 없으나 별 차이 없다. 대학에서 敎授들이 학생 교육에 관심을 더 많이 쏟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에서 敎授들이 가장 중요하고 유일하게 생각하는 것은 연구다. 학생한테 수업을 잘해봤자 승진이나 정교수 되는 데 별 혜택을 못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강의만 잘하는 敎授는 우리 대학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또 불쌍하다. 대학 經營者들이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고, 정부도 이를 고치는 쪽으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 企業家들은 “한 명의 뛰어난 인재가 1만 명을 먹여살린다”고 주창한다. 인재에 대한 생각은.
한 사람의 인재가 기업과 韓國經濟를 먹여살릴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인재가 활약할 수 있는 토양이 갖춰져야 한다. 지금처럼 창의성이 아닌 ‘스펙’으로 사람을 뽑는 환경에서는 그런 인재가 발붙일 수 없다. 그런 인재는 스펙에 관심 없고, 그래서 발탁 자체가 안 될 것이다. 그런 인재가 1만 명의 먹을거리를 만든다 해도 1만 명 몫을 독식하는 인재는 우리 사회에 별로 필요 없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인재다. 이제는 한 사람의 전문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기보다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힘을 합해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큰 일을 이뤄가는 시대다. 자신의 분야에만 정통해서는 전문가가 되기에 부족하다. 다른 분야에 대한 상식과 포용력까지 있어야 한다. 즉 다른 사람과의 협업이나 팀워크,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필요하다. 나는 ‘A형 인재상’을 얘기한다. 알파벳 A는 ‘사람 인’(人)자에 가교가 놓여 있는 모양으로,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나타낸다.
청년들의 스펙쌓기와 공무원 선호 등 안정 追求 경향에 대한 비판이 많다.
우리나라 청년들이 모두 독립적이고 도전 精神이 강한데, 精神이 社會的 構造에 짓눌려 있다. 나를 포함해 사회구조를 만든 사람들의 책임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호기심이 강하고 도전 精神이 있다. 그러나 사회구조적 문제가 더 큰 힘으로 젊은이들을 안전 지향적 選擇을 하도록 몰아넣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어디선가 “지금은 수평적 사고와 융합의 시대”라고 했는데, ‘융합의 시대’는 어떤 것인가?
융합 시대의 대표적 아이콘이 애플의 아이폰이다.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측면이 서로 융합된 것으로, 아이튠스로 대표되는 마켓플레이스를 보자. 이는 비즈니스 모델로서, 나아가 상생하는 생태계 개념까지 포함된 작품이다. 옛날처럼 한 분야만, 전자공학만 고집하고 거기에 매달리면 이런 융합 제품은 만들어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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