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에 나와 있는 글을 읽다보니 자기 파와 자신의 직계, 그리고 항렬자를 알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그래서 제가 한마디 끌쩍어 볼려고 합니다.
항렬자가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오행을 중심으로 하는 항렬자의 사용은 조선 후기부터 시작했습니다.
조선 전기까지는 형제 더 나아가 종형제까지 돌림자를 사용은 했지만 항렬자를 계파 이상으로 확대해서 사용한 경우는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조선 후기에 족보 편찬 신드롬이 조선 전국을 강타했는데요.
그 당시 신안동김씨가 사용하던 오행 중심의 항렬자를 타 가문도 수용하기 시작하면서 정착되기 시작합니다.
당시 항렬자의 사용은 양반 가문을 나타내는 하나의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짜 족보가 판을 치고 실제로 가짜 족보를 만들어 팔다 적발되어 처벌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게 됩니다. 심지어 왕족인 전주이씨 족보까지 가짜가 판을 칠 정도로 조선 후반기는 혼돈기였습니다.
이렇게 오행을 중심으로 하는 항렬자는 거의 모든 성씨들이 취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파평윤문 역시 조선후기 약 300년 전 즈음에서 오행을 중심으로 하는 항렬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를 가장 먼저 수용한 가문은 소정공-한성공-장령공계(일명 노성윤씨)를 중심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당시 노성윤씨는 명성이 대단하여 "파평윤씨=노성윤씨"로 인식될 정도였습니다.
노성윤씨는 오행을 중심으로 하는 항렬자 수용하는 전에는 특유의 항렬자를 갖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擧,손수변의 외자, 敎 등을 사용했지요. 東자 항렬자 이후에는 오행을 중심으로 하는 항렬자를 수용하기 시작하지요.
지금도 노성윤씨를 중심으로 하는 소정공-한성공-장령공계가 가장 광범위하게 항렬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炳*(33세)-*重(34세)-錫*(35세)-汝*(36세)-*植(37세)... 등으로 이어지는 항렬자를 사용하고 있죠.
자신 가문의 항렬이 이렇게 진행이 된다면 100% 소정공-장령공계라고 보면 됩니다.
판도공파의 경우 각 파별로 통일된 항렬은 거의 찾아볼수 없습니다. 판도공파 장방파인 제학공파 역시 계파별로 다른 항렬자를 사용하고 있고 부윤공, 정정공 모두 다른 항렬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마 노성윤씨라는 강력한 축을 갖고 있던 소정공파보다는 통일성을 부족했던 건 사실입니다.
기타 파 중에서는 태위공파가 단합되게 항렬자를 꾸준히 사용해 오고 있구요. 그 이외에 파들은 인구수도 적고 강력한 축이 없다 보니... 소정공파의 족보나 항렬자를 많이 수용해서 항렬을 정하여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강력한 축이라는 의미는 조선시대에 엄청난 역할을 했는데요. 즉 서울에서 출세한 가문 또는 조선 중기 이후 예학과 성리학을 집대성한 인물을 배출한 가문들이 중심축이 되었는데요. 우리 파평윤문은 소정공-한성공-장령공계를 중심으로 소정공-한성공-참의공계, 판도공-정정공계 등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판도공계가 주로 조선 전기에 중심 축을 수행했다면 조선 중기 이후에는 소정공-장령공계과 참의공계가 중심축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40세 이후에는 우리 파평윤문이 항렬자를 통일을 할려구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가문의 단결력의 측면에서 보면 바람직하지만 모든 파평윤문이 같은 항렬자를 쓰는 것도 그다기 바람직하게 보이지는 않네요.
속칭 말하는 A급 양반들은 이러한 중심 축을 갖고 있죠. 예를 들면 사계를 중심으로 하는 광산김씨, 김전을 중심으로 하는 연안김씨, 김상헌, 김상용 형제를 중심으로 하는 신안동김씨, 권근-권람을 중심으로 안동권씨, 기타로는 청풍김씨, 연안이씨, 경주이씨, 경주김씨, 한산이씨, 진성이씨, 은진송씨, 여흥민씨, 청주한씨, 청송심씨 등을 들 수 있죠. 지역으로 보면 주로 경상도와 충청도 출신 가문들의 경우가 대부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