化城喩品(화성유품) 第七
1.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의 멸도(滅度)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나간 옛적 한량없고 그지없고 불가사의한 아승지겁 전에
그 때에 부처님이 계셨으니, 이름이 대통지승(大通智勝)여래·응공·정변지·
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시니라.
나라의 이름은 호성(好城)이요, 겁의 이름은 대상(大相) 이었느니라.
비구들이여. 그 부처님이 열반하신 지가 매우 오래 되었느니라.
이 이야기를 하려는 거죠.
대통지승불 부처님의 이야기를 하는데 언제 때 사람이냐?
언제 때 부처님이냐?
그 지난 세월 지난 시간을 여기서 이야기 하는데
인도 사람들의 상상력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아주 풍부하고 또 기상천외한
그런 표현들을 우리가 종종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도 역시 그렇습니다.
무슨 걸핏하면 삼천대천세계라고 하고 걸핏하면 황하 강 모래 수 그래요.
황하 강의 모래라고 하는 것은
해운대 모래나 한강 백사장 모래같이 그런 모래가 아닙니다.
한강 모래 한 알이면 황하 강의 모래 열개 스무 개도 더 되는
완전 밀가루처럼 그렇게 보드라운 모래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가지고 숫자 상으로 계산하고 있습니다.
여기 한번 보면 "그 부처님이 열반하신 지가 매우 오래 되었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모든 땅덩이를
가령 어떤 사람이 갈아서 먹을 만들어 가지고 동방(東方)으로 가면서
일천 국토를 지나서 먼지만한 점을 하나 찍고,
또 다시 일 천 국토를 지나가서 또 점을 하나 찍고
이렇게 하여 땅을 갈아서 만든 그 먹이 다하도록 갔다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모든 국토를 수학을 잘하는 어떤 사람이나 그의 제자들이
그 수효를 다 알 수 있겠는가?
그걸 누구도 알 수 없죠. 누가 알겠습니까.
예를 들어서 남산 같은 산을 갈아 가지고 아주 작은 먼지를 만들었다고 했을 때
그 먼지 숫자가 얼마겠습니까?
정말 상상도 못 할 숫자 아니겠습니까?
아니 남산은 그만두고 남산의 백분의 일, 천분의 일, 만분의 일도 안 되는
바위 덩어리를 하나 갈아가지고 먼지를 만들었다고 했을 때
또 그 먼지 숫자는 얼마겠습니까?
그런데 이 지구를 갈아 가지고 아주 작은 먼지를 만들어다는 거죠.
그래서 그걸 가지고 먹을 만들어서 동방으로 가면서
한 국토를 지나서 찍는 것이 아니라 일천 국토를 지나서 점 하나를 찍고
또 일천 국토를 지나서 점을 하나를 찍고
삼천대천세계를 갈아서 만든 먹이 다 되었을 때 그 수요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 국토의 수효는 얼마나 되는가? 이 말이예요.
그러니까 제자들이..
"알지 못합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 사람이 지나간 국토에서 그 점이 떨어진 것이나
떨어지지 않은 것을 모두 모아 부수어서 먼지를 만들어
그 먼지 하나로 한 겁을 친다 하더라도
그 부처님이 열반(涅槃)하신 지는 이 숫자보다도 더 오래되셨느니라.
여긴 또 이야기가,
그 지나간 국토에서 그 점이 떨어진 것이나 떨어지지 않은 것을 모두 모아서
뭐라고 했죠? 일천 국토를 지나서 먼지만한 점을 하나 찍는다고 했죠.
그러니까 점 떨어진 거나 떨어지지 않은 거나 모두 모아 먼지를 만들어서
그 먼지 하나로 한 겁을 친다 하더라도
뭐라고 상상 할 수도 없는 그런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삼천대천세계라는 표현은 사실은 지구보다 훨씬 더 큰 수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해하기 쉽도록 내가 삼천대천세계를 지구라고 표현을 하고 있는데
그 지구를 갈아서 먼지를 만들고
그것을 또 수없는 그런 숫자의 먼지를 만들어서
그런 하나하나의 세월을 1겁을 친다 그랬어요.
1년을 치는 것이 아니구요.
1년을 친다 하더라도 그게 어마어마한 세월인데 그걸 한 겁을 쳤다 그랬어요.
겁을 친다 하더라도 그 부처님이 열반(涅槃)하신 지는 이 숫자보다도 더 오래다.
그 숫자 하고 같다고 해도 어마어마한 숫자인데
그 숫자 보다 훨씬 더 오래 오래 되었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겁이란 것은 그동안 많이 나와서 내가 설명을 안 했는데 대개 다 잘 아시죠.
보면 그 반석 겁이 있고 겨자 겁이 있고 그런 여러 가지 겁이 있습니다.
사방이 각 40리 되고 높이도 각 40리 되는 그런 거대한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에 100년 마다 한번 씩 신선이 내려와서 앉아서 놀다가 올라간다는 거죠.
100년 마다 한번 씩 선녀들이 내려와서 그 가벼운 옷깃으로 한번 스치고 올라가고
또 한번 스치고 올라가고 해서 가로 세로 40리가 되는 그런 거대한 바위가
다 닳아서 없어질 때가 일 겁 그래요.
이것을 반석겁 이렇게 이야기 하죠.
다른 겁 이야기도 많지만은 그런 오랜 세월입니다.
그 몇 년이나 되겠어요?
도대체가 그 닳기나 하겠습니까?
그 부드러운 옷이 바위를 스친다 한들 바위가 달겠어요?
일 겁이라 하드라도 수 억만 년이라 말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닙니다.
한 겁은 수 억만 년 이렇게 말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것보다도 더 오래다, 그랬어요.
그 숫자보다 더 오래니라.
한량없고 그지없는 백 천 만 억 아승지 겁이나 되지만
나는 여래 지견의 힘으로써 그렇게 오래된 일을
마치 오늘의 일처럼 환하게 보느니라."
그랬습니다.
그야말로 무량원겁이 즉 일념이고 또 일념즉시 무량겁이고
한 생각 속에 한량없는 시간이 그 속에 내재되어 있고
한 먼지 속에 온 우주가 다 그 속에 포함되어 있고
이런 것을 깨달은 분들은 일찍이 다 아셔서
그런 표현을 아주 쉽게 거침없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세존이 이런 오랜 세월을 다 안다, 모른다, 이것이 문제가 아니고
앞서 말씀드린 대로 시간이 무한하고 따라서 우리의 삶도 무한하다.
그 속에서 이런저런 크고 작은 숱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고 많은 한량없는 인연들이 이합집산에 의해서 이리 모이고 저리 모이고 하는
그런 일로 인해서 오늘날의 우리의 이러한 모습이 나타나기도 하고
또 저러한 삶이 나타나기도 하고
우리와 전혀 다른 어떤 삶을 사는 사람도 있기도 하고
별별 각양각색의 삶을 연출 하는 거죠.
무한한 세월과 무한한 공간속에 또 무한한 인연을 가지고
그 인연이 모이고 흩어지고 모이고 흩어지고 하면서
별의별 삶을 우리가 연출 해간다 하는 이러한 사실입니다.
이러한 것을 깨달은 분들은 훤하게 그야말로 어제 일처럼 여기 표현대로
오늘의 일처럼 훤하게 보느니라. 그랬습니다.
이제 그것을 게송으로 다시 설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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