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거기 달빛 다방이죠?
네 그런데요.
항아(姮娥) 있어요?
네, 전데요.
나 시인아저씨야.
네- 아저씨 안녕하세요?
그래 오랜 만이구나 여기 아뜨리에 호프집인데 커피 좀 가져와라.
네- 알겠습니다.
아니 왜 혼자서 술을 드시고 계세요?
그냥.
항아야 한 시간만 나하고 술 한 잔 할 수 있냐?
네, 그럴게요.
그럼 차는 있다 따르고 우선 거기 안거라.
네-
자 받아라. 너에게 주는 선물이다.
80-B컵 맞지?
어머- 어떻게 그걸 다 기억하고 계세요?
농담처럼, 지나가는 말처럼 한 약속이지만
그 것도 약속은 약속이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준비했다.
여자 속옷 가게에서 얼굴이 화끈거려 혼났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렇게 고마워 할 것 없다.
그리고 아무런 부담도 갖지 말거라.
내가 이 선물을 주는 것은
너를 탐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너에게 무엇을 요구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다만
지난번 너를 처음 보았을 때
너의 얼굴에는 아직 순수가 깃들어 있고,
생명의 젖줄인 너의 가슴이 너무 커서
관리비가 많이 들 것 같아 준비한 것이다.
그러니 별다른 의미를 갖지 말거라.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너의 2세를 위하여
가슴을 잘 관리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활용하거라.
.........
자- 그럼 이쯤 해서 술이나 한 잔 따르거라.
네-
너도 한 잔 마실래?
네, 주세요.
오늘 술맛은 참으로 달기도 하고 쓰기도 하구나.
왜요?
실은 아직까지 나 혼자서는 한 번도 차 배달을 시켜본 적이 없고,
아가씨 시간을 끊어준 적도 없으며,
선물을 사줘본 적은 더욱 없는데,
그 오랜 나의 전통이 오늘 비로소 너로 인해 깨지는 날이구나.
그러니 술맛이 달면서도 쓸 수밖에....
허나 한 편으로는 마음이 홀가분하다.
너와의 약속을 지키는 날이기도 하니까...
업소 생활 하면서 아저씨 같은 분 처음 봐요.
어떤 면에서?
다른 사람들은 차를 시키거나 시간을 끊어주면 그 대가를 요구하는데
아저씬 안 그러잖아요?
그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겠지.
한 잔 더 따르거라.
네- 이번 잔은 쓴 맛은 버리고 단맛으로만 드세요?
그래 알았다. 술보다 너의 말이 더 달구나.
아저씨 정말 멋있어요.
아저씨 같은 사람이 많이 있으면 좋겠어요.
내가 멋진 게 아니라 세상이 멋대가리가 없는 거다.
사람들이 너무 강퍅해졌어. 모두가 지나치게 이기적이야.
자기만의 사고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필요에 따라서는 세상의 흐름에 자신을 너무 쉽게 팔아버리기도 하지.
모두가 자신이 만들어놓은 감옥에 갇혀서 살고들 있어.
지위가 높은 사람, 먹물이 많이 든 사람 등....
정치인, 사회운동가, 법률가, 학자, 심지어는 예술 하는 사람들 까지도.
특히 그런 사람들이 증세가 더 심해.
재미없다. 술이나 마시자.
항아야!
네.
너에게 할 말이 있다.
무순 말씀인지? 해 보세요.
너를 처음 보았을 때 너의 얼굴에 배어있는 순수를 볼 수 있었으나
그 이면에 숨겨진 어두운 그늘도 볼 수 있었다. 맞느냐?
글쎄요....
세상에 근심 하나쯤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그래도 너의 나이 20대, 아직은 젊으니 그늘진 마음에 매달리지 말고
항상 표정을 밝게 하거라.
네- 명심하겠습니다.
자- 또 한 잔 마시자.
“한 잔 술에 얼굴이 피어나고, 두 잔 술에 수심이 풀린다.” 하였으니
오늘 짧은 시간이나마 고향의 품에 안긴 기분으로 마시자.
그래요. 저도 편안히 한 잔 할게요. 짠-
항아야.
네.
오늘 일은 이 순간 이후론 잊어버려라.
나 또한 너를 잊지 않으려 애쓰지 않을 테니까.
..........?
자- 한 잔 더 마시고 일어나자.
시간이 우리의 술잔을 재촉하는구나.
네-
아저씨!
왜?
지금은 추운 겨울인데도 오늘 저녁 달빛은 너무나 포근하게 느껴져요.
그래, 나도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한 달빛이구나.
첫댓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 따뜻한 달빛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