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저항하는 민족이다 『마지막 섬』은 평화로운 섬에 전 대통령이 들어와 살면서 섬이 파괴되는 과정을 고발한 소설이다. 섬 사람들은 갈매기와 서로 영역을 유지하며 공존했다. 어느 날 갈매기에 놀란 전 대통령이 갈매기를 적으로 규정하고 급기야 여우를 숲에 풀어 갈매기를 제거하려 했다. 여우의 개체 수가 늘어나 갈매기의 개체 수가 줄자 뱀의 개체 수가 늘어나 사람이 사는 집에까지 독사가 나타나 사람들을 위협했다. 전 대통령은 다시 갈매기 개체 수를 늘이기 위해 여우를 죽이자고 주민들을 선동했다. 숲에 불을 질러 여우들이 숲 밖으로 나오면 주민들이 총을 쏘아 잡으려 했다. 처음에는 성공하여 주민들이 여우와 여우 새끼를 죽일 수 있었지만, 해풍에 불길이 번져 섬 전체가 불에 탔다. 섬에 사람이 살 수 없게 되었다. 구멍가게 아들이 전 대통령과 함께 낭떠러지에 떨어져 둘이 죽자 섬 사람들은 전부 체포되어 군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섬이 파괴되기까지 모든 결정은 주민들이 전 대통령의 제안에 동의했고, 이를 전 대통령이 발표하고 실행했다. 섬의 미래에 대해 휘황찬란한 꿈들을 꾸었던 그들이 그 꼴이 되어있었다. 부자가 되고, 행복과 자유가 섬에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결국, 모두가 패배했다. 전 대통령도, 그의 말을 따랐던 사람들도, 그에 반대해서 저항했던 사람들마저도. 누구도 승리하지 못했다. 라라가 말했던 것처럼, 자신들을 건드릴 사람 하나 남지 않은 갈매기를 제외하곤 말이다. 우리는 굴복해서 패배했다. 점차 수위를 높여가던 권력의 폭압이 얼마나 더 극에 달할 수 있는지 예상하지 못했기에 패배했다. 그 나무들이 잘려 나갔을 때, 그리고 구멍가게 아들의 얻어맞았을 때,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저항했어야 했다.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전 대통령이 시도했던 모든 것들을 너무나 순진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갈매기들은 저항했고, 타협하지 않았기에 승리했다. 이 상황에서 고개를 숙인 인류가 더 똑똑했던 건가, 아니면 저항한 갈매기가 더 똑똑했던 건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맞지 않을까? 우리는 이곳 감옥에 갇혀있고, 우리가 저지른 원죄의 값을 치르는 중이다. 한 인간의 유혹에 넘어갔고, 눈을 감은 채 그 인간의 뒤를 따라나섰던 원죄 말이다. 인간은 저항한다는 정의를 망각한 것, 이기주의, 예측 부재, 외면, 독재에 굴복, 작은 것에 대한 탐닉과 같은 죄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 글은 우리 일상에서의 작은 굴복들이 만들어낸 작은 원죄들에 관한 이야기다. (285~286쪽) 저항하는 것은 고귀한 것입니다. 갈매기들은 저항했기에 승리했지만, 희생도 적은 건 아니었습니다. 이 작품은 사회와 자연은 스스로 균형을 잡아간다는 것,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균형을 잡아야만 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균형을 깨트리려 한다면, 그 결과는 재앙이 될 것입니다. 자연도 인간도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지요. - ‘작가와의 질의응답’ 중에서 작가의 응답 ***** 우리는 저항한 민족이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침략했을 때, 의병으로 저항했고, 안중건은 침략자 수장 이또 히로부미를 처단했다. 1919년 3월 1일에는 만세 운동으로 세계를 향해 독립의 정당성을 밝혔고, 임시정부를 수립하여 침략자들에게 정당한 국권을 요구했다. 민주주의가 유린당했을 때, 민중은 독재자에 맞서 저항했다. 4.19, 5.18 혁명이 증명하고 있다. 불의에 맞서 촛불을 들고 평화적으로 저항하여 정의와 진실의 힘을 보여주었다. 2023년, 정의롭지 못하고 고집이 세고 무능하고 파렴치한 정권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우리는 저항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 민족이 지니고 있는 역사이고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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