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11(일) 혜봉법사님의 49재가 있었다. 행복수업 건물 위아래 층에서, 멀리 미국에서 줌으로 연결되어 3시간 넘게 진행됐다. 수행이야기, 제자들의 그리움 짙은 편지와 노래, 영상. 눈물과 웃음, 독경과 진언으로 마지막 가시는 법사님을 배웅했다.
동국대 보살사상연구회를 만들어 민중불교, 보살운동을 전개했고, 법륜스님과 함께 정토회를 일구고 문경 수련원 초기에 나눔의장 등 수련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후 완전한 깨달음에 대한 구도정진, 대중들과 끊임없이 수련을 하면서 다양한 수행법들을 정리해 내었고, 현재의 행복수업 협동조합 이사장으로 명상수행을 지도해 오셨다.
서너명 스님을 제외하면 재가자 중 최고의 명상수행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바야흐로 명상의 시대, 심신수련이 절실한 시대에 꼭 필요한 스승이였는데.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셔야 하는데 가셨다. 참으로 귀한 분이 안타깝게 가셨다.
공양 후 일부 사람끼리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준비해 갔던 <순례자> 노래를 불러드렸다. 그리고 혜봉법사님과의 인연이야기를 전달하였다. ‘평화의 전사로, 보살로 살자’라고 줄기차게 말씀하셨다한다. 40년 넘게 평생 수행과 대중지도를 하셨던 법사님께 감사의 절을 올린다. 당신의 삶은 순례자 그 자체였습니다.
- 혜봉 오원명 법사님을 추모하며
속명 : 오원칠 (개명 오상목)
혜봉 오원명 법사 (행복수업 협동조합 이사장)
경북 양양 출생, 2023. 1. 23(월) 새벽 입적. 66세.
* 1987년 2월말
동국대 입학을 하면서 기숙사인 안암동 기원학사에서 처음 원칠형님을 만났다. 62명 정도 수용하는 불교학과 기숙사인데 그중 일반학과에 20명을 배정했다. 일반학과는 2학년까지만, 불교학과는 4학년까지 거주할 수 있다.
2층 건물로 25호실 중 21호실로 배정받았는데, 조실(오원칠, 불교학과 85), 방장(문홍근 불교학과 편입학 87) 그리고 시봉(박정규, 국문과 87) 그렇게 3명이 한방을 사용하였다. 그당시 까마득한 노인들(?)처럼 느껴졌는데, 최근 알았다. 오원칠 66세, 문홍근 62세. 실제로도 나이차가 많았다는 걸.
노인네처럼 보였지만 그들의 눈동자는 빛나고 맑았다. 혜봉법사님의 목소리는 따뜻하고 상대방을 품어안고 살살 녹이였다. 열정은 누구보다 깊고 뜨거웠다. 날마다 밤늦게 대여섯명이 모이는 방이였고, 새벽까지 대화토론이 이어졌다. 신입생인 나는 버티고 싶었으나 밤 2시 이상은 버티지 못했다. 지하에 내려가 30구공탄 연탄을 가져와 교체하고, 보리차가 들어간 주전자를 올리고 나서 살짝 2층에 올라가 법담을 들으며 잠들었다.
(*안암동 기원학사는 지금도 굴뚝을 비롯해서 2층 건물 그대로 남아있다. 현재는 장애인복지법인 승가원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3월 개강을 하자마자 불교학과 85학번이 창립멤버인 보살사상연구회에 가입했고, 사회과학과 실천적인 불교 공부를 했다. 그후 토요일마다 조계사 대학생법회 창립준비 법회에 참석했다. 목탁 집전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하여 보사연에서 불교학과 86곽점식(인월 영선사 주지)의 보조 역할로 내가 배정되어 매주 조계사를 방문했다.
보사연을 통해 부처님에 대한 사회적인 관점과 중생을 위한 실천적인 보살행을 배우게 되었다. 87년은 학교에서 기숙사에서 거리에서 날마다 사회참여적인 생활로 점철되었다. 나를 그렇게 만들었던 요람은 기원학사 21호실. 오원칠 형님이 날마다 품어 안았던 사람들의 토론대화를 들었던 공덕이요, 보살사상연구회 선후배들의 열정과 헌신이 있었다. 2학년부터는 학생회 활동에 집중하다보니 혜봉법사와는 어쩌다 마주치는 사이가 되었다.
* 1997년? 졸업후 방배동에서 만나다
당시 혜봉법사님은 정토회에서 나와 명상아카데미를 직접 운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듣고 보살사상연구회 졸업생 중심으로 혜봉법사님이 계신 방배동 집으로 1박 엠티를 갔다. 신기하게도 결혼도 했다하고, 태어난지 얼마안된 갓난애기 얼굴도 봤다.
저녁과 아침시간에 명상을 했고 혜봉법사님이 지도를 해주었다. 벽을 바라보고 호흡과 떠오르는 생각들을 알아차리는 것. 슬픔, 불편한 것들은 불로 태우거나 검은 우주 멀리 던져 버리는 등의 명상을 했다. 떠오르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되, 내 안의 모든 기억(업)을 버리는 작업을 한 것 같다. 계속 버리다보면 나의 식은 맑아지고 텅빈 의식속에서 우주의 비밀을 알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혜봉법사님과 인연은 이어지지 못했고 명상수행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 2021년 5월 지리산 마천
3개월의 황금같은 안거휴직을 얻어 장수 긴물찻집을 중심으로 시골살이 체험을 했다. 야생차 작업이 끝나고 신록이 우거진 5월, 유성국 선배를 모시고 지리산 등구재를 넘어 백무동이 건너보이는 마천 언덕위의 집에 도착했다.
혜봉법사님이 병치료 겸 휴식을 하고 계셨다. 다행히 얼굴은 맑고 건강해 보였다. 평생 병을 달고 살았고, 아픈 신호가 오기 시작하면 그 증상에 맞춰 치료수행을 해오셨다며, 환히 웃으며 말씀하셨다. 마침 형수님이 내려와 계셨던터라 맛난 점심과 야생차를 마시며 걱정을 덜었다.
조계종 등 불교소식을 챙겨오셨던 것일까? 오히려 불교와 동국대에 대한 근심어린 걱정을 하셨다. 권승들이 나라 정치(인)까지 좌지우지 하는 것, 특히 동국대가 너무 사유화 되는 것에 대해 걱정이 된다고 하셨다.
* 2022년 1월
광주 문홍근 선배와 연락이 되어, 기원학사 이후 처음으로 셋이 얼굴을 보기 위해 전화를 드렸다. 지리산이 아닌 서울에서 전화를 받으셨다. 병세가 악화되어 서울에 올라와 계셨다.
그와중에 종단에서 징계를 받은 것에 대해 문안을 물으시며 많은 걱정을 하셨다. 특히 동국대 문제는 모교인 만큼 뉴스가 있을 때 공유를 해달라고 하셨다. 병세가 많이 좋지 않고, 일단 건강회복에 집중해야 할 것 같다고 하시면서 미안해 하셨다. 심각한 병중에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자애심은 참으로 깊다.
* 2023년 1월
네팔에서 귀국후 병원입원을 하였으나, 더 이상 할 수 있는 치료가 없었다한다. 일년사이 티벳으로 치료수행?을 갔다오셨다고 한다. 평소 제자들과 늘 함께 있는 것을 소망했던바, 봉천동 행복수업 센터에서 보름간 제자들의 간호와 찾아오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시면서 세상과 이별했다한다. 설연휴 직전에 소식을 들었는데, 설 다음날 소식을 듣게 될 줄이야. 찾아온 이들에게 눈을 마주치고 손을 잡으시고, 한마디 말씀도 하셨다 하는데, 혜봉법사님은 나를 기다려주시지 않았다.
보살사상연구회 출재가 후배들이 조문을 했다. 명상, 염불기도를 드렸다. 명상수행이 새로운 시대흐름이 되고 있다. 지도할 능력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혜봉법사님 같은 경험과 능력을 갖춘 분이 본격적으로 활동해야 할 시기인데, 참으로 소중하고 귀한 분을 잃었다. 아쉽고 안타깝다.
맑은 눈빛과 목소리, 자애스러웠던 모습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혜봉법사님의 명상은 나의 남은 생애에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명상공부를 조금씩 열심히 해야겠다. 부처님과 혜봉법사님이 걸어간 수행과 깨달음의 길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발원한다.
원칠형님! 잘 가셔요. 자유의 길에서 다시 만나요.
순례자(巡禮者)-pilgrim
당신은 꿈찾는 방랑자
마음의 길 가는 나그네
인생도 사랑도 끝이 없는 길
멀고 먼 고개길
꿈꾸는 바다에 별뜨면
불타는 사막도 잠들고
외로운 순례자 거친 산길에
단꿈만 깊어가네
외로운 들판에 무명초
잊혀진 하늘가 뜬구름
별이여 달이여 어린 잎새여
내 너를 사랑하리
행복수업 협동조합 - 방문하기
행복수업 협동조합 : 네이버 카페 (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