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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부산초록온배움터준비위원회 원문보기 글쓴이: 태양옆자리
우리 춤, 우리 장단, 그리고 붉은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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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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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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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탈춤, 우리춤, 민중예술을 해왔습니다. 기층 민중들의 삶 속에 녹아있는 민중예술, 탈춤, 전통 예술 등에 대해 연구했고 세계를 보는 시각을 연구해 왔었는데, 올해 8월로 정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공부한 내용이 여러 가지로 미흡하고 그 성과가 너무 부족해 대단히 아쉽습니다. 그렇지만 이 오늘 모임에서 대학강의를 하지만 잘 하지 못하는, 그런 얘기를 하게 되어서, 어떤 자리보다 어떤 곳보다 감개무량합니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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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명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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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신명: 춤추고 노래하는 힘 – 생명의 본원적 에너지
노래하고 놀고 춤추게 하는 힘이 무엇인가. 단지 ‘노래가 무엇인가’나 ‘춤이 무엇인가’ 하기 전에 그 것을 하게 하는 힘이 무엇인가. 무엇이 우리를 노래하고 놀고 춤추게 하는가.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답은 사실 우리가 살아 있기 때문이죠. 살아있기에 춤추고 노래합니다. 왜 춤추는가? 살아있기에 춤춘다. 살아있기에 노래 부른다. 살아 있기에 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대비되는 것이 죽어 있음입니다. 죽어있는 것은 춤출 수도 노래할 수도 놀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춤추는 것, 노래를 부르는 것, 노는 것이다 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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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데, 태종대에 가서, 사실 자주 가는 곳은 아니겠고, 누군가가 손님이 오면 태종대에 가게 되는데, 파도가 물결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그걸 보고 우리가 뭐라 합니까. 경관이 근사하다. 그렇게 말하죠. 그 경관이 근사한 것은 우리에게 경관이 새롭게 인식되기 때문에 경관이 근사하죠. 매일 본다면 경관이 항상 그대로이니까 근사하게 보이지 않죠. 경관은 그냥 물결치고 파도가 있고 그럴 뿐인데, 우리의 생각이 그렇게 들기에 그런 근사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태종대에서 파도를 보면 물결이 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어떨 때는 파도가 물결 친다란 말로는 표현이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뭔가 물결 친다는 말만으로는 그 모습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지요. 그렇게 느낌이 다를 때, 물결친다는 표현보다 물결이 춤춘다고 우리가 쉽게 말하기도 합니다. 동일한 대상인데 어떨 때는 ‘친다’고 하고 또 어떨 때는 ‘춤춘다’고 말합니다.다른 용어를 사용하죠. 마음이 그냥 심드렁하거나 별 감흥이 없을 때는 또 그냥 '파도가 움직인다'라고 말하기도 하죠. 동일한 대상에 대한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표현도 다르죠. 파도가 움직임, 물결 침, 춤춤은 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 사이에 무엇이 ‘간격’으로 있기에 그렇게 다르게 표현할까요. 물결이 춤춘다는 표현은 의인화된 표현입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의인화란 대상이 내면에 들어와 내 의식에 의해 다시 자기화된 것을 의미한다고 해요. 대상을 자기화 시킨 표현이죠.
'기운생동'이란 말 들어보셨겠지요. 기운이 생동하는 느낌. 어떤 기운이, 에너지가 살아있듯이 있는 느낌. 근원적인 에너지의 진면목을 볼 때, 회화에서 기운생동이라고 합니다. 펄펄 살아있는 듯한 그림들 말이죠. 파도의 물결이 춤춘다고 할 때, 우리가 그렇게 표현하는 이유는 생명의 본원을 봤기 때문입니다. 본원적인 어떤 '생명의 에너지'. ‘생명의 기운’, '본체', '전일자', '활동하는 무' 등 다양한 말로 표현되어왔겠죠. 태극이니, 도(道)니, 허(虛)니 하는 말들 말이죠. 이 말들은 다 ‘생동하는 태극’, ‘생동하는 도’, ‘생동하는 허’ 등으로 표현됩니다. 만물들을 생동시키는 본원적 존재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이 동양전통적인 말들입니다. 전통적이고 동양적인 표현 말고 현대적인 표현으로 말해야 하는데, 아직 제가 부족한 관계로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말을 ‘신명 나다’, ‘신 바람’, ‘신이 오른 듯한’, 혹은 ‘신이 들리고’, ‘신이 내리고’, ‘나고’, ‘신이 오르고’, '신이 지피고’ 등으로 표현합니다. 쉽게 '신명나다'라는 말을 씁니다. 어쨌든 생명 에너지의 기운에 휩싸인 표현으로 ‘파도는 춤춘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새가 노래한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냥 '새는 운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새가 운다'라는 표현보다 ‘새가 노래한다'가 '파도가 춤춘다’는 표현과 같습니다. 신명에 휩싸인, 신명에 들린, 신이 난 상태가 ‘새가 노래한다’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표현하는 노래하고 춤춘다는 표현들은 신명이 나는 것, 신이 들린 것, 신이 내린 것입니다. 생명의 본원적 에너지가 약동하고 신명이 나면서 온통 신 들려 버리는 것이 바로 노래하고 춤추는 것입니다. 신명이 오늘의 주제인데요. 신명에 대해 다시 이야기할 기회를 마련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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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신명에 대한 전통적 이해
신명에 대해 짧게 이야기하면, 동학에서도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운 최재우 선생님이 하늘의 음성을 듣고 깨달은 바를 말씀하셨는데, 그게 내유신령(內有神靈)이란 말입니다. 내유신령이란 우리 안에 신령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 신령이란 말이 생명의 본원적 에너지, 생명을 살아있게끔 하는 신령스러운 힘을 의미합니다. 이 말과 대구되는 말이 외유기화(外有氣化)입니다. 바깥에 드러나는 것이 기화(氣化)란 의미입니다. 이 때 ‘기(氣)’란 말은 ‘오퍼레이트((operate)하다’, ‘작동하게 하다’란 의미입니다. 생명을 작동시키고 움직이게 하는 것이 ‘기(氣)’입니다. 즉, 우리 안의 신령스러운 힘, 그 신명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생명을 작동시키고 살아있게끔 한다는 말입니다.
이 신명을 우리가 쓰는 말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이 내린다’란 말을 씁니다. 신이 오르고, 들고, 나고, 지피고 이런 말들을 통해서도 신명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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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신명난 노동의 힘 : 생명을 감응시키고 사물을 감응시킨다.
이때의 신명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신명은 춤을 통해 만들 수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은 사실 고역에 가깝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숙련된 노동자의 일하는 모습을 살펴보면 그 노동하는 것이 마치 춤추는 듯하기도 하고 리듬과 박자가 맞게 아주 능률 좋게 일합니다. 춤추듯이 수월하게 일하는 것 같은데도, 노동과 그 결과의 질이 아주 높습니다. 숙련공이 정치한 노동의 모습, 일하는 모습은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따르기 힘든 경지이죠. 그 숙련공의 숙달된 노동은 마치 일하는 듯하면서도 노는 듯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일과 노동의 일치는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경지 중 하나입니다. 인류의 역사, 작게는 예술의 역사는 놀이와 일이 떨어져 분리되어 오는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갈수록 놀이와 일이 구분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원래는 일과 놀이가 같았습니다. 같이 있던 것이 분리되어 나온 것입니다. 같이 춤추고 노래하면서 경배하고 일하고 그 결과를 나누어왔던 것에서 점차 놀이와 일이 구분되고 종교와 예술이 구분되고 춤과 노래가 구분되고 시와 노래가 구분되어 왔던 것입니다. 인간이 자신이 소망을 실현하게 하는 것이 곧 생활이자 예술이자 종교였고 그것은 원래 같이 붙어 있던 것이죠. 마치 숙련공의 일과 춤이 하나처럼 보이듯 말입니다. 그렇게 일과 춤, 놀이와 노동이 하나가 되어 있는 곳에는 노동의 자기 소외가 아니라 노동이 가진 긍지, 생산력, 삶의 환희가 같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쉽게 말하면 신명나게 일한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신명나게 일하게 되면 보는 사람도 감명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보는 사람만이 아니라 뭇 생명들이 함께 춤추게 만듭니다. 신명나게 일하면 주위의 사람, 생명, 사물들까지 감응시키는 생명력이 거기에 있게 됩니다. 신명이 가진 생명력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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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풍류 - 현묘한 도
그렇게 신명나는 것을 우리는 또다른 말로 '풍류'라고 합니다. 오늘 날의 풍류는 흔히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들이 즐긴 놀이를 쉽게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풍류도 있습니다만, 풍류란 말은 우리 전통 음악의 곡명이기도 합니다. 풍류객이라고 하면 조금 여유있는 사람, 한적한 어떤 나그네 같은 그림을 연상하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더 올라가면 최치원의 ‘우리에게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 한다’란 기록이 있습니다. (각주-國有玄妙之道 曰風流 設敎之源 備詳仙史(국유현묘지도 왈풍유 설교지원 비상선사), 實內包含三敎 接化群生 且如入則孝於家(실내포함삼교 접화군생 차여입즉효어가) : 나라에 현묘한 도(道)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 그 교(敎)를 창설한 내력은 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으니 실은 삼교(유교, 불교, 도교)를 포함하고 있는데 만물을 접하여 교화한다.) 현묘한 도(道-가르침)가 있으니 유불선 삼교가 같이 있는 것인데 접화군생(接化群生)한다고 합니다. 이 접화군생이란 말이 뭇 생명끼리 같이 어울려 무리를 이루고 살아가게 한다는 말입니다. 모든 것이 접하고 교차하여 생태를 이루어 함께 살아가게 하는 것이 바로 접화군생입니다. 이 말을 오늘날의 우리 생태철학의 뿌리로 보기도 합니다.
신명이라는 것은 옆에 있는 사람, 뿐만 아니라 생명체들, 물건까지 서로 어울리게 하고 감염시키는 것,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신명의 힘입니다. 감동의 흐름, 감동의 물결을 나누어 타는 것입니다. 감동이란 ‘느낌이 움직인다’는 말이지요. 에너지가 흘러 넘치는 것입니다. 신명을 정서적으로 이야기하면 감동입니다. 노동과 그 반응을 중심으로 보면 신명이라 하는 것입니다. 신명과 생태적인 것을 연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의 그 무엇이 그렇게 펄펄 살아 있게 하는가, 더 강한 생명력을 가지게 하는 것, 같이 공유하면서 소통을 뚫는 계기, 막힌 것을 뚫어내는 것으로서 신명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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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명난 우리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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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고무진신(鼓舞盡神)
놀고 먹고 일하는 에너지의 원천은 신명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고무진신(鼓舞盡神)이라는 말 아십니까. 북칠 고(鼓)에 춤출 무(舞)이고 진신(盡神)이란 말은 신이 다하다. 나자빠지다. 신이 지치다란 말입니다. 지쳐 나자빠질때까지 북치고 춤춘다는 말입니다. 우리만 그랬던 것은 아니고 댄스(dance)의 어원이 탄하(Tanha)라는 산스크리트어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이때 Tanha의 Tan은 텐션, 긴장이 튄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ha는 크다란 의미입니다. 긴장이 튀어나가는 팽팽하던 것이 터져나가는 생명력을 의미하고 그 생명력이 충일하고 넘친다는 의미가 바로 Dance의 어원입니다.
오늘날 문화인류학에서 보면 어떤 종족들은 춤추는 것을 좋아하고 즐기는 종족이 있는가하면 아주 고역으로 느끼는 종족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 민족은 이 중에 아주 강력하게 춤을 췄다는 많은 기록들이 있습니다. 위지 동이전의 기록에 보면 부천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등의 제천의식들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며칠 낮밤을 술 마시고 춤췄다고 합니다. 놀고 나자빠졌다는 말입니다. 이게 바로 고무진신(鼓舞盡神)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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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지 동이전에 나온 글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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常以五月(항아오월-오월이 되면) 下種訖(하종흘-씨를 뿌린 후) 祭鬼神(제귀신-귀신에게 제사지내며) 群聚歌舞(군취가무-무리가 모여 노래 부르고 춤췄는데) 飮酒晝夜無休(음주주야무휴-술을 마시며 밤낮으로 쉬지않고) 其舞數十人(기무수십인-수십인의 사람이 그 춤을 췄다.) 俱起相隨(구기상수-모두 일어나 서로를 따르며) 踏地低昻(답지저앙-땅을 밟고 몸을 구부리거나 펴며) 手足相應(수족상응-손발이 서로 맞았더라) 節奏有似鐸舞(절주유사탁무-그 가락과 춤의 모습이 탁무라는 춤과 닮았다) 十月農功畢(십월농공필-시월에 농사일을 마치고) 亦復如之(역복여지-또 그것을 되풀이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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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덩실덩실 : 답지저앙(踏地低昻)
이 중에서 춤을 묘사한 부분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습니다. 중요하게 볼 만한게 ‘답지저앙’이란 말입니다. ‘답지’란 말은 '땅을 밟고'란 뜻인데, ‘저앙’은 몸을 수그렸다 폈다 하는 동작입니다.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면서 몸을 내렸다가 올렸다 했다는 것이죠. 이렇게 무릎을 굽히는 것을 오금을 죽이다라고 말합니다. 펴는 것을 도듬새라고 해요. (직접 춤추는 모습을 보여주시며) 이렇게 굽혔다 폈다 하면서 춤을 추는 것이죠. 몸이 덩실덩실 대는 모습입니다. 이때, 내릴 때 중심이 ‘하단전’에 힘을 주게 됩니다. 이 하단전이 생명의 중심자리에 해당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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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너울너울 : 수족상응(手足相應)
그리고 수족상응(手足相應)이란 말은 서로 손발이 잘 맞는다는 말입니다. 다리를 폈다 오무렸다 하면 손을 이렇게 들고 폈다 졌혔다를 반복합니다. 왼쪽 어깨를 들면 왼쪽 다리가 들리죠? 손을 드는 쪽과 다리를 드는 쪽이 같습니다. 걸을 때는 반대쪽을 들죠. 오른 다리가 앞으로 나가면 왼 팔을 앞으로 뻗게 됩니다. 걸을 때는 서로 다른 쪽이 움직이는데, 춤은 그렇지 않아요. 오른쪽 팔을 들면서 오른 쪽 다리를 같이 들어올립니다. 춤추는 것과 걷는 것이 다른데, 춤은 걷는 것에 저항하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리로 몸을 들었다 내렸다 하는 것을 ‘덩실덩실’이라하고 팔을 졌혔다 폈다 하는 것을 ‘너울너울’이라 합니다. 이렇게 춤을 추게 되면 우리 춤의 거의 모든 형태의 원형이 됩니다. 이렇게 무릎을 폈다 오무렸다 하는 형태의 춤은 서양에는 없습니다. 발래같은 것은 무릎을 쫙 펴고 굽히지 않죠. 우리 춤에 있는 몸사위입니다. 너울너울, 덩실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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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우리 춤의 모습 : 절주유사탁무(節奏有似鐸舞)
그리고 ‘절주유사탁무(節奏有似鐸舞)란 말이 있는데, 그 춤이 ’탁무‘라는 중국의 춤과 유사하다는 말입니다. 탁무가 어떤 모습인지를 알면 우리 춤의 원형을 알 수 있을텐데, 아쉽게도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어요. 다만, 앞 구절에 보면 사람들이 서로 따르며란 말에서 열을 지어 추던 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지금 강강술래를 연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아니면 열을 맞춰 추는 풍물춤이나 강강술래의 경상도 버전인 쾌지나 칭칭 같은 춤을 생각하면 되요. 강강술래의 유래에 대해 많은 해석들이 있지만 강강술래는 우주의 운행을 형상화한 춤이라고 봐요. 달밤에 물가에서 여자들이 흰 소복을 입고 추는 춤인데, 둥글게 모여 시작과 끝이 서로를 잡는 모양입니다. 음양의 운행을 형상화한 모습이죠. 제 생각에는 강강술래보다는 풍물춤, 혹은 풍물굿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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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사방치기- 일상 공간의 전복
우리 풍물춤에 대해 조금 집고 넘어가면 사방치기란 것이 있습니다. 동서남북 이 사방을 향해 배례를 하는 것인데 각 방위별로 신이 있어요. 이를 사방신이라고 합니다. 사방치기를 하는 이유는 이제 이곳에서 춤을 춘다고 알려드리는 행위입니다. 또한 춤을 추니 이 공간에 신과 우주를 불러들이는 행위이지요. 이 사방치기를 통해 이 공간, 즉 이 판을 정화시키고 씻기는 굿이죠. 터를 다진다고 해도 됩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민속춤이나 극은 이렇게 인사를 드리는 것부터 시작을 해요. 그리고 끝날 때도 인사를 합니다. 이 인사하는 행위는 우리가 사는 일상의 공간이 놀이공간으로 바꾸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새로운 공간으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이 일상적인 것에서 전도된 뒤바귄 공간이 되어버리죠. 사방치기를 통해 이제 이 공간은 경건한 땅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렇게 의미가 바뀐 공간에서는 일상적인 금기들이 더 이상 힘을 잃어버립니다. 놀고 자빠지고 무례한 행동을 해도 괜찮게 되지요. 양반들을 풍자해도 용서가 됩니다. 무엇을 해도 그곳은 거룩하고 경건한 곳이기에 경건하고 신성한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이때까지 보잘 것 없던 삶, 보잘 것 없던 기층 민중이 거룩한 삶을 살게 되는 것으로 바뀐다는 의미를 전제로 합니다. 정화된 삶의 자리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 땅의 세계가 아닌 초월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고 춤과 놀이 속의 반복적 동작을 통해 엑스타시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3-6 우리 춤의 자세 : 비정비팔 - 엉거주춤이 적중한다.
또 다른 우리 춤의 특징으로 비정비팔(非丁非八)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디딤새입니다. 비정비팔이란 말은 두 발의 위치가 정(丁)자처럼 직각으로 놓이지 않고 또 팔(八)자 모양처럼 120도 이상 벌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엉거주춤한 자세죠. 예리한 각(角)도 아니고 둔각(鈍角)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런 엉거주춤한 자세는 우리 국궁의 자세이기도 하고 대패질 자세이기도 합니다. 이런 엉거주춤한 것이 도리어 먼 거리의 과녁의 한복판을 뚫는 자세이기도 합니다. 역설적이지요. 엉거주춤한 자세가 적중의 자세인 것이 놀라운 것입니다. 또한 능숙한 숙달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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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리 장단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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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2박의 코스모스와 3박의 카오스
이제 우리 장단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일반적으로 전 세계 각 민족의 리듬은 어떤 경우든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합니다. 2박자계통이든지, 아니면 3박자 계통으로 구분할 수 있고, 2박과 3박이 혼합된 형태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 가지 계열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2박은 모난 박자이자 걷는 장단입니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이렇게 두 걸음으로 걸으니 2박이 되지요. 걷는 장단입니다. 그리고 3박은 둥근 박자이자 춤추는 장단입니다. 쿵 짝짝 쿵 짝짝 쿵 짝짝 이렇게 세 박이 되면 리듬이 흥겨워지지 않습니까?
우실하 교수가 쓴 전통음악의 구조와 원리(소나무 출판, 2004, 우실하)란 책에 보면 2수와 3수로 음악을 구분해 놨어요. 2수는 2, 4, 6, 8로 나아가는 짝수계열이고 3수는 홀수로 보면 됩니다. 각 문화와 음악의 전통은 2수 계열 3수 계열, 그러니까 2박이냐, 3박이냐로 구분된다는 겁니다. 이 2수는 음양이론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음양이 배가 되어 4단이 나오고 8괘와 64괘가 나오는 거죠. 이 2수는 양분되고 대칭되기 때문에 질서가 잡혀있죠. 코스모스적 우주입니다. 태극(乙)의 형태, 균형과 정착, 대칭, 그리고 수렴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이에 반해 3수는 천지인 사상입니다. 삼재사상이라고 하죠. 우리 단군사상입니다. 3수는 대칭되지 않아요. 복잡해지고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 갸우뚱하다고 하기도 하죠. 그래서 카오스적 우주론입니다. 삼태극을 의미하죠. 삼태극의 모양이 弓弓입니다. 태극문양의 물결치는 모습이 ‘乙’로 그릴 수 있다면 삼태극의 모양을 한자로 그리면 弓이 됩니다. 역동적이고 끊임없는 생성과 변화, 분산되고 확산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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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2박과 3박의 통일 : 삼재양지(三在兩之)와 정역(正易)
이렇게 2수와 3수를 통일한 것이 삼재양지(三在兩之)의 정역(正易)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이 주역(周易)인데요. 주나라의 역(易)이란 뜻입니다. 역(易)은 변화를 의미합니다. 우주의 변화를 담은 것인데요, 정역이란 주역과 대비되어 바른 변화란 의미입니다. 19세기에는 우리 민족의 사상이 다양하게 잉태되고 나타나는데 이를 세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수운 선생의 동학이고요, 둘은 강증산 선생의 증산도 사상, 그리고 마지막이 김일부 선생의 정역입니다. 이 정역은 천과 지, 인 이렇게 셋을 중심으로 각 세 존재에는 음양이 있다, 즉 천에 음양, 인간에 음양, 땅에 음양, 이렇게 셋에서 각기 둘로 구분하여 3수를 중심으로 2수를 배합했습니다. 이 삼재양지는 카오스를 바탕으로 코스모스를 결합한 것이죠. 요즘 말로 카오스모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궁궁(삼태극)과 을을(태극)이 결합한 것입니다. 이 정역을 읽어내기가 조금 어려운데요. 한번 도전해 볼 만합니다.
우리 한국문화의 3박자적 특질이 다보탑과 석굴암에 나타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중국이나 일본은 이 현실세계와 이상세계를 양분한 세계관을 지녔습니다. 이곳 아니면 저곳이고 여기에서 저기로 바로 올라가는 것이죠. 그런데 다보탑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기단의 4각 모양이 동서남북 사방이 있는 여기의 세계, 즉 이승이라 한다면 맨 위의 원모양은 이상적 세계라 할 수 있겠습니다. 바로 4각에서 원으로 나아가면 4각 안에 원이 갇히게 됩니다. 그렇게 갇히지 않고 이 4각이 원이 되는 방법이 뭘까요? 4각의 네 귀퉁이를 잘라내어 8각으로 만드는 방법이 있겠지요. 8각이 다시 64각이 되고 무수히 자르면 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보탑에 보면 중간에 8각 기둥이 있습니다. 바로 가지 않고 중간 단계를 거쳐서 가는 겁니다. 석굴암에도 맨 앞에 역사가 있고 그다음 바로 본존불에 가는 것이 아니라 나한이 있고 나한을 거쳐 본존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런 전통을 보면 우리의 세계는 세 부분의 세계, 3분박의 세계인 것이죠. 이건 제 얘기가 아니고 누가 얘기해 준겁니다.
4-3 굿거리 장단의 삼재양지(三在兩之)
우리 장단을 보면 가장 일반적인 것이 굿거리 장단입니다. 덩 기닥, 덩 다다다다, 덩기닥 쿵기 닥 다다. 크게 보면 굿거리 장단의 각 박자는 3분 박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3박이 아니에요. 이 3분박의 각 박을 다시 2분박으로 구분 할 수 있어요. ‘덩 기닥’을 보면 3박인데 그냥 한 박씩 가진 쿵짝짝 식의 덩.기.닥 이렇게 3박이 아니라 이 3박을 각각 2박씩 구분하여 총 6박으로 구분하여 ‘덩’은 3박을 가지고 4번째에 ‘기’가 오고 ‘닥’이 2박을 가지되는 가락이에요. 역동적이죠. '덩. 기. 닥. 이렇게 딱딱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덩 ~ ~기닥-’ 이렇게 되는 거죠. 덩이 조금 더 길게 가다 짧게 ‘기’를 하고 ‘닥’을 조금 더 가져갑니다. ‘덩 ~ 기닥-’. 이 박자를 보면 삼재(3박)인데 양지(2박)으로 각각 구분하여 가지는 것입니다. (참고 : 김태훈, 「풍물가락의 원리와 삼진박」, 민족미학 창간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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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오방진 가락과 ‘대~ 한 민 국’
우리가 월드컵 때 자주 불렀던 가락이 있습니다. ‘대~한 민국’ 구호를 다들 아실겁니다. 그 ‘대~한 민국’이 우리에게는 쉽지만 다른 나라 사람에게는 아주 지랄가락이에요. 따라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 한’까지는 3박이고 ‘민국’은 2박이에요. 3박과 2박이 합쳐져 있는 가락이라서 쉽지가 않아요. 이 박자가 우리 오방진 가락에서 나온 겁니다. 오방진 가락은 총 4절이 한 세트로 구성된 가락이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4절이 통째로 한 의미단위를 구성합니다. 그런데 이 중에 세 번째 첫 소절에서 ‘대~ 한 민국’ 가락이 나왔어요. 오방진 가락 전체 4절을 한 마루라고 하는데, 산을 타고 오르고 내려오는 과정이 한 마루에요. 그런데 세 번째 첫 소절은 빠르게 내려오는 부분이죠. ‘대~ 한 민국’은 그 세 번째 첫 소절만 따온 것이죠. 내지르는 부분만 따온 거에요. 양적인 확장만을 가지죠. 그래서 이 ‘대~한 민국’을 반복하면 뭔가 마무리가 없고 수렴이 없어 힘이 계속 듭니다. 뒤에 수렴하고 정리하는 것이 없고 또 처음에 올라가는 과정이 없이 내지르기만 하죠. 힘이 들다보니 오래 할 수가 없는 가락입니다. 대~ 한 민국은 총 3+2로 구성되어 5분박이 되고 두 가지 대립되는 것의 이중교호적 얽힘이 이루어 지고 있다는 의미는 지니고 있지만 앞과 뒤가 잘려나간 형태이기에 앞에 뭔가 다른 시작한다는 의미를 지닌 박자가 필요하고 뒤에도 마무리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만들어봐야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훨씬 더 오래하고 좋은 박자가 만들어지겠지요.
시간이 벌써 많이 지나갔습니다. 시간이 생각보다 짧습니다. 아쉬움이 있지만 이정도로 간략하게 강의를 마무리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