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영주 소수서원을 찾아서
영주=글·사진/권오현기자 /한국일보 엔터테인먼트 여행
고인도 날 못보고 나도 고인 뵌 일 없네
고인을 못 뵈어도 가시던 길 앞에 있네
가시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가고 어쩌리
퇴계 이황(1501~1570)은
회헌 안향(1243~1306)을 이렇게 사모했다. 두 사람은 동방 성리학의 성현으로 불린다.
고려의 회헌은 원나라에서 최초로 주자학을 들여왔고 그 학문은 퇴계에 이르러 만개했다.
25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선학에 대한 퇴계의 외경심과 사랑을 담은 이 시의 현장은
최초의 사립대학인 소수서원(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이다.
소수서원의 역사는 1543년(중종36년)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이 회헌의 사당을 지으면서 시작됐다. 신라의 대찰 숙수사의
터였다. 당시 이름은 백운동서원. 이후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는 교육기관으로서
나라의 합법적인 인정을 명종 임금에 청했다. 1550년 명종은 친히 소수서원(紹修書院)
이란 편액을 써서 하사했다.
'소수'란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 닦게 한다'는 의미. 이렇듯 소수서원은 '학문의 중흥'이란 큰 임무를 띠고
탄생했다. 그리고 그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나갔다. 조선의 인물 절반은 영남 출신이고,
영남 인물의 절반은 퇴계의 문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서원은 크지 않다. 정문을
들어서면 백운동이라는 현판을 걸고 있는 강의실 강학당이 있고 왼쪽에 문성공묘와
전사청이 자리하낟. 강학당은 지금 대대적인 보수공사 중이다. 그 뒤에는 스승들의
거처인 일신재와 직방재, 우측으로 기숙사인 학구재와 지락재가 있다. 기타 서재와
선현들의 영정을 모신 영정각, 문 바깥의 휴식처인 경렴정과 취한대 등. 이것이 전부이다.
그리고 건물 배치의 자유스러움과
자연스러움에서 당시 학자들의 기품을 느끼게 된다. 서원 입구에는 숙수사 당간지주(보물
제59호)가 우뚝 서 있다. 유생의 터에 보존돼 있는 불교의 상징에서 당시 학자들의
너른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모든 건물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45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아예 자연속에 포함된 느낌이다.
서원 옆에는 낙동강의
작은 줄기인 죽계수가 흐른다. 개울 건너편 아담한 바위에 경(敬)자 가 붉게 새겨져
있다. 주세붕이 직접 쓴 글자이다. '경이직내 의이방외'(敬以直內 義以方外)의 첫
글자로 '경으로써 마음을 곧게하고 의로써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반듯하게 한다'는
뜻이다. 소수서원의 교훈이자 학문의 목표이기도 하다.
학문과 명승은 함께 가는
것일까. 소수서원의 일대에는 빼어난 경승이 자리하고 있다. 퇴계가 가장 사랑했던
곳은 청량산. 낙동강 상류인 명호강의 빠른 물살 위에 떠있는 바위 산이다.
퇴계는 스스로 '청량산인'이라
칭하고 제자들과 함께 자주 나들이를 하곤했다 .청량산에는 그가 청년시절과 만년에
공부했던 오산당(청량산원)이 있다. 소수서원과 마찬가지로 단아한 모습의 서재이다.
산 아래 퇴계가 배를
타고 건넜던 명호강은 여전히 맑다. 낚시대를 드리운 태공의 모습이 한가롭다.
최근 정부는 수 조원을
들여 경북 북부 지역의 유교문화권을 국제적인 관광지로 개발한다는 거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이 지역의 관광여건을 본다면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 곳의 개발은 지혜롭게 진행되어야 한다. 옛 사람들의 소박한 정한을 위압해서는
안된다. 소수서원 뒷산에 세워지고 있는 어마어마한 청소년 수련시설을 보면서 생기는
걱정이다.
♧♧♧품위있는 서원 4선
소수서원 이후
조선에는 수 많은 서원이 생겼다. 18세기에는 전국적으로 1,000곳이 넘었다. 지위도
높아지면서 각종 병폐와 당파싸움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결국 대원군은 1864년
세상에 사표가 될 47곳을 제외한 나머지 서원을 모두 철폐했다. 그 47개 서원 중
소수서원과 함께 돌아볼 수 있는 경북지역의 서원 4곳을 소개한다.
도산서원(사적 180호)
소수서원을 통해 학문을 일으켰던 퇴계 이황을
기리기 위해 만든 서원.
안동시에서 동북쪽으로 28km떨어진 도산면 토계동에 위치한다.
퇴계는 생전에 이곳에 도산서당과 농운정사를 꾸며 한 쪽은 스스로 공부하는 곳으로
삼고, 다른 한 쪽은 모여드는 후학들을 가르치는 강의실로 삼았다.
퇴계의 사후 제자들이
서원으로서의 체계를 갖췄다. 편액의 글씨는 명필 한석봉이 썼다.
병산서원(사적 260호)
안동시 풍산면 병산리. 서애 유성룡(1542~1607)을 모시는 서원.
전신은 풍악서당으로 고려말부터 있었던 사림의 교육기관이었으나 1572년(선조5)에
유성룡이 이 곳으로 옮겨 본격적인 학문의 터로 닦았다.
1614년 사람이 발기해
서원을 만들고 1863년(철종14)에 '병산'이라는 편액을 받았다.
옥동서원(경북도기념물 제52호)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황희정승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서원.
1518년 황맹헌, 황효헌 등이 황희의 영정을 봉안하고 독서하던 서당이었으나 1580년
영당을 세우고 향사를 지냈다.
1589년 정조가 옥동서원이라는
편액을 내렸다.
금오서원
구미시 선산읍 원동. 야은 길재를 모신 곳.
선조 8년(1575)에 금오서원액과 서책을 하사받았다. 그러나 금오산 밑에 있던 원래의
서원은 임진왜란 때 소실됐고 이후 지금의 위치인 선산읍 원리 남산으로 옮겨 지어져
광해군 원년(1609)에 사액을 다시 받았다.
소수서원가는 길
승용차로 가려면 만만치 않다. 서울서
4시간 30분은 잡아야 한다. 영동-중앙 고속도로를 타다가 제천에 진입, 제천
시내를 관통해 5번 국도로 방향을 잡는다. 5번 국도로 단양을 거쳐 소백산 남쪽 자락인
죽령을 넘으면 풍기이다. 풍기에서 915번 지방도로로 좌회전, 약 12km를 달리면
오른쪽으로 소수서원이 보인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영주까지 하루 10회 열차가
출발하고 고속버스는 25회 운행한다. 영주시내에서 시내버스가 수시로 다닌다.
소수서원 관리사무소 (054) 634-3310.
소수서원 인근에는 숙박시설이 거의
전무하다. 풍기 영주 또는 인근 부석사 근처에서 잘 곳을 찾아야 한다. 영주시내에
있는 소백산관광호텔(054-634-3300)이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숙박시설이다 .풍기호텔(054-637-8800)도
깨끗하고 규모가 있다. 부석사 인근에 장급 여관과 민박집이 많다.
경북 지역에서 가장 큰 고민은 먹거리이다.
외지인의 입에 경북 음식은 다소 무미하게 느껴진다. 하회마을 관광으로 잘 알려진
헛제사밥 등이 개성있는 경북 음식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직화 돼지불고기집이 많이
생겼다. 소수서원 근처의 순흥전통묵음식점(054-634-4614)은 메밀묵을 곁들인 정갈하고
담백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 부석사 주차장 앞의 자미가(054-632-3454)에서는 산채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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