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드래프트가 막 끝났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40년 전에 있었던 대형 드래프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1982년 NBA 챔피언 레이커스는 1979년에 클리블랜드와의 트레이드로 받은 1982년 퍼스트 라운드 픽 소유주였습니다. 그런데 이 클리블랜드가 1982년 시즌을 리그 최하위로 마치면서 디펜딩 챔피언인 레이커스가 드래프트 1픽을 가져갈 수 있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당시엔 리그 최하위 두 팀이 동전을 던져서 드래프트 1픽을 가져갈 때였습니다. 그래서 리그 최하위 클리블랜드와 꼴찌에서 2위인 샌디에고 클리퍼스가 드래프트 1픽을 놓고 동전던지기를 했는데, 1픽이 클리블랜드로 가게 된 것이죠. 그래서 그 권한을 일찌감치 클리블랜드로부터 받아놓은 레이커스가 드래프트 1픽을 가져가는 유례없는 사건(?)이 발생할 수 있었던 겁니다.
레이커스는 정말 운도 잘 따르는 구단인 듯 합니다.
82년 드래프트엔 매우 뛰어난 포워드들이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다미닉 윌킨스 (휴먼 하일라이트 필름), 테리 커밍스 (1983년 신인왕), 클락 켈로그 (20-10의 사나이), 러셀 톰슨 등등...
이미 80, 82, 두 번 우승의 주역인 올스타 스몰포워드 자말 윌크스를 보유한 레이커스였기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레이커스가 골밑을 강화할 수 있는 테리 커밍스나 클락 켈로그, 러셀 톰슨 중 하나를 뽑을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그러나 레이커스는 82년 NCAA 우승의 1등 공신, 제임스 워디를 뽑습니다. 워디는 파워포워드의 사이즈와 힘, 그리고 스윙맨의 퀵니스와 스킬을 가진 전형적인 3번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기존의 자말 윌크스와 포지션이 겹치는 선수였음에도 레이커스는 제임스 워디를 선택합니다.
이유는 두 가지... 워디가 큰 경기나 파이널에 특히 더 강한 강심장의 소유자라는 점, 그리고 더 큰 이유는, 워디 정도의 사이즈와 퀵니스가 있어야 앞으로 파이널에서 자주 붙게될 보스턴의 래리 버드 대항마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었죠.
1. 루키시즌 360도 턴 레이업
워디가 프로 초창기 때 자주 보여주었던 플레이입니다. 수비수나 블라커를 앞에 두고 공중에서 360도 돌며 던지는 서커스 샷.
2. 루키시즌 자유의 여신상 덩크
워디는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 독특하고도 시원한 속공 덩크로 유명했습니다. 일명 '자유의 여신상' 덩크.
3. 84년 포스트업 무브
제임스 워디의 강력한 포스트업 무브는 바로 이 엄청난 퀵니스에서 터져나오는 빠른 스핀 무브에 있었습니다. 마이클 조던도 대학시절에 제임스 워디로부터 전수받아 익힌 이 모션으로 포스트업 공격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죠. 매직 존슨 조차도 본인의 포스트업 스킬은 후배인 워디로부터 배운 것이다 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4. 87년 파이널 6차전 허슬 플레이
워디를 영입한 이후 85년에 이어 레이커스가 두번째 우승을 차지하던 순간입니다. 케빈 맥헤일의 패스를 인터셉트한 워디가 사이드라인 밖으로 나가는 볼을 몸을 날려 살려내며 매직에게 어시스트까지 해준... 1987년 파이널을 상징해주는 명 플레이입니다.
5. 88년부터 완전히 무르익은 워디의 돌파 무브들
6-9의 신장으로 힘과 에너지가 뛰어난 선수였지만, 오히려 빠른 퍼스트 스텝과 큰 손을 이용한 다이나믹한 공격 플레이로 모든 상대팀들로 하여금 더 골머리를 앓게 했던 장본인입니다. 큰 선수를 붙이면 퀵니스로 제압하고, 빠른 선수를 붙이면 사이즈와 힘으로 수비수를 요리하던 그런 선수.
6. 워디의 최대 강점 - 양손 모두를 자유자재로 사용
워디는 빠르기만 할 뿐 아니라 왼쪽이나 오른쪽이나 그 강력함이 동등했습니다. 농구계에선 래리 버드를, 현 축구계에선 손흥민을 떠올리게 하는 최대 장점입니다.
7. 힘과 스피드, 스킬이 모두 조화가 된 페인트존 공략
몇 가지 플레이만 봐도 그가 왜 위력적인지 쉽게 알 수 있죠. 80년대 당시의 스몰포워드들에게 요구된 건 포스트업, 페이스업 공격 스킬이었습니다. 지금처럼 3점을 쏴대던 시절이 아니어서 저런 다양한 개인능력이 요구되었고, 그런 면에서 워디는 단연 발군이었습니다.
87년 시애틀과의 서부 컨파 3차전에서 39득점으로 폭격하며 팀을 파이널에 올려놓았고, 중차대했던 보스턴과의 파이널 1차전에서도 33득점, 10리바운드, 9어시스트로 활약하며, 왜 그의 별명이 '빅 게임 제임스' 인지를 여실히 증명해냈죠.
8. 88년 파이널의 히어로
디트로이트와의 파이널 대결전... 2승 3패로 레이커스가 뒤져있는 상태에서 워디는 6차전에서 28득점, 9리바운드, 그리고 7차전에서 36점, 16리바운드, 10어시스트로 활약, 두 경기를 모두 레이커스에 가져다주며 레이커스가 69년 보스턴 이후로 근 20년 만에 백투백 우승을 차지하는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습니다.
9. 88년 파이널 7차전의 멋진 스쿱샷
백투백 우승이 결정된 7차전에서 보여준 워디의 멋진 스쿱샷!
10. 그 터프하다는 뱃보이스의 수비진을 농락하는 워디
빌 레임비어, 제임스 에드워즈, 존 샐리, 데니스 로드맨 등... 그 거칠고 터프하며 수비 잘하기로 소문난 디트로이트 프런트를 상대로 아랑곳 하지 않고 폭격하며 털어버리는 최전성기 워디의 모습입니다. 당연히 파이널 MVP는 그의 몫.
처음에 그를 드래프트 1픽을 사용해 뽑았을 때, 레이커스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예상보다 상당히 컸습니다. 동 포지션의 자말 윌크스도 매우 언짢아 했고요. 오랜 시간 윌크스와 함께 해온 팀원들과 팬들도 그를 썩 반기는 눈치가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83 시즌 막판에 발목이 부러지며 시즌아웃, 그리고 84 파이널 2차전에선 경기 막판에 정말 어리석은 턴오버로 셀틱스가 기사회생할 수 있게 만들어준 역적(?)이었습니다. 보스턴 원정 1, 2차전을 모두 이기고 홈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상황의 레이커스였는데, 그의 실수로 셀틱스가 결국 7차전까지 시리즈를 끌고 가 우승을 했거든요.
그러나 매직 존슨은 워디를 선호했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강하고 빠른 패스를 뿌려도 절대 놓치지 않고 잡아서 골로 연결하는 그의 끈끈이 손, 몸싸움에서 래리 버드를 포함해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그의 힘, 그리고 런앤건 공격에서 제일 빨리 달려나가 피니쉬 해줄 수 있었던 그의 스피드와 체력... 이런 부분에서 매직은 워디와 함께하길 원했던 것입니다.
제임스 워디가 있었기에, 레이커스는 85, 87, 88 우승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자말 윌크스를 데려가고 파워포워드를 뽑았다면 또 어떤 역사가 쓰여졌을지는 사실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워디가 있었기에 80년대 레이커스는 '쇼타임 레이커스'로 불리울 수 있었죠. 그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고, 특히 87년 레이커스는 지금까지도 역대 최고의 팀 탑 5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쓰리핏 MVP 래리 버드의 최전성기에 레이커스가 셀틱스를 상대로 두 번의 우승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워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첫댓글 저 사이즈에도 가드들도 못따라가는 엄청난 속공능력이 있었죠 80년대 후반부로 갈수록 보스턴이 레이커스에게 밀렸던 이유중 하나가 바로 워디의 속공을 막을 자원이 셀틱스에 없었던 것이 한몫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랜 바이어스의 가세가 정말 중요했는데...
그렇죠. 렌 바이어스의 사망이 역사를 새로 쓰게 했죠. 버드의 대항마가 워디였다면, 워디의 대항마가 될 수 있었던, 아니 워디보다 더 뛰어난 선수가 될 수 있었던 선수가 렌 바이어스였습니다.
@Doctor J 86셀틱스의 강력한 프런트코트+랜 바이어스의 스윙맨능력과 기동성과 에너지 가 더해졌다면 87셀틱스는 랄과 싸울만했을거고 90년대 셀틱스의 역사가 그리 망할리도 없었을텐데 안타깝습니다
지금 시대에 뛰었으면 인기가 하늘을 찔렀을 것 같네요.
Too Fast, Too Strong, Too Good!
Too Quick.... and Two Hands!
와 지금 골스가 1픽으로 홈그렌 벤케로 스미스 중 하나 뽑는거나 마찬가지 …
예전에 대악마가 베스트 5에 워디 뽑아서 놀랐던 기억이 있었는데... 저는 워디가 늙은 이후부터 봐서 ㅎㅎ 박사님 전에글들 보고 이런 선수였구나 하고 알게 됐었죠
일단, 워디는 온볼 플레이어가 아니어서 어느 팀에서나 환영할 만한 선수죠. 이기적이지 않고, 허슬이나 궂은 플레이도 마다하지 않는 마인드에, 큰 경기에 유독 강한 강심장의 소유자. 누구나 탐냈던 선수입니다.
조던이.엄청 좋아하죠 워디를
대학때 같은팀 아니었나요? 심지어 조던보다 워디가 1옵션이었고?
@[LAL]라라케 대학 때는 비교대상도 아니었죠. 워디는 랄프 샘슨과 함께 이미 대학 최고 소리를 듣던 시절이고, 조던은 이제 떠오르던 신입생이었고요.
세번짤 스핀무브는 정말 빠르네요
전 조단이 항상 자기 베스트 5를 매직-조던-피펜-워디-하킴 이렇게 뽑길래 당연히 파포인줄 알았는데 스포였군요 아니 그럼 마사장은 베스트 5에 스포만 3명 뽑은건가😱
저 다섯명은 사이즈에 있어서도 안 밀리고 워낙 다재다능해서 4번 없이도 엄청난 화력이 나왔을 것 같아요. 매직이나 워디가 4번을 봐도 별 무리없는 라인업이네요.
자유의 여신상 덩크에서 딱 무릎만 접으면 글라이드의 덩크네요. 포스트업이 진짜 화려하네요.
최근 선수들도 하기 어려워하는 페이스업,포스트업 연계가 너무 깔끔하네요.
허슬, 퀵니스까지 있어서 공격은 나무랄데 하나도 없다고 생각되는데, 수비는 어땠을까요?
동 포지션에 올스타 윌크스가 있는데도 워디를 뽑은 이유들 중 하나가 워디의 강한 수비력이었습니다.
요즘 뛰었으면 진짜 쿰보와는 다른 결의 엄청난 파괴력있었을거 같네요.
쿰보와 카와이 그 어디 중간 쯤...
작년에 82년 NCAA 결승전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길래 제대로 봤는데 과연 이름값(Worthy)을 하는구나 했네요.
네, 그렇습니다. 당시 조던은 신입생 답게 실력이 들쭉날쭉 했습니다. 팀을 이끈 더 맨은 제임스 워디였고, 워디는 결승전 뿐 아니라 NCAA 토너먼트 내내 꾸준히 잘했습니다.
형님, 80년대 중후반부터 NBA를 봤던 저로선 제임스 워디가 매직과 더불어 LA의 투톱이었단 인상이 강합니다. 근데 자세히 보면 이게 기막힌게 워디는 매직과의 궁합에 최적이었단 생각이 들어요. 당시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불스의 경기들을 보면 어떤 정해진 리딩 가드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느낌입니다. 조던, 피픈, 팩슨등이 리바운드 잡는대로 번갈아 코트를 횡단하는 구도를 보여줬어요. 근데 LA는 스캇이나 워디가 리바운드를 잡아도 웬만하면 매직에게 주는 형태입니다. 첨에 공격권을 가지면 먼저 매직이 볼을 가지고 풀어가는 방식인 거죠. 즉 득점으로 연결되기 까지 공격 시간 동안 매직이 볼을 70% 점유한다고 봐도 될 정도로.. 이런 면에서 워디는 피픈처럼 코트를 넓게 쓰면서 외곽에서 드리블을 하는 타입이 아니라 매직의 A패스를 득점으로 연결시키는 역할을 많이 한거죠. 스캇도 물론 오픈 코트에서 드리블을 치기는 하지만 정말 볼을 잡으면 먼저 매직에게 주고 자기는 공격루트에서 위치를 잡는 모습을 보이죠.
이게 80년대 초반의 놈 닉슨이 있던 때와 놈 닉슨이 트레이드되고 스캇이 그 자리를 메운 뒤 부턴 워디와 스캇은 정말 매직이 디자인하는 공격루트의 최적화된 퍼즐들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워디가 피픈처럼 넓게 코트를 쓰는 스타일이었거나 스캇이 닉슨 처럼 볼을 자기가 코트로 몰고 나오는 스타일이었다면 매직이 설계하는 공격루트가 아닌 보다 런앤건에 가깝게 될 수 있었을 듯 해요.
@Larry Legend 어쩔 수가 없어요. 80년대 레이커스는 매직의 입맛에 따라 움직여야 했으니까요. 매니저, 감독, 선수들, 모두 매직의 눈치를 봤었고요. 닉슨은 개인적으로 참 좋아했던 선수인데, 결국 볼 소유 문제로 매직과 불협화음이 나니까 트레이드 돼버렸죠. 자말 윌크스도 정말 잘하는 선수고 매직의 총알패스 잘 받아먹기로도 유명했지만, 매직의 관점에선 버드와 경쟁이 안 된다고 봤기에 워디로 교체된 거고요. 80년 파이널 우승을 이끈 폴 웨스테드 감독 조차도 매직이 안 좋아하니까 해고당했죠.
워디나 스캇이 볼을 몰고 나올 능력이 있었거나 코트를 넓게 쓰는 스타일이었다면... 모르긴 몰라도 매직이 그리 좋아하지 않았을 겁니다.
@Doctor J 형님께서 보시기에도 그렇죠, 워디나 스캇이 80년대 레이커스 쇼타임 주축 멤버다 보니 정말 파이널에도 자주 나오고 해서 오히려 다른 팀 에에스보다도 인기는 많았을 정도로 미디어에 많이 노출됐죠. 근데 제가 어릴때부터 보면서 느낀건 볼 핸들러들은 아니라는 겁니다. 심지언 마이클 쿠퍼도 넓게 코트를 쓰며 드리블을 하며 리딩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매직이 벤치에 있을 땐 그 역할을 했지만 정말 포인트 가드 역할은 어색했어요.닉슨이 드리블로 상대방을 제친 뒤 올라가는 스타일이었다면 스캇은 경우 물론 호쾌한 돌파도 많았지만 그것도 속공시 매직의 패스를 받아서 하는게 많았고 매직이 더블팀을 이끌어 낸뒤 오픈 찬스를 만들어 주면 받아서 올라가는 스타일이었죠. 그래서 타 팀에 비해 유난히 80년대 중후반 이후의 LA의 경기들을 보면 리바운드를 잡으면 선수들이 무조건 매직부터 찾는 모습이 연출이 됐죠. 진짜 매직이 자신의 리딩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선수들로 구성을 한게 아닌가 생각이 되네요.
@Doctor J 예를 들어 도미닉 윌킨스와 워디 중에 매직이 누굴 더 좋아했을 까 가정해 보면 도미닉 윌킨스 처럼 1대1을 함에 있어서 공을 가지고 있는 시간이 긴 선수보다 매직은 오히려 워디처럼 간결하게 패스를 받아 효율적인 농구를 하는 선수를 선택한게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Larry Legend 다미닉이나 워디나 매직이 원하는 입맛에 자신을 맞출 수 있었던 스타일이라고 보는데... 82 드래프트 당시엔 사실 워디가 다미닉보다 훨씬 더 완성형 선수였어요. 다미닉에 못지 않은 운동능력과 속공 피니쉬 능력도 갖추었는데, 게다가 최고의 포스트업 플레이어였죠. 커림이 노쇠화로 들어갔기 때문에 또 다른 강력한 포스트업 공격수가 필요했던 레이커스로선 아마 워디만큼 잘 맞는 퍼즐도 없었을 겁니다.
키 큰데도 불구하고 작은 선수들보다도 더 빠른거 하면 듀란트가 생각나는데 .. 80년대에도 그런 존재가 있었나 보군요
아마 본인이 더 맨으로 이끌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더 뛰어난 기량과 스탯을 보여줬을 것이고 현재 인지도도 훨씬 더 높았을 겁니다. 하지만 레이커스 빅 3의 한 축으로서 80년대 쇼타임 레이커스의 귀중한 부분이 되었고 그것만으로도 본인은 너무나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Doctor J 형님, 센터는 말할것도 없고 올라운더나 외곽의 포워드 포지션의 신장 자체로는 80년대가 오히려 지금보다 더 크지 않나요? 특히 올라주원의 자서전을 보면 올라주원이 제임스 워디(6-9)를 직접 보고 커서 놀랐다고 언급했는데요. 사실 래리 낸스(6-10), 스카티 피픈(6-8), 알렉스 잉글리쉬(6-8), 버나드 킹(6-7), 댄 이설(6-9) 등등 하도 2미터 훌쩍 넘는 2, 3번들이 즐비해서 당시 조던이 상대적으로 작아보였던 느낌이 있습니다. 형님 생각엔 어떠신가요? 현대농구가 신장자체는 더 커진 것 같진 않은데요.
@Larry Legend 네, 신장 자체는 큰 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대신 포지션 파괴현상이 일어나서 빅맨을 했던 몸이 지금은 스윙맨을 하기도 하고, 빅맨으로선 그리 크지 않은데 빅맨을 보는 선수들도 많아졌죠.
하지만, 언급하신 댄 이셀은 단신 '센터' 였습니다.
@Doctor J 아 앨빈 아담즈 같았던 거군요 댄 이셀이..ㅎ
당시로선 그렇게 생각해보니 앨빈 아담즈나 댄 이셀이 포지션 파괴자 들이었군요.
206㎝으로 센터들을 본거네요.
@Larry Legend 그렇죠. 당시로선 드물게 센터들인데도 중장거리슛을 잘 구사했었고요.
워디는 진짜 해결사 느낌나죠~~
매직의 쇼타임 레이커스는 매직도 엄청났지만 카림과 워디가 패리시와 맥헤일의 합산 활약을 능가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동부보다 강팀이 적었던 점도 있었고 파엠도 다 한개씩 가지고 가면서 매직에게 버스만 탄건 아니란걸 증명하기도 했죠..
James...he is Wort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