딛 1:1-16
▣ 지교회에게 보내는 멧세지-디도서 1장-
1. 디도는 말씀을 선포해야 했다(1:1-4)
이러한 공식적인 인사는 편지를 시작하는 서두라는 것 이외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이 인사는 지교회의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위치를 서술하고 있다. 바울은 교회(하나님의 선택으로 택함받은 사람들)의 믿음에 따른 종이요 사도였다.
그의 사역은 교회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었으며, 직접적으로 교회와 연결되어 있었다. 유다서에서는 이 “믿음“을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이라고 부른다(유 3절). 이것은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신 진리의 예탁이며(딤전 1:11), 바울은 차례로 디도와 디모데에게 주었다.
그레데에 있는 문제들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남용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따라서 우리는 죄에서 자유하다“고 이 곳의 신자들은 주장하였다. 바울은 믿음을 정의함으로써 이에 응답하기 시작하는데, 그는 믿음을 “경건에 따른 진리“라고 정의한다. 경건은 바울에게 있어 친근한 단어이다(딤전 2:2/딤전 3:16/딤전 4:7-8/딤전 6:3/딤전 6:5-6/딤전 6:11/딤후 3:5). 경건이란 일상적으로 실천하는 거룩함이란 뜻이다(1:16 과 비교).
나중에 2장 11-15절에서 바울은 은혜가 우리를 구원하며, 또한 헌신한 생활을 살도록 훈련시킨다고 설명한다. 자기의 죄를 핑계대기 위하여 은혜의 교리를 사용하는 신자는 진실로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은혜의 멧세지는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축복된 소망을 지시한다. 2장 13절에 디도가 전해야 할 멧세지가 있다. 즉,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믿음을 따르는 거룩한 생활, 주님이 돌아오실 것에 대한 일상적인 기대 등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계획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세워졌던 것이며 이제 전도(복음의 선포)를 통하여 나타난 것이다. 지교회에서 선교의 위치를 축소시켜서는 안 된다!"
딛 1:5-9
2. 그는 교회를 조직해야만 하였다(1:5-9)
우리는 누가 그레데에 교회를 세웠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은 바울이 디도를 남겨 두어 교회를 조직하게 하였으며, 약한 곳을 치료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의 사역에는 분명한 반대가 있었으며 사임하기를 원했다는 암시가 나온다. 바울은 이렇게 쓰고 있다. “그러나 내가 너를 그 곳에 남겨 둔 것이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만일 문제가 없었다면 그 교회는 너를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육신의 몸에 있는 한 우리의 교회에는 문제들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생길 때 문제를 숨기는 것이나 직원들이 사임하고 다른 교회를 찾는다는 것은 문제의 해결이 되지 못한다. 그 해결 방안은 이 문제들을 정직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직면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바로잡다“는 5절의 말씀은 의학 용어로서 “부러진 뼈를 맞춘다, 또는 구부러진 수족을 똑바로 펴다“는 뜻이 있다. 교회는 하나의 몸이며 목회자는 경우에 따라 영적인 의사가 되어 어떤 뼈들을 맞추어야 할 때가 있다!
디도는 장로들(감독-7절, 같은 직분을 가리키는 두 가지 이름임)을 선택해야 했던 것은 아니며 교회가 선택한 사람들을 안수하면 되었다. 5절에 나오는 “각 성에“라는 말은 복음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퍼져 나갔음을 시사하며, 이 일은 마땅히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었다. 여기 나오는 자격들도 디모데전서 3장에 나오는 자격들과 흡사하다.
6절의 “충성된 자녀들“이란 말은 “믿는 자녀들“이란 말이다. “방탕“에 대해서는 누가복음 15장 13절을 참조하라. 감독은 물질적, 영적인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청지기이다(고전 4:1-2 참조). 그는 “미쁜 말씀“을 굳게 잡아야 한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 4장 9절, 디모데후서 2장 11절과 디도서 3장 8절에서 바울이 말한 미쁜 말씀을 마음에 새겨 보자.
감독은 두 가지 이유로 인하여 말씀을 알아야 한다. 즉, 성도들에게 사역할 수 있기 위하여, 그리고 거짓 선생들을 논박할 수 있기 위해서이다. “거스려 말하는 사람들“이란 반박하는 사람들, 모순된 사람들을 뜻한다."
딛 1:10-16
3. 디도는 거짓 선생들을 반박해야 했다(1:10-16)
그리스도께서 좋은 씨(신자들)를 뿌리는 곳마다 사단은 모조 씨앗을 가지고 거짓 선생들과 더불어 뒤따라 다닌다. 그레데에는 바울의 가르침을 반박하며 유대인의 우화(율법주의)와 인간의 명령(전통)을 대신 가르치는 일단의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거짓 선생들을 조심해야만 한다 ! “할례당“(10절)은 바울을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보내려고 싸웠던 사람으로서, 여전히 진리를 반대하고 있다. 은혜와 율법을 혼합시킬 때 우리는 거짓 교리로 끝나고 만다. 바울은 이러한 교사들이 헛된 말장이이며 속이는 자들이며 무법한 자들이라고 묘사한다.
바울은 유명한 시인 에피메니데스의 말을 인용하기조차 하는데, 이 사람은 그레데인들을 거짓말장이요, 잔인한 동물이며 “게으른 족제비“라고 묘사하였는데, 과히 아름다운 묘사는 아니다! 사실상 바울 시대의 사람들은 “그레데 사람“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발명해 냈으며, 그 뜻은 “거짓말하다, 그레데인처럼 말하다“란 뜻이었다.
물론 바울은 모든 그레데인들이 다 게으른 족제비요 거짓말장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 내부와 외부에 예의바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음에는 의심할 바 없다.
음식규정법과 금욕주의는 거짓 선생들의 핵심적인 교리들이었으며, 바울은 15절에서 그들을 공격한다. 15절이 잘못 배운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크게 남용되고 있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죄악된 관습을 지지하는 데에 이 구절을 사용하며 이렇게 말한다.
“순전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순전하며... 따라서 내가 하는 일은 그릇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바울이 이 말을 썼을 때 그의 심중에는 이러한 뜻은 없었다. 그는 디모데전서 4장 2-5절에서처럼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에 대한 문제를 취급하고 있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신자는 모든 음식을 깨끗한 것으로 받아 들일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불신자와 거짓 선생들은 더러운 마음과 양심을 가졌으며, 따라서 아무것도 순전하게 보지 않는다. 사실상 순전하지 않은 음식이 인간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음식을 더럽히는 것이다! 도덕적이고 영적인 순전함은 음식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이 문제이다. 예수님은 이 점에 대하여 마태복음 6장 22-23절에서 가르치셨다(롬 14:14 참조).
디도는 이러한 거짓 교사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그가 이들의 관점을 알기 위하여 그들과 연합하여야 하는가? 아니다! 그들의 입을 막고(11절) 그들을 날카롭게 꾸짖어야 한다(13절). 결국에 가서 그들의 가르침은 모든 가족들을 실의에 빠뜨릴 것이다(부패시킬 것이다. 11절). 이들이 동기는, 간단히 말해서, 돈을 얻는 것이며(더러운 이익)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16절은 이 상황을 명확하게 종합해 준다. 이 거짓 교사들은 이렇게 고백하고 저렇게 실천한다. 이들은 그들의 행위로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있으며, 가증되고 불순종하였다. 이들은 결코 시험에 합격할 수가 없을 것이다(신에게 버림을 받게 된다).
우리는 오늘날 교회를 공격하는 거짓 선생들을 본다. 무지함 때문에 거짓 교리를 붙들고 있는 경우와. 거짓 교리를 붙들고 하나님의 진리라고 가르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무지한 사람들은 동정을 받고 진리를 배워야 하나, 고의적인 거짓 선생들은 책망을 받고 거절을 당해야 한다. 교회가 진리를 타협할 때 진리는 거짓말에게 삼키워질 것이다.“건전한 교리“, “건전한 믿음“을 강조하는 것에 유의하자(9, 13절). 이것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들에서 살펴본 “건강한“ 교리이다. 거짓 교리들은 그리스도의 몸(교회)에 영적인 병을 일으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