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한 논은 볏짚을 썰지 않고 베기만 하여 말렸다.
무엇에 쓸꼬!
다 마르기 전에 비가 오니 번거롭기도 하고 바쁜 가을에 귀찮아진다.
그래도 주위에서 김장에 필요하니 메주에도 필요하니 이야기하니 내버려둘 수가 없다.
작년에도 비에 젖기가 여러 번이고 때를 잘 맞춰 거두는 것이 여간 어렵다.
이번에도 큰 비에 흠뻑 젖고 썩는 것을 뒤집고 말려 거둬들인다.
예년보다 작은 볏짚을 묶어야 하니 작년에 남은 볏짚을 가져와 묶는다.
묶는 법을 또 잊어 자꾸 떠올리며 매듭을 짓기를 연습한다.
묶이는 볏짚보다 길어서 좋은데, 작년 것이니 삮아서 잘 끊어진다.
노끈으로 묶으면 별 어려움없이 될 터인데 웬지 볏짚은 볏짚으로 매듭을 지어 묶어야
더 좋을 것 같은 막연한 느낌으로 펼쳐진 볏짚을 모아 묶는다.
일부 젖은 것도 있고 썩은 것도 있고 곰팡이에 검게 변한 것도 있으니 번거롭다.
볏짚이 잘 흩어지기도 하고 마른 것을 묶자니 익숙하지 않아 잘 묶여지지 않으니 쉽지 않다.
손가락 힘이 없으면 묶인 것이 다시 풀리기도 하여 단단히 하라고 서로서로 이야기한다.
볏짚 잘 마르라고 펼쳐 널었더니 큰 비에 아랫쪽에 있는 볏짚은 논바닥 흙의 습으로 자꾸 썩는다.
어느 정도 말랐으면 묶어서 세워두는 것이 썩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쨋든 비가 오면 흘러내리기때문이다. 널어두면 바닥에 습을 피할 수가 없다. 자꾸 뒤집지 않은 한.
논마다 하얀 비닐로 포장한 큰 뭉치의 볏짚말이가 소먹이용으로 널려있고
인삼밭하는 집은 잘 말려 논 한 켠에 초가집처럼 작은 단위로 쌓아올려 놓았다.
아직 논에서 세워둔 볏짚도 있고, 얼마나 잘 말랐는지 자세히 들여다본다.
아주 깨끗하지는 않지만 곰팡이는 조금씩은 다 있다.
메주라도 걸거나 깔아두려면 깨끗한 볏짚이 좋을 터인데 안 좋은 곰팡이균이 먼저 자리잡는다.
저 멀리서 아직 뒤집지도 묶지도 않은 볏집을 거두는 이가 있어 잠시 위로를 받는다.
그나마 논에 물이 많이 없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르겠다.
잠시 매듭을 묶으며 가을햇살을 맞으며 준비를 하고 이내 허리를 굽혀 볏짚을 묶는다.
모아 끝을 가지런히 하고 한아름 묶어 뒤집어 매듭을 맨다.
삮은 매듭은 끊어지고 힘없이 묶으면 다시 풀리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며
손끝은 시리고 허리는 아파온다.
묶어 세운 볏단이 100개는 훨씬 넘어가며 한 숨을 몰아낸다.
가운데로 모아 둘이 서로 기대어 놓은 긴 줄을 만들어 더 말리도록 한다.
일부는 김장에 쓸 것을 차로 옮기고 나머지는 비에 더 젖지 않도록 덮개로 마무리를 한다.
한낱 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풀이든 볏짚이든 쓸모가 있다.
삮지만 않으면 물에 적셔 놓고 무엇이든 묶을 수 있고 단단하다.
지금도 인삼밭에 아래위로 이영으로 엮어 차광용,보온용으로 많이 쓰이는 것을 본다.
거름용으로는 줄기 조직이 단단한 갈대나 볏짚만한 풀이 없다.
단단하기로는 갈대, 옥수수대, 수수대, 조대 등 곡식의 줄기가 강하고 좋은데
연하고 부드러워 묶을때는 볏짚만한 것이 없다. 석유로 만든 끈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며칠 전 구십이 넘은 할아버지가 지게에 싸릿대를 꺽어 지고가는 것을 보며
아직도 자연의 무엇으로 무언가를 손으로 만들어 내는 전통의 무엇에 끌리는 마음이 생긴다.
볏짚 또한 옛날에는 멍석도 만들었으니 자연친화적인 농생활에 이만한 것이 없다.
아직 갈무리를 잘 못하지만 요령이 쌓여 충분해지면 무언가를 만들 밑천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무엇에 쓸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