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여행지로서 루마니아는 그리 친숙한 나라는 아니다. 동유럽의 어디쯤으로 떠올릴 뿐 정확한 위치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나라 이름 네 글자를 떠올릴 때 체조 요정 코마네치, 독재자 차우셰스크 정도.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자면 아마도 '드라큐라'쯤 될 것이다.
내가 알고있는 루마니아도 역시 독재자로 처형된 챠우셰스크와 그와 북한의 김일성이 가까웠다는 것과, 드라큐라에 대해서
막연히 알고 있는 정도였는데, 이제 루마니아를 찾아가면서 좀더 친근하게 알아보자.
면적으론 한반도 보다 약간 크고, 유럽에서는 12번째로 크며, 인구 2,200만 정도되는 농업국이면서 산유국이다,
평야가 70%를 차지하고 있으니 우리와 반대다. 고대 로마시대에 로마 사람들이 살았기 때문에 뿌리는 로마인으로 라틴계 사람이 대부분이다,
독일에서 흘러온 다뉴브강이 루마니아를 지나 흑해로 들어 가고, 발칸의 동남부에 위치하여 대륙성 기후를 보인다,
오스만터키로 부터 1885년에 독립을 했으며, 아직 공산당시대의 회색적인 색갈이 도시에 흐르고 있으나, 변모의 몸부림을 치고있는 루마니아의
관광지로는 유럽에서 마지막의 아름다운성으로 알려진 펠레슈성과 드라큐라성으로 이름난 브란성 그리고 차우셰스크의 인민대궁전이 있다.
루마니아 브라쇼브역
헝가리 여행을 마치고 해가질 무렵 브다페스트 북역을 출발한 야간열차는 밤 11시경 헝가리 국경도시에 잠시 정차하였다.
누군가 열차복도로 지나가면서 여권을 준비하라는 말에 우리 4명은 각자의 여권을 의자에 내어놓고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세관원인지 경찰인지 정복을 입고 콧수염의 인상 고약한 남자가 열차의 마치막칸에서부터 여권을 검열하며 오다가 우리방에 왔을때
여권을 보여주려는데 4개중에 한개는 사라지고 3개밖에 없는 것이다. 말도 통하지 않는 그 사람앞에서 사라진 여권때문에 방안의 4사람은
초긴장되어 모두의 가방을 뒤저 겨우 찾아주는 해푸닝으로 시간이 지체되었는데, 지나고 나서 한없이 웃을 수 밖에 없는 사건도 있었다.
여자분을 배려하여 남자들이 2층에 자리잡고 잣는데, 오히려 일층이 바퀴의 소음으로 잠을 못 잤다고 한다.
일곱 자매
어둠이 지나자 루마니아의 시골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높은 산도 있지만 넓은 평야가 계속된다.
루마니아는 땅이 넓어 낙농을 많이 하고. 나라는 마치 큰 정원 같다고 한다.
6월 29일 아침 9시쯤 열차에서 하룻밤(16시간)을 보내고 브라쇼브 역에 도착하였다.
이영호 목사님과 7자매가 풀랫폼까지 마중을 나왔다.
간단한 소개로 인사를 나누고 역사 밖으로 나오니 두대의 버스가 기다리는데,
몽골에 갔을때 탓던 우리나라의 글이 새겨진 중고버스 같았다.
역사의 규모는 크지만 낡아보이고 버스도 조금은 초라해 루마니아의 경제 수준을 말해주는 것같다.
선교교육센타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이영호 목사님이 선교하시는 교회, 그런데 십자가도 없고 교회의 모습으로 보이지않아 물어보니
이곳에는 루마니아 정교회가 대부분으로 기독교는 선교자체가 힘들어 십자가도 세우지 못하고 교회라고도 하지 않고
교육센터라는 이름으로 교육과 예배와 선교를 함께 하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루마니아 국민 중 90% 가까이가 동방정교회 신자이고. 정교가 개신교를 핍박하는 나라이다.
루마니아는 현재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기 전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한다.
아침겸 점심
교회에 들어가니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다. 사모님과 현지 교인들이 한국식으로 준비한 음식들이다.
얼마만에 먹어보는 우리 밥인가? 음식이며 교회분위기며 우리나라 처럼 편안함이 느켜진다.
육계장에 맛있는 채리까지 국물이 좋아서 밥을 더 먹을 수 밖에 없었다.
환영의 노래
식사가 끝날 때쯤 7자매가 함께모여 기타치며 우리의 여행을 환영하며 노래를 불러준다. 나훈아의 "사랑" "노래하는 곳에"...
이국땅에서 외국인이 들려주는 우리노래. 야간열차로 인한 피곤함이 모두 사라지는 순간이다.
자매들의 이름은 다마리스, 율리아, 안드레아, 데니샤, 산드라, 엘리샤, 리지아, 젊은 형제들은 이들 자매들이 1:1로 가이드까지
브라쇼브 의 마을(Brasov)
식사후 선교센타가 있는 마을을 둘러볼 수 있었다.
호수가에 산책길이 있고 놀이기구와 운동기구가 설치된 아름답고 평화로운 시골 마을이다.
브라쇼브는 루마니아 브라쇼브주의 주도이다. 루마니아에서 가장 아름답게 보존된 도시 중의 하나로 헝가리 부다페스트와
부쿠레슈티로 가는 관문 역활을 하기도 한다. 드라큘라 백작이 살았다는 브란 성이 이곳에 있어 여행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으며,
루마니아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행지이다.
채리나무
마을의 건물들 사이에 보이는 푸른 나무들이 채리나무다
우리나라 집안에 감나무 처럼 집집마다 울창한 채리나무 크고, 맛도 있고, 많이 열리고 이번 여행에서 많이 먹어볼 수 있겠다.
루마니아는 중세의 원형이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으며 유럽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산악지대를 잘 정비하면 스위스 만큼 아름다운 곳이며.
국토의 대부분이 농토이기에 루마니아에서 농사만 잘 되어도 전 유럽의 절반이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규모라고한다.
그럼 이제 브란성으로 가보자.
브란성
늦은 아침으로 든든히 배를 채운후, 다시 버스를 타고 찾아간곳은 브란성(Castle Bran)
드라큐라성으로 잘 알려진 브란성(城)은 브라쇼브에서 남서쪽으로32km떨어진 작은 중세도시인 브란(Bran)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브란성은 브라쇼브로 이어지는 무역의 교역로를 지키기 위해서 1377년 당시 상인들에 의해 세워진 성 이었다고 한다.
드라큐라의성으로 알려지면서 동유럽 최고의 관광지가 된 브란 성은 아일랜드 더블린 출생의 소설가인 브람 스토커(Bram Stoker)가
여기 브란성에 관광왔다가 이 브란성을 배경으로 흡혈귀 드라큐라(Dracula)소설을 썼는데, 그 소설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서
브란성(城)은 드라큐라성으로 알려지고, 유명해져 찾는 발길이 많아지게 되었다고 이곳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는 장사범님의 설명이다.
입장권을 보이고 숲속으로 들어가니 브란성으로 올라가는 언덕 우측에 지붕이 이끼로 덮인 집이 공포감을 주고있다.
15분정도 오르다보니 브란 성이 나타나고 입구에 십자가 비석이 있는데, 우리가 생각했던 성이 아니고 우리나라 고택같은 건물이다.
전쟁때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희생되어 십자가를 세워 후세에 넋을 기렸다고 하는데.
소설 드라큘라 속에서는 십자가를 이용해 드라큐라가 십자가를 무서워한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브란성 외부벽
스토커의 소설이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하면서 루마니아인들의 영웅이었던 블라드는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게 스토커의 드라큐라와 동일시되는데.
이는 슬라브 민족에게 전해오던 흡혈귀 전설에 블라드 체페슈의 잔혹한 이미지를 이용해 작가가 만들어낸 이야기일 뿐이라고 한다,
소설에서 드라큐라 백작이 흡혈귀로 불리게 된 것은 그가 터키인 포로들을 잔인하게 죽인 것 때문이라고 한다.
드라큐라백작은 피를 빨아먹은 것은 아니고 이슬람(터키)와 카톨릭(헝가리)의 끝없는 투쟁 속에서 터키의 공물요구와 인신상납을 거절하고
터키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루마니아의 공신인데, 적군을 잡아 최초의 똥침을 준 사람으로 항문에서 입으로 나무 창을 찔러 진이 빠지게하여
죽인후 내걸어 터키군들이 치를 떨게한 아주 무서운 방어로 루마니아 사람들에게는 아버지 드라큐라 때부터 애국자로 유명했다고 한다.
통로
절벽위의 브란성은 원래 줄을 타고 올라갔다고 한는데, 이런 좁은 통로가 여러개로 미로같은 비상구와 방어 창문들이 매우 음산해 보인다.
브란성 실내
브란성은 중세시대 루마니아를 상대로 무역을 하던 색슨족이나 서유럽 상인들에게 관세를 부과하던 세관의 역할을 하던 곳이었으며 군사적
요충지이기도한 건물에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양식이 추가되어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다양한 양식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오스만트루크 군대가 쳐들어오는 것을 멀리서도 볼 수 있도록 교묘한 창문이 많다.
성의 발코니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에는 옛날 세관으로 사용하던 건물이 남아있다. 브란이란 세관을 뜻한다고한다.
이렇게 사연많은 브란성은 1920년 브라쇼브 의회가 마리 왕비에게 기증한 후, 대대적인 개조를 통해 원래 요새로서의 외양이 사라지고
낭만적인 분위기의 궁전으로 바뀌었으며 왕실의 여름별장으로 사용되다가.
그 후 마리 왕비는 이 성을 딸 일레아나 공주(1909~1991)에게 주었고,
1948년 공산정부가 들어서면서 왕족이 추방되고 국유화되었던 브란성은 민주화 이후 사유재산 반환 조치에 따라
2006년 5월에 미국에 살고 있는 일레아나 공주의 아들인 도미니크 폰 합스부르크에게 반환되었다고 한다.
브란성 안쪽벽
브란성 외부는 성벽처럼 되어있지만 성 안쪽은 둥그렇게 건물들이 둘러있고 서로 연결된 건물들 안쪽으로는
많은 창문들이 마주보고 있으며, 작은 정원과 식수를 해결할 우물도 보인다.
브란성을 돌아보고 느낀점은 드라큐라처럼 무섭거나 음침하다기 보다는 낭만적인 동화 속 한 장면 같은 분위기를 느낄수 있었다.
중세도시 브라쇼브(Brasov)
동화속의 궁전같은 브란성을 관람한후, 다시 버스를 타고 브라쇼부로 가서 시내관광에 나섰다.
낭만적인 중세도시의 모습이 그대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순간 이동해 온것 같은 부라쇼브는 수도 부카레스트에서 170km 떨어진
루마니아 카르파티아 산맥에 의해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로. 루마니아 최고의 휴양도시로 알려져 있다.
구시가지에는 구 시청사(1420년) 건물과, 58m 높이의 트룸페터 시계탑, 스핀투니콜라스 정교회(1392년)
등 역사적인 유적들이 남아 있다. 이 도시의 인구는 278,000명(2009년 자료)이라고 한다
탐파산
시내의 동남쪽에 위치한 탐파산(MT Tampa 865m)엔 BRASOV라는 광고판이 보이고 산꼭대기 까지 케이블카가 운행되어
올라가면 브라쇼브를 한 눈에 관망할 수 있는, 서울의 남산같은 산이다, 우리는 탐파산 언덕에서 산을 등지고 시내로 내려갔다.
스파툴루이 광장
오래된 주택가 건물을 지나 시내 중심지로 들어가니 넓은 광장이 나오고 중앙의 분수대에서 뿜어나온 물줄기가 시원하게 다가온다.
스파툴루이'광장은 브라쇼브의 구시가 최고 중심부에 위치한 광장으로 13세기에 독일인이 브라쇼브 도시를 건설할 때부터 역사를
이어온 곳으로 광장 중앙에는 1420년에 지어진 시청사 건물이 있으며 광장 주변에는 레스토랑, 기념품점, 카페 등 다양한 상점이 있다.
시청사 건물은 현재 역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한시간 동안 자유시간으로 구 시가지 투어에 들어갔다.
영국에서 왔다는 청소년들이 광장에 모여 노래하며 놀다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한컷 찍어주고 처음 찾은곳은 정교회.
스판타아도미래 정교회
루마니아인은 정교회 신자이건 신자가 아니건 정교회 교회력을 지키며.
교회절기 중 가장 큰 성탄절과 부활절은 한 주간의 휴일을 갖는다고 한다.
모든 도시와 마을의 중앙에 정교회가 자리를 잡고 개인주택들도 지붕에 세워진 정교회 십자가를 볼 수 있는데,
신자가 아닌 사람도 평생에 두번 태어날 때와 죽을 때 찾아간다는 정교회 안으로 들어가보니
신교처럼 회중을 위한 의자같은 것은 없고, 촛불과 성화로 장식 되어있는 내부는 천주교 성당모습과 비슷해 보인다.
검은교회
스판타아도미래 정교회에서 나오니 스파툴루이(Sfatului) 광장 건너편으로 흑색교회가 보인다.
브라쇼브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로 정평이 나있는 검은 교회는 14세기에 세워진 전형적인 독일풍 고딕 양식으로
17세기 말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군의 습격때 발생한 화재로 불이나 외관이 검게 그을린 후 검은 교회’라 불리어진다고 하는 설이 있고.
1830년에 지어졌는데 건축에 사용된 돌이 비가 오면 더 까맣게 보인다고 해서 검은교회. 또 당시 사람들에게 느껴진 으스스한 모습에 의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 밤중에 블랙처치 주변을 세 바퀴 돌면 귀신을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는데
우리는 이곳에서 밤을 보내지 않으니 돌아볼 수가 없겠다.
브라쇼브 거리
루마니아는 체코나 오스트리아, 헝가리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건물이 도로에 인접해 있고,
마당은 집 안쪽에 위치해 있으며. 대체로 집들의 외양은 소박하고 뭔가 수리하지 않은 분위기를 풍겼다.
여기는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다. 600년된 거리를 버스로 지나가면서 보고, 골목을 걸어보니 수백년은 되어 보이는 건물들이 보이는데,
지금도 500~600년 된 건물들이 그대로 있다고 한다. 과거로 돌아간 느낌으로 거리를 돌아다보니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는
역시 오래된 건물들이 제격이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골목에서 웨딩사진을 찍는 모습도 보인다.
루마니아는 로마제국이 세운 나라라는 뜻이다. 로마제국에서 출발하여 만들어진 국호로 로마인이 이주하여 만들어졌다.
일설에 따르면 죄수들을 많이 보냈다고 한다.
노천 카페
중세도시의 골목을 누비면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따가운 태양, 더운날씨에 걸어다니기에 힘들어 어딘가 쉴수 있는 곳을 찾을때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일행을 만나 파라솔 그늘아래 자리를 잡았다. 막간에도 목사님 사모님의 설명이 이어진다.
브라쇼브는 독일인이 이 도시를 좋아하여 만든 도시라고 한다. 루마니아의 명동이라고 할 수 있는
브라쇼브는 수도 부쿠레슈티 다음으로 이 나라의 두 번째 도시다.
전통복장
지금이 동유렵에서는 축제기간인가? 체코에서도 중세축제를 보았는데,
여기에서도 무슨 축제인지 전통복장을 한 사람들이 거리거리를 누비고 있다. 그래서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행운도 얻었다.
브라쇼브는 중세 루마니아가 3개 공국(公國)으로 나누어져 있던 시기 즉 왈라키아, 몰다비아,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세 지방을 잇는 교통과 상업의 중심도시였으며, 서유럽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하였다. 13세기(1252년) 독일의 색슨족들에 의해
건설되어 중세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이 도시는 헝가리인, 루마니아인이 함께 거주하면서 발전하였고,
15세기 투르크인들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만든 거대한 성벽이 도시 외곽을 둘러싸고 있다.
ORIZONT HOTEL
브라쇼브 시내 관광을 마치고 산고개를 넘고, 시골을 지나 찾아간 곳은 ORIZONT HOTE
우리나라의 대우가 한참 잘 나갈때 루마니아에 조선소와 자동차공장을 세우려고 김우중 회장이 머물던 호텔이라고 자랑하는데,
숲속이라 일단 공기가 좋고, 새련되고 현대식으로 고급스러웠다.
예배
오늘은 주일 이영호 목사님의 인도로 호텔에서 예배를 드렸다.
몇년 전에 군대에 있는 아들 면회가서 홍천에 있는 리조트에서 예배드린 기억이 있고,
몽골 여행 때는 초원 위에서 주일 예배를 드린적이 있는데, 주일예배를 교회아닌 곳에서 드리기는 이번이 세번째 인가 보다.
먼저 그동안 목사님의 사역을 소개하는 화면을 power point 통하여 볼 수 있었다.
찬송은 목사님께서 지으신 곡으로 함께 부르고, 말씀은 마태복음 24장1절~2절 본문으로 메시야의 재림이 가까왔다는 내용의 설교말씀
시나이아
예배를 마치고 펠레슈성을 보기위해 시나이아 지역을 찾아갔다.
시나이아 도시 이름은 인근에 시나이아 수도원이 있었기 때문이며, 성경에 나오는 시나이 산에서 따온것이라고 하는데,
시나이아는 루마니아 중부에 위치해 있으며, 브라쇼브에서 가까운 산악 휴양도시이다.
시나이아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보이는 주변의 집들은 작은 규모로 마치 우리나라 시골동네같이 동양적 느낌이 많이 난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가게 되는데 공기가 좋아 깊은 호흡만으로도 가슴깊이 행복감이 느껴진다.
펠레슈성
이곳은 오리엔탈 특급열차도 경유하는 귀족들의 휴양지로, 또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 수도 부카레스트에서 산이
가장 가까운 곳으로 해발 2000m의 고급코스의 스키를 즐길 수 있어 겨울 휴양지로도 아주 유명하다고 한다.
펠레슈성은 유럽의 성 중에서 가장 마지막 성인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성 으로 알려져 있다고 하는데,
말이 성이지 이곳도 한체의 집같은데, 우리는 이곳을 입장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과 함께 1시간 넘게 줄을서서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그 지루함과 불평은 실내에 입장하고 나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입장할 때는 그곳에서 대여하는 덧신을 신발 위에 신어야 한다.
귀한 손님이 올 때만 깐다는 붉은 카펫이 깔려있다. 안내자는 우리가 귀한 손님이라서 오늘도 붉은 카펫이 깔려 있다면서 활짝 웃는다.
팔레슈 궁전은 입구에서부터 모든 것이 보물이다. 루마니아 국보 1호인 팔레슈성은 1783년에 당시 왕인 카를1세의 여름 별장으로
축성을 시작해서 내부 장식물까지 합쳐서 1883년에야 완성되어 유럽에서 완벽히 유지된 성으로 꼽히며,
호화롭고 정결한 내부 인테리어가 현재까지 잘 보존 되어 있는 독일식 르네상스 건축술의 걸작이자
루마니아를 대표하는 성채라는 이영호목사님의 통역으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구경해보자.
내부벽면에 걸려있는 중세의 칼들
여기 벽에 걸린 무기류는 모두 진품으로 카를 1세는 무기에 관심이 많아 중세의 많은 무기뿐 아니라
4,000점에 달하는 무기들을 유럽과 동양의 무기류로 구분되어 전시되어 있고. 16~17세기 독일 무기만 따로 모아놓은 방도 있는데,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유리창이 인상적이다.
철 갑옷
병사뿐만 아니라 말까지 입힌 철 갑옷은 며칠후 이사장님의 특강에 등장하게 된다.
말이 감당하기 힘든 무게의 120kg이나 되는 철갑옷은 합스브르크가의 형성이 되었지만,
이 유럽의 권위는 몽골의 야생마의 속도와 비병이 휘두른 휘어진 칼을 가진 징키스칸에 무러지고 말았다고....
칼과 창, 말 갑옷, 말위의 기사 갑옷들이 전시된 무기전시실 과, 다양한 총과 칼, 터키산 그물갑옷 등이 전시된 서양무기 전시실,
일본의 칼과 조총이 전시되어 있는 동양무기 전시실 이 모든것들을 진품으로 직접 모아서 성안에 비치하게했다고 하니
정말 무기수집광 이었나 보다. 그런데 무기뿐만이 아니라 보석수집이 취미였다고한다.
여기도 실내는 사진촬영이 제한되어, 귀한 모습을 담아오기가 어려웠는데, 다행히 기념사진 한장은 남길 수 있었다.
열리는 천정
이 성은 현대식 성으로, 완성된 그때부터 전기 난방뿐 아니라 에어컨에 전화까지, 1900년도에 시설된 엘리베이터는 지금도 가동 중이고.
천정은 빛이 들어오면서도 실내 환기를 위하여 유럽 최초로 천정을 여닫을 수 있게 전기설비를 하여다고 한다, 식수도 씨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고, 바닥에 중앙 집중식 진공 청소장치, 30개의 욕조가 있고. 식당과 휴게실의 식탁과 책상, 의자는 모두 호두나무로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인도의 티크 목으로 만들어진 가구는 값을 따질 수가 없고, 국왕과 왕비의 유화그림이 실물처럼 정교하게 그려져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도서관
제1차 세계대전 참전 문서를 서명했다는 도서관에는 대학도서관에 기증하고 남은 200여권의 책이 있고,
그 책장 뒤편으로는 비상시 빠져나갈 수 있는 비밀통로까지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
팔레슈성은 내부 뿐만 아니라, 건물 외관도 정교한 장식이 새겨진 나무로 만들어져 있고, 건물 내부와 정원 그리고 카르파티아 산맥과
주변 경관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아름답고 화려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최근에는 루마니아 초대 대통령의 별장으로도 사용했다는
이 성의 주인 카롤1세는 독일사람인데 많은 공로로 루마니아의 왕이 되어 루마니아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수도 부카레스트 시청앞에 말탄 큰 동상이 세워져 루마니아 사람으로 부터 최고의 존경을 받고있다고 한다.
170개의 방을 다 둘러보지 못하고. 명예의 전당 홀, 왕의 무기를 수집한 방, 왕의 집무실, 도서관, 음악을 즐기는 방, 댄스홀,
거울이 가득한 방, 점심식사 방, 등 둘러본 방들도 사진을 찍어오지 못해 자세히 기록할 수는 없지만 모든 방들이 화려하게 꾸며져있어
루마니아가 세계에 자랑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 여름 별궁은 대표적인 르네상스 양식을 비롯한 고딕, 바로크, 양식이 가미된
건축물로 아름답고 화려하며 지금도 사람이 살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보존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도시락
시나이아에서 펠레슈성을 관광하고 이제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로 가기 위해 버스에 탑승하니
어제 아침식사를 대접 받았던 목사님 교회에서 점심을 한봉지씩 자리 자리에 준비해 두었다. 루마니아식 대형 햄버그와 과일등
하나 가지고 둘이 먹어도 배가부르고. 아침식사에 점심까지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이제 버스로 달리면서 루마니아의 자연을 구경해 보자.
루마니아인은 게으르고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국민들이 나태함과 타성에 젖어 있고, 손으로는 농사를 못 짓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경제발전이 늦은 편이며, 국민소득이 7~8천 불(우리나라 2만 불)에 불과하여 루마니아는 유럽에서 가장 궁핍한 나라이다.
실제로 다녀본 브라쇼브 거리는 궁핍하고 낡아보였고, 브란성에 가는길에는 빈집과 휴경지를 많이 볼 수 있었다.
비옥해 보이는 옥토가 경작이 이루어지지 않아 묵혀 있는 것이 아깝고 안타까웠다. 한국인 이라면 이렇게 두지 않을 것인데,
그 휴경지 들에는 양귀비가 널려 있는데, 루마니아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한다.
해바라기 밭
버스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부쿠레슈티로 가는길, 끝없이 넓은 해바라기 밭과 산유국답게 원유를 시추하는 장비와 대형 파이프 라인이 보인다.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는 20세기초 동구의 파리로 불리울 만큼 아름다운 도시였으나, 2차 대전이후
공산주의스타일의 건물이 들어서면서 회색의 잿빛 건물이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어 우중충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으며,
총살형으로 최후를 마감한 차우세스크의 인민궁전과 민주화 탑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인민궁전
우리가 잘 아는바 차우세스크는 김일성과 의형제를 맺고 평양을 몇번이나 다녀와서,
평양의 김일성 주석궁을 보고 감명을 받아 이 건물을 만들게하여 공사비 80억달라가 들었는데,
완공되기 일년전에 차우세스크는 죽었다고한다,
인민궁전에 도착했을때 비는 억수로 쏟아지는데 입장하기가 쉽지 않다. 아직 사회주의의 근성이 남아 있는건지.
들어가보니, 별것도 아닌데 공항 검색대보다 더 까다롭고 복잡한 절차를 통과 하여 어렵게 입장 하였다.
안내하는 관리자들의 의시대는 몸짓이 상대를 주눅들게 하고. 가이드의 설명도 상관이 부하들에게 지시하듯 자랑하는 것이다.
대형 샹들리에
실내에 발을 들이자마자 시선을 끄는 것은 천장에 붙은 샹들리에다. 엄청난 크기의 샹들리에는 가는 곳마다 화려한 빛을 뿜어댄다.
그 수만 480개에 달한다고 하는데. 하얀색 대리석이 뿜는 견고함 또한 시선을 잡아끈다. 그밖에도 크리스털과 청동, 거울 등
온갖 장식품이 실내를 번쩍 번쩍 환하게 불태운다. 이 같은 장식품 하나하나에 배곯은 국민의 땀과 피가 배어있다고 하니
그것을 바라보는 내내 마음 한 편이 씁쓸하고 비웃음이 난다. 그래도 북한에 갔을 때는 동정심이라도 있었는데....
인민궁전은 단일 건물로는 미국의 펜타곤 다음으로 큰 건물로 기네스북에 올려져 있다. 정면의 길이는 270m, 높이가 84m,
지하 92m로 이 건물 높이 만큼 지하로 더 내려갔으며, 내부에는 3,000여개의 크고 작은 방에 각종 시설이 들어서 있고,
앞 광장을 통해서 공항 까지 지하로 연결된 비상 탈출 장치가 되어 있다고 한다,
현재 관람객에게 개방된 곳은 전체 건물의 4%에 해당하는 지하 1층과 지상 2층이다
16미터 길이의 커튼
인민을 위한 집 이라는 명칭으로 1894년부터 짓기 시작하여 아직 미완성 같은 인민궁전은 이름과는 달리 차우세스크 부부와
공산당 중앙위원회, 인민회의 사무실로 쓰려고 지은 건축물로. 건물 착공부터 궁핍한 국민의 혈세 사용과 강제 노동, 징용,
부지 확보를 위해 유서 깊은 문화재를 훼손하고, 만여 세대의 보금자리를 대책없이 없애는 등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여 원성을 샀단다.
건물 형상
인민궁전 건물은 이런 형상으로 건축되어 출입구가 표시되어있다. 일종의 비상구 표시
길이가 16m가 된다고 자랑하는 커튼 앞에서 사진한장 남기려했는데 방해꾼들이 뒤에 서고 말았네
궁전 내부는 각지에서 수집한 대리석과 샹들리에, 벽과 천장·화장실 등의 금도금 처리 등 사치스럽게 꾸며져 있다.
지금은 하원의원의 사무실, 국제 학회장, 결혼 피로연 등 행사장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발코니에서 바라본 샹젤리제
인민궁전 바깥쪽에 펼쳐진 '샹젤리제 거리' 차우셰스크가 프랑스 파리처럼 만들기 위해 건설한 거리다.
이 건물을 짓기 위해 그는 역사가 녹아 있는 구시가지를 마구 파괴한 뒤 세웠다.
거리 양옆으로는 당시 공산당 간부들이 살던 호화로운 집들이 들어서 있다.
완공후 여기 발코니에 올라서서 앞 광장에 많은 사람을 모아놓고 이 건물은 인민을 위해서 지었노라고 연설할 계획을 했으나
완공 바로전에 총살 당하고, 완공후 발코니에서 처음 대중에게 인사한 사람은 아이러니칼하게도, 미국인 가수 마이클 잭슨 이었다고 한다.
차우셰스크가 서지 못했던 발코니에 내가 서서 샹젤리제 거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비 내리는 버스 차창넘어로 보이는 우중충하고 흐린 모습의 인민궁전이 과거와 앞날을 내다보는 것 같다.
그들의 자랑과 달리 공연장엔 조명시설이 빠지고, 통로의 액자엔 유명화가의 그림이나 사진이 아니라 프린트한 그림들이고,
건물내부엔 통풍이 되지 않아 카페트에서 곰팡이 냄새가나고, 음향시설도 엉망이었다.
엄청난 국고를 들여 지은 인민궁전에는 또 다른 슬픈 역사가 있다고한다. 건물을 짓는 동안에 많은 사람이 죽었고,
그들의 설명처럼 건물 지하에 비밀통들이 많은데, 건물을 완공한 다음 그 통로를 아는 사람들은 다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이 궁전의 조명을 다 밝히려면 전력 소모가 대단하여 도시의 일부가 정전될 정도라고 한다.
루마니아를 떠나면서
이제 루마니아를 떠나면서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셨던 이영호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우리 조원들....
철의 장막'으로 둘러싸인 사회주의 국가에서 체제 붕괴 뒤 경제적 혼란을 딛고 도약 중인 루마니아.
그 중에서도 중심부인 수도 부쿠레슈티와 브라쇼브를 돌아봤다.
루마니아는 그동안 생소했다. 동유럽 여행지 목록에서 루마니아의 심장부인 수도 부쿠레슈티를 돌아보면서 이 나라의 과거와 현재를 보고,
미래를 알 수 있을것 같다. 50년 전만 해도 동유럽에서 제일 잘사는 곳이 루마니아였다고 한다. 그 당시의 사진을 보면 그때 모습을 통해서
때깔이 좋은 옷을 착용했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50년전 완전히 폐허였다. 내가 어렸을때만 해도 그랬으니까
지도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후세에 미치는 영향이 어떠한지를 알수가 있을것 같은 여행이었다.
가자! 이제 지중해를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