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금요일’이야, ‘김요일’이 아냐, 정경시사포커스, 202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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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의섭(명지대 명예교수)
‘金’자는 금으로도 읽고, 김으로도 읽는다. 金자는 두 가지 음과 뜻을 가지고 있다. ‘쇠 금’과 ‘성 김’이다. 쇠와 여러 금속, 금(돈)과 관련된 것에는 금으로 읽는다. 연금술(鍊金術), 현금(現金) 같은 것이다. 사람의 성일 때는 김으로 읽고, 이름일 때는 대개 금으로 읽는다. 사물이나 지명 일 때는 김으로도 읽고 금으로도 읽는다.
김으로 읽는 지명을 보면 시군 급으로는 경기도 김포시(金浦), 전라북도 김제시(金堤), 경상북도 김천시(金泉), 경상남도 김해시(金海), 강원도 김화군(金化)이 있다. 김화의 경우 철의 삼각지대를 ‘철원-평강-금화’라고 하였듯이 1950년대까지만 해도 금화와 김화가 함께 쓰였으며 지금도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는 금화로도 부른다. 금으로 읽는 군 단위 지명은 황해도 금천군(金川), 강원도의 옛 금성군(金城), 함경남도 금야군(金野), 경상북도의 옛 금릉군(金陵) 등이 있고, 금정구(金井), 금호역(金湖), 금촌역(金村), 미금역(美金), 금화터널(金化), 금곡능(金谷陵), 금강산(金剛山) 등 ‘금’자 지역 이름이 많다.
성씨는 반드시 김으로 읽는데 언제부터 金(금)씨가 김씨로 되었을까? 신라 초기 계림 숲의 금궤에서 나온 경주김씨의 김알지(金閼智)와 가야 수로왕(首露王)의 김해김씨가 최초인데 그때는 모두 금(金)씨라 했다. 金의 중국 발음은 당(618-907)나라 때까지 ‘금’이었다가 그 후로 ‘김’으로 변했고, 720년에 완성된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나오는 신라인의 이름 읽는 법에 따르면 성씨 金을 ‘김’의 발음인 ‘기무(キム)’가 아닌 ‘금’의 발음인 ‘고무(コム)’라 하였다니 신라 장군 김유신(金庾信)을 ‘금유신’으로 불렀을 가능성도 있다. 金나라(1115-1234) 국호가 ‘금’으로 불리고 몽골 간섭기인 고려 충선왕(1275-1325) 때 금주(金州)를 김해(金海, 경남)로 개칭한걸 보아 원나라(1279-1368)에 복속되었던 고려 말기인 14세기경에 성씨 金의 발음이 ‘김’으로 되었을 거라고 본다(권인한, ‘성씨 김(金)의 한자음 연원을 찾아서’).
이러한 원칙이나 사례와 다소 어긋나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쇠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지명도 아닌데 형상이 금자(金字)와 같아서 피라미드를 금자탑(金字塔)이라고 한다. 그리고 김밥의 김도 굳이 한자로 쓰자면 金으로 쓸 수 있다. 김은 원래 해의(海衣, 갯 옷), 해태(海苔, 갯 이끼)라 하였고 아직도 사용하는 말이다. '해태'를 '김'이라 부른 것은 김여익(1606~1660)이 전남 광양 태인도에서 김 양식을 하여 해산물을 하동장에 내달 팔 때 태인도 김가(金家)가 길러서 만든 것 이어서 ‘김’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 시대 인조가 '수라상'에 오른 김의 이름을 물었지만 신하 중에 아는 이가 없었지만 인조는 ‘광양의 김여익이 진상했다’는 말을 듣고 그의 이름을 따 김(金)이라 부르도록 했다고 전해진다.
또 떠도는 이야기로 원래 금(金)씨인 성을 김 씨라고 부르는 이유는 고려 왕조(王朝)를 밀어내고 조선 이조(李朝)로 개국한 이성계가 '쇠(金)는 나무(木)를 이긴다(金剋木)'라는 음양오행설에 따라 금씨 개국(金朝)을 우려하는 학자들의 제안으로 성은 金(금)으로 쓰되 읽을 때는 ‘김’으로 읽게 했다는 설(說)이 있다. 음양오행설에서 상생(相生)은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 금생수(金生水), 수생목(水生木) 이고, 상극(相剋)은 목극토(木剋土), 토극수(土剋水), 수극화(水剋火), 화극금(火剋金), 금극목(金剋木) 이다.
다른 항설(巷說)로는 몽골 간섭기에 많은 고려 사람들이 몽골식 이름을 따라짓는 영향으로 ‘금’ 발음이 ‘김’으로 변화된 것으로도 볼 수도 있다. 오늘날에도 한국에 살고 있는 많은 몽골사람들의 발음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 내가 교수생활에서 경험한 바로는 우리말을 잘해서 한국 사람인줄 알았다가도 간혹 ‘금요일’ 발음을 ‘김요일’ 또는 ‘긴요일’이라고 하면 틀림없이 몽골 사람이었다. 몽골사람들은 ‘ㅡ’ 발음이 어려워 대개 ‘ㅣ’로 발음한다.
우리는 ‘金’이란 글자를 금으로 읽고 김으로도 읽어서 발음이 헷갈리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말 ‘ᄀᆞᆷ’에 대한 정확한 한자가 없어서 ‘金’을 차용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ᄀᆞᆷ’에서 중성인 아래아(ㆍ)의 표기도 모음(ㅏ,ㅓ,ㅗ, ㅜ, ㅡ, ㅣ)의 대표적 표기일 뿐, 6개 이상의 중성모음을 넘나들면서 발음하고 표기하고 있다. 양주동도 ‘ᄀᆞᆷ’은 ‘감, 검, 곰, 금' 등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했다. 감, 곰, 감, 검, 금, 개마, 고마 등은 동일한 뜻을 가진 동일한 말이라고 하였다.
금과 ᄀᆞᆷ은 같은 뜻이고 신 또는 존장(尊長), 왕의 의미이다. 단군왕검(檀君王儉)의 검(儉)과 곰(雄)은 신(神) 또는 왕(王)의 뜻이다. ᄀᆞᆷ과 일본어의 가미(神)는 같은 뜻이다. ᄀᆞᆷ계의 어휘가 지명에 쓰일 때 음차(音借)문자로는 금(金, 錦, 今), 감(甘, 監), 검(儉, 劍, 黔), 감암(甘岩), 거물(巨物), 금마(金馬) 등이 있고, 훈(訓, 뜻)을 빌려 쓰는 훈차(訓借)로는 웅(熊), 군(君), 흑(黑), 부(釜), 공(孔), 시(枾)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옛 지명에서 천(天), 신(神), 왕(王), 존장(尊長)의 의미를 가졌었다(김병욱, 金浦郡地名由來集, 편찬위원회/김포군, 경기출판사, 1995.2: 12~13). 단군신화에서 ᄀᆞᆷ이란 발음은 한자에는 없으므로 신화속의 ‘ᄀᆞᆷ’과 동물인 ‘곰’과는 관련이 없다. 마찬가지로 한웅신화에서 ‘웅’도 한자에서 熊을 차자하여 썼을 것으로 보아 ‘웅’과 한문자 ‘웅(熊)’이라는 발음과는 뜻에서 아무런 연관이 없다. 다만 한자의 熊이 곰을 뜻하므로, 곰 여자로, 곰 신앙 등으로 전해 내려왔을 수도 있다.
‘’은 알타이어 계통에서는 신, 군(君), 인의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며, 동북 시베리아에서는 무당의 명칭을 kam, gam 등으로 부르고, 아이누어로 kamui는 신, 웅(熊)을 가리키며 터키, 몽골, 신라는 kam, 일본은 kami로서 신을 나타낸다. 백두산을 ‘개마산’으로도 불리고, 고구려 건국신화에 나오는 ‘웅심산’, ‘웅신산’에서의 웅도 곰이 아니라 개마로서 ‘신’의 고어이다. 이러한 ᄀᆞᆷ계의 언어는 백제, 신라 가야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일본에서는 고구려를 '박(狛)'이라고 쓰고 ‘고마’라고 부르고, 신을 곰과 같은 계통의 언어인 ‘가미’라고 부른다(윤명철교수의역사대학, 고구려를 ‘고마’라고 부르는 이유?/youtube). 공주의 옛 이름도 한자로 웅진(熊津)이라 적고 ‘고마나리’라 불렀다. 용비어천가(1445)에서는 '고마ᄂᆞᄅᆞ'의 형태로 나오고, 일본서기(720)에는 ‘구마나리(久麻那利)’로 나온다. ‘고마’는 ‘곰’이란 뜻이고 ‘나리’는 현대 한국어 ‘나루’로 변하였다(나무위키).
내 고향 충남 홍성, 고암리에 ‘고무랭이’라는 마을이 있다. 홍성군청의 공식적인 지명의 유래 설명에서 고암리(古岩里)는 고모리(古毛里)와 영암리(靈岩里)에서 한자씩 뽑아 지은 이름이다. 고모랭이는 옛날, 비룡산 아래 용천에 용이 살고 있었다. 아들용이 자람에 따라 그 아들을 따로 제금내기 위하여 아래 연못으로 보낼 때, 어미용이 말하기를 용천을 떠나는 지금 네가 살아야 할 못까지 갈 때는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 하였으나, 새끼용은 한참 가다가 어미용이 보고 싶어서 뒤를 돌아봤다. 새끼용이 뒤를 돌아보자 별안간 천둥이 울리더니 새끼용에게 벼락이 떨어져 새끼용은 죽고 그 자리에 바위가 솟아났다 한다. 그래서 이곳에 사는 마을 사람들이 새끼용을 위로하기 위하여, 바위에게 제사를 지내 주며, 마을 이름을 고모령(顧母嶺)이라 불렀다 한다. 그 후, 변해서 고모령, 고모랭이 또는 고모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 이러한 설명에 보태고 싶은 말이 있다. ‘고모리’와 ‘고모랭이’에서 ‘고모’는 ‘고마’와 같은 어족이며 ‘랭이’는 ‘모롱이’의 ‘모’가 탈락되고 ‘롱이’가 ‘랑이’로 되면서 ‘ㅣ모음 역행동화’한 것이다. ‘고마 모롱이’가 ‘고모랭이’로 된 것이고, 뜻은 ‘신이 머무는 신선한 곳’이라고 보고 싶다. 내가 고모랭이 길로 통학하고 자취도 하면서 고모랭이에 아롱이는 아지랑이, 역재방죽의 가시연꽃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보는 것은 내 사춘기의 즐거운 한 때이었다.
출처 : 정경시사 FOCUS(http://www.yjb0802.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