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 7. 27. 14:39
▲20살 연잉군 시절 영조의 모습. 국립고궁박물관
50살 때 영조의 모습. 영조의 초상화 2점은 불 속에서 살아남았다. 국립고궁박물관
가장 운이 좋았던 왕은 영조였다. 영조는 조선 왕 가운데 유일하게 2점의 어진이 남아 있다. 2점 모두 1954년 부산 창고의 불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하나는 연잉군(왕자) 시절인 1714년 20살 때의 앳된 모습이다. 아버지 숙종 이돈이 선물로 그려준 것이다. 가뭇한 수염과 매부리코, 어두운 표정이 인상적이다.
또 1점은 누구나 아는 어진으로 1744년 50살 때 모습이다. 인생의 절정기에 있던 영조의 자신만만한 모습이 잘 드러난다. 영조는 20살 때부터 거의 10년마다 7번 이상 어진을 그렸다. 1954년 부산 창고에도 6점이 있었으나, 2점만 살아남았다.
이성계도 2점의 어진이 남았다. 건국자의 어진은 조선 초기부터 엄청나게 제작돼 서울과 영흥(고향), 경주, 전주(본관), 평양, 개성 등 6개 지역에 모셔졌다. 1548년 10월10일 <명종실록>을 보면, 경복궁 선원전의 이성계 어진만 26점이고, 문하시중(정승) 시절의 초상화와 전신상, 반신상, 승마상까지 있다고 기록돼 있다.
널리 알려진 것은 1409년 전주 경기전에 있던 어진이다. 이 경기전 어진은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1392년(57살) 이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어진은 조선 초부터 줄곧 전주에 남아 임진왜란 때도, 6·25전쟁 때도 해를 입지 않았다. 작은 눈과 큰 귀가 눈에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