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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지게꾼의 사진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지게꾼
~프랑스 파리지안의 수도 파리~
때 : 2019년 6월 6일부터~7일까지 2일간
곳 : 프랑스 파리 (시차 7시간 느리다)
날씨 : 맑음 쌀쌀함 어제밤 비온뒤라 깨끗한 날씨
인구 : 약 6,523만명
GDP : 약2조7,946 달러 세계6위
언어 : 프랑스어
수도 : 파리(220만명)
종교 : 카토릭,무스림,유대교
면적 : 한반도의 2,913배
통화 : 유로 1유로 (1,313.84원)
어제 저녁 영국에서 출발해서 프랑스의 숙소에 도착하니 비가 내렸다.
아침에는 비가 그치고 파란 하늘이 구름 사이로 보인다.
프랑스에서 이 호텔에서 하루를 더 묵을 것이다.
오전 투어를 위해서 파리 시내로 들어 가는데 운동장이 보이고 방탄 소년단의 걸개가 보인다.
영국에 이어 프랑스에서도 방탄소년단의 공연이 있는 모양이다.
영국에 이어 프랑스 건물의 모습도 모두가 고 건물로 가득하다.
프랑스 첫번째 투어 개선문 나폴레옹이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서
지어 졌다고 한다.
대리석으로 웅장하게 지어진 개선문,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개의 거리로 이어지고 있다.
영원이 꺼지지 않는 불꽃~
개선문 아래 동판에는 6,25전쟁에 참전 했다는 글귀도 있었다.
이 작은 빵이 3,000원~!
런던에 이어 파리에도 노상 카페가 성업을 하고있다.
중식을 묵은 코리안 식당 모습~
프랑스에서 유명 하다는 달팽이 요리가 먼저 나왔다. 맛은 별로였다.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식당은 한국의 정서와 너무나 멀었다.
물 한모금도 인색했고 일하는 외국인에게 폭언을 하는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우를 받을려고 하는건 아니지만 최소한의 동족에 대한 예의가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하는
식당이라서 몹시 불쾌해서 또 다른이를 위해서 꼭 이글을 써고 싶었다.
식당에서 나와 과일집에서 과일을 삿다.
하트 모양의 복숭은 맛이 좋았다.
오랜 세월 속에서도 아직도 건재한 파리의 유명한 뮬랑루즈의 공연이 펼쳐진다는 극장이다.
뮬랑루즈의 뜻은 붉은 풍차라는 뜻 몽마르뜨 언덕아래에 있는 카바레로 가난한 예술인들이
술잔을 기우리며 담소를 나누든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관광객을 상대로 스트립쇼를 한다고한다.
리콜 키드먼 주연의 영화 뮬랑루즈로도 유명하다.
가운데 보이는 돔이있는 건물이 몽마르트에 있는 성당이다.
파란 하늘에 우뚝솟은 몽마르트 언덕의 사크레쾨르 성당이다.
파리 시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지어진 건물이다.
몽마르트 언덕 위에 세워 진 성당으로 비올레 르 뒤크의 제자인 P.아바디가 설계했다. 일반적으로는 보불전쟁에서 패한 프랑스가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지어졌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정치적인 면만 강조된 것으로 수정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이 성당은 여러 성당 모양을 절충적으로 인용하여 만든 것으로 비잔틴 로마네스크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를 살펴보면 3세기경 교황 파비아노
(236~250)가 갈리아의 복음화를 목적으로 초대주교 성 디오니시오 주교 등 7명의 성직자를 파견하였는데 선교활동 중 안타깝게 체포되어 성 루스티코 신부와 성 엘레루테리오 부제와 함께 순교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몽마르트라는 이름의 기원이 된다.
이후 순교자들의 유품을 모신 성당과 베네딕토회 수녀원 등이 지어졌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성지순례자들이 늘어나면서 "예수 성심으로 로마와 프랑스를 구하자."는 여론이 형성되었고 1871년 모금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예수 성심 성당이라고 불리고 있다.
성당은 1876년 착공, 40여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었다. 1891년 성당의 내부가 완성되었고 1899년에는 돔지붕이 올려졌으며 1912년 종탑이 완성되었다. 정치적인 사실만으로 이 성당을 자존심의 상징으로 논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정치와 종교적 사실 모두를 고려한 해석이 필요할 듯하다.
우리는 많은 예술가를 탄생시킨 몽마르트의 언덕을 기억 하고 있을 것이다.
성당 앞에서서 보니 파리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말 대단한 건축가가 설계하여 지어진 성당이다.
성당의 옆 모습이다.
몽마르트 언덕에 들어섯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며
큰 꿈을 꾸고 현실로 만들어 냈든 곳이다. 패키지 여행이라서 맘 놓고 꼼꼼이 챙겨서
볼수 없는게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입구에 놓인 올드카에 눈이 더 꽂인다.
초상화를 그리는 손님과 예술가, 우리나라 에서도 축제때 볼수 있는 풍경이다.
왼쪽은 현지 가이드, 오른쪽은 한국에서 인솔자~
열심이 그림을 그려서 팔고한다.
이곳은 베드로성당이다.
이곳은 줄을 서지 않아서 성당 내부도 볼수가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많았다.
영국이나 프랑스에는 공중 화장실이 전무하다. 잘아는 가이드의 지시대로 움직이면서
생리현상을 해결해야 하는 번거러움이있다. 한국이 아무리 좋아도 여긴
프랑스라 프랑스 법을 따라야 한다.
오페라극장의 모습이다.
다음은 세계 3대 루브루박물관 투어다.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루브르 박물관은 원래는 바이킹의 침입으로부터 파리를 방어하기 위해 세운 요새였다. 이후 16세기 때 르네상스 양식의 궁전으로 새롭게 개조되었고, 이어 많은 왕족들이 4세기에 걸쳐 루브르 궁전을 확장하고 개조했다. 초기에는 왕실에서 수집한 각종 미술품을 보관 · 전시하는 소극적 의미의 미술 전시관이었으나 나폴레옹 1세가 수없이 많은 원정 전쟁을 통해 매입, 약탈한 예술품이 모이고 나폴레옹 3세 때 1852년에 북쪽 갤러리를 완성하면서 오늘날과 비슷한 루브르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 후 1981년에는 미테랑 대통령의 그랑 루브르(Grand Louvre) 계획으로 전시관이 확장되고 1989년 박물관 앞에 건축가 페이(Ieoh Ming Pei)의 설계로 유리 피라미드가 세워지면서 대변신을 하게 되었다. 현재 루브르 박물관의 225개 전시실에는 그리스, 이집트, 유럽의 유물, 왕실 보물, 조각, 회화 등 40만 점의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영국의 대영 박물관이나 여기 루브루 박물관이나 전시된 조각품은 비슷 비슷하게 보이나
독특한 맛이 다르다.
열심이 설명을 하는 우리 가이드~
대리석으로 조각되어 있는 작품들은 정말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입고있는 옷도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묘사가 되어 있는게 놀랍다.
잠든 양성구유~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의 사랑으로 태어난 양성구유 반대로 보면 여자, 반대로보면 남자,
박물관 내부 바닥에있는 나침판~
워낙 사람이 많아서 어느 나라 가이드나 이렇게 해설을 해 주고있다.
이어폰으로 들어야 제대로 들을수가 있다.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모습~
베르나르디오 작품 세례 요한의 머리를 받는 살로메~
왕이 살로메에게 소원을 말하라고하자 요한의 머리를 달라고한다.
신변이 위태롭게 바른말을 하는 요한을 없애 버리려는 왕비가 딸을 시켜서
왕에게 관청을 하여 세례요한은 죽음을 맞이한다.
걸려있는 이그림은 모나리자 그림 모조품이다.
나폴레옹~
쟌다르크~
세례요한의 머리~
루브루박물관의 유리지붕~
에펠탑~
한국식당의 모습~
이 식당도 불쾌하다. 한국 사람들이 파리로 오면 다 이렇게 변하게 되는 이유가 뭘까?
점심때도 저녁때도 들른 식당 주인은 나이가 좀 든 여자 분들이였다.
~유럽에 오면 유의 할점~
첫째: 물이 귀해서 꼭 사먹어야 한다.( 식당에서도 잘 안준다)
둘째 : 화장실이 귀한다.(커피를 사묵고 화장실을 이용하고, 식사를 하고 식당에서는 공짜)
셋째 : 가방을 조심 하라고 한다. 내내 강조를 한다.(치안이 엉망이다)
저녁을 먹고 세느강 야경 투어를 앞두고 에펠탑이 잘 조망 되는 곳에서~
파리의 에펠탑이 넘어가는 햇살를 받아서 금색으로 변했다.
유명한 쌍젤리제 거리~
군 연구기관으로 사용 된다는 건물~
세느강 야경 투어인데 밤 9시 반이 넘어도 해가 꼴깍 넘어 가지 않아서
야경의 멋을 살리지 못했다.
불탄 노트르담 성당의 모습~
지붕을 걷어내고 지금 작업중~
저녁 9시 20분 겨우 에펠탑에 불이 조금 들어온다.
프랑스 1일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간다.
그리고
내일의 투어를 위해서 잠을 청한다.
이튿날 아침 난 숙소옆 풀밭에서 꽃을 찾아 나선다.
한국에서 볼수 있는 꽃들이 유럽에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친근감이 든다.
오늘은 방탄 소년단이 공연을 하는지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줄을 죽 서서 기다리고 있다.
태양왕 루이 14세(Louis XIV)는 신하인 재무장관 푸케(Nicolas Foucquet)의 보르 비 콩트(Vaux-le-Vicomte) 성을 둘러보고 온 후 성의 어마어마한 화려함에 자존심을 다치게 되었고, 그래서 유사 이래 가장 화려한 궁전을 지으라고 명령을 하게 된다. 푸케의 성에 관련된 건축가 르 보(Le Vau), 망사르(Jules Hardouin-Mansart), 실내 장식가 르 블랑(Charles Le Brun), 조경가 르 노트르(André Le Nôtre)를 비롯한 예술가들이 참여해 50년 동안 막대한 비용을 들여 궁전을 지었는데, 원래 습지였던 이 땅의 자연 조건을 완전히 바꾸어서 숲을 만들고, 분수를 만들기 위해 몇 개의 강줄기를 바꾸고, 거대한 펌프를 만들어 센 강의 물을 길어다 부었다고 한다. 또한 궁전의 상판에서 천장의 못 하나까지 모두 장식을 할 정도로 화려하게 궁전을 지었다.
1682년 파리에서 베르사유로 궁전을 옮긴 후 매일같이 수백 명의 귀족들이 모여 화려한 연회를 열었다. 이것은 루이 14세에게 언제 반기를 들지 모르는 귀족들을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나약하게 만들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일들이 1789년 프랑스 혁명을 가져오게 된다.
베르사유는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2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루이 13세가 1623년 이곳에 사냥용 별장을 짓고 자주 들르다가 1634년에 '一'자형의 간단한 성채를 지었다. 현재 건물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곳이다. 루이 14세는 섭정기인 1651년에 이곳을 처음 방문한 뒤 마음에 들어 1661년에 르보에게 첫 번째 증축을 맡겼다. 르보는 첫 번째 성채를 중심에 보존하면서 이것을 남익랑과 북익랑으로 감싸는 'ㄷ'자형의 앙벨로프를 만들었다.
1670년에 르보가 사망했지만 1671년부터 1679년에는 '명예의 마당' 남쪽과 북쪽에 측동을 더했다. 르노트르가 조경을, 르브룅이 실내장식을 담당하면서 '르보-르노트르-르브룅'으로 구성된 1차 왕실 예술 팀이 꾸려졌다. 아르두앙 망사르는 이 일에 1670년부터 1671년경 보조 건축가로 참여했다. 르보의 앙벨로프에 만족하지 못한 루이 14세는 1678년에 아르두앙 망사르에게 두 번째 확장을 맡겼다. 확장은 르보의 건물을 개축하고 새 건물을 증축하는 두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르보의 건물 가운데 중요한 방들을 유리의 방, 전쟁의 방, 평화의 방 등으로 개조했으며 외관도 화려하게 바꿨다 그리고 르보의 골격에서 직각으로 꺾여 밖으로 길게 뻗어나가는 2차 남익랑과 북익랑을 증축했다. 두 익랑은 각각 두 개의 'ㅁ'자형 골격으로 이루어졌다. 조경과 실내장식을 계속해서 르노트르와 르브룅이 담당하면서 2차 왕실 예술 팀이 탄생했다. 왕은 큰 관심을 가지고 2차 예술 팀을 대동하고 정기적으로 공사 진척 상황을 점검했으며 그 결과 현재 베르사유궁전의 모습이 되었다.
베르사유궁전은 르보의 왕실 고전주의를 이어받아 완성한 아르두앙 망사르만의 왕실 고전주의에 그랜드 매너를 합한 특징을 보인다. 평면의 전체 윤곽은 대칭을 유지하면서 실내의 각 실은 기능에 맞춘 비대칭으로 배치했다 왕의 방에서 왕실 예배당에 이르는 왕의 동선이 비대칭 배치를 유발한 핵심 기능이며 건축적으로도 그랜드 매너가 가장 잘 구현된 구간이다. 왕은 아침에 일어나 열 칸의 드로잉룸을 지나 왕실 예배당에 들러 미사를 올린 뒤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프랑스 왕실을 표시한 문양~
누구나 보면 감탄할 정도로 디테일한 그림이다.
궁전 뒤편의 정원과 사냥터~
왕의 침실~
오늘도 점심은 코리아 식당에서 묵었다.
그러나 다른 한국 식당과는 달랐다.
이곳의 교통은 일방 통행이 많다. 그 옛날의 도로라서 도로가 좁기에
일방통행이 많은가 보다. 그러나 교통의 흐름이 좋고 횡단보도를 지날때는
차가 사람우선으로 잘 서주어 교통도덕이 높은걸로 느껴진다.
프랑스 파리 쁘랑뗑 백화점 에서 쇼핑을 즐겼다.
온갖 명풍이 즐비했다. 이곳에서 물건을 사는 분들이 있었다.
특히 여자분들의 눈이 호강을 한듯하다. 특히 구찌 매장에는 사람이 많아서
몇사람 들어가서 나오고 나면 몇사람이 들어 가곤해서 아에포기~!
향수~ 집에서 사용하는 향수라 반가웠다. 이 향수를 프랑스에서 만나다니~!
백화점과 약방 쇼핑을 끝내고 스위스로 가기위해서 리옹역으로 가는길이다.
비가 조금씩 내린다. 언제나 투어가 끝나는 시간에 비가 내려서
비가 우리를 피해서 내리는건지 우리가 비를 피해서 가는지 참 요상 하기만하다.
리옹역 대합실~
pm18 : 49
프랑스 벨포트로 가는 TGV 떼제베 열차에 올라탄다.~
떼제베 열차표 19년 5월 24일에 예메가 이루어 진것같다.
비는 그치고 창밖에는 쌍무지개가 보인다.
내일은 더 좋은 일이 생길 모양이다.
저녁은 여행사에서 제공 해주는 한식 도시락이다.
외국인들에게는 냄새로 미안 하지만 저녁으로 먹어야 한다.
밖에 풍경이 차창으로 멋지게 조망된다.
워낙 빠른 열차라 사진은 흐리지만 그래도 놓치고 싶지가 않아서 찍어 두었다.
구름과 함께한 저녁놀~
pm21:40
벨포트에서 내려 스위스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중~
pm21:23
스위스로 가는 버스에 타고 스위스로 향한다.
pm21:59
벨포토 역에서 30여분을 가니 수위스와 프랑스 국경에 도착한다.
패스포트도 아무런 검사없이 5분여에 걸처 차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국경을 넘는다.
영국에서 프랑스로도 그냥 지나왔다. 한국의 위상이 이렇게 좋아졌나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 나라가 비자 면제국이 일본 보다도 한나라가 많다고 한다.
대한민국 홧팅~!
이렇게 12시가 넘어서 캄캄한 밤에 스위스 숙소에 도착한다.
여장을 풀고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한다.
첫댓글 서유럽 집에서 여행한 기분 입니다
즐감 합니다
직접 가도 이렇게 자세하게 구경하기가 쉽지않을 것 같습니다. 한참을 구경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