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육파철학(六派哲學)과 육사외도(六師外道) >
인도는 여러 면에서 다양성을 지닌 국가이다.
지역이 워낙 넓고 지형 또한 복잡다단해서 각 지방에는 그 나름의
독특한 문화가 형성돼왔다.
인구 10만 명 이상이 사용하는 언어가 216개, 헌법이 인정한
지정 언어만 해도 22개라고 한다. 그러다가 보니, 역사적으로
다양한 철학과 종교가 난무했다. 그러나 한편 이럴 수 있었다 하는 것은
비록 고대사회였지만 언론과 학문 내지 종교의 자유가 보장돼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불교 하나만 보더라도 붓다에 의해 시작된 불교가 지역마다
다양한 형태로 발전한 것이 소위 20여개 파로 갈라진 부파불교였다.
그리고 그것을 한 차례 통합한 것이 대승불교였으나
그것도 한때뿐 부파불교는 여전했다.
그리하여 붓다 당시의 고대인도철학을 6개의 정통 브라만(힌두)철학[육파철학(六派哲學)]과
불교 외에 6개의 비 정통 철학[육사외도(六師外道)]으로 대별할 수 있다.
• 인도 정통철학인 브라만(힌두)철학을 아스티카(āstika, 정통)라고 불렀고,
이에 6개 철학파가 있어, 이를 육파철학(六派哲學)이라고 했다.
즉, 니야야학파(Nyāya), 바이셰시카학파(Vaiśeṣika), 상키아학파(Sāṃkhya), 요가학파(Yoga),
미망사학파(Mimāṃsā)와 베단타학파(Vedānta)가 있었다.
• 인도철학에서 브라만을 반대하는 비정통파 철학은 나스티카(nāstika)라고 불렀고,
이에는 불교(Buddhism) 외에 여섯 파가 있어서 이를 육사외도(六師外道)라고 했다.
즉, 푸라나 캇사파, 마칼리 고살라, 산자야 벨라지푸타, 아지타 케사캄발라, 파구타 캇차야나,
니간타 나타풋타의 여섯 사상가들의 주장이었다.
육사외도에서는 특히 자이나교(Jainism), 아지비카(Ājīvika), 차르와카(Cārvāka) 등이 유명했다.
그리고 인도는 명상의 나라이다. 때문에 4대문명 발상지인 인더스문명 시대에
이미 독특한 요가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해서,
어떤 형태의 철학 학파라도 요가만은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상례였다.
우리가 불자이기에 명상의 연구는 불교로 귀착하게 되겠지만,
인도는 문화적으로 명상을 중요시했으므로 다른 종교나 사상체계에서도
명상을 이해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브라만(힌두)철학뿐만 아니라 비정통 철학에서도 명상과 직접 관련이 있는 요가 철학이 인정됐었다.
특히 요가학파는 명상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브라만의 다른 정통파 철학이 사변적이고 논리적이라면
요가학파는 실천적인 명상을 핵심으로 하고 있었다.
요가학파의 실천적 명상기법은 궁극적 목적과 지향하는 바가 다르지만
불교도 그 영향을 받아 과정과 행법에 있어서 유사한 공통점도 있었다.
그리고 브라만(힌두) 정통 6파철학인 아스티카(āstika) 철학은
모두 <베다(Veda)>를 신의 계시에 의해 성립된 가장 권위 있는 경전으로 받아들였다.
‘베다(Veda)’란 ‘안다’는 뜻으로 지식 또는 지혜를 뜻하며,
넓은 의미에서는 기록될 가치가 있는 지식 전체를 말하고,
좁은 의미로는 성스러운 지식이나 종교적 지식을 의미한다.
고대 인도의 종교 및 사상과 관련된 노래, 시, 기도문, 공물(供物),
제의(祭儀) 방식, 주문(呪文) 등 방대한 지식을 담고 있다.
학자들은 기원전 수십 세기 전부터 구전돼 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브라만교 전통에서는 <베다>를 인간의 작품이 아니라,
천상의 영역에서 신의 영감과 계시를 받은 리시(rishi, 선지자)를 통해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하며,
4베다[사폐타(四吠陀)]가 있었다.
① 리그베다(Rg-veda, 찬가/讚歌) ― 가장 중심이 되는 찬가로,
자연신을 찬미하고 아울러 가족의 번영을 기원한 종교적 서정시, 찬가를 집대성한 노래집.
② 사마베다(Sama-veda, 가사/歌詞) ― 제관(祭官)이 부르는 노래를 모은 것.
③ 야주르베다(Yajur-veda, 제사/祭詞) ― 공양, 희생, 제사를 위한 내용.
④ 아타르바베다(Atharva-veda, 주사/呪詞) ―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내용이다.
<베다>는 인도문화 철학 심지어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현대에도 인도인의 주류 삶에서 <베다>를 떠난 삶이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인도인의 삶의 현장과 직결돼있다.
(1) 육파철학(六派哲學)
고대인도의 브라만 계통 정통철학의 여섯 학파를 말한다.
육사외도는 브라만교를 반대하지만 육파철학은 브라만의 기본 성전인
<베다(veda)>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학파이다.
그러나 육파의 분류 방법에 대해서는 전부터 여러 가지 학설이 있어 왔는데,
현재에는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다. 각 파의 성립 연대도 서로 다르고,
그 성립과 의존하고 있는 경전의 편찬 연대에도 자료에 따라 차이가 나고 있다.
① 상키야(Sāmkhya, 數論) 학파 ― 개조(開祖)는 카필라(Kapila)로서,
BC 3세기경에 성립, 소의경전은 <수론(數論, Sāmkhya-kārikā)>이다.
원리를 하나하나 열거한다는 뜻으로 해석해 수론(數論)이라 했다.
이 학파는 이원론(二元論)을 내세우는 철학파다. 두 가지 근본원리인 정신과 물질,
즉 푸루샤(purusha, 神我)와 프라크리티(prakriti, 自性)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르다는 이원론을 내세웠다.
② 요가(Yoga, 瑜跏) 학파 ― 개조는 파탄잘리(Pata¯njali)이며, BC 4~3세기에 성립됐다고 하나,
정확히 언제 요가가 하나의 철학 학파가 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요가의 기원은 꽤 깊어서 고대 인더스문명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파탄잘리의 <유가경(瑜跏經, 요가수트라/yaga-sūtra)>이
요가에 대해 이론과 실천 양 측면에서 가장 체계적이고 권위 있는 최초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요가 쑤뜨라(유가경)>에서 소개한 8가지 요가 행법이 하나의 학파로서 자리를 잡고,
현대까지 인도인들에게 전승돼온다.
요가 수행으로 해탈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소의경전인 파탄잘리(patañjala)가 지은 <유가경(요가수트라)>에 의하면,
요가를 마음작용의 소멸이라 정의하고, 마음작용의 소멸에 이르기 위해서는
호흡을 조절해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수행을 거듭 되풀이하고,
대상에 대한 탐욕을 떠나야 한다고 한다.
괴로움의 원인은 주관과 객관의 결합에 있고, 삼매(三昧)에 의해
주관이 객관을 떠나 독존하게 된 상태를 해탈이라 한다.
대체로 특정한 자세를 통해 몸과 마음을 수련해 정신적으로 초월적 자아와 하나 돼
무아지경, 혹은 삼매경, 황홀경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요가를 인간의 몸으로 나타내 여러 부위를 특정한 행법의 의미로 표현해 설명한다.
요가라는 수행법이 내용과 형식을 제대로 갖추어 비로소 요가의 역사를 써 내리기 시작한 것은
<우파니샤드> 시대이다. 요가라는 명칭의 행법이 사용되고, 체계화된 시기는
불교 발생 이전으로 생각된다.
③ 미망사(Mīmāmsā, 聲論) 학파 ― 개조는 자이미니(Jaimini)이며, BC 2세기경에 성립됐다.
소의경전은 <미망사경(彌曼薩經, Mīmāmsā-sūtra)>이다.
이 학파의 목적은, <베다(Veda)>에 규정된 제식(祭式)를 고찰해 정리하고 실행하는 데 있다.
즉, <베다>의 제식 규정을 취급하는 부분을 전적으로 탐구한다.
직접 추리와 논증을 통해서 제식의 올바른 규범을 찾으려는 노력에 의해 니야야학파가 성립되고,
제식의 규범과 의식들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정돈하는 작업에 의해 미망사 학파가 성립됐다.
따라서 미망사의 근본 관심사는 <베다>가 명하는 행위의 의무(Dharma)를 이론적 뒷받침,
의무수행, 수행이 선한 업보를 동반하는 이유 등을 탐색하는 것이다.
④ 바이세시카(Vais′e-sika, 勝論) 학파 ― 개조는 카나다(Kanāda)이며, BC 2~1세기경에 성립했다.
소의경전은 <승론경(勝論經, Vais′esika-sūtra)>이다.
이 학파는 모든 현상은 실(實) ‧ 덕(德) ‧ 업(業) ‧ 동(同) ‧ 이(異) ‧ 화합(和合)의
육구의(六句義)에 의해 생성된다는 다원론을 주장하며, 해탈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 여섯 가지 원리를 이해하고 요가 수행을 해야 한다고 한다.
즉, 육구의(六句義)라 일컫는 여섯 개의 범주를 세워 놓고 일종의 자연철학을 설명하며,
미진(微塵)으로서 원자론을 주장하는 다원적 유물론으로 신(神)을 부정했다.
⑤ 베단타(Vedānta, 吠壇) 학파 ― 개조는 바다라야나(Bādarāyana)이고,
BC 1세기에 성립했다. 소의경전은 <베단경(吠壇經, Vedānta-sūtra)>,
이는 <베다(veda)>의 끝 부분[anta]이라는 뜻으로 <우파니샤드(upaniṣad)>를 가리킨다.
<우파니샤드>를 기반으로 해서 바라문교의 잡다한 교리를 정리한 학파이다.
우주의 최고 원리인 브라흐만(brahman, 梵)이 모든 현상을 창조하고 전개시켰다고 하는
일원론을 설하고, 인간은 브라흐만을 바르게 알고 요가수행으로
브라흐만과 합일됨으로써 해탈에 이른다고 한다.
베단타학파는 ‘브라흐만을 이해하고 브라흐만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자유로운 존재’라고 믿는다.
한마디로 <베다>는 모든 지식이다. 그리고 베단타는 모든 것에 대한 최종, 최고의 진리다.
<베다>의 지식을 최종의 진리로 삼는 것이 베단타학파이다.
⑥ 니야야(nyaya, 正理) 학파 ― 개조는 가우타마/고타마(Gautama)이고,
AD 1~2세기 성립된 것으로 주정된다. 소의경전은 <정리경(正理經, nyāya-sūtra)>이다.
그래서 정리론(正理論) 또는 정리학파(正理學派)라고도 한다. "니야야"란 법칙⋅규범 등을 뜻한다.
논리학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학파로,
인간에게 일어나는 괴로움의 원인은 그릇된 인식에 있으므로
그릇된 인식을 제거하고 계율을 지키고 요가수행을 하면 해탈에 이른다고 한다.
니야야 학파의 자연철학과 형이상학은 거의 바이셰시카 학파의 철학을 계승한 것으로
대체로 바이셰시카 학파와 유사하다.
<베다>를 연구를 할 때의 여러 가지 변론이나 사고(思考)에 있어서
논증상의 법칙이나 규약이 설정되고 이러한 것에 관한 연구와 교의가 이윽고
한 학파를 이루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2) 육사외도(六師外道)
붓다와 거의 같은 시대에 갠지스 강 중류 지역에서 세력을 떨친,
<베다> 성전의 권위를 부정한 불교 외에 여섯 명의 사상가들을 말한다.
당시 363 가지의 사상이 주장됐다고 할 정도로 온갖 사상이 난무했는데,
불교에서는 이들 사상과 학설을 정리해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여섯 개의 학설을
‘육사외도(六師外道)’라고 통칭했다.
따라서 ‘육사외도(六師外道)’라는 이름은 불교에서 붙인 이름이다.
이들은 불교와 더불어 브라만교와 <베다>의 권위를 부정하고 반기를 들었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불교 관점으로는 이들 역시 이단(異端)이었으므로 육사외도라 불렀다.
이름이 비슷하므로 육파철학(六派哲學)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육파철학은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는 철학이다.
① 푸라나 캇사파(富蘭那迦葉, Purana Kassapa) ― 도덕 부정론자(道德否定論者)이자 우연발생론자이다.
그는 인과응보를 부정함으로써 윤리에 대한 독단적인 회의를 표명해
도덕(道德)이 필요 없다(도덕부정론)고 주장했으며,
노예출신인 그의 사상은 선악의 구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멋대로 정의한 것이며, 실제로 선악이란 없는 것이라고 봤다.
그리하여 살생, 도둑질, 간음, 거짓말 등을 해도 악을 행한다고 할 수 없으며
악의 과보도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또 제사, 보시, 극기, ‘진실한 말’ 등을 행해도 선을 행한다고 할 수 없으며
선의 과보도 생기지 않는다고 주장해 당시 일반 세간에서 인정되고 있던
선ㆍ악의 행위와 그 행위가 미래에 초래하는 과보를 모두 부정했다.
그는 도덕이 불필요한 것임을 역설한 것으로 소개돼있지만
아마도 그는 선악의 관념이 사회적 관습에 의해 다를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살생이나 도둑질이나 사음 등의 악행을 저질러도
그것이 인간들이 임의로 정의한 개념이기 때문에 실제로 악행을 범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반대로 보시(布施)와 방생(放生) 같은 선행을 행한다 해도
역시 그것은 인간의 관념이 낳은 것이지 절대적인 선행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그의 견해는 자연히 업(業)이란 없는 것이며
업에 대한 응보(應報)도 없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불교를 비롯해서 정통적인 종교에서 인정한 업보(業報) 사상을 전면적으로 부정했다.
따라서 인간의 길흉화복은 그것이 인과(因果)나 운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우연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주장했다.
② 마칼리 고살라(末伽梨拘賖梨子, Makkhali Gosala) ― 사명외도(邪命外道)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아지비카(Ajivika)라는 교단의 개조인 막칼리 고살라는 숙명론자(宿命論者)였다.
그의 교도들은 오히려 불교도들을 그릇된 생활 방법을 취하는 무리라고 폄하했다.
흔히 '사명외도(邪命外道)'라 불리는 이 유파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운명이 숙명적으로 결정돼 있다는 입장을 취해,
인간의 삶에는 인연이 작용하지 않고 모든 자연현상에는 고유의 생명이 있다고 주장했다.
윤회의 생존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 혹은 청정하게 되고 해탈하는 것,
그 모두는 원인이 없다고 했다. 살아가는 데는 지배력도 의지력도 없으며
다만 자연의 정해진 상황과 본성에 의해 결정될 뿐이라고 했다.
사명(邪命)이란 삿된 생활, 그릇된 생활방식, 남을 속이는 삿된 행위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을 말하며, 팔정도에서의 정명(正命)의 반대말이다.
마약밀매, 고리대금, 다단계 속임수, 인신매매, 매춘, 밀수, 뇌물수수, 부정입학, 병역기피, 도박, 불량식품 제조 판매… 이와 같은 짓을 해서 생계를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의 의지에 근거한 행위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업(業)에 의한 윤회전생을 부정하는 등
일종의 결정론적인 숙명론자였다. 그는 윤회의 주체로서 영혼(jiva)을 인정하고는 있지만
이것을 상주하는 물질적 존재라고 생각해
지(地), 수(水), 화(火), 풍(風), 허공(虛空) 등의 원소와 같은 원리로서 파악했다.
③ 산자야 벨라지푸타(刪闍耶毘羅胝子, Sanjaya Belattiputta) ―
회의론자(懷疑論者)로서 불가지론(不可知論)이라고도 한다.
지식이란 주관에 따라 달라지므로 객관적인 지식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모든 지식을 버리고 오직 수행만을 중요시했다.
즉, 진리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서술하기란 불가능하다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을 폈다.
진리에 대한 인식이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해서 기분파라고도 했다.
이들은 윤리적 또는 실천적 태도를 표명하지 않고,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해 애매한 대답을 해 판단을 중지한 것이다.
그리하여 뱀장어처럼 미끈미끈해 좀처럼 붙잡을 수 없는 교설로 일컬어졌다.
도덕부정론이 윤리적인 회의론인데 비해
이 파의 입장은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대해 판단 중지를 요구하는 형이상학적 회의론(懷疑論)이다.
그래서 산자야는 인도 철학사 가운데 최초의 회의론자로 불리어지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인도 철학사상 처음으로 형이상학적 문제에 관해 어떤 일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판단중지(epokhe)의 사상가라고 보고 있다.
산자야의 문하에는 두 명의 뛰어난 제자가 있었는데,
바로 그 유명한 붓다의 10대 제자 가운데 사리불과 목건련이다.
이들은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는 250명의 제자들과 함께 불가에 귀의했다.
산자야는 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서 그만 피를 토하며 죽었다 한다.
그러나 붓다의 10대 제자들 중 사리불과 목건련이 이 파에 소속했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당시처럼 온갖 주장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소신(所信)대로 말하는 것이
곧 진리라는 처세도(處世道)를 제시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윤리적 또는 실천적 태도를 표명하지 않은 점이 불교로서는 수긍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④ 아지타 케사캄발라(阿耆多翅舍欽婆羅, Ajita Kesakambala) ―
아지타 케사캄발라에 의해 유물론이 제기됐다.
도덕을 부정하고 현실적 쾌락이 인생의 목적임을 주장했으며, 사후 단멸론(斷滅論)을 주장했다.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유몰론자이다. 도덕을 부정하고 현실의 쾌락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주장해,
순세파(順世派, 차르바카/Carvaka) 또는 사탕발림파라는 별명을 얻었다.
불교와 같이 물질적 구성의 최소 단위를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사대(四大)로 봤다.
그는 이 사대(四大)만이 참된 실재이며 독립 상주(常住)하는 것이라고 해서, 영혼의 존재를 부정했다.
인간은 죽음으로써 단멸하고 신체는 모두 네 가지 원소로 환원된다.
내세와 같은 것은 있을 수 없고 현세가 인생의 전부이며, 선악의 행위를 짓더라도
죽은 후 그 과보를 받는 일이 없다고 했다. 이는 일종의 감각적 유물론 내지는 쾌락주의의 입장이었다.
즉, 사후(死後) 세계나 영혼 같은 것은 완전히 부정했다.
그러므로 현세도 없고 미래세도 없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윤회(輪廻)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선악에 대한 과보도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니 자연히 도덕은 부정되는 것이며.
이 현세의 삶이 처음이자 끝이므로 인간은 그저 즐기고 살아야 한다는
쾌락주의(快樂主義)자이자 철저한 유물론자였다.
이 일파는 순세파(順世派) 또는 사탕발림파라는 좋지 않은 별명을 얻었으나,
당시의 영향력으로 봐서 퇴폐적인 도덕론으로 일관했다고는 볼 수 없다.
이 파에서 주장한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이라는 4원소, 즉 사대(四大)는
인도의 거의 모든 사상체계가 인정하는 우주의 기본요소이다.
⑤ 파구타 캇차야나(迦羅鳩馱迦卯延, Pakudha Kaccayana) ― 불멸론자(不滅論者)였다.
생명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다는 불생불멸을 주장해 죽이는 자도 없고 죽는 자도 없으며,
가르치는 자도 없고 가르침을 받는 자도 없다고 했다.
인간의 생명이나 특질은 영원하다는 상주론(常住論)이라는 점에서 유물론과 반대되지만
선악의 인과를 부정하는 면에서 도덕부정론에 가깝다.
이들은 지(地), 수(水), 화(火), 풍(風) 네 가지 원소 이외에 고(苦), 락(樂), 영혼(命我) 등
세 가지 원소를 더해 일곱 가지 요소의 실재를 주장했다.
영혼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그의 사상은 아지타와는 다른 이원론의 입장처럼 보이지만
파쿠타가 인정하는 영혼은 물질적인 것으로 지극히 유물론적이다.
7요소는 독립적인 것으로 불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테면 사람을 죽여도 다만 날카로운 칼날이 7요소 사이를 관통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는 역시 실천적으로 도덕을 부정하는 입장이었다.
이 세상은 절대부동 불변하는 7요소
즉 지(地)ㆍ수(水)ㆍ화(火)⋅풍(風)ㆍ고(苦)ㆍ락(樂)ㆍ생명(生命)의 집합과 흩어짐이요,
죽은 뒤에는 7요소 자체는 불변불멸(不變不滅)이기 때문에 인생의 결정적 단멸은 없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는 숙명론의 변종이라 간주된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보면, 생사에 초연하는 길을 이런 식으로 표명했으리라고 평가된다.
⑥ 니간타 나타풋타(Nigantha Nataputta) ― 니간타 나타풋타는 자이나교의 개조이고,
‘마하비라(Mahavira, 大雄)’라고 부르기도 한다. 크게 깨쳤다고 해서 마하비라(위대한 영웅)
혹은 지나(jina, 수행을 완성한 자)로 존칭되고 있다.
나타풋타는 나타족 출신의 사람이란 뜻이다.
본명은 밧다마나(Vaddhamana)로서 베살리(vesālī) 부근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30세에 출가해 12년간 고행 끝에 깨달음에 이르렀고,
그 후 30여년간 교화하다가 베살리 부근에서 72세에 입적했다.
이들은 이원론(二元論)을 주장하고, 인내(忍耐)를 강조하는
극단적 고행과 생명에 대한 경외와 절제를 강조하는 불살생(不殺生)을 특히 중시했다.
이러한 윤리적 태도 때문에 자이나교도들은 생명을 해칠 수밖에 없는
농업보다는 상업에 종사해 경제적인 힘을 갖게 됐다.
마하비라는 석존과는 달리 자연세계나 물질에 대한 관찰에 관심을 나타내
매우 색다른 형이상학적 고찰을 모색했다. 우주는 많은 요소로 구성돼 있는데
그것들을 크게 영혼(Jiva, 命我)과 비영혼(ajiva, 非命我)으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영혼은 <우파니샤드>의 아트만(atman)처럼 상주편재(常住遍在)하는 자아가 아니라
다수의 실체적 개아(個我)로서 지⋅수⋅화⋅풍(地水火風)의 네 가지 원소가
동식물에도 내재돼 있다고 해 영혼(지바/Jiva)을 실체적인 것이라 파악하고 인정했다.
자이나교는 불교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지니며,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현재에도 인도에 존속하면서 인도사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종교의 교주 마하비라(大雄)는 그 출신이나 성장 및 생존 시기 등이
붓다와 거의 같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자이나교는 교리와 용어, 전설 등에 있어 불교와 공통된 점이 적지 않다.
이의 교리는 존재론에 있어서는 이원론(二元論)을 취하고,
인식론에 있어서는 부정주의(不定主義) 또는 상대주의(相對主義)를 취한다.
그런데 이의 가장 큰 특징은 실천수행에 있어서 윤리적 엄숙주의의 입장을 취했다는 점이다.
어쨌든 불교와 비교할 때, 자이나교의 사상은 영혼과 물질을 내세우는
이원론적 철학으로서 업(業)의 유입을 막기 위한
극단적인 고행을 수행방법으로 채택했다는 점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마하비라가 업을 물질로 간주한 것은 붓다 교설과 크게 다른 점이다.
이러한 업에 의해 속박된 윤회에서 벗어나 영혼이 그 본성을 발현해 해탈하기 위해서는
미세한 업 물질이 영혼에 유입하는 것을 제어하고
이미 영혼에 부착된 업 물질을 멸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계율을 지키는 철저한 고행주의를 실천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것은 출가수행에 의해 가능하다고 봤다.
이들 육사(六師)는 한결같이 <베다>의 권위를 부인하고 브라만교에 반항했다.
그들은 신흥도시의 왕후 귀족과 부호들의 정치ㆍ경제적 원조 밑에 활약했다.
신흥도시의 왕후 귀족과 부호들은 카스트제도에 의해 브라만 계급이 최상위에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불교를 비롯한 육사(六師)들을 도우는 세력이 됐던 것이다.
육사(六師)들 각 유파의 형성은 그 기원⋅성립연대가 다른데,
기원전 5세기∼기원적 3세기 사이로 추정된다.
이상에서 보듯이 <베다> 성전을 부정하는 세력으로 육사외도가 존재했었다고 하는 것은
이미 이 시대에 사상의 자유가 확보돼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 500여년 후 팔레스타인에서 기독교가 성립할 당시
사상 탄압을 받아 예수가 처형당한 사실과는 대조적이다.
그렇게 확보된 사상의 자유 가운데에 위대한 불교도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육사외도의 전반적 성격은 유물론과 도덕부정론으로 일관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이나교의 경우는 강한 도덕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존재론에서 비명(非命)이라는 물질의 요소를
명(命)이라는 정신의 면보다 훨씬 중시해서 분석하고 있다.
불교가 육사외도를 그렇게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은 불교가 그러한 입장을 경계하고 부정함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육사외도를 통해 불교가 염려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으며
아울러 그들이 지닌 긍정적인 면은 이미 불교가 수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 붓다는 성도 후, 대부분의 사상가들이 갖고 있는 공통된 경향인
극단적 유물론과 무도덕 또는 무윤리에 대해 그것이 진리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는 반론을 펴왔다.
또 외도의 무리들이 헛된 공론에 열중하고 있음을 비판했다.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온 붓다에게 있어서는
이들의 논쟁이 한낱 논쟁을 위한 논쟁으로 생각됐던 것이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육사외도를 부정적인 것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거기에는 불교의 입장과 비슷한 부분도 일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단점이나 잘못된 것으로 보이는 요소들은 불교가 거부하면서
불교는 또 그것들의 장점을 올바르게 수용했음을 뜻한다.
결국 불교는 당시 사상계의 전반적 경향들을 종합적으로 비판해서 수용할 것은
수용한 결실이라고 볼 수 있다.
[출처] 블로그 아미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