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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시인 이름 | 제 목 |
1 | 김 산 | 봄 선물 |
2 | 김 선 영 | 봄 눈 |
3 | 노 유 섭 | 보이지 않는 길 |
4 | 박 강 남 | 햇살에 얹힌 응달 |
5 | 손 수 여 | 상아탑 풍속도 |
6 | 유 회 숙 | 봄 날 |
7 | 이 상 개 | 초 행 |
8 | 정 성 수(서울) | 쓸쓸 생애 |
9 | 김 진 중 | 전주비빔밥 |
10 | 안 승 남 | 낙 엽 |
11 | 문 효 치 | 나도 바람 꽃 |
12 | 김 영 길 | 물수제비를 뜨다 |
13 | 이 상 개 | 산사의 종소리 |
14 | 정 연 국 | 탓 |
15 | 한 명 수 | 평행선 |
16 | 김 종 섭 | 사랑아 너는 |
17 | 정 명 숙 | 몽돌밭에서 |
18 | 황 금 찬 | 말 할 수 없지요 |
19 | 이 원 우 | 내안에 피는 꽃 |
20 | 함 동 선 | 내 이마에는 |
21 | 천 상 병 | 꽃 밭 |
22 | 양 주 석 | 참 꽃 |
23 | 최 은 하 | 드디어 때가 이르니 |
24 | 정 삼 일 | 춘 화 |
25 | 황 송 문 | 반 가 상 |
26 | 황 진 이 | 소세상 판서를 보내며 |
27 | 정 성 수(전주) | 봄여름가을겨울의 말씀 |
28 | 오 장 환 | 나의 노래 |
29 | 오 일 도 | 오월 화단 |
30 | 이 원 섭 | 진 주 |
31 | 이 용 악 | 꽃가루 속에 |
32 | 박 남 수 | 마 을 |
33 | 김 영 랑 |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34 | 김 광 섭 | 저녘에 |
35 | 김 동 명 | 밤 |
36 | 박 용 철 | 어 디 로 |
37 | 신 경 림 | 갈 대 |
38 | 이 복 자 | 호수단상-눈물2 |
39 | 김 운 향 | 강 |
40 | 장 건 섭 | 세 월 |
41 | 조 명 제 | 우수 지나고 |
42 | 김 용 재 | 그 가을의 소나타 |
봄 선물
김 산
얼음새꽃이 피었다 하기에
홍매화마저 피었다 하기에
그대 창가에
먼저
이른 봄 한 줌
살짝 두고 옵니다
봄 눈[雪]
김 선 영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까
백색의 음모(陰謀, 陰毛)들이
자기들끼리 소곤거리며
야시시
흩날린다
보이지 않는 길
노 유 섭
보이지 않는 이 길을 걸어가니
이 길이
내 길이었다
눈 앞에 피어난 해당화
이 꽃이 내 꽃이었다
밤새 파도는 잠들지 못해도
나는 파도를 베고
잠들어야 한다
해 뜨면 다시
파도 위에 난
보이지 않는 이 나그네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야만 한다
햇살에 얹힌 응달
박 강 남
수런거리는 소문을 삼킨 속초바다
먼 물빛은 짙푸르러
청초호의 전설이 갸르릉거리고
가까운 에메랄드빛 물 이랑사이
햇살에 얹힌 응달이 빛을 발한다
바람 높은 겨울의 정수리에
찬비 잠시 내리더니
매화꽃잎 흩날리는 눈을 보았다
나풀거리는 응달이다
상아탑 풍속도
손 수 여
오월의 청보리 같은
청춘이
육법전서 법구경을
독송하는데
문천지에서
오리들이
물갈퀴로 곤두박질
수영 스카이 무용을 하면
진량벌 도서관 앞
청솔가지엔
까치도
까치설날 동시를 읊고 있다.
봄 날
유 회 숙
비에 젖은 명자나무
낯설다
겨우내
까칠했던 두 볼이 발그레
곱다
선보는 날
읍내 미장원에 다녀온
명자 언니처럼…
보슬보슬 봄비 소리엔
옅은 분내가 난다
쓸쓸 생애
정 성 수(서울)
지상에 살아남은 것 모두 다
쓸쓸하였네
지구 위로 낙하하는 시간들의 잔해 속
끝끝내 꽃이 되지 못하는 꿈과
갈 수 없는 나라에 사는 신
단 한 번도 부활하지 못하는 빛나는 추억들
홀로 술잔 기울이는 수많은 쓸쓸
내 추운 생애 낡은 수레처럼 끌고
어디론가 자꾸만 가고 있었네
전주비빔밥
김 진 중
완산주
빛난 얼로
한바탕 전주
세계를 비빈다.
낙 엽
안 승 남
숲속의 교향악이 아직도 은은한데
한마디 말도 없이 어디로 가셨나요
휘모는 찬바람 속에 두 손 모아 봅니다.
나도 바람꽃
문 효 치
바람이 시작된 곳
바다 끝
작은 섬
물결에나
실려 올까
그 얼굴 그 입술이
한 생애
불어오는 건
바람 아닌 그리움
물수제비를 뜨다
김 영 길
강가에 나가
물수제비 뜬다
외로움 하나
강물에 뜨고 왔다
그래서
그런지
자꾸 강이 그립다
말을 건다
산사의 종소리
이 상 개
올려 봐도 내려 봐도
하늘만큼 땅만큼
그대 사랑 넘쳐흐르는
안겨오는 중량 속에
산사의 저녁 종소리
따뜻하여라 긴 여운
탓
정 연 국
개구리가 고갤 깊이 옴츠렸다
멀리 뛰려는 이유
너 땜만은 아니다
매미가 떼거지로 땔 잊고
온몸으로 자지러짐도
너 땜만은 아니다
빌딩숲 의자가 하릴없이
입 벌린 채 코고는 까닭도
네 탓만은 아니다
평행선
한 명 수
가까이 그러나 너무 가깝지 않게
조금은 멀리 그러나 너무 멀리도 아니게
둘이면서도 언제나 하나의 모습으로
하나면서도 서로의 빛을 가진 얼굴로
너는 나를 비추고 나는 너를 품고
너무 가까이도, 너무 멀리도 아니게
사랑아 너는
김 종 섭
사랑아 너는 눈 먼 장님이다
아편 같은 중독이거나 벙어리 같은 비밀이다
너는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보지 못하는 장님이다.
너는 삼복염천 황톳길 위의 갈증이다
사랑아 너는 끝내는 무지개나 안개
또는 저녁놀 같은 허무의 빛 그늘이다.
그러나 오늘 하루 너는 내게 찬란한 별이거나
황홀히 타오르는 불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련히 녹아드는 장밋빛 수액 한 잔.
몽돌밭에서
정 명 숙
어제, 오늘도
나의 언어는 몽돌에
부서지는 파도가 된다.
몽돌 속으론 푸른 바다가 출렁이어
언제부턴가 바닷바람으로 휘돌다가
해가 되고 달이 된다.
말 할 수 없지요
황 금 찬
사랑하니?
아니!
미워하니?
아니!
말이 없는 오늘이랍니다.
내안에 피는 꽃
이 원 우
처음 바라본 순간
네 이름 내 안에 물들었다.
꽃잎으로 수놓은
고운 모습에
알고 있었지
나의 꽃인 줄을
머언 길에서부터 다가와
눈을 마주하며
네 꽃잎 위에
내가 다시 태어난다.
내 이마에는
함 동 선
내 이마에는
고향을 떠나던 달구지 길이 나 있어
어머님 생각이 날때마다
쇠 바퀴 밑에 빠각빠각 자갈을 깨는 소린
수십 년의 시간이 수백 년의 무게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베어내지만
세월 따라 그 세월을 도행하듯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는 소걸음 그대로
스물 여섯 해의 여름이 땀에 지워지는
내 이마에는
고향을 떠나던 달구지 길이 나 있어
꽃 밭
천 상 병
손바닥 펴
꽃밭 아래 놓으니
꽃빛 그늘 앉아 아롱집니다.
며칠 전 간
비원에서 본
그 꽃빛 생각 절로 납니다.
그 밝음과 그늘이
열렬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내 손바닥 위에서······
참 꽃
양 주 석
양지 바른 야산에
붉게 붉게 수놓고
앞산 뒷산
주고받는 말
봄바람에 적시어
날려 보낸다.
드디어 때가 이르니
최 은 하
눈 감았다 뜨니
천둥이 치고
오늘도 노을 속으로
강물은 흘러 흘러만 가고
회오리바람 끝자락에
꽃 한 송이 피어나네
춘 화(春花)
정 삼 일
봄날의 아지랑이
서산에 피고 지고
봉접(峰蝶)이 날아드는
거꾸로 흐르는 피
그리 쉽게 시들고,
반가상(半跏像)
황 송 문
내가 참고 보니
어느덧 반가상이 되었다.
온갖 욕설을 탈곡하는
악구를 피해
눈을 감고 있으면
나의 몸은
원죄를 태우고 남은 재,
인생을 빨래하는
잿물 빨래가 되었다,
소세양 판서를 보내며
황 진 이
달빛 아래 오동잎 모두 지고
서리 맞은 들국화 노랗게 피었구나
누각은 높아 하늘에 닿고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흐르는 물은 거문고와 같이 차고
매화는 피리에 서려 향기로워라
내일 아침 님 보내고 나면
사무치는 정 물결처럼 끝이 없으리
봄여름가을겨울의 말씀
정 성 수(전주)
봄이 순백의 목련처럼 살라하네
여름이 비바람 천둥번개 치듯이 살라하네
가을이 떨어지는 낙엽처럼 살라하네
겨울이 흰 눈이 세상을 덮듯이 살라하네
지천명을 지나서
이순을 넘어서
고희를 바라보면서
비로소 알았네
순리대로 살라는 물 흐르듯 살라는
봄여름가을겨울의 말씀이라는 것을
나의 노래
오 장 환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가슴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새로운 묘에는
옛 흙이 향그러
내 노래는 벗과 함께 느끼었노라.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무덤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오월 화단
오 일 도
오월의 더딘 해 고요히 내리는 화단.
하루의 정열도
파김치같이 시들다.
바람아, 너 이파리 하나 흔들 힘 없니!
어두운 풀 사이로
월계의 꽃조각이 환각에 아물거리다.
진 주
이 원 섭
바다가 그리운 날은
조개 껍질이라도 내어서 보자.
이것인들
진정 얼마나 목마르리오?
사발 가득히 물을 떠다 담가 주자.
아마 울리니
달밤에 구렁이 울 듯
제 고장 그리워 울리니
이 차갑고 딱딱한 것이
그리움에 어쩌면 지주를 배리니.
꽃가루 속에
이 용 악
배추밭 이랑을, 노오란 배추꽃 이랑을
숨가쁘게 마구 웃으며 달리는 것은
어디서 네가 나즉히 부르기 때문에,
배추꽃 속에 살며시 흩어 놓은 꽃가루 속에
나두야 숨어서 너를 부르고 싶기 때문에.
마 을
박 남 수
외로운 마을이
나긋나긋 오수에 조을고,
넓은 하늘에
솔개미 바람개비처럼 도는 날.
뜰 안 암탉이
제 그림자 쫓고
눈알 또락또락 겁을 삼킨다.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 영 랑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빛이 빤질한
은결을 돋우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저녁에
김 광 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밤
김 동 명
밤은
푸른 안개에 싸인 호수,
나는
잠의 쪽배를 타고 꿈을 낚는 어부다.
어 디 로
박 용 철
내 마음은 어디로 가야 옳으리까
쉬임 없이 궂은 비는 내려오고
지나간 날 괴로움의 쓰린 기억
내게 어둔 구름 되어 덮이는데.
바라지 않으리라던 새론 희망
생각지 않으리라던 그대 생각
번개같이 어둠을 깨친다마는
그대는 닿을 길 없이 높은 데 계시오니
아 ㅡ 내 마음은 어디로 가야 옳으리까.
갈 대
신 경 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ㅡ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호수 단상
-눈물 2
이 복 자
풀을 키우는 눈물은 흐르지 않습니다.
가슴을 맴만 돕니다.
풀이 무성한 가슴은 작은 바람에도 요동이 심합니다.
눈물을 함부로 보이지 말라는
근엄한 진리에 갇혀 풀씨까지 고이 품습니다.
빗소리 요란하면 소리내어 울고 싶은 밤은 오고
엎드려 통곡한들 흘러가는 것은 빗물일 뿐입니다.
하늘이 또렷이 내려 앉는 날일수록
눈물은 반짝이고, 사랑은 익어 거울같이 맑아집니다.
가슴에 물풀을 키우며
눈물로 기다리는 사랑이 있습니다.
강
김 운 향
꽃내음이
시린 가슴에 묻어 온다
누굴까
물기 젖은 잎새가
푸른 심줄을 흔든다
비에 젖고 바람에
밀려 온 세월
미소 하나
손짓하던 햇살처럼
반짝인다.
세 월
장 건 섭
하얀 고무신
진흙 속에 묻히고
섣달그믐 칠야(漆夜)
강물 위에 내린
별빛 등대 삼아
노 젓는 세월
어머님의 다듬이 소리
동천(冬天) 멀리 사라져 가고
떡국 한 그릇에
또다시 꿈꾸는 마을
언 땅 풀려
매화(梅花) 향기 다툼
그 신비로운 모습으로
계절은 또 가네.
우수(雨水) 지나고
조 명 제
봄이 온다고
고향의 모래밭에는
쑥잎 돋는 봄이 온다고
낯익은 듯한 새가 한 마리
창(窓)가에 와서 지저귄다.
우수(雨水) 갓 지난 무렵의 골목 끝
하늘을 보니 생각난다.
앵두나무 가지 너머
우리의 아픈 별 지구에도
봄이 온다는 것이.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봄날은
기적처럼 온다는 것이.
그 가을의 소나타
김 용 재
가시에 찔려
산동네 달은 쉽게 피를 흘렸고
핏빛은 영양실조의 증명,
어둠의 장막으로 가리워지고 있었다.
시름의 옷을 걸치고
귀뚜리는 울었고
그 아슴한 목소리가
찬 이슬에 촉촉이 젖고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가시나무 밑에서
우리들 세상의 가슴팍을 살펴보았고
땡감 같은 민주주의를
요량 없이 건너다보고 있었다
2018년 한글문학 시낭송대회 지정시 (본선)
번호 | 시인 이름 | 제 목 |
1 | 박 목 월 | 산이 날 에워싸고 |
2 | 이 양 우 | 사연곡 |
3 | 정 대 구 | 봄이 또 와서-부모님 묘소에서 |
4 | 김 년 균 | 객지 |
5 | 이 정 자 | 경주의 봄을 그리며 |
6 | 정 구 찬 | 나의 집 |
7 | 정 삼 일 | 창밖을 바라보며 |
8 | 정 연 국 | 바다의 눈썹이 하얗게 센 건 |
9 | 정 하 선 | 장선포 |
10 | 채 수 영 | 꽃잎이 지는 날 |
11 | 권 혁 모 | 분홍색 |
12 | 함 동 선 | 밤섬의 숲․ |
13 | 권 순 악 | 꽃구경 |
14 | 황 금 찬 | 어머니의 하늘 |
15 | 최 은 하 | 천년의 바람-주목 |
16 | 정 명 숙 | 봄비 내리는 날의 아버지 |
17 | 김 선 진 | 다리미 질 |
18 | 김 운 향 | 항아리 |
19 | 김 태 룡 | 어떤 기억 |
20 | 남 민 옥 | 목 섬 |
21 | 위 상 진 | 한 강 |
22 | 정 민 호 | 어느 시인의 묘비 |
23 | 조 환 국 | 격량의 산수-팔순교도 |
24 | 김 용 언 | 웃는 사내 |
25 | 김 종 섭 | 장미로 가는 길 |
26 | 천 상 병 | 행 복 |
27 | 김 관 식 | 목련꽃 |
28 | 조 명 제 | 은하계의 끝에서 |
29 | 손 해 일 | 새벽바다 안개꽃 |
30 | 황 송 문 | 산이 나더러 |
31 | 이 우 룡 | 들 꽃 |
32 | 김 예 태 | 길 |
33 | 이 원 우 | 차창가에 드리워진 한강 |
34 | 장 건 섭 | 말차를 마시며 |
산이 날 에워싸고
박 목 월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어느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구름처럼 살아라 한다.
바람처럼 살아라 한다.
사연곡(思緣曲)
이 양 우
중천 허리쯤에 이 마음 매어놓아...
온 누리 눈부신 꿈결 상사몽(相思夢) 그려두고
오는 세월 가는 세월 덧없이 흘러가면
이 마음 넋두리를 구름결에 그리리라
하루야 못 견딜 바가 아니라 하거들랑은
선관정(仙觀亭) 바윗돌에 이름 새겨 간직하고
오실 날 접어두고도 못 견디어 다시 펴 그리려면
천추에 어린 한도 맺힌 고리 풀어 맞으리.
봄이 또 와서
-부모님 묘소에서
정 대 구
바로 집 뒤 남향받이에 쌍분으로 모신
양친 묘소 둘레에
해마다 어느 곳보다 먼저 눈이 녹고
녹자마자 노란 개나리 분홍 진달래 꽃망울 조용히 피어
시선이 집중되는
사람들의 주목이 부끄러운 듯
마치, 두 살 연하의 아버지한테
일찍 열여덟에 시집오신 우리 어머니
새댁 적에
노랑 저고리 붉은 치마 입고
웃어른이 부끄러워
수줍게 웃고 있는 듯
객 지
김 년 균
집을 떠나,
세월의 꽁지따라
둥근섬,
한 귀퉁이,
어둑한 곳에서
잠시 머뭅니다.
바람 불고, 눈 오고
하루도 잔잔할 날 없는
가파른 언덕에서,
외롭고 괴로워서
가끔씩 눈물을 흘립니다.
그것이 씨가 되고
나무되어,
무럭무럭 자랍니다.
눈물의 나무는
오늘도 잘 자랍니다.
경주의 봄을 그리며
이 정 자
역사를 짚어보면 세계에도 드문 왕업
천년의 역사 속에 빛나는 화랑정신
작금의 정치꾼들은 그 발끝도 못 본다.
먹구름 몰아치는 탄핵의 정국에도
이때가 기회인양 머리가 되겠다고
국민은 아랑곳 않고 대선전만 챙긴다.
여명은 아직 멀어 가득한 암흑에도
촛불에 의지하여 더듬어 가는 길이
한 치 앞 운명도 몰라 내오 네오 하구나.
뒤에서 관망하다 일어선 민심들이
태극기 휘날리는 진정한 주인이네
이 나라 대한민국을 전심(專心)으로 지킨다.
나의 집
정 구 찬
참 따뜻한 몇 개의 얼굴이
빤짝이고 있을 이 길 끝에는
두드리면 열리는
나의 집이 있다
가끔은 차가운 별빛과
새벽이슬을 묻혀 와도
잠들었던 불이 켜지고
다시 꺼지는
이 따뜻한 사랑 속
매듭을 풀면 쏟아지는
반짝이는 웃음
피로한 길을 헤매다가도
길 끝에는 항상 나의 집이 있다
잠들었던 불이 켜지고
다시 꺼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정 삼 일
늦가을 새벽녘
창밖을 바라보며
청소부의 비질 소리
사각 사각 속삭임
땅에
별이 떨어지는 소리인가
별을
줍는 소리인가
떠있다고
다 별인가
빛난다고
다 별인가
한 눈으로 보면
거리가 보이고
두 눈으로 보면
넓이가 보인다.
바다의 눈썹이 하얗게 센 건
정 연 국
바다의 눈썹이 하얗게 센 건
아라뱃길 때문만은 아니네
비바리의 시름으로 고은
보리순간재미애국만도
걸어다니는 섬다리로
섬이 숨 막히는 까닭만도 아니네
뭍이 서릿발 세우는 그믐밤
갈꽃은 찬별에 베이고
미리내 칼바람은 대구
바다의 흰 눈썹을 후리는데
꿈마다 무지개 타고 하늘바달 나는
날 어느 섬에 부려야 할까
장선포
정 하 선
가슴속 겨우내 쪼그리고 앉아있던 걱정들
훨훨 떠나보내버리고 싶어
찾아온 바다 물은 이미 다 빠져나가고
갯뻘 뒤져 갯것 잡는 아낙들의 손놀림
근심걱정 다 어디에 버리고 왔는지
등허리에 신발 묶고 길을 묶고
팔다리 걷고 허리 구부려 삶에 입 맞추는
아 그렇구나, 근심걱정은 쐐기처럼
삶에 틈이 생기면 파고드는 것인 것을
나 호미 하나 얻어들고 허리 아프도록
조개 찾아 갯뻘 헤집다 쳐다보니
마을뒷산 기슭에 만발한 복숭아꽃
꽃잎이 지는 날
채 수 영
꽃잎이 지는 날
바람이 우네 바람이
울어 꽃잎이 지는가
소리 자욱한 길로 이별은
걸음을 재촉하는 이야기
점차 짧아지는 소리에
다시 꽃잎은 이율 몰라
천지가 울리는 소리에 휩싸여
길고 긴 여운으로 세상
종소리들이 울부짖네
꽃잎이 지는 날엔
세상이 흔들리느라
가슴이 울리고 있네
분홍색
권 혁 모
나는 향수입니다 그리움을 오려 만든
동굴 속에서 피어나는 알라딘의 요술 램프
술 한 잔 스쳐간 날도 바람처럼 꽃잎처럼
나는 기다림입니다 뒷모습이 한결 좋은
일곱 빛깔 그 중에서 가장 키 작은 것이
아득한 동화 나라에 신기루로 서성이더니
나는 투명입니다 톡 치고 싶은 가을 하늘
퍼즐 맞추듯 지난날은 스테인드글라스 빛으로
아직도 홰나무 아래 꿈에 묻혀 살더이다.
밤섬의 숲․
함 동 선
노을 길고 해넘이 짧은 어둠이
푸서리에 내리고 꽃다지에 얹힌다
버드나무 우듬지에서
까만 옷 갈아입은 바람이
황사 털어 내고 뿌리로 내려간다
그 어둠 끝에
눈길 놓아 주지 않는 들꽃들
온종일 버리고 버려도 성性이더란
사랑에 미친 꽃잎들
대낮 사내 등판처럼 뜨겁다
숲과 나무와 들꽃 서로 보지 못하게
5월은 불을 끄고
알 품은 철새
수평선에 눈 베기도 한 닿소리와
한쪽 겨드랑이에 바다 끼고 온 홀소리 모아
이 지상에서
말로 할 수 있는 계절은 고향이라고
글 쓴다
꽃구경
권 순 악
이 봄이 가기 전에
꽃구경 가고 싶어
산으로 들로 나가 봅니다.
비바람이라도 불어오면
애처로운 낙화를 차마 볼 수가 없어
꽃이 지기 전에 꽃구경을 하고 싶습니다.
전에는 꽃을 눈으로 보았는데
지금은 가슴으로 보게 됩니다.
가슴으로 피었다가
가슴으로 지는 꽃은
언제까지나
저렇게 환하게 웃고 있으면 좋으련만
이제는 오래도록 잊지 않으려던
추억 하나하나를
지는 꽃에 다 날려 보내고
화려한 꽃구경 길에 세월을 밟고 갑니다.
어머니의 하늘
황 금 찬
어머님은 고향의 하늘
꼭두서니 봉숭아빛으로 하늘이 물들고 먼 바
다의 파도소리
다섯 별들의 행복을 하늘에 비는
늙은 어머님의 기도소리
산도화 한 가지 꺾어
어머니 잠드신 머리맡에 놓아두고
뻐꾹기 울음처럼
어머니 불러보면
다시 산울림하고 돌아오는 사랑의 음성
무너지게 피어오른 자목련 그늘 밑에 서면
보석처럼 피어나는 하늘의 무지개
보라, 저 무지개처럼 마음이 고와라
나는 너희들을 저 하늘에서 찾으리라
어머니 하늘같은 어머니
이제 꽃 한 송이 그름에 날립니다.
천년의 바람
-주목(朱木)
최 은 하
살아 천년
죽고 나서도 정정한 천년이지.
휘몰아쳐 가고 오는 바람굽이에서
내게도 허튼 수작이야 지울 수 없지.
천둥과 함께 허공을 흔들어 울리고
높이만큼의 어지럼증 달래며
별을 헤아리던 날은 적막하기만 했어.
날 다스리는 바람은 언제나
다가서거나 따나가면서도 젖어드는 목소리지.
삭아내리는 저 끝머리 어깨 손마디
어디서나 목소린 푸르게 살아 넘실대지.
자꾸만 설익은 물음일랑 그만 거두게나
해와 달 아래 숱한 비 바람에도
나는 어떻게 달리 둔갑하거나
스치는 구름 한 점이지도 못하고
태어난 이 땅에서 별자리 지키며
지내온 속사정이고 요 행색이지.
다시금 날 일깨우는 예대로 바람
그냥 불어오네.
봄비 내리는 날의 아버지
정 명 숙
하룻내 봄비가 내립니다.
처마 끝 낙숫물 소리 그치질 않고
툇마루에 앉아 아버지를 그려봅니다.
빗발 속으로
대천을 건너는 아버지 발자국은
강물에 잠기고
아버지 등지게는
언제나 봄꽃으로 출렁입니다.
긴 고추밭 도랑을 돋으시는
아버지 소매 자락엔
연초록새싹이 자랐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
하루 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아버지의 굽어진 뒷모습은
언제나 비에 젖습니다.
다리미 질
김 선 진
조건 없이 펴고 싶다
물이든 바람이든
쭈그러진 내 육신의 주름들
그나마
소리 없이 펴질 수 있다는
신기로움 앞에
숯불 살려가며 튀는 재 훑어내려
쌀 풀 먹인 모시 삼베
옥양목 바지저고리
마주 앉아 당겨보던 대청마루에서
활활 불붙다 삭아 내린 재 무덤만큼
켜켜로 쌓여 갔던
아득한
젊은 날의 조각들.
항아리
김 운 향
머리에 달을 이고
아니 오신 듯, 다녀가소서
산사의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 울리거든
바람결에 그님이 스쳐갔다 여기시라기에
천봉당 태흘탑 아래서 합장하노라니
노오란 옷을 입은 소년이 나타나
운무 드리워진 능선을 가리키네
마음 한 곳을 비우고
몸 한 곳도 열어두기를
귀한 인연으로 빚어진 삶인데
알몸으로 와서 조각조각 깨질 때까지
골고루 채우고 비워보기를
큰 바위 속에서 흘러넘치는 감로수로
청정심 되어 시나브로 비우리라하니
새로운 법열이 새록새록 밀려드네.
어떤 기억
김 태 룡
가을비 추적 추적
비오롱처럼 흘러 내리고
동도 트지 않는 새벽
누군가 나를 들쳐 업고
집을 나섰다
행길 건너 가겟집
문 두드리는 소리
적막을 깨트리며
까무릇 새벽별 지는 소리
가겟집 마당 모서리
이슬 내린 긴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형상
입에 조심스레 넣어 주던
말랑한 복숭아의 단맛
울어메의 따사로운 손길
꽃꿈인양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목 섬
남 민 옥
바다가 집이지만
뭍이 그리워 뭍을 바라보며 산다
바다에도 길이 있어
하루에 한 번 흰 목떼미 드러날 때마다
언제나 발보다 마음이 먼저 문을 연다
썰물에 굳은 발바닥까지 드러난다
바위틈에 붙어있는 굴 껍데기 시간
철썩이며 오고 가는 파도에
슬쩍 울음을 섞어 보내기도 하는가
갯벌 위 치열한 문장들이 있다
바지락이 써놓은 문자와
사람이 새겨놓은 문자를 해독하다 보면
해는 어느새 중천으로 간다
길은 닫히고
갯벌을 오가던 사람들 떠나고
다 읽지 못한 문장도 사라진다
다시 섬이 된다
한 강
위 상 진
너는 흐르는 동안에만 물의 씨앗을 낳는다
태백에서 흘러오다 두물머리 어디쯤에서
천년을 잘라내고 어둠이 치마폭을 들추며
달을 내려놓는다
오래전 끊어졌다 이어진 다리 아래
물그림자를 밀고 가는 무늬
흐르듯 멈추듯 달이 사리를 품는 중이다
흐르지 못한 물방울이
바다로 가는 생각을 하는 사이
양수가 싹을 틔우며
네 품으로 떨어진 꽃잎 같은 이름
하나 둘 불러낸다
너는 흐르며 단단한 심이 박힌
불의 자식을 세상으로 내 보낸다
어느 시인의 묘비
정 민 호
이 세상 왔다 가는데
무슨 묘비가 필요한가,
봄에는 진달래 산천
그것이면 족하지 않나?
여름에는 흰 구름 산을 넘고
그 하늘만 바라보면 그것으로 족하지
가을에 단풍들어 나뭇잎 지면
산들바람불어 먼 산을 돌아 나가고,
겨울엔 눈 내려 가지마다 꽃인데
그 꽃만 바라보면 되는 것을,
돌에 새겨둔 몇 자의 글귀가
영원히 잠자는 시인에게 무슨 소용 있으랴
격랑의 산수(傘壽)
- 팔순 교도
조 환 국
풍랑 길 80성상
인간답게 살아 봤던가
병마에 시들어 울고 있다
배 곯은 아이들에게
밥을 주고 싶고
정을 나누고 싶은데
탈은 병마로 길을 막는다
파도는 볼멘소리
80년의 눈물의 소리
물거품 섞여 들려오는
당신의 신음앓는소리 들린다
그날은 다가오고
물려준 숙제는 아직
다 마무리하지 못한 채
내세 길 줄달음 치고 있다.
웃는 사내
김 용 언
사내가 낯설다
한때는 짐승남이란 말을 듣기도 했으련만, 이젠 기억에서도 가물거린다
낯설어 보이는 사내가 웃고 있다
가끔 내가 나 아니기를 바라는 때도 있었다
지금 나 아닌 듯한 사내가 웃고 있다
뒤돌아보면 살아온 시간이 꿈 같은 때가 있다
물론 아득할 때도 있긴 하지만
웃고 있는 사내가 아득하다
꿈에 나타났던 사람 같다
참으로 나를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후줄근해 보이는 모습이 안쓰러워 잠시 더 동행을 하기로 했다
장미로 가는 길
김 종 섭
장미로 가는 길은 붉다
두 다리 곧추 세워 네게로 가나니
새여 타는 그리움으로 당겨다오.
어쩌면 돌부리에 걸려 쓰러지고
바람에 시달려 꺾여질지라도
진홍으로 벙글어 가는 꽃봉을 보면
나의 발길 돌부리를 뛰어넘고
나의 걸음 바람을 앞질러
마음은 이미 너에게 닿아 있느니
장미로 가는 나의 길은 가볍다.
꿈은 어디에서 오는가
아무리 걸러도 바랠 수 없는 환상
내가 허기에 지쳐 쓰러져 있더라도
너의 손길 놓을 수 없구나.
내 혼의 맑은 샘 하나 깨어있는 한
그래 함께 가자
즐거움이나 기쁨보다
괴로움과 애틋함이 더할지라도
우리 손잡고
가시의 나라, 장미로 가자.
행 복
천 상 병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목련꽃
김 관 식
봄 햇살
따뜻한 말 한마디
울컥 복받치는
설음
고향 떠나
뿔뿔이 헤어져 살다
다시 만난
이산가족 상봉
순백의 눈물꽃 바다
해마다
봄이 오면
행여 만날 수 있을까?
가슴 두근거리며
바람 소리에도
설레는
하얀 가슴
활짝 열어젖힌
그리움이여!
은하계의 끝에서 • 9
조 명 제
넝쿨가지 우거진 벌판의 수풀 속에는
들찔레 열매로 배를 채운 오목눈이 곤줄박이
굴뚝새들이 깃들이어 겨울을 나고 있을까
마음의 고향을 클릭하면, 멎었던 눈이
다시 내리고 하염없이 내리는 눈발 속에서
마을 사람들은 메밀을 끊여 묵 디리를 하고
들판의 쥐똥나무는 쥐똥만한 검은 열매로
적막한 겨울나라의 암호를 보내오네
비탈을 이루며 내리는 눈은 먼 산맥을 지우고
마른 풀대궁의 부러진 목뼈를 밟으며 지상의
슬픔을 하나하나 지워 나가네. 들새는
보이지 않고 들새의 울음만 눈발 속에서
상처 아문 흔적을 지우며 떨어지네. 하늘의
새 발자국이 울음이 되어 지상에 내리네.
사람은 얼마를 더 꿈꾸어야 허공에 발을 버리고
지상의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새벽바다 안개꽃
손 해 일
바다가 육지가 그리워 출렁이고
나는 바다가 그리워 뒤척인다
물이면서 물이기를 거부하는
모반의 용트림
용수철로 튀는 바다
물결소리 희디희게
안개꽃으로 빛날 때
아스파트에 둥지 튼 갑충의 깍지들
나도 그 속에 말미잘로 누워
혁명을 꿈꾼다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덧없는 날들을 어족처럼 데불고
시원의 해구로
우리가 어느 바닷가 선술집에서
불혹을 마시고 있을 때
데위 먹은 파도는 생선회로 저며지고
섬광 푸른 좋소리에 피는
새벽바다 안개꽃
산이 나더러
황 송 문
산이 나더러
잠자코 있으라 하네.
설해목이 우지끈 산자락을 울리거나
산자락이 떨어져 나간다 할지라도
침묵으로 일관할 뿐
말의 노예가 되지 말라 하네.
말에 사로잡히면
한 평생
욕망에 끌려 다니다가
언어의 칡넝쿨에 걸려 넘어진다네.
깨달음을 찾아
산에 오르고 보니
벙어리 도사들뿐이네.
말없이 꽃피고, 잎 피고
말없이 알을 낳고, 새끼를 낳고
말없는 안개 손길 쓰다듬으며
자고 깨고 번성하게 한다네.
들 꽃
이 우 룡
아무도 없는 빈 들녘
홀로 피어나
봐주는 이도 없고
바람 따라 흔들리는 꽃이여
가시덤불 속에서
외로움으로 짙어 가는 꽃빛
지난밤 천둥에 놀라고
거친 비바람에 생채기는 덧났으리라
애달픈 생명이여
더 이상 외로워 마라
너와 나, 한마음 되어 만났으니
이제부턴 혼자가 아니다
다시 먼 길 떠난다 해도
온전한 너의 모습 두 눈에 담고
빈 가슴에도 깊이 심어
언제나 함께하리니
길
김 예 태
산행을 하다보면 뜻하지 않은 곳으로 길이 나 있다
몇 번씩 잘못 들어섰노라고 돌아쳐 나오다가
돌아다보면 이것도 길인가 싶어
한 발 한 발 들어가 본다
그곳에도 하늘은 파랗게 쏟아져 내리고
숲에선 구구구 산비둘기 울고
원추리 멀쑥한 키가 햇살 속으로 머리를 푹 디밀어 보고
가시나무 삭정이들 툭툭 부러져나가고
밟힌 꽃들이 우우우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두리번거리는 동안 발자국 찍히고
발자국을 따라온 길로 바람이 몰려다닌다
새 길은 낯이 설어 바람이 더 차다
차창에 드리워진 한강
이 원 우
차창 밖으로 스치는 한강
선명하게 보이는 물살이
어디에서 어디로 흐르는지.
강변북로를 달리는 차창에
드리워지는 시골의 한 정경
도시 속 쉼터의 거대한 물줄기 인가.
잔잔한 물위로 저물어져가는 석양빛이
여러 가지 색깔로
차창 너머 펼쳐지는 한강 ―
누구도 꺾어넘기지 못할 유유한 자태
멀리 바라다보면 다시 나타나는 액자속의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이다.
말차(抹茶)를 마시며
장 건 섭
깊은 밤
찻물 끓는 소리
애끓는 정한(情恨)의 울림인가
멀리서 가까이로
동그랗게 다선(茶筅)을 돌려
그리움을 섞어 저으니
막사발 가득
도공(陶工)의 숨소리가
산빛처럼 스며들고
정월 대보름
초록 둥근달이 뜨는구나
중천(中天) 멀리 둥글게 뜬
그대를 닮은
초록의 말차 한 잔
진한 그리움으로 마시고 나니
향에 취하고
빛깔에 빠지고
맛에 또 즐거워
정한도 잠시 잊은 채
홀로인 깊은 밤
별천지(別天地)가 따로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