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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크리스토프 빌란트의 동화 <룰루 또는 마술피리>를 비롯한 여러 동화와 대본 참고
대본 에마누엘 쉬카네더
초연 1791년 빈 비덴 극장
배경 기원전 587년(예루살렘 제2차 공략 시대), 예루살렘과 바빌론
<2006 뉴욕 메트 / 112분 / 한글자막>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 & 합창단 & 발레단 연주 / 제임스 레바인 지휘 / 줄리 테이머 연출
타미노..............자바의 왕자.............................매튜 폴렌자니(레제로 테너)
자라스트로........태양의 나라 대제사장................르네 파페(베이스)
밤의 여왕.......................................................에리카 미클로사(콜로라투라 소프라노)
파미나..............밤의 여왕의 딸.........................잉 황(리릭 소프라노)
파파게노...........새잡이. 밤의 여왕에게 고용됨.....나탄 군(바리톤)
파파게나...........파파게노의 짝..........................제니퍼 아일머(소프라노)
모노스타토스.....무어인. 사원의 감독관...............그레그 페덜리(악역 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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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및 프로덕션 노트 === (내지 해설 / 이용숙 글)
눈을 뗄 수 없는 줄리 테이머의 환상의 세계
작곡가 모차르트는 초연 후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났지만 쉬카네더가 프라이하우스 극장을 책임지고 있었던 10년 동안 <마술피리>는 모두 223회 공연되었다. 유럽의 여러 다른 도시 극장들도 <마술피리>에 관심을 가져, 1800년 무렵에는 총 65개 지역에서 이 작품이 공연되었다. 1801년에는 모스크바와 파리, 1811년 런던, 1812년 스톡홀름에서 초연되었고, 1816년 밀라노와 코펜하겐, 1829년 브뤼셀, 그리고 1833년에는 뉴욕 초연을 기록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마술피리>는 전세계 오페라하우스에서 주요 레퍼토리의 하나로 끊임없이 공연되고 있다.
제임스 레바인이 지휘하고 줄리 테이머가 연출한 2006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의 <마술피리>는 이 작품을 처음 접하는 오페라 초심자들에게 탁월한 선택이다. <마술피리>는 갖가지 상징과 은유가 뒤섞여 있다고 알려진 만큼 다양한 방향으로 연출되고, 때로는 반드시 해설이 필요한 난해한 프로덕션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신화와 민속학을 전공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뮤지컬 '라이온 킹'으로 세계를 뒤흔든 미국 여성 연출가 줄리 테이머의 <마술피리>는 쉽고 재미있고, 또 동화적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3시간 가량 걸리는 원래의 공연시간을 2시간이 채 되지 않게 줄였고, 독일어 텍스트를 간결하고 명료한 영어로 번역해 노래하기 때문에 오페라라기보다는 뮤지컬처럼 들린다.
무대에서 공중을 날아다니는 것은 새들만이 아니다. 무서운 뱀들과 험상궂은 곰들까지 하늘을 날며 춤을 춘다. 무대 디자인과 색조, 줄리 테이머가 직접 디자인한 의상, 조명까지 모든 것이 관객을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 특히 파파게노 역을 맡은 나탄 군의 매력 넘치는 가창과 능청스런 연기, 그로테스크한 웃음을 선사하는 모노스타토스 역의 그레그 페덜리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마술피리>대신 <가족 피리>라고 불리는 이 프로덕션은 모든 연령대의 어린이들을 충분히 매혹할 만하다. 이 영상물을 보고 나면 아이들은 앞으로 날마다 오페라를 보여달라고 조를지도 모른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 우리를 조화로운 세계로 이끄는 음악의 힘
이탈리아 오페라의 아름다운 선율과 독일 교회음악의 장중한 화성미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마술피리>는 모차르트의 이탈리아어 걸작 오페라인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와는 음악적으로 전혀 다른 분위기의 징슈필(Singspiel)이다. 연극처럼 중간에 대사가 들어있는 독일어 노래극으로, 당대 오페라의 기본 언어인 이탈리아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평민 관객을 위한 형식이었다.
독일 민중극의 한 유형인 징슈필 가운데 음악적으로 크게 가치 있는 작품은 드물다. 그러나 모차르트가 이 마지막 오페라에서 이룬 징슈필의 새로운 전통은 후배 작곡가들에게 계승되어 베토벤의 <피델리오>나 베버의 <마탄의 사수> 같은 걸작이 태어날 수 있었다. 무지크드라마(악극)을 창시한 바그너와 바그너의 뒤를 이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역시 큰 틀에서 보면 모차르트 징슈필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둠과 주술의 세계 vs. 빛과 이성의 세계
<마술피리>의 줄거리는 상당히 길고 복잡하지만,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밤의 여왕의 부탁으로 타미노 왕자가 마술피리를 받아 들고 새잡이 파파게노와 함께 여왕의 딸 파미나 공주를 구하러 간다. 갈 때는 공주를 가둔 남자가 악당인 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여왕이 악당이고 공주를 데려간 남자는 이성과 빛의 세계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자라스트로다. 공주와 사랑에 빠진 왕자는 그 자라스트로 세계의 일원이 되기 위해 파파게노와 함께 침묵수행을 하고 나중에는 공주와 마술피리의 도움으로 불과 물의 시럼을 통과한다. 짝이 없어 슬퍼하던 파파게노도 자기에게 꼭 어울리는 파파게나를 만나 행복해지고, 밤의 여황의 세계는 무너진다.
이 이야기는 사랑하는 남녀가 갖가지 시험과 고초를 통과해 마침내 결혼에 이르는 '고대 시련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모차르트는 이 스토리 속에 당시 자신과 대본작가 엠마누엘 쉬카네더가 가입한 '프리메이슨(Freemason)'의 이상을 엮어 넣었다. 프리메이슨은 중세 석공들의 동업조합에서 비롯된 근세 유럽의 남성 엘리트 비밀결사를 뜻하는데, 당시 모차르트가 살던 빈의 학자, 예술가, 계몽귀족들은 자유, 평등, 박애의 인본주의 사상과 관용의 정신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이 프리메이슨에 참여해 그들끼리 은밀한 모임을 가졌다.
오페라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현명한 지도자 자라스트로의 성은 바로 이 프리메이슨의 세계를 구현한 곳으로, 지혜와 이성과 자연이 삼위일체를 이뤄 사람들에게 행복하고 절도있는 삶의 길을 가르쳐주는 세계다. 오페라에서 자라스트로와 합창단이 부르는 엄숙한 노래 '오, 이시스와 오시리스여!'는 삶과 죽음을 주관하는 이집트 신과 여신에게 바치는 노래이며, 실제로 프리메이슨 단워ㅓㅜㄴ들은 고대 이집트의 종교의식 및 상징에 지대한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마술피리>의 주역들은 각기 다른 성악적 유형을 보여준다. 주인공 파미나와 타미노는 정통 비극 오페라의 주인공들처럼 엄숙하고 기품 있게 노래하지만, 파파게노와 파파게나는 독일 징슈필의 창법과 이탈리아 부파의 창법을 혼합하고 있다. 한편 밤의 여왕은 모차르트보다 앞선 시대인 바로크 시대 오페라 세리아 형식으로 노래하며 탁월한 콜로라투라 기교를 선보이는데, 이는 밤의 여왕이 지배하는 어둠과 마법과 주술의 세계가 곧 사라져야 할 구세계임을 보여주는 음악적 장치다.
<마술피리>는 서유럽의 전형적인 이분법적 사고에 기초한 두 세계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 두 세계의 통합을 시도한다.고결한 마음과 인내심으로 시련을 극복하고 사랑을 이루는 주인공 타미노와 파미나,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행복과 자식 얻는 기쁨을 노래하는 희극적인 주인공 파파게노와 파파게나. 이 두 커플의 대비는 이 두 세계의 대립을 의미한다. 하지만 타미노 왕자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물과 불의 시련을 통과할 때 파미나는 마술피리의 유래를 이야기하며 그 피리소리로 왕자를 이끌어준다. 그 피리는 마법사였던 파미나의 아버지가 천 년 묵은 떡갈나무를 베어 만든 주술적인 악기로, '음악이 인간을 조화로운 세계로 이끈다'는 철학의 상징이다. 이성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시험을 치르는데 '마술'피리가 도움을 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성이 홀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감성의 세계(밤의 여왕의 세계 또는 마법의 세계)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음악의 궁극적인 이상'임을 모차르트와 쉬카네더는 강조하려고 했던 거 같다.
프랑스 대혁명을 둘러싼 작품의 상반된 해석
그러나 <마술피리> 대본에는 여성을 비하하고 인종을 차별하는 내용이 들어있어 종종 비난을 받는다. 이 책임은 당시 평민 관객의 입맛을 맞추려 한 대본작가 쉬카네더에게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실제로 당시 작품 제작에 관련된 기록을 보면, 쉬카네더가 대본에 넣어놓은 저급한 유머들을 모차르트가 화를 내며 상당부분 빼버렸다고 한다.
이 작품이 초연된 1791년, 독일 라인란트 지역 공화주의자들은 프랑스 대혁명(1789)과 이 오페라를 연관시키는 해석을 시도했다. '밤의 여왕'은 전제군주 루이 16세를 상징하며, 타미노 왕자는 민족을, 파미나 공주는 자유를 상징한다는 해석이었다. 그러니까 이 오페라의 핵심사상은 '새로운 입법을 통해 민중을 전제정치에서 해방시킨다'는 것으로, 이런 작품해석은 모차르트와 쉬카네더를 '자유의 투사'로 격상시켰다.
그러나 군주제를 옹호하는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이 작품을 정반대의 의미로 해석했다. '밤의 여왕'은 자코뱅의 급진주의를 상징하고 그 딸인 파미나는 공화국의 상징이라는 것. 전제군주정치의 상징인 타미노 왕자가 공주를 구출하는 것은 공화국을 살려내 제정 시대로 되돌린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모차르트와 쉬카네더는 이런 상반된 해석 중 어느 쪽에도 손을 들어주지 않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굳이 밝히려 하지 않았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 <마술피리>가 1791년 9월 30일에 초연된 빈의 '프라이하우스 테아터'는 '소시지 굽는 냄새가 진동하는 장터에 줄을 서서 입장권을 사야 하는' 서민적인 곳이었다고 한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공간은 아니었지만 객석은 1천 석에 달해 당시로서는 규모가 큰 극장이었다. 음악도 오늘날의 뮤치컬처럼 쉽고 형식이 다채로웠기 때문에, 관객은 종합선물을 받는 기분으로 이 작품을 좋아했다. 그래서 오페라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청중도 편안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대본작가이자 극장장이기도 했던 쉬카네더는 35명의 오케스트라와 30명 가량의 합창단을 이 공연에 투입했다. 특히 초연 당시는 풀리지 않는 고대의 수수께끼나 주술과 마법이 크게 유행하던 시대여서, 뛰어난 흥행감각을 지닌 대본작가 에마누엘 쉬카네더는 환상적인 요소로 가득 찬 핀란드 동화집 속의 고대 이집트 이야기를 토대로 해서 [마술피리] 대본을 썼다.
그 무렵 모차르트는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았다. 자신을 후원하던 오스트리아 황제 요제프 2세가 세상을 떠났고, 새로 즉위한 황제는 모차르트 오페라에 관심이 없었다. 또 ‘3대 걸작 오페라’의 대본을 전담했던 유명작가 로렌초 다 폰테까지 여자 문제로 오스트리아에서 도망쳐, 더 이상 흥행이 보장되는 대본을 써 줄 작가도 없었다. 게다가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더 많았기 때문에 빚 독촉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때 친구 쉬카네더가 모차르트에게 서민극장용 징슈필 작곡을 부탁했고, 모차르트의 간절한 소망대로 <마술피리>는 초연 극장에서 100회가 넘게 공연되면서 그의 오페라들 중 가장 훌륭한 흥행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공연 시작 두 달도 채 안 되어 모차르트는 병석에 누웠고, 그해 12월 5일에는 다른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병상에 누운 채 모차르트는 저녁마다 시계를 쳐다보면서, “아, 지금은 파파게노가 등장할 시간이야.” “이제 주인공 두 사람은 물과 불의 시련을 다 통과했겠군.” 하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그만큼 이 작품을 깊이 사랑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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