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리먼브라더스 사건으로 인해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회사마다 허리띠를 졸라매었고, 특히 자동차, 기계부품에 편중되어 있던 우리 회사는 거래처로부터 인력 채용기회가 끊겨 올해 초까지 근근이 사업을 유지하는 형편이었다.
그러기를 수개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며칠 전에 서치펌(헤드헌팅업)을 폐업하겠다는 내용을 메일로 거래처 및 지인들에게 보냈다.
그러자, 100개가 넘게 메일 답신이 왔고, 가까운 지인들은 무척 아쉽다며 위로 전화까지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강남구청에 가서 폐업 신고를 하고, 역삼세무서에서 사업자등록증을 반납한 시간을 모두 합치니 겨우 2시간 남짓 ...
약 7년간의 헤드헌터 생활이 이렇게 쉽게 마감될 줄이야!
처음 서치펌 사업을 하고자 구청에 신고했을 때, 뚱뚱하고 거만해 보이는 담당자는 40대 중반에 큰 마음 먹고 사업을 처음 시작하는 나에게 “왜 이 사업을 하느냐? 하루가 멀다 하고 폐업 신고하러 오는데... ” 하며, 초장에 재를 뿌렸다.
나는 허가증을 받고나서, 무례한 그에게 한마디 하려고 했으나 이내 참고, “두고 보자! 성공하리라! ” 다짐을 했던 적이 바로 엊그제 같다.
그 후, 나는 무모할 정도로 황량한 들판을 정원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꾸준히 관리하며 하나, 둘, 열매가 맺으며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헤드헌팅업계에 조금씩 얼굴을 내밀 수 있었다.
단지 사람이 좋아서, 만남이 좋아서, 20년도 훨씬 넘게 중,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직장, 사회모임에서 총무, 회장 등으로 활동해 왔는데, 많은 열매를 맺으면서 진작에 헤드헌터로서 발 벗고 뛰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고 늘 생각하였다.
7년간 서치펌을 운영하면서 만났던, 수 많은 사람들...
이력서와 실제 경력이 다른 사람, 인터뷰 할수록 느낌이 좋은 사람, 높은 토익점수를 자랑하지만 영어구사력이 없는 사람, 최종 합격되었는데 별 미안한 기색도 없이 출근하지 않는 사람 등.. 별의별 사람들이 많았다.
한편, 합격했다며 감사 전화를 하거나 음료수 박스를 갖고 회사를 방문하였고, 심지어는 직원들과 식사하라고 적지 않은 돈을 막무가내로 내놓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도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누가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한동안 수만 개 국내직업 중 인기 순위가 높은 헤드헌터로서 자부심을 가졌고, 후보자는 원하는 회사를, 회사는 유능한 인재를, 그리고 우리 같은 서치펌은 인재 복덕방으로 3박자가 척척 맞아 떨어져, 내 직업은 병을 고치는 의사만큼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늘 생각해 왔다.
수년 간 헤드헌터를 하다 보니, 몇 마디 대화로 후보자를 파악하는 아마추어 관상가가 되었고, 그들을 Career care 하는 멘터가 되었으며, 연륜이 쌓이면서 국내 및 해외경제 흐름에 따라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을 제시해주는 위치에 서 있기도 했다.
어쨌든, 후보자, 회사 모두 나의 편이었고, 나도 그들의 편이었다.
인생 70이라면 10%인 지나간 나의 7년은, 일명 '사오정'인 40대 중반에 시작한 첫사업이어서 무척 애착이 갔고, 나에게는 ‘취미가 직업’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즐겁고, 재미있었던 직업이었지만, 아쉽고, 허무하고, 한편으로는 후련하기까지 한 내 속마음을 누가 알리랴!
누구나 나이가 들면 추억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앞으로 더욱 더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는 50대 청년이 되도록 노력하리라!
2009년 10월 어느 날
첫댓글 앞으로의 인생항로에 훌륭한 밑거름이 되시길...
규선아 !
그동안 연락도 못하고 살았더니 그런일이 있었구나?
그래도 너무 실망말았으면 한다.
나도 작년에 이리저리 휘둘려서 힘든시간이 있었다
다행히 거의 수습되어 괜찮다만은...
하여간 할일은 아직 남았고,해는 뉘엿 지고,
일모도원이다
얼굴 좀 보자
매번 하던거니까
37 송년회 해야 하지 않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