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되는 역사 이야기 되도록이면 안할려고 했읍니다.
"춘추를 읽다" 님의 글을 보고 문득 이대로 두어서는 안되겠다 싶어 몇자 올렸는데 춘추님께는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실제 역사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상당히 다릅니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교과서적 역사는 집권자들이 자기들의 통치 헤게모니에 따라 만들어진 소설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고구리, 맥제(백제), 신라가 치고박고 싸우다 신라에 의해 통일이 됩니다. 이 신라가 분열해서 태봉국의 궁예, 후백제의 견훤, 경순왕 이렇게 난리를 치다가 태조 신성대왕 이왕건에 의해 통일되고 고려가 만들어 집니다.
어디서? 내나 신라땅 위에서요.
고려사를 누가 지었는지 아십니까?
고려사람이요? 아니요. 아니요, 예. 정답은 "아니요"이기도 하고 "예"이기도 합니다.
고려사 전문을 보면 이런 글이 나옵니다.
#高麗史1卷-世家1-00-00-00-0000
世家卷第一. 高麗史一.
正憲大夫工曹判書集賢殿大提學知 經筵春秋館事兼成均大司成臣鄭麟趾奉 敎修.
#高麗史1卷-世家1-太祖1-00-00-0000
太祖一.
정헌대부이자 공조판서이고 집현전대제학이며 춘추관 사 겸직 성균관대사성이던 정인지가 왕을 성균관에 모시고 경연(요세말로 세미나)를 거쳐서 확정지은 고려사 뭐 대강 이런 뜻이 고려사 첫머리에 나옵니다.
당시 고려의 권신들이 대부분 조선의 신하로 봉직했기 때문에 정인지 생전에 정인지만 똑똑한게 아니라 다 역사학자였고 학문에 정통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고려사가 거짓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조선이 역성혁명으로 고려왕조를 찬탈했기 때문에 오히려 고려사를 깍아 내렸으면 내렸지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았을 것이란 것은 불문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사는 찬란했고 그 강역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우리가 현대 국사책에서 배웠던 역사는 고려사에 비추어 보면 전부 거짓말이고 사기역사서 인 것입니다.
이승만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친일파를 등용하면서 일제 식민사관이 그대로 못박혀 들어왔고, 박정희가 부정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기의 정통성을 주장하고자 족발이 역사를 입식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역사적 관점으로 보면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그것을 계승한 전두환은 만대의 역적놈일 뿐입니다.
필자가 왜 이런말을 하느냐 하면, 우리가 기존 역사책에서 배웠던 고려의 강역은 황해도 북방 철령-자비령 에서 원산만 까지이고, 조선조 세종이 절제김종서를 시켜서 북서 4진과 북동 6진을 개척하면서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국경을 정하게 되었다고 거짓말로 사기 쳤기 때문입니다.
고려사 초기 홍유열전을 보면 태조왕건이 한반도 개성에 온 일도 없고 철원에 궁예가 있었던 흔적도 없습니다.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4기장이 태조 신성대왕 이왕건을 추대해서 고려를 개창했는데 개국공신이 거짓말을 할 턱도 없고, 전쟁 당사자가 온 나라를 휘젓고 다니면서 지형지세를 잘 알았을 것인데 홍유가 한반도에 온 적도 없는데 왠 고려가 한반도에 건설되었냐는 것이 위정자들을 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진실을 알려주고 그 판단은 민중의 몫으로 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려사 홍유열전을 소개해 올립니다.
#高麗史92卷-列傳5-洪儒-001
○洪儒初名術義城府人. 弓裔末年與裴玄慶申崇謙卜智謙同爲騎將密謀夜詣太祖第言曰:
홍유초명술의성부인. 궁예말년여배현경신숭겸복지겸동위기장밀모야예태조제언왈:
"自三韓分裂群盜競起今王奮臂大呼遂夷滅草寇 三分遼左據有大半立國 定都將二紀餘.
"자삼한분열군도경기금왕분비대호수이멸초구 삼분요좌거유대반립국 정도장이기여.
해석을 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고려사 92권 열전 5 홍유(洪儒) 001
홍유의 처음 이름은 홍술(洪術)이니 의성부 사람이다. 궁예 말기에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과 함께 기병대장(騎將 : 요즈음 편제로 사단장 내지 군단장정도)으로 되었는데 이들이 밀모하고 밤에 태조(이왕건)의 집으로 찾아 가서 말하기를
“삼한이 분열되고 뭇 도적이 봉기하였을 때 지금 임금이 용기를 분발하고 크게 호통치므로써 그만 도적들을 쳐 없애고 요좌(遼左) 지방의 3분의 1에서 그 절반 이상을 점유한 후 나라를 건설하고 도읍을 정한 지도 이미 2기(紀-12년)가 넘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끝을 잘 맺지 못하고 포악한 행위가 태심하여 형벌을 남용하여 처자를 살육하고 관리(臣僚)들을 죽여 없애니 백성은 도탄에 빠져 임금을 원수 같이 여기게 되었는바 걸(桀)이나 주(紂)의 죄악도 이 보다 더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폭군을 폐위하고 현명한 사람을 세우는 것은 천하의 대의이니 청컨대 공은 은(殷)과 주(周)의 옛일을 본받아 실행하셔야 하겠습니다”라고 하니 태조는 안색을 변하며 거절하는 말이.....
홍유가 말하기를, “궁예가 요좌 지방의 1/3에서 반까지를 차지”했다고 했습니다. 그 땅을 왕건이 고스란히 차지했다고 했는데 강단사학자들은 궁예의 태봉국이 대동강을 넘지 못했다고 말하지만, 당시에 살았고 장수로써 전국을 돌아다닌 홍유의 말이 정확하겠습니까, 아니면 요하가 대동강이었다고 우기는 강단사학의 말이 정확하겠습니까?
요좌란 만주벌판의 “랴오허강”일때 요하 이남이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홍유가 “삼분요좌”라고 했지 “삼분요하좌안”이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요하”였으면 반드시 “요하좌안” 이라고 명시하였을 것인데 말입니다.
필자가 주목하는 “요遼”가 요河이던 요땅이던 최소한 김종서의 북서 4진과 북동 6진의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국경선을 넘어선다는 사실을 먼저 주목하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고려의 시작은 궁예가 세운 태봉국입니다. 태봉이 최소한 만주벌판에는 있어야 하며 요遼를 어디로 비정하느냐에 따라 중원대륙에 있을수도 있고 고려 또한 대륙에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단사학은 고려의 최북방 영토가 “대동강에서 원산만”이라고 사기를 쳤던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박창범교수의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에서 가우리(고구리 高句麗), 백제(맥제), 신라(사로)가 중원에 있었는데 갑자기 통일신라가 한반도에 건국할 이유도 없거니와, 통일신라가 분열하여 후삼국이 이루어 졌다가 통일된 게 태조 이왕건의 고려인데 고려가 한반도에 있으면 그게 이상한 것이지 어째서 반도고려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지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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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원전 인용 고려사 92권 열전5 홍유)
#高麗史 92卷-列傳5-洪儒-000
洪儒[裴玄慶申崇謙卜智謙].
#高麗史92卷-列傳5-洪儒-001
○洪儒初名術義城府人. 弓裔末年與裴玄慶申崇謙卜智謙同爲騎將密謀夜詣太祖第言曰: “自三韓分裂群盜競起今王奮臂大呼遂夷滅草寇三分遼左據有大半立國定都將二紀餘. 今不克終縱虐太甚*滛{淫}刑以逞殺妻戮子誅夷臣僚民墜塗炭疾之如讎桀紂之惡無以加也. 廢昏立明天下之大義請公行殷周之事.” 太祖作色拒之曰: “吾以忠義自許王雖暴亂安敢有二心? 以臣伐君斯謂革命予實不德敢效湯武之事乎? 恐後世以爲口實. 古人云: ‘一日爲君終身爲主.’ 况延陵季子曰: ‘有國非吾節也.’ 乃去而耕焉吾豈過季子之節乎?” 儒等曰: “時難遭而易失天與不取反受其咎. 國中民庶受毒痡者日夜思欲復之且權位重者並遭虐殺略無所遺. 今之德望未有居公右者衆情所以望於公也公若不從吾等死無日矣. 况王昌瑾鏡文如彼豈可違天死於獨夫之手乎?” 於是諸將扶擁而出黎明坐於積穀之上行君臣之禮. 令人馳且呼曰: “王公已擧義旗矣.” 裔聞之驚駭亡去. 太祖卽位詔策推戴功以儒玄慶崇謙智謙俱爲一等賜金銀器錦繡綺被褥綾羅布帛. 太祖慮靑州反側儒與庾黔弼率兵千五百鎭鎭州以備之由是靑州不克叛. 遷大相. 二年改烏山城爲禮山縣遣儒及大相哀宣安集流民五百餘戶. 十九年從太祖擊百濟滅之. 卒謚忠烈.
#高麗史92卷-列傳5-洪儒-002
玄慶初名白玉衫慶州人. 膽力過人起行伍累進大匡. 太祖以靑州人玄律爲徇軍郞中玄慶與崇謙駁曰: “往者林春吉爲徇軍吏圖爲不軌事泄伏辜此乃典兵權而恃本州故也. 今又以玄律爲徇軍郞中臣等竊惑之.” 太祖善之改授兵部郞中. 太祖征討四方玄慶功居多. 十九年疾篤太祖幸其第執其手曰: “嗟乎命矣夫卿子孫在予其敢忘.” 太祖出門而玄慶卒. 遂駐駕命官庀葬事而後還. 謚武烈子殷祐.
#高麗史92卷-列傳5-洪儒-003
崇謙初名能山光海州人. 長大有武勇. 十年太祖與甄萱戰於公山桐藪不利萱兵圍太祖甚急. 崇謙時爲大將與元甫金樂力戰死之. 太祖甚哀之謚壯節以其弟能吉子甫樂弟鐵並爲元尹創智妙寺以資冥福.
#高麗史92卷-列傳5-洪儒-004
智謙初名砂瑰桓宣吉林春吉之謀反也智謙皆密告誅之. 卒謚武恭成宗十三年四人皆贈太師配享太祖廟庭.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
박창범 라대일 교수님의 논문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를 볼것 같으면
고구려는 바이칼호 이동 이서에 걸쳐 있었고, 백제는 북경에 있었고, 신라는 양자강 이남에 있었읍니다.
그런데 경상도 신라, 전라도 백제, 평양 고구려가 왠말입니까?
백제가 10제로 출발하여 100제로 나라가 늘었는데 그 중심이 북경이었으면 한반도는 당연히 백제의 영역이고 백제의 100담로에 속해야 정설입니다. 따라서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경기도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담로로 보는 것이 정히 옳다고 말할 수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책 속에 배웠던 경상도 신라는 신라가 아니라 백제의 경상도 담로라고 해석하는 것이 과학에 부합한다는 말일 것입니다.
경천동지할 이야기이므로 쉽게 부정하지 마시고 차근 차근 공부해 가야 할 것입니다.
첨부화일을 열어보시면 고구려는 바이칼호 이동 이서에 걸쳐 있고, 백제는 북경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웠으며, 신라는 양자강 이남에 나라를 건국한 것으로 나옵니다.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