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주일낮예배(신년감사예배) 설교
*본문; 요 17:1~8
*제목; 요한복음강해(34) 예수님의 기도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요 17:1~8)
1. 지난 송구영신예배의 기도 이야기
우리의 이성이나 현실에 맞지 않는 것처럼 생각되는 하나님의 명령을,
기도하면 순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면 주님께서 비로소 계획과 약속대로 응답하셔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을 만들어 가시고,
우리 삶의 열매를 든든히 맺게 하시며, 우리 삶을 주님께서 지키시는 요새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한 자에게 주시는 “크고 은밀한 일”입니다.
2. 예수님의 기도
오늘은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중보기도가 기록된 부분입니다.
이제 십자가를 향해 가시는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어떤 기도를 하셨는지를 통해서 기도의 본질을 파악해보려 합니다.
먼저 요17장은 세 부분의 기도로 나누어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이고, 둘째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며, 셋째는 우리들(교회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1절’을 먼저 읽고 오늘 이야기를 시작합시다.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요 17:1)
여기에 보면 예수님의 중보기도 부분인데 굉장히 낯설게 생각되는 부분이 나옵니다. 바로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로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기도의 본질입니다. 바른 자아가 세워지지 아니하면, 바른 기도가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마치 더러운 손으로 만진 모든 것이 다 더러워지듯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 대제사장적 기도를 하시면서 먼저 자신이 “영화롭게” 되기를 기도하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믿음과 삶을 바로 세워가는 기도가 기도의 핵심이요 선행될 과제입니다. 그런 다음 타인을 위한 중보기도가 비로서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영화”를 완성하기 전에 나온 단어가 눈에 띕니다. 바로 “아버지의 때가 이르렀사오니”입니다.
성경이 때는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 때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시간이요, 하나님의 응답의 시간이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에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다시 말해 “기다림”이 부족한 사람은 하나님의 때를 경험하는 믿음을 소유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입니다.
내 때는 “지금-당장, 내 욕심대로” 이지만, 하나님의 때는 “가장 적절한 때에, 주님이 뜻대로”입니다. 이런 때를 기다릴 수 있는 믿음, 하나님 보다 절대로 앞서지 않는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때가 어떻게 되었다고 주님이 선언하십니다. “이르렀다”고 완성형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이미 하나님의 작정하신 것은 그 시간적 때가 이르지 않았어도, 이미 완성한 것인 것입니다.
이를 믿읍시다. 하나님이 작정하신 것은 이미 이루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를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때가 이르렀으니” 아멘.
이 아버지의 때, 아버지의 뜻의 계획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바로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를 “영화”라고 표현합니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서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고, 자신의 영광이 선포되기 때문에 이를 영화라고 표현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속히 이루어 달라”고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빨리 죽여 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영화를 완성해 달라는 기도는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결국 우리를 위한 기도였던 것입니다. 또한 이를 통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기도였던 것입니다.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는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이고, 주님은 이를 친히 실천하신 것입니다.
송구영신예배에서 기도는 “영적 경영”이라고 했습니다.
경영이란 내 경영의 대상이 가장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영적 경영이란 영적으로 가장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기도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 경영인 기도의 세 가지 의미를 나누고 오늘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첫 번째 영적 경영인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위대한 사역 앞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이 기도의 내용은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첫째는 ‘겟세마네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의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이 십자가의 잔을 지나가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의 끝은 무엇입니까? “십자가를 지겠다”는 결단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경영입니다.
기도하면 기도하는 자체가 아름다운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이 언제나 이기는 것입니다.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의 어머니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아들을 달라는 기도를 하였으나, 기도 후에 아들을 드리겠다는 기도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영적 경영입니다.
두 번째는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이 기도의 핵심 경영인 것입니다.
기도의 결과는 하나님이 다 가장 좋은 것으로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통해서 우리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이 기도의 영적 경영의 두 번째인 것입니다.
어떻게 변화시킵니까? 그 하나님의 기도의 완성에 합당하도록, 그래서 그 기도의 열매를 누리는 자가 될 수 있도록 자신을 바꾸어가는 것이 기도의 영적 경영입니다.
세 번째는 무슨 기도를 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좇아 그 뜻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세상이 볼 때, 가장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뜻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질 때, 새로운 역사(BC에서 AD로)가 쓰여지고, 모든 인류가 구원의 영광을 누리는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영적 경영의 가장 큰 열매입니다.
올해는 기도하는 한 해입니다.
먼저는 기도하는 것 자체를 익히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주님도 기도하셨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둘째는 자신의 삶이 기도의 열매에 합당하도록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기도만 번지르르하고 삶이 변화 안 된다면, 실컷 기도하고 그 열매를 누리지 못하는 자가 됩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붙잡고 기도하는 한 해가 됩시다. 아멘.
첫댓글 기도는 영적 경영입니다. 영적 경영의 첫 번째 원칙은 기도하는 것 자체입니다. 두 번째 원칙은 나를 바꾸는 기도입니다. 기도하면 '겟세마네의 기도'처럼, '한나의 기도'처럼 내가 바뀝니다. 세 번째 원칙은 하나님의 뜻(말씀)을 좇는 기도입니다. 이 보다 더 큰 역사와 능력이 있겠습니까?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