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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이
김 문 수
사나이는 주소, 성명, 성별, 연령 등을 차례로 물어가며 서류에다 적어넣은 다음 험험 하고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는 또다시 질문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직업은?”
“조그만 섬마을의 촌장입니다.”
“마을의 가구 수는?”
“한 팔십 가구 됩니다.”
“정확한 숫자를 대!”
사나이의 언성이 갑작스레 높아졌으므로 그에 따라 촌장의 얼굴도 한층 더 짙은 긴장의 빛을 띠게 되었다. 그러한 긴장 때문인지 촌장의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는 채로 열려질 생각도 않고 있었다.
“어서 정확한 숫자를 대란 말이야. 촌장이라는 작자가 머저리같이 자기 마을의 가구 수도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다니.”
사나이의 경멸에 가득 찬 한마디였다.
“일흔여덟 가굽니다. 정확하게…….”
촌장의 얘기를 듣기가 무섭게 사나이는 무엇인가를 서류에다 분주하게 기입하며 계속해서,
“섬의 특징은?”
하고 물었다. 그러나 잔뜩 굳어져 있는 촌장의 입에서는 이렇다할 대답이 나오질 않았다.
“섬의 특징이 뭐냐고 물었잖아!”
“글쎄요, 어업과 농업을 겸해서 한다는 것도 특징이랄 수가 있는 것인지요.”
“도대체 이런 머저리 같은 새끼가 어떻게 촌장을 지내먹을까?”
“……?”
“네놈들 마을의 특징은 고양이가 득시글거리고 있다는 거야. 이제 네놈들 마을의 특징이 무엇인지 알겠어?”
사나이는 들고 있던 펜대를 서류 위에다 아무렇게나 휙 던져놓고는 의자 등받이에 잔뜩 기대며 한바탕 지루한 하품을 문 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피우는 것이었다.
“이제 알았느냔 말이야, 네놈들 마을의 특징을!”
“네, 알았습니다.”
촌장은 홍당무 얼굴이 되어 아주 부끄러운 듯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기네 마을에 한 번도 와본 일조차 없을 이 사나이도 알고 있는 사실을, 마을의 토박이인 자기 입으로 대답치 못했음이 그로서는 심히 부끄러웠던 것이다.
사나이의 얼굴에 야릇한 웃음기가 떠올랐다. 그는 입에 물린 담배를 뽑아 재떨이의 홈이 패인 곳에다 끼워놓고는 테이블 왼쪽에 붙박이로 장치되어 있는 녹음기의 스위치를 올렸다. 그리고는 “촌장님네 마을에 무슨 특징이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 말씀하시지요.” 하고, 갑작스레 경어를 사용해 정중한 질문을 던졌다. 때문에 촌장은 어안이 벙벙해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아, 어서 대답해보세요. 그 섬 마을의 특징이 무엇인지 말입니다.”
사나이가 참을성 있는 태도로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촌장은 더 이상 대답을 망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우리 마을의 특징 이라면 고양이가 많다는 것이지요.” 하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마을에 있는 고양이는 모두 몇 마리나 됩니까?”
사나이의 질문은 깍듯한 경어로 계속되고 있었다. 때문에 촌장은 속으로 이처럼 싹싹한 사람이 아까는 왜 그렇게 사람 잡아먹을 기세로 야단을 떨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그런 생각은 사나이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늦어지게 만들었다. 그러자 사나이는 금방 태도를 일변시켜 피우던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재떨이에다 눌러 끄고는 녹음기의 스위치를 내려, 딱 꺼버렸다. 그리고 그는 재빨리 손목을 재켜 시간을 읽고나서 연속동작으로 이번에는 테이블 오른쪽 끝에 놓여 있는 인터폰을 들고 7번 단추를 눌렀다.
“휴게실이지?”
사나이가 물었다.
“네, 뭘 배달해드릴까요?”
카랑카랑한 여자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미안, 주문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텔레비 권투중계가 정확히 몇 분 후에 있을 것인지 그것이 알고 싶을 따름이야.”
“정확하게 이십오분 후에 있어요.”
“고마워.”
“천만에요.”
통화를 끝낸 사나이는 다시 손목을 재켜 시간을 보았다. 앞으로 25분 후에 시침과 분침이 가 있을 위치를 머릿속에다 확실히 새겨두기 위함이었다.
사나이는 시계의 문자판에 꽂고 있던 시선을 뽑아 촌장의 얼굴로 옮겼다. 그리고는,
“나는 공연한 시간 낭비를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라구. 내 얘기를 알아듣겠 어?”
라고 버럭 소리질렀다. 사나이는 계속해 입을 놀렸다.
“내가 묻는 얘기에 빨리 빨리 대답을 하도록, 알겠지?”
촌장은 그러겠노라는 대답을 보냈다. 그러자 그는 즉시 녹음기의 스위치를 올리고 또다시 정중한 목소리로 경어를 사용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촌장님이시니까, 마을에 고양이가 모두 몇 마리가 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시겠지요?”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고 있지 못하지만…….”
“그러면 어림잡아서 말씀해주시지요.”
“어림잡아 백 마리는 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한 집에 한 마리씩은 다 있고, 두 마리 혹은 세 마리까지도 기르고 있는 집이 허다하니까요. 그러니까 백 마리라는 숫자가 꼭 들어맞는 숫자가 아니긴 하지만 거의 정확한 숫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겠군요. 그런데 그 고양이를 맨 처음에 기르기 시작한 것은 도대체 누구인가요? 촌장님께서 그러셨나요?”
“아닙니다. 제가 아닙니다.”
촌장의 대답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사나이는 잽싼 동작으로 돌아가는 녹음테이프를 멈추게 했다. 그리고는 자기의 질문을 부정 한 촌장의 답변이 녹음된 부분을 찌이익하는 기분 나쁜 기계음을 내게 하여 지워버리고 말았다. 그리곤 촌장에게 느닷없이 주먹뺨을 올려붙였다.
“이 새꺄! 조금 전에 내가 뭐랬어.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이 뭐라고 했냐 말야!”
사나이는 부릅뜬 눈으로 촌장의 겁에 질린 모습을 잔뜩 노려보았다.
“시간 낭비를 제일 싫어한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째서 시간 낭비를 하게 만드는 거야!”
“제가 무슨……?”
“왜 쓸데없이 거짓말을 시켜서 자꾸만 아까운 시간을 까먹게 만드냐 말야!”
“제가 거짓말을 시켰다구요?”
촌장의 이러한 반문에 사나이는 대답 대신 아까의 반대쪽 뺨에다 주먹 선물을 안겼다. 순간, 촌장은 몸에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리고 그는 곧 중심을 잡았으나 마치 넋나간 사람처럼 눈에 초점을 잃고 있었다.
사나이는 인터폰의 셋째 번 단추를 늘렀다. 그리고는 “필름 G―K를!”이라고 보이지 않는 어느 곳의, 보이지 않는 누구에겐가 명령조로 말한 후 수화기를 요란스레 내려놓았는데 그 행동만으로도 충분히 촌장을 겁에 떨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나이가 수화기를 요란스레 내려놓는 그 동작이 신호가 된 듯 실내는 그와 동시에 암흑의 세계로 뒤바뀌고 말았다.
“이 세상엔 네깐놈의 거짓말을 곧이들을 바보가 없어!”
사나이의 날선 목소리가 어둠을 헤집고 촌장의 고막으로 밀려들었다. 그러나 촌장은 무어라고 대꾸할 말이 없었다.
‘도대체 내가 무슨 거짓말을 했단 말입니까? 공연히 생사람 잡는 소리 마십시오.’
생각 같아서는 이렇게 쏘아대고 싶었으나 그것은 그저 생각일 따름이었다. 그런데 촌장의 이러한 속마음을 꿰뚫고 있기라도 한 듯,
“내가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있다고 생각되나?”
사나이는 이렇게 내뱉았다. 촌장은 사나이의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상하게도 뱀이 연상되었고 그로 인하여 자신도 모르게 심한 전율을 느끼게 되었다.
바로 그때였다. 강렬한 한 묶음의 빛다발이 한쪽 벽을 뚫고 들어와 맞은쪽 벽에 가 꽂혔다. 길게 가로눕혀진 원뿔 모양의 빛다발로 보였던 그것은 맞은쪽의 벽면에 투사된 빛의 모형으로, 길디 긴 네모뿔 모형으로 눕혀져 있는 빛다발이었음을 알 수가 있었다. 벽면에 투사된 빛이 이루어놓은 모형은 꼭 짧은 쪽을 세로로 취한 전지(全紙) 한 장의 크기만한 직사각형이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네가 얼마나 뻔뻔스런 거짓말쟁이인지를 저 영사막이 증명 해줄 것이다.”
사나이의 이 한마디가 촌장의 마음을 무거운 연판처럼 짓눌러댔다.
사나이는 계속해서 내뱉았다.
“자아, 영사막을 봐라!”
촌장의 시선은 사나이의 지시에 의해 움직였다. 그때 영사막 위로는 뒤집힌 아라비아 숫자가 9 에서 0 까지 역순으로 차례차례 비치며 사라졌는데, 그것은 마치 죽기 직전의 나방이 안간힘을 다하여 발악하는 퍼득임처럼 보였다. 그리고 곧이어, 함석지붕 위를 줄기차게 때리는 빗소리를 멀리서 듣는 것과 흡사한 소리를 내며 영사막에 화면이 비쳐지기 시작했는데, 얼마동안 그 화면에 눈을 팔고 있던 촌장은 난데없는 불침이라도 맞았을 때처럼 소스라치게 놀랐던 것이다.
“자아, 똑똑히 봐두라구!”
“…….”
“저쪽에 부동자세로 서 있는 게 바로 네놈의 모습이 아니고 뭐야! 그렇지? 분명 네놈의 모습이지?”
“네.”
촌장은 분명한 대답과 함께 크게 고개까지 끄덕여보였다.
촌장의 모습이 담긴 화면은 약 2분쯤 계속되다가 끝났고, 그 뒤로 부터 펼쳐지기 시작한 것은 전혀 촌장과 관계가 없는 화면이었는데, 그런 화면들이 시작되자 사나이는 인터폰으로 누구에겐가 뭐라고 지시했고, 거의 그와 동시에 실내의 상층부를 관통하고 있던 길다란 네모뿔의 빛다발이 사라지며 실내를 다시 암흑의 세계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어둠은 그리 오래 게속되지를 않았다. 실내는 이내 눈부신 밝음으로 가득 찼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공연한 일로 시간을 허비하는 걸 죽어라고 못 참는 성질이야.”
사나이는 촌장을 곱지 않는 눈으로 쏘아보며 말했다. 그리고는,
“이제부터 내가 묻는 말에 솔직히, 그리고 빨리 대답을 해야 해.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때는 또 다른 방법이 있으니까.”
라고 위험적 인 한마디를 내뱉았다.
“…….”
“그 마을에서 고양이를 맨 첨에 기른 사람이 도대체 누구야!”
촌장은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사나이가 요구하는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나이는 촌장에게, 마을에 고양이를 제일 먼저 들여와 기르기 시작한 사람이 바로 촌장 자신이라는 자백을 받고 싶은 것이었다. 그러나 촌장으로서는 사실이 아닌 거짓 자백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
“아까 영사막에 비쳤던 새낀 도대체 어떤 놈이야?”
“…… 그건 접니다만…….”
“그렇다면 그것은 네놈이 무엇을 하는 장면이 촬영된 것인가?”
“훈장을 받는 장면이 촬영된 것입니다.”
“무슨 훈장이라는 것까지 말하라구!”
“마을을 쥐없는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었다고 해서 받은 공로훈장입니다.”
“쥐를 멸종시킨 방법은?”
“마을에 있던 고양이들이 멸종시킨 겁니다.”
촌장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눈두덩에 사나이의 잽싼 주먹이 날아와 번쩍 튀기는 불꽃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내 질문에 대한 답변은 간단하잖느냐 말야 ! 우리 마을에 고양이를 들여와 기른 것은 바로 접니다라는 단 한마디의 대답이면 족하잖느냐 말야!”
사나이의 매운 주먹이 또 한 번 촌장의 안면에 날아가 붙었다.
“정말 억울합니다.”
촌장은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 이 새꺄!”
이번에는 사나이의 구둣부리가 촌장의 정강이에 가 달라붙었다.
“사실 전 그때에 훈장을 받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 말했습니다. 우리 마을에서 쥐의 씨가 마르게 된 것은 고양이 덕분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리자 그들은 말했어요. 쥐의 씨를 말린 공로자가 고양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고양이 목에다 훈장을 달아줄 수야 없잖느냐구요. 그러면서 그들은 제게 말했습니다. 고양이를 대신 해서 훈장을 받을 사람을 물색해보라구요. 그래서 전 할 수 없이 온 마을을 몇 바퀴씩이나 돌면서 알아봤어요. 그러나 고양이를 대신해서 훈장을 받겠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럴 사람이 나타나질 않는다구요.”
“잠깐! 그렇다면 아무도 고양이를 일부러 갖다 기르지도 않았는데 고양이가 마을에 제발로 걸어들어왔단 말이지?”
“누가 마을에다 일부러 쥐를 갖다 기르지 않았는데도 제놈들이 먹고 살 것이 있으니까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쥐가 번식되었듯이, 고양이도 제놈들의 잡아먹을 쥐가 있으니까 자연히 그렇게 많은 수효로 번식된 것이 아닐까요? 하기야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한 쌍의 쥐가, 아니면 새끼를 밴 한 암놈의 쥐가 배에 실려오는 곡식가마나 짐짝 같은 것들 속에 숨어 있다가 팔자에도 없는 섬마을에까지 와서 수없는 자손을 퍼뜨리게까지 된 것이고, 고양이 또한 그런 경로로 이 섬에까지 흘러들어오게 된 것 인데 와보니 자기네의 사냥감인 쥐떼가 무진장 있어 부지런히 새끼를 치게 된 것이라고요.”
사나이는 촌장의 긴 이야기를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수가 없다는 듯 급히 그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이 새꺄! 거짓말 좀 작작 시켜!”
라고 욕설을 끌어부었다.
“정말로 정말입니다.”
촌장은 겁먹은 눈길로 사나이의 양쪽 손을 계속해서 살피며 이렇게 말했다. 그 잽싼 주먹질이 언제 자신의 면상에 와 달라붙을지 몰라 겁이 났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놈들이 네게다 훈장을 달아주었냐 말야!”
“그들은 말했습니다. 백성들은 누구나 다 직접 간접으로 쥐로 인해 자신의 건강을 위협받고 있으며 또 재산상으로도 적잖은 피해를 입고 있다고 말입니다. 만약에 하룻밤 사이에 나라 안에 있는 모든 쥐를 일시에 없앨 수만 있다면 우리 나라는 다른 나라에서 양곡을 수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촌장은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하여 얘기를 중도에서 잘랐다. 그러자 눈치빠른 사나이가 처음으로 촌장에게 인정을 베풀어 담배를 권했다. 촌장은 담배연기를 깊숙이 빨아들였다간 시원하게 내뿜으며 끊었던 얘기를 다시 잇기 시작했다.
“고맙습니다……그들은 또 이런 얘기도 했습니다. 쥐의 수명은 이 년에서 삼 년이지만 그 놈들은 매달 새끼를 낳을 수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새끼를 밴 지 이십 일 만이면 낳게 되는데 한 배에 여섯 마리에서 아흡 마리를 낳는 게 보통이고, 먹을 것이 풍부하다든지 할 경우 열아흡 마리까지도 낳아서 기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쥐들은 조건만 좋으면 한 쌍이 삼 년 동안에 삼 억 오 천만 마리의 자손을 퍼뜨릴 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나라가 쥐의 천국이 되기 전에 쥐를 잡아야 하며 이렇게 시급한 판국이니, 전국에서 유일하게 쥐없는 마을이 우리 마을이어서, 우리 마을을 전국적으로 ‘쥐없는 마을, 쥐없는 살기 좋은 마을’로 널리 선전해야 하고 그러자니까 자연히 ‘쥐없는 살기 좋은 마을’ 로 만든 사람을 하나 만들어 훈장을 주고 또 그 얘기를 신문으로, 방송으로, 텔레비로 전국에 널리 알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촌장인 제가 쥐잡이에 아무런 공로도 없으면서 마을을 대표해서 그 훈장을 받게 된 것입니다. 마치 열등생이 우등상을 받은 거나 조금도 다름이 없는, 그야말로 얼굴 달아오르는 노롯이었지만 그게 모두 나라를 위해서 하는 노릇이라기에 그냥 받아둔 것인데…….
“그만!”
사나이는 촌장의 얘기를 중도에서 끊고는 녹음기에 스위치를 넣어 작동시켰다. 그리고 그는 또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경어를 사용한 정중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니까 결국은, 촌장님께서 고양이를 길러 쥐의 멸종에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훈장까지 받은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쥐를 없앨 목적으로 고양이를 기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나이는 녹음테이프를 거슬러 감았다. 그리고 녹음된 부분을 틀어 이어폰을 귀에 꽃아 듣고 있다가 촌장이 자기의 물음에 그렇습니다라고 긍정한 대목이 나오자 그 부분만을 살리고 그 이하는 깨끗이 지워버렸다. 그러나 촌장은 녹음기의 작동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사나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사나이는 자기가 의도했던 대로 녹음된 테이프가 깨끗이 지워졌는가를 확인한 다음, 다시 녹음 장치를 해놓고 입을 열었다.
“쥐로 인한 농작물의 피해는 어땠어요?”
“우리 마을 전체 경지면적 이백십 에이커에서 나오는 곡식 중에서 줄잡아 연간 칠천이백 리터쯤 손실을 보아왔는데 지금은 그러한 피해가 완전히 없어졌으며 또 상당한 피해를 보아왔던 감자나 고구마 혹은 옥수수 같은 것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현재의 상태입니다:”
“촌장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마을에 고양이를 기르지 않는 집이 한 집도 없다고 하셨지요?”
“네, 그렇게 말씀드렸지요. 그러나 따지고 보면 마을사람들이 고양이를 기른다기보다 고양이들이 각 가정으로 찾아든 겁니다. 마치 ‘우리가 당신네 목숨과 재산을 노리는 쥐들을 전멸시켜 이제는 잡아먹으려 해도 잡아먹을 쥐가 없게 되었으니, 당신네 사람들이 이제부터는 우리를 먹여살려야 한다’ 는 투로 고양이들이 일제히 각 가정으로 파고든 것입니다.”
“똑똑한 체하지 마.”
사나이는 밑도끝도 없는 이런 한마디를 불쑥 내뱉고는 계속해서,
“나도 쥐에 관해서 알 만큼 알고 있어. 쥐란 놈들이 우리네 인간을 제외하고는 이 세상에서 아주 놀랍게도 현명하고 그리고 파괴적이고 사악하며 적응력이 강한 생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단 말이야. 또 쥐새끼들은 놀라운 생존본능에 의해서 얼음판뿐인 극지에서도 또 극심하게 뜨거운 사막에서도 우리네 인간들보다 훨씬 잘 적응해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런 독종들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놈들에 의해서 전인류가 전멸당할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거야. 사실, 여태까지 쥐새끼들이 옮긴 여러 병에 의해서 죽은 사람의 수가 역사상의 모든 전쟁에 의한 전사자들을 모두 합한 것보다도 많은 숫자가 된다는 거야. 나도 쥐새끼들이 이렇게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
이렇게 말했다. 멀뚱멀뚱한 눈으로 사나이의 표정을 살펴가며 그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촌장은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촌장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째서 내가 이곳에 와 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쥐새끼가 옮기는 병의 종류는 삼십오 종이나 되고 그 중에서도 제일 무서운 병이 흑사병인데 옛날 유럽에 그 병이 나돌았을 땐 네 사람 중에 한 사람 꼴이 죽었을 정도로 그 피해가 여간 극심했던 것이 아니었단 말야.”
촌장은 사나이의 입술이 잠시 쉬는 틈을 타서 또다시,
“그렇다면 저의 죄는 도대체 뭡니까?”
이렇게 물었다. 그러나 사나이는 역시 동문서답이었다.
“나는 알고 있어. 인도 같은 나라에서는 쥐떼에 의한 곡식의 피해가 들판에서 이십오 프로가 되며 추수하여 저장한 다음은 곳간에서 삼십 프로의 피해를 입게 된다는 거야. 그러니까 농사를 지으면 사람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십오 프로, 쥐새끼 입에 들어가는 것이 오십오 프로라는 얘기야.”
“저는 지금 왜 이곳에 와 있는 겁니까?”
촌장의 목소리는 한충 더 초조로움에 들떠 있었다. 그제야 사나이는 촌장의 목소리가 귀에 들렸는지,
“뭐라고?”
하는 반문을 던졌다.
“제가 왜 이곳에 와 있게 되었는지 그 까닭을 알고 싶습니다.”
사나이는 촌장의 그 질문을 묵살해버렸다. 그리고 그는,
“촌장님네 섬마을에서 오 킬로쯤 떨어진 곳에 있는 무인도 산호섬을 촌장님은 알고 계십니까?”
하고 오히려 엉뚱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사나이의 입에서 이런 질문이 떨어지자 촌장은 더 이상 자신의 궁금증을 풀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전혀 공연한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무인도 산호섬을 알고 계시냐고 물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에 이상한 쥐떼가 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겠군요.”
“이상한 쥐떼라뇨?”
“그런 얘길 못 들었단 말입니까? 천연기념 동물로 지정된 쥐 얘기를…….”
“듣느니 처음입니다.”
사나이는 또 녹음기의 스위치를 내렸다. 그리고는 버튼을 눌러 녹음테이프를 얼마쯤 되감아 이어폰을 통해 듣다가 방금 촌장의 입에서 홀러나온 “듣느니 처음”이라는 대답을 몽땅 지워버렸다. 그리고는 시뻘겋게 상기된 얼굴에 도끼눈을 만들어 촌장을 노려보고,
“이 새꺄! 시간 낭비하지 말라는 얘기, 지금 몇 번째인지 알기나 해?”
라고 소리쳤다. 그 소리가 쩌엉, 천장을 울렸다.
촌장은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정말입니다.”라고 빌듯이 한마디 하고 나서 차근차근 얘기를 이어갔다.
“그 산호섬에 동물이 살고 있다는 얘기는 정말로 듣느니 처음입니다. 저도 한 번 가봐서 알고는 있지만…….”
“가만!”
사나이는 다급하게 촌장의 얘기를 잘랐다. 그리고 서둘러 녹음기를 작동시키고나서,
“그 섬엔 가보셨군요?”
라고 촌장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가보았지요. 그곳은 풀도 나무도 아무것도 없는 조그마한 돌섬입니다. 그 섬에 돌 이외에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피로한 날개죽지를 쉬기 위하여 잠시 앉았다가 떠나곤 했던 이름모를 바닷새들이 깔겨놓은 새똥밖에는 아무것도 다른 것이라곤 없습니다. 개미 한 마리, 파리 한 마리, 모기 한 마리 없는 그런 섬 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천연기념 동물이 살고 있다니, 정말로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내 말이 새빨간 거짓이란 얘기야?”
“…….”
“내 얘기가 거짓이란 말이로군. 좋아!”
“거, 거짓말이라는 것이 아니고 제가 알고 있기로는 그 섬이 그렇다는, 그저 그런 섬엔 아무런 생물도 없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렇습니다.”
또다시 사나이의 구둣부리가 촌장의 정강이에 달라붙으며 비명을 자아내게 했다.
“생물이 살고 있다는 얘긴 듣지도 못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다시 사나이의 구둣부리가 촌장을 심하게 괴롭혔다.
“아까 내 입에서 나온 이상한 쥐 얘기도 듣지 못했다고 뻗댈 참이로군!”
사나이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서 꺼두었던 녹음기의 스위치를 울렸다.
사나이는 입을 열었다.
“천연기념 동물인 쥐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는 촌장님의 말씀은 거짓입니다. 그렇지요, 촌장님?”
촌장의 눈길은 반사적으로 사나이의 구둣부리에 가 매달렸고, 그의 입에선 사나이의 말에 긍정하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사나이의 입꼬리에 이상 야릇한 웃음이 매달렸다. 사나이는 손목을 재켜 시간을 읽었다. 그리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꼭 십 분이 남았군그래. 이제 우리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맙시다'’라고 중얼거리고 나서 천연기념 동물이라는 그 이상한 쥐에 관한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그는 그 얘기가 시작되기 전에 ‘촌장도 이미 다 알고 있는 얘기’라고 몇 번이나 되풀이하여 못을 박았다.
“확실히 언제부턴지는 모르지만 그곳에 오래 전부터 한 떼의 쥐가 살고 있었지. 그런데 그 쥐들은 다른 데는 다 여느 쥐들과 똑같이 생겼지만 꼬리만은 달랐어. 꼬리에 털이 없고 색깔도 회색이 아닌 분홍색이었어. 그 섬에 아무런 먹을 것이 없다는 얘기는 맞는 얘기야. 그러면 그런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는 섬에서 그 쥐들은 무엇을 먹고 살았느냐가 문제지. 정말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인 거야. 바로 그것 때문에 천연기념 동물로 지정이 된 것이란 말이야. 바다면에 닿은 산호초 끝에 자리잡고 앉은 쥐들은 꼬리를 바닷물 속에 담그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엉덩짝을 바다 쪽으로 두고 말이야. 그러니까 언뜻 보면 마치 홰에 나란히 앉은 새들의 꼬락서니라고나 할지, 어쨌든 그런 자세로 참을성있게 계속 앉아 있다가 그 중에 한두 놈이 느닷없이 일 미터쯤 되는 높이로 휙 뛰어올랐다간 땅바닥 위로 떨어지며 나뒹구는 건데 그렇게 공중제비를 한 쥐의 분홍색 꼬리에는 으레 게가 한 마리씩 붙어 있게 마련이지 뭐야. 쥐들은 제 꼬리를 낚시삼아 게낚시를 하는 거야. 그리고 자기가 낚은 게를 다 먹어치우면 또다시 바닷물에 꼬릴 담그고 앉아서 게가 제 꼬리를 물기만 기다리고 있는 거야. 이렇게 매일 꼬리를 물 속에 담그고 있으니 꼬리에 털이 붙어 있을 수가 없는 거야. 그러니 자연 꼬리의 색이 분홍색 일 수밖에.”
사나이의 얘기를 듣고 있던 촌장은 별안간 미친 사람처럼 요란한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그는 사나이의 그 허황된 얘기가 조금도 우습질 않았다. 얘기 자체가 너무나도 허황된 것이어서 전혀 웃음을 자아내게끔 하질 못했다. 그러나 그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웃지 않으면, 전부터 알고 있는 얘기여서 웃지 않는 것이 아니냐고 그렇게 의심을 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약아빠진 쥐새끼기로서니…….”
촌장은 배를 움켜쥐고 계속해서 억지로 꾸며내는 야단스런 웃음을 내리쏟았다. 그런데 그러고 있는 촌장의 입에 벼락 같은 사나이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그 바람에 촌장의 입에서 쏟아지던 폭포 같은 웃음이 뚝 멈췄다. 그러나 그의 눈엔 사나이에게 의심을 살까 싶어 꾸민 웃음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사나이는 그러한 촌장의 눈에다 대고,
“이 새꺄! 네놈 마을의 고양이 중에서 어떤 놈들이, 네놈 마을에 있는 쥐를 다 잡아먹은 뒤 더 잡아먹을 쥐가 없게 되니까 썰물 때에 물결을 타고 헤엄쳐 건너가서는 그 천연기념 동물로 보호받고 있는 쥐들을 모조리 잡아먹고는 밀물 때에 다시 물결을 타고 돌아왔단 말이야. 바꿔 말하면 네놈이 기른 고양이가 그 희귀한 천연기념 동물을 멸종시킨 거란 말이야. 그런데도 웃음이 나오냔 말이야, 이 새꺄!”
사나이의 구둣부리가 촌장으로 하여금 또다시 비명을 울리게 만들었다.
“뿐만이 아니야. 네놈이 기른 고양이는 우리 나라에만 있는, 그것도 네놈이 살고 있는 그 섬에만 있는 희귀조(稀貴鳥)까지도 멸종시켰단 말이야.”
“억울합니다. 그 새가 무슨 샌지는 모르지만 또다시 그런 누명까지 쓰게 되다니…….”
“황취조(黃嘴鳥)라는 새야. 그래도 그 아가리에서 억울하다는 소리가 나올까? 아까 얘기한 산호도의 그 적미서(赤尾鼠)도 천연기념 동물로 지정되어 보호해야만 하는 진귀한 쥐지만 이 황취조 역시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보호해야만 하는 진귀한 새였단 말이야. 이 새는 지난 겨울에 네놈들 섬에서 그 자취를 감춘 거야.”
“그런데 그것이 어째서 우리 마을의 고양이 탓이란 말입니까?”
“증거를 대란 말이지?”
사나이는 코웃음과 함께 이런 한마디를 내뱉고는 책상서랍을 열어 녹음테이프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녹음기에 있던 것과 바꿔 끼우고 틀었다. 그러자 곧 그 테이프는 굵다란 중년남자의 쉰 듯한 목소리를 토해놓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께선 이 섬마을에서 얼마나 사셨습니까?”
“내 나이 여든 하나니까 금년들어 꼭 팔십 년을 살아온 셈이지요.”
“그런데 할아버지께선 이 마을에서 노랗고 긴 부리를 가진 새를 보신 일이 있으신지요? 이 그림과 같이 생긴 새 말입니다.”
“보았지요.”
늙은 목소리가 촌장의 고막을 울렸을 때 그는 극심한 낭패감과 함께 묘한 배반감까지도 느꼈던 것이다.
‘이 대장장이 할아범아, 도대체 그런 새를 어디서 보았단 말인가?’
촌장은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그 늙은 목소리의 주인공인 대장장이 영감이 엎에 있다면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따지고 싶었다.
“혹, 마을에서 기르는 고양이들이 이런 새들을 낚아채는 것을 보신 적은 없으신지요?”
촌장은 손에 땀을 쥐고, 다음에 풀려나올 얘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영감님, 제발 망령일랑 부리지 말아주십시오,라고 속으로 간절하게 빌었다.
“고양이들이 가끔 산새나 꿩, 또 어떤 때는 집에서 기르는 병아리도 낚아채 긴 하지 만서도…….”
그렇지,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냥 산새일 뿐이고, 어디까지나 꿩일 뿐이고, 어디까지나 병아리일 뿐이라고 촌장은 휴우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짧은 동안의 일이었다. 또다시 그의 가슴으로 싸늘한 바람이 불어닥치기 시작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지금 말씀하신 그 산새라는 새가 이 그림과 같이 생긴 황취조가 아닌지, 이 그림을 자세히 보고 말씀해주십시오.”
“…….”
“부리가 이렇게 길지 않던가요?”
“길었지요!”
“색은 노랗고요?”
“……노랗게 보였지요.”
“그러면 이 황취조가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언제쯤 누구네 고양이가 이련 새를 낚아챘는지 말씀해주세요.”
촌장은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는 이제 꼼짝없이 이곳에서 무슨 일인가를 당하게 되고야 만다고 생각되었다. 비록 그 짓이 무슨 일인지 자세하게 알 수는 없지만 소름이 끼치는 끔찍한 일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촌장의 눈에는 한없는 시름이 담겨 있었다.
“글쎄, 정확한 날짜는 기억에 없지만서도 지난 겨울인 것만은 틀림없지요. 눈이 아주 많이 내린 날이었어요.”
절망감만이 가슴에 가득 차 있는 촌장은 이제 더 이상 대장장이 영감의 얘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촌장은 생각했다. 눈 깜짝할 순간에 영감의 목소리가, 영감의 목소리를 듣는 자신의 귀가, 앞에 늑대처럼 도사리고 앉아 있는 사나이가, 이 도살장 같이 음험한 방이·…·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연기처럼, 물거품처럼 아무런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렸으면 싶었다. 그는 또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런데요?”
쉰 듯한 중년사내의 목소리가 대장장이에게 이야기의 뒤를 재촉하고 있었다.
“눈밭 위로 웬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지요. 맨 첨에는 삵인지 알았어요. 그러나 자세히 보니 고양이었어요.”
“누구네 고양이였나요?”
“뉘집 고양인지는 모르지만 삵으로 잘못 볼 만큼 아주 커다란 고양이었다우. 입에 뭔가를 물고 있었어요. 나는 생각했지요. 저녀석이 또 누구네 병아리를 훔쳤구나 하고요. 그래 소리를 치며 후렸지요. 그놈은 별안간 질러댄 내 고함 소리에 놀라 혼이 나갔는지 입에 물고 있던 것을 버리고 줄행 랑을 쳤어요. 그래 그놈이 떨구고 간 것을 주워봤지요.”
“그랬더니 그것이 바로 이 그림과 똑같이 생 긴 황취조의 시체였군요. 그렇지요? 제 말대로지요?”
“그렇다우.”
“그래 결국은 그놈이 누구네 고양이었는지는 끝까지 밝혀낼 수가 없었군요.”
“그렇다우, 젊은이. 우리 마음을 고양이들은 모두 한배이기 때문에 어느 놈이나 똑같이 흰바탕에 검정 얼룩이어서, 아니 설사 그렇지 않다하더라도 워낙 그 수효가 많아서 어느 놈이 뉘집 놈인지 분간해낼 재주가 없다우.”
“할아버지 말씀 고마웠습니다. 자아,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녹음기에서 더 이상 녹음된 목소리가 풀려나오질 않자, 사나이는 스위치를 내리며,
“누구의 목소린지 알겠어?”
하고 피로에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촌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젊은 사람의 목소리는 알 수 없지만 노인네의 목소리는 알아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촌장도 사나이의 표정을 살피며 대답했다.
“어디 한번 대봐.”
“우리 마을 대장간 영감님 아닙니까?”
사나이는 촌장이 옳게 알아맞추었다는 시늉을 얼굴에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잠시 후,
“가족 사항은?”
이렇게 엉뚱한 질문을 해대는 것이었다.
“우리 내외하고 딸 하나, 아들 셋입니다.”
“나 개인적인 얘기지만 참으로 안됐소.”
사나이는 촌장에게 담배를 권하며 또다시 이렇게 알쏭달쏭한 한마디를 내뱉는 것이었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입니까?”
“죄에는 벌이라는 것이 따르는 것이니까…….”
“아니, 지금 그 말씀은 제가 죄인이라는 뜻이 아닙니까?”
사나이는 묵묵히 앉은 채 고개만·끄덕여댔다.
“아니, 도대체 무슨 죄를 졌단 말입니까?”
사리에서 발딱 일어선 촌장이 커다란 소리로 외쳤다.
“네가 네 죄를 인정했어!”
사나이의 목소리엔 칼날이 번뜩이고 있었다.
“제기 제 죄를 인정하다니요? 언제 그랬단 말입니까?”
“서둘지 마! 여기에 그것이 다 담겨져 있으니까.”
사나이는 손에 들고 있던 녹음테이프를 촌장의 얼굴에 가까이 갖다대며 몇 번인가 흔들어보이고 나서 그것을 녹음기에 끼워넣었다. 그 녹음테이프는 대장장이의 얘기가 담긴 테이프를 듣기 위해 잠시 빼놓았던 것이었다.
사나이의 검지가 스위치를 올리자 녹음테이프는 서서히 돌며 사나이와 촌장 사이에 벌어졌던 문답의 내용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촌장님 네 마을에 무슨 특징이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 말씀하시지요.”
“…….”
“자아, 어서 대답해보세요. 섬마을의 특징이 무엇인지 말입니다.”
“우리 마을의 특징이라면 고양이가 많다는 것이지요.”
“마을에 있는 고양이는 모두 몇 마리나 됩니까?”
“…….”
“촌장님이시니까, 마을에 고양이가 모두 몇 마리나 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시겠지요?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고 있지 못하지만·…·.”
“그러면 어림잡아 말씀해주시지요.”
“어림잡아 백 마리는 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한 집에 한 마리씩은 다 있고, 두 마리 혹은 세 마리까지도 기르고 있는 집이 허다하니까요. 그러니까 백 마리라는 숫자가 꼭 들어맞는 숫자가 아니긴 하지만 거의 정확한 숫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겠군요. 그런데 그 고양이를 맨 처음 기르기 시작한 것은 도대체 누구인가요? 촌장님께서 그러셨나요?”
“……."
“그러니까 결국은, 촌장님께서 고양이를 길러 쥐의 멸종에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훈장까지 받으신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쥐로 인한 농작물의 피해는 어땠어요?”
“우리 마을 전체 경지면적 이백십 에이커에서 나오는 곡식 중에서 줄잡아 연간 칠천이백 리터쯤 손실을 보아왔는데 지금은 그러한 피해가 완전히 없어졌으며 또 상당한 피해를 입어왔던 감자나 고구마 혹은 옥수수 같은 것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현재의 상태입니다.”
“촌장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마을엔 고양이를 기르지 않는 집이 한 집도 없다고 하셨지요?”
“네, 그렇게 말씀드렸지요.”
“촌장님네 tja마을에서 5 킬로쯤 떨어진 곳에 있는 무인도 산호섬을 촌장님도 알고 계십니까?”
"……."
“무인도 산호섬을 알고 계시냐고 물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에 이상한 쥐떼가 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겠군요?”
“이상한 쥐떼라뇨?”
“그런 얘길 못 들었단 말입니까? 천연기념 동물로 지정된 쥐 얘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 섬엔 가보셨군요?”
“가보았지요.”
“천연기념 동물인 쥐 애기를 들은 적이 없다는 촌장님의 말씀은 거짓입니다. 그렇지요, 촌장님?”
“그렇습니다.”
녹음이 된 부분은 전부 끝이 났다. 그러나 사나이는 거기에 잇대어 몇 가지를 더 녹음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촌장을 향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적미서와 황취조가 촌장님네 마을의 고양이에 의해서 멸종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촌장님을 모시고 몇 가지 여쭈어보았습니다. 여태까지 테이프를 통해서 들은 목소리가 나와 그리고 촌장님의 목소리라는 것을 부인 하시지는 않으시겠죠?”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와 선생님 사이에 오고간 여러 얘기들 중의 아주 적은 일부분이고 또 그 모든 얘기들이 뒤죽박죽이 되어 있습니다. 끝으로 분명하게 주장하고 싶은 것은 적미서나 황취조의 멸종이 진짜라 해도 그것은 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촌장의 얼굴은 어떤 굳은 결의가 엿보이는 그러한 표정이었으며 이렇게 긴 얘기를 하는 동안 조금만치도 동요되는 빛이 없었다. 그러나 그 긴 촌장의 마지막 얘기 중에서 녹음테이프에 담긴 것은 “부인하지 않습니다.”라는 그 한마디뿐이었다. 그것을 모르는 촌장은 계속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죄가 있다면 고양이에게 있겠지요.”
“고양이 대신 훈장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고양이에게 내릴 벌도 대신해서 받을 수 있는 사람이겠지.”
사나이는 이런 한마디를 불쑥 내뱉고는 밖으로 나가 그 방에 단 하나밖에 없는 철문을 철커덕 채워버렸다.
― 1978년
2016년 12월 29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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