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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몽상 별곡(夢想別曲)'
a, 동화 같았던 1년
2001년 여름, 첫 번째 까미노를 마친 뒤 책 작업에 몰두하며 1년여를 보낸 인야는,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심신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야만 했고, 무모하리만치 과감한 결단까지 내려야 했는데,
결론은 서울을 떠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불가피한 결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호구지책마저 걱정해야 할 불안하기 짝이 없던 행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인야는 2003년 초 서울을 떠나, 난생처음 한 시골 마을에서 사계절을 보내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곳에서의 시간은 인야의 삶에 뜻밖의 회복을 가져다주었다. 잃어버렸던 건강을 되찾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도시에서는 미처 알지 못했던 소중한 기억과 감각을 선물해주어 평생 간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홈페이지 운영은 계속되었고, 산골에서의 생활 역시 자연스럽게 많은 글로 남게 되었다.
그렇게 쌓여간 기록들은 어느새 한 시절의 체험을 하나의 소설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가칭 ‘몽상별곡(夢想別曲)’이라는 이름 또한 그 무렵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소설을 쓰겠다는 의지는 아닌, 그저 살아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축적된 글들이 다시 책 작업으로 이어진 하나의 흐름이었다.
다만 이 작업은 다른 일들에 밀려 오래도록 우선순위에서 멀어졌고, 10년 뒤인 2012년, 스페인과 모로코에 약 6개월 머무르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집필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에도 끝내 완성에 이르지는 못했고, 원고는 다시 오랫동안 손길이 닿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2020년부터 시작한 ‘인생 정리 작업’이 4년을 지나면서, 마침내 2003년의 시간을 정리하고 기록해야 할 차례가 돌아와서야... 이 작품을 마무리하는 동시에, 그해의 삶을 다시 채워넣는 마음으로 포털 사이트 연재 형식을 통해 끝맺을 수 있었다.
다만 이번 '몽상별곡'은 처음부터 3인칭 소설의 형식으로 구상되었기에, 그에 따라 실제의 시간과 경험을 바탕으로 하되, 보다 자유로운 소설적 형상화를 위해 일정한 허구화의 과정을 거치게 되었음을 미리 밝혀둔다.
2003년 초, 인야가 전북 임실군의 '옥정호' 호숫가 마을 '둔터니'에 자리를 잡으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그 집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었다.
(이하, 홈페이지 '독백'에 연재했던 내용을 그대로 가져온다.)
이 자리를 '몽상(夢想)'이라고 이름 지을 생각입니다.
거창하고 멋진 집이 아닌, 그저 한시적으로 살아갈 기회를 제공한 친구 소유의 옛집에 불과하지만, 어쩐지 이름을 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스페인에서 살 때 이름 붙였던 '침묵의 집'이나, 서울로 돌아와 새 아파트에 들어가면서 '내 자리'라고 이름 지은 것처럼. 내가 사는 동안은 내 집이나 다름없으니까요.
'무슨 이름으로 할까?' 며칠을 생각하다가, 친구가 이삿짐을 실어다 주어 그 차를 타고 오다 얘기 끝에,
"나는 몽상가(夢想家)일지도 몰라." 하다가 문득,
'그래! 바로, 그 이름이야!' 하고 정해버린 것입니다.
다만 '몽상'이란 단어의 뜻이 너무 부정적이라는 데, 약간의 망설임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국어사전에는 '터무니없다', '현실성이 없는 생각'이라는 식으로 나오던데......
글쎄요. 비록 현실성은 없어도, 뭔가 아름답고 재미있는 세계가 그 안에 있는 건 아닌가요?
그래서 나는 '몽상'에다 물음표 '?'를 달아볼 생각입니다.
'몽상(夢想)?'
몽상일까? 몽상이면 어때...... 하는 뜻이기도 하지요.
3 . 3 새벽
이름을 정한 인야는 곧 솟대를 깎기 시작했다.
새벽에 일어나 조각도를 꺼내 새 모형의 구멍을 넓히고 연결 부위를 좁히는 작업을 했다. 맑은 날이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솟대가 세워질 모습을 상상하며, 마음이 바빠지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솟대를 모른다며, 인야의 행동을 신기해했다.
그런데 이 둔터니 생활에서 인야를 가장 기쁘게 한 것은 뜻밖의 발견이었다. 집 뒤 언덕의 나무들이 모두 감나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제법 오래된 매화나무 두 그루가... 집 바로 뒤에서 눈을 움틔우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은 날이 좋았습니다.
구름 없는 맑은 날. 그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세워져 있을 솟대 생각에, 나는 바빠졌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조각도를 꺼내 솟대 새 모형의 구멍을 넓히고 연결 부위를 좁히는 작업을 했습니다.
한 시간쯤 파다 보니 엄지손가락 바닥이 얼얼하드라구요.
그래도 마침내 한 마리의 새는 하늘로 떴습니다.
이제 다른 가지에 또 한 마리의 새를 끼우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내가 그러고 있을 때... 한전에서 나와 앞 길가의 전선주를 갈아세우는 작업을 하던데,
나는 솟대를 판 기쁨으로 한전 직원들에게 커피 세 잔을 대접하기도 했습니다.
아, 파란 하늘에 새 한 마리가 떴어도...... 나는 행복하기만 했답니다.
3 . 10
그런데 이 둔터니 생활에서 인야를 가장 기쁘게 한 것은 뜻밖의 발견이었다.
집 뒤 언덕의 나무들이 모두 감나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제법 오래된 매화나무 두 그루가 눈을 움틔우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여기 夢想?엔 나를 반갑게 해주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집 뒤 언덕의 나무들이 모두 감나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제법 오래된 매화나무 두 그루가 눈을 움틔우고 있었던 겁니다.
'아, 매화 향기 가득한 집에서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면서, 갑자기 나는 부자가 된 느낌이 들던 것입니다.
1년 중 가장 먼저 피는 꽃 중의 하나인 매화가 필 준비를 하는 즈음에 이사를 왔으니, 그것 역시 아주 때를 잘 맞춘 것 아닙니까?
나는 여태까지의 고생은 다 날려버린 모습으로 기뻐하고 있습니다.
근데요, 사실, 난 매화 향이 어떤 것인 줄도 모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그런 향이 그윽한 기분이라는 겁니다.
3 . 10
그로부터 보름 쯤 뒤, 매화는 마침내 피었다. 그리고 그 향기가 먼저였다.
어느 날 아침 작업방에서 스케치북과 씨름을 하던 인야는, 낯설면서도 그윽한 향기가 코 주변을 맴도는 것을 느꼈다. 방문을 열어 살펴보아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러다 뒤에 있는 봉창을 열어보니, 커다란 매화나무 고목의 아래쪽 가지에 희끗희끗 꽃송이들이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아까부터 뭔가 이상한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습니다.
분명 낯선 향기였는데, 그윽한 것 같기도 하고 어떤 귀한 품격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한... 그런 향기였습니다.
처음엔 그림에 빠져 잊었었는데, 어쩐지 계속 그 냄새가 코 주변을 맴도는 것 같아 뒤에 있는 봉창을 열어보았지요.
그런데...... 아, 거기 커다란 매화나무 고목의 몇 가지에 희끗희끗 꽃송이들이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바로 거기서 풍겨 나오는 향기였던 겁니다.
아, 이럴 수가!......
뒤안 언덕에 막 피기 시작한 매화의 향이 흙집의 창호지 문틈으로 스며들던 냄새를 내가 고스란히 맡으면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이 나이 먹도록 매화 향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선인들의 삶을 묘사하는 책에서나 그런 일이 있는 것이라고, 나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며 살아왔던 것인데......
나무 옆을 지나는 것만으로도 코에 스며드는 그 향기는,
아,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자 아름다운 행복이었습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이 향기를 다 모아다가 소중한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조금씩 나눠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3 . 30
그리고 인야에게 또 하나의 뜻밖의 횡재가 찾아왔다.
이 마을의 터줏대감인 산장 아저씨와의 일이었다. 인야가 이사 온 뒤로 줄곧 냉랭하기 그지없던 이 양반이, 어느 날 갑자기 인야를 면사무소 나들이에 데려가더니, 돌아오는 길에 호수 건너편 노적봉 이야기가 나오자... 느닷없이 말했다.
"내 배 타고 가면 되잖여? 내가 빌려 줄팅게!"
오늘 이 마을의 터줏대감인 산장 아저씨와 면에 나들이를 가는 일이 나에게 벌어졌습니다. 이 마을에 이사 온 뒤로 줄곧 냉랭하기까지 하던 분하고요.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운암대교를 건너면서, 호수 건너편 삼각형의 산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응, 노적봉이라고 허는디......" 하시더니,
거기까지 가려면 호수를 빙 돌아 걸어서 가야 하는지 묻는 내 말에, 그 양반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말했습니다.
"내 배 타고 가면 되잖여? 내가 빌려 줄팅게!"
나는 깜짝 놀라 고개까지 돌려 그 양반을 바라보았습니다.
사실 지난 겨울, 그 양반이 자신의 아들과 개를 배에 태워 호수를 건너는 광경을 보고... 나는 몰래 사진까지 찍어두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저 양반이, 이 시골에서 살기는 하지만... 아주 멋드러진 삶을 즐길 줄도 아는구나......' 하고 감탄했었는데,
바로 그 광경 같은 생활을 나에게도 가능하게 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는......
아, 믿을 수 없는 꿈같은 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夢想?'으로 이사 온 뒤, 한 달 만에... 하늘에서 커다란 선물이 떨어진 거나 다름없는 일이었답니다.
3 . 26
그렇게 약속을 받은 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인야는 처음으로 배에 올랐다.
산장 아저씨는 노 젓는 법을 자상하게 시범 보여주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미련 없이 산장으로 올라가 버렸다.
인야 혼자 배를 맡겨두고.
산장 아저씨는 노 젓는 법을 자상하게 시범 보여주더니,
"혼자서 손이 익어야 혀." 하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미련 없이 산장으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홀로 남은 나는, 배가 빙빙 돌기도 하고, 앞으로 가기도 하다가 뒤로 가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혼자서 노 젓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쨌거나 물 위에 있으니, 기분이 너무 새롭다는 건 분명했습니다.
그렇게 모퉁이를 돌아 반장집에 가까워져서,
"정미야!" 하고 큰 소리로 불렀더니,
곧이어 아이가 뛰어나왔습니다.
"아저씨, 노를 저으면 뒤로 가야하는데, 아저씨는 앞으로 가요......"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시 산장 쪽으로 노를 저어가면서,
'夢想? 마당의 격이 보이나?' 하면서 보니, 축대와 지붕만 보일 뿐이었고, 언뜻 지붕 뒤의 매화가 아른거리기도 했습니다. '격, 나중엔...... 너도 태우고 노를 저을 거란다......'
오늘도 여전히 매화 향이 그윽하게 나를 맞아주니, 나는 속으로 외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생은 아름다워.(La vita e bella!!)' 스페인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배워왔던 말입니다.
3 . 31
인야가 둔터니 마을에 이사한 지 한 달 남짓 되면서, 개 한 마리가 생기는 일도 생겼다.
군산 형이 '그런 시골에 살려면 개라도 있어야 한다'며 한 마리를 가져왔던 것이다.
인야는 그 개에게 '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개가 마을에 익숙해질 무렵, 인야는 격을 데리고 배에 올랐다. 개는 처음엔 배에 타지 않으려고 했지만, 줄을 묶어 저어가니 전혀 무서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산장 아저씨의 아들과 개가 함께 배에 탄 그 풍경을 보았던 날부터, 인야가 꿈꿔왔던 장면이었다.
그리고 5월, 인야는 '夢想?'의 현판을 만들었다.
송판을 다듬어 '想夢'이라는 글자를 새기고, 먹으로 색을 입힌 뒤 조각칼로 테두리를 파내 조금 튀어나온 효과를 주었다.
아, 오늘 '夢想?'의 현판을 만들었습니다.
미국인 S 가족을 먼저 보내고 난 뒤, 친구가 평상을 고치느라 연장을 꺼내 놓고 일하는 틈에... 나도 전기 대패를 잠깐 사용하면서 그 일을 시작했습니다.
'夢想'이란 단어를 한자로 쓰는데, 그 옆에 '?(물음표)'를 붙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저 한자만을 내 손으로 그려 넣은 것이지요.
5 . 11
5월 17일, 김 선생님을 비롯한 몇몇이 모인 가운데 현판식이 치러졌다. 화선지로 덮어두었던 송판을 걷어내자 '想夢' 두 글자가 드러났고, 막걸리 한 잔이 돌았다.
'想夢(상몽)' .
내 '夢想?'에서 현판식을 했습니다.
형식적이나마 송판을 하얀 화선지로 덮어놓았다가, 김 선생님과 함께 그 종이만 떼어내면서 판을 안방 방문 위에 거는 것으로 '현판식'을 치른 것이지요.
그렇게 현판을 걸어 놓고 마당에서나 그 축대 아래 길에서 바라보니, 집의 느낌이 확 달라 보이는 것 같더라구요.
그러니까 그 게 없었을 땐, 그저 조금은 깔끔한 시골집이었는데, 현판을 달아놓으니... 확실히, 뭔가 품위가 느껴지더라는 겁니다. (그건 내 생각이었을 뿐일까요?)
이 집에 뭔가 생명을 부여한 것 같기도 하고, 허전했던 중요한 공간이 채워진 것 같기도 했고......
그렇게 해 놓고 보니, 흙집에 나무판 위 검은 먹 글씨도 썩 어울리는 조합이었습니다.
며칠 전 김 선생님께 전화로,
"선생님, 저 혼자서 송판을 걸어 놓는 걸로... 조용히 현판식을 할 생각입니다." 하고 말씀드렸더니,
"토요일인 17일 날로 하는 게 어때? 나도 축하해 주러 갈까?" 하시기에,
"축하요? 뭐, 이런 일로... 축하까지 합니까?" 했더니,
"아녀! 좋은 일은, 사람들허고 함께 허는 거여..." 하시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뭐 그래서 나쁠 것까지는 없겠드라구요.
그래서 전혀 계획에도 없던 공식적인(?) 행사가 됐던 거거든요.
현판을 붙여놓고 보니, 물론, 내가 봐도 괜찮았구요.
사실 나는, 현판 내용도 그렇고... 또 '내 집도 아닌데, 무슨 그런 일을 하느냐'는 사람들의 입방아(?)가 있을 것 같아... 처음엔 집 주인인 친구에게도 이런 얘긴 하지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 의외로 좋아서, 나도 놀란 일이 되었던 겁니다.
아무튼 '夢想?'은 현판(당호)이 붙은 집이 되었고,
그 안에 사는 나는 그 격에 맞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저 재미로 시작했던 일인데, 어째...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거 아닌가요?)
그러기 위해선 뭔가 알찬 삶을 살아가야겠지요......
(그런데 그것도 좀 이상하네요. 제목이 ‘夢想’이라......)
5 . 17
그렇게 인야는 '夢想?'의 ‘현판식’을 하느라 주말 이틀을 보냈다.
그리고 거기서 끝낸 게 아니라, 그런 다음, 인야는 김 선생님을 따라 정읍으로 가게 되었다.
어차피 군산 손님들이 김 선생님을 정읍에 데려다 주고 돌아가는 여정이었기에, 인야도 그 차에 합승했던 것이다.
물론 모처럼 인야도 선생님 댁에 가보고 싶기도 했지만, 얼마 전부터 전화 통화는 된 상태로... 언제 갈 기회를 한 번 잡아보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선생님 댁에 ‘구절초(하얀 들국화)’ 몇 뿌리를 캐다가 옮겨심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살다 보니, 인야 자신도 모르게 몸의 건강도 되찾을 수 있었던 게 가장 큰 수확일 수 있었다.
더 이상 술을 못 마실 상황에서 찾아갔던 곳이었는데, 어느새 몸이 제법 회복되어... 다시 술을 입에 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인야에겐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곳에 가기 전에 본인이 말했던 대로... 인야는, 언제 그런 날이 다시 올까 싶을 정도로... '夢想?' 에서 참 재미있게 살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그 한 덩어리로 '몽상 별곡(夢想別曲)' 이라는 소설까지 썼으며, 평생 그곳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