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봉에 오르는 법-오체투지
새벽 3시, 시꺼멓게 밀려오는 먹구름이 비를 뿌리고 강풍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나무들이 춤추는 꼭두새벽.
하나둘 모여 대청봉까지 어둠을 헤치고 오체투지를 하며 산을 오른다. 엎드리고 일어서기를 되풀이하는 힘든
길을 오직 하나 설악산을 유원지로 만들어 버릴 케이블카를 막아내겠다는 마음으로 오르는 길. 설악산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되새기며 다섯 발자국 나아가고 엎드려 설악산 어머니를 끌어안는다. 어머니
속살에 머리가 닿고 발끝까지 전율처럼 느껴지는 어머니의 마음을 받아안고 영원에 이를 것 같은 잠깐이
어머니와 나를 하나로 묶어 준다. 바람은 거칠게 불어 대고 흩뿌리는 빗속에 쉬는 것조차 편치 않은 산길에서
마음은 무겁고 부끄러웠다. 아이들과 뭇 생명이 더불어 살아야 할 설악산을 어떻게 함부로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존재인 자연을 이렇게 함부로 해도 된다는 말인가? 돈이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자본독재 시대의 광풍이 몰아쳐도 나아갈 수 있는 까닭은 설악산 어머니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깊은 사랑 때문이다. 하늘이 뿌옇게 열리고 나무들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아침, 대청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올라 거친 바람 속에 엎드리며 나아간다. 바람 속에서 모든 지체가 떨어대고 있는 나무의 마음은 어떤 걸까?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세상도 삶을 흔들어 대고 있지 않은가? 나무는 바람이 멈추면 고요하게 흔들리며 지낼 테지만
우리는 무엇을 멈추어야 평화로울 것인가? 춥다, 한여름의 추위라니, 높은 산에서 비에 젖은 옷을 입고 거친 바람
속에서 저체온증에 걸릴지 서로를 살피며 옷을 껴입고 추위를 견딘다. 설악산은 변화무쌍한 날씨에 따라 거칠 것 없이
이어지고 우리는 그 속에 들어 엎드려 나아간다. 온통 비구름에 휩싸인 대청봉에 이르러 구름은 쏜살같이 머리 위로
지나가고 흔들어 대는 바람에 서 있기조차 힘들다. 온몸이 날아갈 것 같은 큰바람 속에 정상비 앞에 낮은 몸으로
서로를 잡고 목이 터져라 함성을 지른다. “설악산 그대로!” “설악산 케이블카 취소하라!” 서로를 부둥켜안고 다짐한다.
지켜내리라! 끝끝내 지켜내리라!! 설악산 어머니를 지켜내리라!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땅으로 우리의 삶을
지켜주시도록 지켜내리라! 함께 오른 동지들! 마음 걱정으로 애써주신 동지들! 늘 함께여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가 투쟁을 멈추지 않는 한 설악산에 케이블카는 놓을 수 없습니다!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