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미학의 기원
머릿말
예술의 개념에 대한 상상에 의한 예술이 자유로운 창조적 활동으로 전환은 그것이 추구하는 미의 개념의 주관주의적 선회와 함께 인간의 고유한 활동영역을 구획해 내려는 일로 인도되었으며, 마침내는 그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는 논의로 귀결되었다. 이는 근대 미학이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떻게 출발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고 따라서 어디에 그 출발선을 긋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1“에스테틱스”라는 학명의 유래
우리가 “미학”이라 쓰고 있는 “에스테틱스”(aesthetics)라고 하는 학명은 본래 지각하다 라는 뜻의 “아이스타네스타이(aisthanesthai : to perceive)또는 지각적인 대상이라는 뜻의 “아이스테티카”(aisthētica : thing perceptible)를 어원으로 하고 있는 말이다. 그러한 어원의 고대 그리스어가 오늘날과 같은 철학의 한 교과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중엽, 바움가르텐에 의해서였다.
그가 살고 있던 18세기 전반기라면 아직도 고전주의적 예술관이 주도적 경향을 이루고 있는 중이기도 했지만 , 다른 한편 데카르트에 의해 철학적 관심사로부터 배제되어 왔던 인간의 주관적인 심리현상들, 예컨대 감각이나 상상이나 감정 등이 강조되면서 새로운 철학의 의미를 부여받고 있던 시기였다.
이러한 입장에서 “감성적 인식에 관한 학”(scientia cofnitionis sensitivae)이라는 의미로서 “에스테티카”라는 새로운 학문을 착상하게 된 것이다.
반발
칸트는 감성 자체의 원리에 관한 학이 따로 있어야 한다고 했던 바움가르텐의 주장에 대해서 그를 두고 “탁월한 분석가”라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순수이성 비판’에서는 바움가르텐이 초월적 감성론이어야 할 “에스테티카”를 미와 예술의 문제에 관련시켜 사용하고 있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건축백과사전’ 속에서 그윌트는 이 말을 두고 그것은 “현학적이 용어”로서 독일인들에 의해 “예술에 불필요하게 추가되어 온 용어들 중의 하나”라고 쓰고 있음을 오스본은 알려주고 있다.
이 같은 사정을 통해 볼 때 “에스테틱스”라는 용어는 그것이 만들어진 지 약 백년 쯤 후에야 오늘날 우리가 “미학”이라고 번역해서 이해하고 잇는 교과를 뜻하는 말로서 일반적으로 보급되었다.
2. 바움가르텐의 ‘에스테티카’와 미학
바움가프텐이 21세가 되던 해 쓴 학위논문인 ‘시의 성찰’(1735)속에서 그는 당시 유행이었던 철학에 대한 분류의 체제가 불완전한 것이며, 따라서 에스테티카라는 교과의 필요성을 이미 암시해 놓고 있다.
비움가르텐의 미학이론은 1)데카르트의 합리주의 2)라이프니츠의 단자론(mond-theory)과 연속성의 법칙(law of continuty) 3)볼프가 마련해 놓은 철학의 분류법을 통해 설명할 수가 있다.
첫째로 데카르트는 존재에 대한 직관의 특징을 “명석함(clarity)과 판명함(distinctness)”으로 규정하고 있다. 명석함이라 함은 “주목하는 정신에 나타난 명백한 인식”이며, 판명이라 함은 “명석하면서 또 다른 모든 것과 구별되어 그 속에 명석한 것 이외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인식”을 말한다. 달리 말해 명석은 애매하지 않고 판명은 혼동이 없음을 뜻한다. 데카르트에 있어 이 명석하고 판명한 사유가 곧 진리의 수단이요, 그리고 이러한 사유가 정신의 본질적인 속성이다.
둘째로 라이프니츠는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적 철학, 이성적 진리관에 단자의 개념을 접목시킴으로써 데카르트에 의해 버려진 주관적인 심적 현상들에 새로운 주목을 하게 하였다.
그에 의하면 단자란 더 이상 무엇으로 쪼개질 수 없는 원자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계론적 원자론자들이 말하는 그런 물리적인 원자가 아니다. 물리적 원자는 그것이 물질이요, 그러한 그것은 데카르트가 말하는 연장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원칙적으로 다른 부분들로 쪼개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라이프니츠의 단자란 데카르트가 말하는 물질로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아니다. 라이프니츠가 말하는 단자의 개념은 물체의 본질은 연장과 복합을 가능케 하는 비연장적이요 비물질적인 실체로서 자발적으로 자기 상태를 전개시켜 나가는 힘이다. 그러므로 단자가 어떠한 상태를 취하든 거기에는 항상 단자 자신이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단자의 전개활동은 자기를 표현함과 동시에 우주를 표현하고 있다. 말하자면 각 단자는 “우주의 산 거울”인 셈이다.
이러한 단자이기에 그들 간에는 연속성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다. 그것은 우주에는 단절된 틈도 없고, 중복도 없다는 사실을 뜻한다. 우주 전체에 관련시켜 말한다면 모든 단자는 최하의 것에서부터 최상의 것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인 서열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주장에 관련하여 라이프니츠의 미소현상(petites perceptions)에 관한 이론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고 그리고 그로 인해 데카르트의 명석⋅판명한 관념에 대한 수정이 가해지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바움가르텐의 미학으로 이어지는 길이 열리게 된다.
셋째로 볼프에 있어서도 영혼이란 표상활동을 하는 특수한 단자이다. 또한 우리가 “어렴풋이 의식하는 ” 미소표상으로부터 가장 완전한 의식, 즉 명석하고 판명한 의식에 이르는 의식의 명료성의 정도에 대한 이론을 따르고 있다.
예술에 관한 학이 가능할 수도 있음을 피력하면서 그것이 “학의 형태로 환원될 수 있다고 한다면 리버럴 아트의 철학(philosophy of liveral arts)이 가능할 수도 있다. 예컨대, 여러 언어들에 대해 일일이 특수한 근거를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문법 일반에 속하는 일반 규칙들에 관한 근거를 설명하는 문법철학이 있을 수도 있다. 관습적인 표현을 빌자면 이것을 우리는 ‘문법의 철학’(grammatical philosophy)이라고 부르고 있다.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수사의 철학’(rhetorical philosophy)이나 ‘시의 철학’(poetical philosophy)이라는 등의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프는 이 방면에 관한 학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바움가르텐은 “근대 사상의 영원히 의미 있을 공적을 남긴 유일한 라이프니츠-볼프 철학인 예술론을 ”에스테티카“라는 이름으로 정립시켜 놓고 있다.
바움가프텐은 철학의 기본을 지식론(gnoseology)이라고 했다. 논리학의 도움을 통해 감성의 완전성은 그것이 지닌 모호함과 혼연함을 벗어남으로써 사유 속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미었던 볼프와는 달리, 바움가르텐은 사유로 환원되지 않은 감성 자체의 법칙이 있고, 그러한 의미에서 그것을 다루는 “감성적 인식에 관학 학”으로서의 “에스테티카”또는 “유사 이성의 학”(ars analogi rationis)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인식된 대상들은 고급 [인식]능력에 의해 논리학의 대상으로 인식된 것이고, 지각된 대상들은 저급 [인식]능력에 의해 지각의 학, 곧 에스케키카의 대상으로 인식된 것이다.
3.비코의 “새로운 학문”과 상상으로서의 시
크로체의 해석에 따르면 비코의 미학사상은 그보다 앞서 근대 유럽철학을 인도하기 시작한 데카르트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해 데카르트의 철학을 보완하고자 했던 라이프니츠와는 달리, 그보다 훨씬 강결하게 데카르트에게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한 그의 지식론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비코는“우리시대의 연구방법” (1709)에서 데카프트의 철학은 지나치게 배타적으로 수학 및 물리학에 치중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활동의 다른 분다들, 예컨대 예술, 법, 역사 등이 완전 히 무시되거나 지엽적으로 다루어지는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고대 이탈리아인들의 지혜’(1710)에서 많은 당대의 데카르트주의자들과는 달리 과학적 진리 그자체에 관한 그들의 기준, 곧 명석하고 판명한 이른바 자명한 진리의 기준에 대해 직접적인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비코의 이 반론은 원인에 의한 지식만이 참된 지식일 수 있다는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비코는 “새로운 학문”이 담고 있는 미학적 의의는 역사철학적인 관점에서 그의 사고를 출발시키고 있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확실하게 파악될 수 있은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만든 역사에 대한 참된 인식도 가능하며, 그렇기 때문에 역사학의 확실한 근거가 수립될 수도 있다.
이를 토대로 비코가 주장하고자 했던 것은 시가 역사 속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시는 정신적인 것이냐, 비정신적인 것이냐? 그리고 만약 정신적인 것이라면 그것의 특수한 본질은 무엇이며, 역사와 과학으로부터 그것을 어떻게 구별해 낼 수 있는가?”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비코는 감정과 상상력 등의 능력에 관련된 시를 승격시켜, 인류 역사에 있어 한 시기를 시의 시기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서의 역사란 역사의 여러 시기가 우연한 사실로서가 아니라, 정신의 여러 형식으로 발전된 바의 관념의 역사를 뜻하는 것이므로 시는 관념의 역사에 있어서의 한 시기로 이해되고 있다.
비코는 데카르트주의자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결함을 지적하여 그들 이론의 약점은 상상과 시의 세계를 평가할 수 없었던 그들 철학의 배타성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간의 모든 과오의 원천인 것으로 간주된 상상의 능력을 사장시키고자 한 데카르트의 철학, 그리고 그것에 의하여 무감각하게 되어 버린 자신의 시대를 비난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비코는 경험과 감각을 재확인하는 작업으로부터 출발하여, 개인과 사회생활에 있어서 상상력의 기능을 주장함으로써 도래하는 낭만주의의 선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4.애디슨의 “상상의 즐거움에 대한 시론”과 무관심적 경험
스톨니쯔에 의하면 근대미학의 형성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했던 것은 무관심성이 어떤 지각의 종류에 고유한 것으로 인식된 점이다. 즉, 어떤 지각 경험이 무관심적이기 때문에 그것은 단순한 감각적 경험이나 도덕적 활동이나 이런적 탐구와 같은 다른 경험과 구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관심성의 개념은 미학사에서 중요한 분수령이 되고 있다고 스톨니쯔는 주장한다. 여기서 특별한 지각의 방식을 특징 지워주는 의미로서 무관심성의 개념을 응용하여 “전적으로 새로운 ” 이론을 개진한 이가 애디슨이다 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런점에서 스톨니쯔는 애디슨의 “상상의 즐거움에 대한 시론‘을 근대미학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상상력은 스톨니쯔의 논의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애디슨은 상상의 즐거움을 감관과 사유의 즐거움으로부터 구별하면서 “상상의 즐거움은 감관의 즐거움만큼 그렇게 조야(gross)하지도 않으며, 오성의 즐거움처럼 세련된(refined) 것도 아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무관심적인 즐거움을 일으키는 대상에 관계된 마음의 능력이라는 의미로서 상정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게 된 것이다.
5. 프랑스의 “신∙ 구 논쟁”과 문학적 이원론
세스린에 의하면 미적인 영역에 자율성을 가능케 해준 것이 무관심성이라고 주장되어 왔고 또 그렇다 할 때 그것은 주로 영국인들의 공헌이라고 주장되고 있으나, 이 무관심성의 개념은 영국인에 의해 개발된 것도 아니며 그것은 미적 영역의 자율성 같은 것에 관해 아무 것도 적절하게 설명해 주는 개념이 못된다는 주장이다. 무관심성의 개념의 기원을 고찰해 볼때 그것은 이미 플라톤적 사랑(eros)의 개념에 함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세스린은 샤프츠베리라든가 애디슨 같은 이들이 그당시 지극히 의의를 띠며 전개된 종교적 동향, 곧 그 주된 특징이 신에대한 무관심적인 사랑이 되고 있었던 프랑스의 경건주의의 동시대인들이 되고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무관심성의 근대 미학적 의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술과 미적 세계의 자율성을 확보케 해 준 또 다른 미학적 접근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세스린은 그것이 17세기 말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개된 “신⋅구 논쟁” 속에 들어 있는 사고임을 역설하고 있다. 이같은 사고는 이 논쟁의 초기 주역이었던 퐁트넬로부터 18세게초의 아베 뒤보스에 이르기까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그것은 데카르트 이후 획일적이었던 이성ㅈㄱ 사고에 대한 반론을 펴고, 따라서 획일적으로 고대인들보다는 근대인들이 더 우월하다는 견해에 대한 반론을 펴는 것으로 출발을 본 사고를 말한다. 그런한 반론으로부터 빚어진 논쟁은 결국 이성적 활동에 입각한 근대인의 업적과 상상에 입각한 고대인의 업적을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논의로 발전되엇으며, 따라서 양자는 결코 동일한 자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으로 인도되었다.
맺음말
어느 것이 진정한 사상적 기원이 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각자가 제시하고 있는 내용과 그것이 대두된 연대순서에 의해서 간단히 결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할 때 이 문제는 자율적인 영역의 독립적인 교고로서 수립되는 것이 근대적 미학의 이념이었다고 한다면 그러한 이념의 구현에 어느 것이 보다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하 하는 점에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