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네가 극락세계 중품중생 염불을 하는구나!“
굉능(정토촌 자재요양병원 원장)
1) 몸소 찾아오신 노스님
2003년 3월 5일 이른 아침 뜻하지 않는 전화 한통이 걸려 왔다.
”저희들은 극락을 다녀오신 중국의 관정 큰스님을 모시고 다니는 상좌입니다. 큰스님께서 아침에 일어나시자마자 정토마을에 가자고 하시는데 방문이 가능하겠습니까?“
나는 큰스님이나 그 행적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고 아는 것이 없었으나 스님들이 오신다는데 못 오게 할 수가 없어 오시도록 하였다. 정토마을에는 언제나 누구든지 아무 때나 올 수 있는 곳이지만 내가 이처럼 잠시라도 초청에 대해 생각을 해보고 나서야 대답한 것은 그 당시 그만큼 아주 절박한 사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로부터 6개월 전 우리 병원에 입원한 한 에이즈 환자를 돌보다가 실수하여 에이즈 환자에게 놓았던 주사바늘로 간호사와 내가 찔리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 엄청난 사고에 우리는 망연자실하여 곧바로 관계당국에 신고를 했고 보사부에서는 ’에이즈 감염보균대상자‘로 특별 관리에 들어갔다. 보사부의 감염보균대상에 대한 처방은 이렇다.
⓵ 보사부가 지급하는 약을 50일간 철저하게 먹어야 한다.
② 아울러 5일에 한 번씩 피를 뽑아 검사한다.
이렇게 하여 50일 안에 양성으로 판정이 나면 에이즈 환자로 분류되고, 50일까지 피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오면 감염이 안 된 것으로 판정이 된다는 것이다. 두 달이 안 되는 이 50일은 우리에게 사활이 걸린 저승사자 같은 기간이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접고 보사부의 지시에 따라 충실하게 약을 먹고 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그 약이 얼마나 지독했던지 두 사람 모두 혀가 갈라지고, 나는 간이 나빠지고 간호사는 신장이 상해 일을 못할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5일에 한 번씩 서울에 올라가 지정병원에서 피를 뽑아 검사를 하는 것도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이처럼 서울을 올라 다니고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독한 약을 먹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바로 ’에이즈에 걸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참을 수 없는 공포였다.
나는 그러한 공황상태에서 기댈 수 있는 곳은 오로지 한 가지 부처님밖에 없었다. 나는 매일 법화경을 계속 독송하면서 부처님에게 매달렸다.
”부처님 저는 아직도 할 일이 많습니다. 제가 한 발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살려주십시오. 아니, 나는 죽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간호사만이라도 꼭 살려 주십시오.“
보름쯤 온 정신을 다 쏟아 기도를 했더니 부처님의 응답이 있었다. 역시 부처님은 자비를 가지고 기도에 응답하셔서 가피를 내려 주셨다. 그때부터 나의 마음은 많이 가벼워졌다. 그렇다고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 특히 간호사에 대한 것은 보장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초토화된 상태에서 50일간을 기진맥진하게 지내고 바로 내일, 그러니까 11월 1일 생사를 가름하는 최종판결이 나는 날이다. 그러니까 사형선고냐? 무죄냐?를 선고 받아야 하는 하루 전날에 관정 큰스님이 오신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아침에 연락이 왔는데 오후 2시쯤 정토마을에 들어오셨다. 거제도 오송암 등정 스님과 통역을 맡은 연변 출신 강거사 등 제자들을 이끌고 대문을 들어오시는데 멀리서도 뵙자마자 굉장히 친근감이 느껴졌다. 분명히 이승에서 처음 만나는 노스님인데, 내가 중국의 스님을 어디서 만났을 리가 없는데, 마치 옛날 모시던 노스님을 다시 만나는 것 같은 친근감을 느꼈다.
분명히 정토마을에 처음 들어오시는데 처음 같지 않고 수 십 년을 같이 산 것 같았고, 허리가 꾸부정하신 노스님이 어떻게 알았는지 정확하게 내 앞으로 걸어오시면서 손을 내미시는데 마치 노스님이 어디 갔다 들어오시면서 ”야야“하고 부르는 것 같았다.
‘어떻게 아시고 이 산골짜기까지 찾아오셨을까?’
너무 궁금하면서도 마치 손주 같이, 오랜 제자 같이 대해주시는 노스님에게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다. 말이 한마디도 통하지 않았지만 외국 스님이라는 생각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시더니 어떻게 내 방을 알았는지 내 방으로 쑥 들어가셔서 묻지도 않고 내 침대를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나 여기서 자겠다.“
여러 분이기 때문에 스님이 오시면 다른 방을 드리려고 준비를 해 놓았는데, 묻지도 않고 두 문 가운데 내 방문을 정확히 열어 작은 쪽방으로 들어가셔서 행장을 푸시고 그곳에서 주무시겠다고 하니 나는 한 동안 어안이 벙벙하였다.
오후에 한 숨 주무시겠다고 하시면서 누워서는 나에게 다리를 좀 주물러 달라고 하셨다. 나는 아무런 주저 없이 옛날 노스님을 주물러드리듯 관정 큰스님의 다리를 주물러드렸다. 그런데 그 두 시간 동안 나는 나도 모르게 계속 노스님에게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살까요.“
”왜 나만 이 일을 해야 합니까.“
그동안 겪었던 수많은 우여곡절을 큰스님께 털어놓으면서 중국어냐? 한국어냐? 하는 것도 전혀 의식하지 않았고, 노스님도 마치 다 알아 듣고 계시는 거처럼 살며시 미소를 지으시면서 가끔 ‘하오’ ‘하오’라고 하시면서 나의 긴 이야기를 다 들어 주셨다. 그리고는 일어나서 나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하오’ ‘하오’ 라고 하시면서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나모아미따불
나모아미따불
나모아미따불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감사합니다
무량공덕 되소서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성불 하세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