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노센트 보이스> 멕시코, 루이스 만도키 감독, 120분, 드라마, 2004년
잔인할 정도로 슬픈 영화다. 연민 때문에 여러 번 눈물을 흘리면서 보았다.
미국인들은 왜 세계가 자신들을 미워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런 영화들을 보면 미국을 세계인들이 동경하면서 동시에 왜 싫어하는지 알 것이다. 80년대 한국의 광주학살이 있었던 시절 엘살바도르에서 자행된 군대의 조직적 학살을 미국이 지원한 것은 단순하다. 나쾨라구아, 칠레, 아르헨티나 등의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군부독재를 지원한 것은 단순한 이유에서이다. 공산화를 막고 자기의 영향권에 두기 위해서이다. 거기 희생된 생명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게 미국이 인권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나는 남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직 공부가 짧고, 몇 개의 단편적 역사와 필름을 보았을 뿐이다.
온통 심심풀이 땅콩 같은 영화밖에 생산해내지 못하는 한국 영화의 요즘 풍경을 떠올리면 이런 영화의 중요성은 더할 나위 없이 높은 것이라 하겠다.
아직도 국가니 하는 말의 마수에 걸려드는 사람이 있을까? 빨갱이도 파랭이도 다 무지에서 비롯된 악마만들기일 뿐이다. 빨갱이도 파랭이도 인간이고 살고자 버둥쳤을 뿐이다. 사람들이 정의를 따지기 전에 생명에 대한 존경을 먼저 느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시놉시스 =
1980년대 엘살바도르의 한 마을. 같은 반 여자애 크리스티나를 좋아하는 열한 살 차바는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간 아버지를 대신해 조금 일찍 가장이 된 것 말고는 남다를 게 없는 소년이다. 재봉틀로 옷을 만들어 생계를 꾸려가는 자상한 어머니와 뚱땡이 누나, 귀여운 남동생과 함께 사는 차바는 어머니가 만든 옷을 팔러 시내에 갔다가 장난기 많은 버스 운전사를 만나 일자리를 얻게 된다.
돈을 벌게 된 뿌듯함도 잠시, 전쟁은 점점 심해져 밤이면 침대 밑에 엎드려 총알이 멈추기를 기다리는 날들이 계속되던 어느 날. 이웃집 누나가 총에 맞아 죽는 걸 목격하게 된다. 차바와 함께 누나의 죽음을 지켜본 베토 삼촌은 상황은 앞으로 매일매일 더 나빠지기만 할거라며, 금지곡을 방송하는 작은 라디오를 건네준다. 친구들과 종이반딧불이를 띄울 때도, 학교에 갈 때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귀를 기울이게 된 차바.
그러나 베토 삼촌 말대로 상황은 점점 나빠지기만 한다. 강가에서 만나게 된 같은 반 친구는 군대에 끌려간 뒤, 거칠고 폭력적으로 변해버려 차바를 놀라게 한다. 그 사이 군인들이 여자를 강제로 끌고 가는 걸 말리던 신부님은 얻어맞아 다치고, 언젠가 돌아올 아버지를 기다리느라 옮기지 못했던 차바의 집도 결국 이사를 하게 된다.
전쟁은 더욱 심해져 열두살이 된 차바의 친구들은 대부분 군대에 끌려갔다. 이제 남은 것은 열두살 생일이 얼마 남지 않은 어린 친구들 뿐. 하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군인들의 눈을 용케 피해있던 차바에게도 열두살 생일이 차츰 다가오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