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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청람시학회 원문보기 글쓴이: 가음
▷▶▷▶▷▶▷▶ 가람 이병기의 시조 분석 ◁◀◁◀◁◀◁◀
-‘계곡’, ‘난초’, ‘내 한 생’을 중심으로
발표자 : 초등국어교육 20077141 김지영
Ⅰ. 가람 이병기
시조의 현대화란 우리의 성정을 잘 나타내는 형태적 특성을 살리면서도, 내용과 표현 기교에 있어현대적 면모를 보이는 것이다. 시조를 ‘우리 민족 심혈의 고백’이라고 한 가람 이병기(1891~1968)는 시조를 부흥하는데 선구적 역할을 했던 분이다. 그는 1920년대부터 시조의 본질을 구명하는 논문을 발표하며 시조론을 정립하고자 노력하였고, 현대시조로서 갖추어야 할 시조 창작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민족의 수난기인 1930년대에도 꿋꿋이 이어져 시조인을 양성하기에 이르렀고, 시조 문학 중흥의 기틀을 다져갈 수 있게 하였다. 또한 가람은 시조의 이론 뿐만 아니라 창작에도 심혈을 기울여 1939년 《가람 시조집》을 간행하였으며 기행문, 일기, 시조론, 시조 등을 모은 《가람문선》을 펴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가람은 시조를 현대화시킨 공로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가람에게서야말로 종래 시조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새로운 시 정신이 실현되기 때문이다.
Ⅱ. 가람의 시조론
-<시조는 혁신하자>
1. 실감실정을 표현하자
시조의 내용을 혁신하는 방법으로 제일 먼저 내세운 것이 이 實感實情論이다. 이것은 작가 자신의 실생활에서 얻어진 진솔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인데, 자기 주관으로 하는 서정과 직관으로 하는 서경 그 어느 것이든지 다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고시조의 상투적 표현을 지양한 진실하고 절실한 감정이나 색체가 가득한 감각적 광경의 표현이 시조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2. 취재의 범위를 확장하자
고시조의 내용은 대체로 자연이나 유교사상, 결담미(結淡美), 山水圖美로 계열화되어 있는데 현대인의 생활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기 위한 소재의 확보를 주장한 것이다. 그의 저서 『시조의 개설과 창작』에서도 “인생과 자연, 우주 만유의 모든 것을 그 재료로 취사선택하여 다 쓸 수 있으며, 시인은 초목, 금수, 어총 등의 이름 뿐 아니라, 그 생활상태 및 성질까지 잘 알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3. 용어(用語)의 수삼(數三) : 현대적 어휘수용론
첫째, 고시조에 쓰이는 한문투어를 지양하자. 한문구어들의 사용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용하지 말자는 것이다. 언어답습은 독자에게 진부한 말을 쓴다는 말을 듣게 되고 새롭고 좋은 느낌을 주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시조의 투어(套語)에 대하여 고심하자. 시조 종장에 전용어처럼 쓰이는 ‘-는구나’, ‘-고야’ 등의 빈번한 사용은 권태와 염증을 일으키게 할 소지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셋째, 작가 자신의 작품에 맞는 말을 쓰되, 시대적 요구에 맞게 외래어도 수용하자. 시조의 형식에 치중하지 말고 작가 나름대로의 독특한 작풍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4. 격조의 변화
시조의 격조는 작가 자신의 감정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리듬에서 생겨야 하는데 그 작품의 내용과 의미와도 조화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시조를 부르는 시조보다는 짓는 시조, 읽는 시조로 하기 위한 것이다. 시인의 자아의식의 소리와 형의 합치를 추구하는 독창적인 격조로 원만한 시조 율조의 무기력감을 해소시켜 생동감있는 가락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새로운 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5. 연작을 쓰자
오늘날의 복잡한 생활상을 담기에 단수 시조형은 비좁으므로 그 표현을 전개시킬 수 있는 연작을 쓰자는 것이다. 이것은 시조를 창작할 때 한 제목을 가지고 한 수 이상으로 몇 수까지든 지어 한 편으로 하는데, 한 제목에 대하여 그 시간이나 위치는 상관없이 다만 감정의 통일을 이루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다. 시조의 정형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유시 이상으로 얼마든지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이 연작시조론은 가람 이병기가 지닌 민족시에 대한 긍지심과 자부심이 곁들여 있는 주장이다.
6. 쓰는 법, 읽는 법
표기법에 있어서 시조다운 시조가 될 수 있도록 그 내용과 형식이 유기적으로 잘 조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전통 시조에 대한 긍지심의 발로로 시조 부흥은 전통성의 최소한의 지속적 측면을 잘 표명한 것으로 보여진다. 또 시조는 다른 시가를 읽고 감상하는 것과 같이 읽는 법까지도 잘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가람 이병기의 시조혁신론은 궁극적으로 시조를 현대적 전통시가로 계승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조계승을 위한 시조혁신도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시조의 정형성은 최소한 유지시키면서 주로 내용면에서 변화를 추구하였다. 따라서 이것은 내용면에 있어 현대적 사고에 걸맞는 시정신을 갖도록 작가 자신들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각성케 하는 미래지향적 의미를 지니는 논의라 할 수 있다. 즉 시조의 형식은 지속시키고 내용의 혁신을 추구한 전통의 지속과 변화의 조화있는 운용이었다.
Ⅲ. 내면화된 ‘實感實情의 서정’ - 연시조 <난초>
이병기의 서정성의 핵심은 풍류와 멋에서 나온다. 풍류란 결국 현대에 살면서도 자본의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오히려 자본을 통제하면서 인간의 주체성을 지키며 살아가려는 자의 미의식이다. 이병기에게서 자연은 자아가 거기서 생명력을 얻고 나아가 자연과 생명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며, 시적 유토피아란 결국 점점 파괴되어가는 자연을 지키며 그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병기의 자연시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은 영물시이다. 영물시는 일상적 거주공간 속에서 완상자가 자연물을 완상하면서 즐기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완상자라는 것 자체가 자본주의적 근대화에 배치되는 인물이다. 일제하 파시즘적인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흐름 속에서 벗어나 조용히 자아를 지키며 자연물과 더불어 생명력을 즐기겠다는 미학적 의지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그 완상의 대상인 사물들은 대부분 정적 상태에 있는 식물이다. 그 중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이 선비적 미의식을 표상하는 ‘난’이다. 가람의 작품은 이런 시적 대상을 實感 實情으로 감상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도, 그 속내에 자신의 인생을 투영시켜 독자적 내적 행동양식으로서의 서정을 이룩한다.
가람의 시조 중 가장 널리 알려진 〈蘭草〉는 모두 4편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이할 사항은 전편을 하나의 작품으로 이해하여 해석할 수 도 있고, 또 각기 다른 독립된 작품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1)
한 손에 책을 들고 조오다 선뜻 깨니
드는 볕 비껴가고 서늘바람 일어오고
난초는 두어 봉오리 바야흐로 벌어라.
(2)
새로 난 난초 잎을 바람이 휘젓는다.
깊이 잠이나 들어 모르면 모르려니와
눈뜨고 꺾이는 양을 차마 어찌 보리아.
산뜻한 아침볕이 발틈에 비쳐들고
난초 향기는 물밀 듯 밀어오다
잠신들 이 곁에 두고 차마 어찌 뜨리아.
(3)
오날도 온종일 두고 비는 줄줄 나린다.
꽃이 지는 난초 다시 한 대 피어나며
고적한 나의 마음을 저기 위로하여라.
나도 저를 못 잊거니 저도 나를 따르는지
외로 돌아 앉어 책을 앞에 놓아두고
장장히 넘길 때마다 향을 또한 일어라.
(4)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데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 하여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도 가까이 않고 우로 받아 사느니라.
(1)은 ‘난초의 개화’를 노래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졸다가 ‘선뜻’ 깨어 비밀스러운 난의 개화라는 광경을 보고 있다. 대상으로서의 난초는 드는 볕도 비껴가고 서늘한 바람도 간간히 불어 들어오는 고요한 방 안에 위치해 있다. 서정적 주체인 자아는 한 손에 책을 들고 읽다가 졸다 선뜻 깨기도 하는 그런 여유있는 공간이다. 그 방이 고요하다는 것은 제 2행의 ‘드는 볕 비껴가고 서늘바람 일어오고’에서 확연히 나타난다. 결국 드는 볕이 비껴간다거나 서늘바람이 일어온다든가 하는 사물의 움직임은 그 방 전체의 움직이지 않음을 더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자본주의적인 번잡함으로부터 자신의 마음을 지키고자 하는 행위인 것이다.
(2)는 ‘난초의 향기’를 노래하고 있다. 앞의 1에서 난초를 꽃피운 ‘서늘바람’이 새로 난 난초잎을 휘젓고 있어 시적 화자는 안타까움과 애처로움에 도저히 잠 들 수 없다. 그리고 (2)의 두 번째 연에서는 그렇게 지켜 낸 난향에 매료되어 그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 시의 제 1연에서는 어떤 흥겨움이 보이지 않는다. 난이 바람에 꺾이는 모습은 불안하고 초조하다. 그리고 그 대상을 바라보는 정서도 동일하다. 그런데 제2연에 오면 그러한 초조 불안감은 말끔히 사라지고 전혀 새로운 흥겨움이 일어난다. ‘산뜻한 아침!’ 이병기의 시조나 일기 곳곳에 ‘산듯함’, ‘상쾌함’, ‘시원함’등의 낱말이 매우 많이 나타나는데, ‘산듯한 아침볕’은 생물들의 생육조건에 아주 중요한 생명의 서식지이다. 그 ‘볕’을 받아 난초는 향기를 내뿜는다. 향기가 물밀 듯 밀어온다는 것은 난의 생명력이 아주 고조되어 확산되며, 이에 힘입어 자아도 생명력이 고양되어진다. 난은 난대로 자아는 자아대로 생명력이 충일․약동하여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다. 이것이 생명력의 상호 확산적 교감이며, 이런 생명력의 교감에서 소위 물아일체가 나타나는 것이다.
(3)에서는 ‘두번째의 난초의 개화’를 노래한다. ‘꽃이 지든 난초’ 하나가 다시 피어 온종일 내리는 비에 고적한 내 마음을 위로하여 준다. 난초를 ‘저’라고 부르는 것에서 난의 의인화가 일어난다.
(4)는 난초를 통해 ‘인생 철학’을 노래한다. 정한 모래 틈에 서려 있는 뿌리를 들여다보며 티끌 먼지 하나 가까이 하지 않고, 이슬을 먹고 산다는 고귀함을 노래한다. 첫째 연에서는 난초의 잎새와 하얀꽃, 이슬이 달린 모습을 시각적으로 잘 형상화하고 있다. 그리고 둘째 연에서는 앞의 (3)과 마찬가지로 난초를 의인화하여 그 탈속한 성품을 말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네 편의 시조를 통합하여 보았을 때 이 시조는 다음과 같은 연속 구성이 나타난다.
① 난초의 개화
② 개화한 꽃이 향기를 더함
③ 두 번째의 개화
④ 난초의 생리와 기품을 완연히 감상함
이 작품들은 시인의 생명의식과 꽃을 피우는 난초와의 교감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속과 변화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4)에 이르러서는 고결한 난초의 생리와 기품을 완전히 이해하고 시인 자신의 삶과도 일치하게 만든다. 이렇게 전체적으로 4편의 시조를 고찰했을 때도 연속 구성은 드러나지만, 한 편 한 편의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3)을 살펴보면 ‘난초’는 1연을 통해서 꽃이 한 대 지고, 다시 피어나고 있으며, 2연에서는 그 향을 일어 나와 하나가 된다. 그리고 ‘난초’는 시간적 연속을 따라 움직이는 ‘연속 구성’안에 있다. 또 각 연은 독립된 시조로 내 놓아도 손색이 없고, 각 연의 종장에서 보이는 ‘위로하여라/ 일어라’의 상대어들은 ‘병렬 구성’ 또한 보여준다.
이런 구성을 보이면서 가람은 이제 자연 객체의 모사적(模寫的) 재현만을 하지 않고, 자신의 정서를 원리로 하여 재구된 자연을 그려냈다. 그리고 한 순간의 자연 존재의 본질이 개방되어 있고, 시인은 깊이 그 속에 내재하고 있다. 주체가 객체의 개방성 속 깊이 내재하게 되는 존재 상황을 형상화한 이미지,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의 서정성이다. 이는 난초와 시인이 동일시를 이룩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3)의 ‘나도 저를 못 잊거나/ 저도 나를 따르는지‘에서처럼 난초와 시적 자아는 혼연일체이다. 즉 주체와 객체, 자아와 대상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난초〉는 시적 대상을 實物 實事 實景 實情 實感의 체험적 인식에 기반하여 섬세한 감각적 이미지로 묘사할 뿐 아니라, 그 속에 자신이 인생까지 투영시키는 독자적인 내적 양식으로서 완연한 實感實情의 서정을 이룩하게 되었다.
Ⅳ. 자연시와 관조의 세계 - 객관적 묘사와 지시적 서정 <계곡>
(1)
맑은 시내 따라 그늘 짙은 소나무숲
놓은 가지들은 비껴드는 볕을 받아
가는 잎 은바늘처럼 어지러이 반작인다.
(2)
청기와 두어 장을 법당에 이어두고
앞뒤 비인 뜰엔 새도 날아 아니 오고
홈으로 나리는 물이 저나 저를 울린다.
(3)
헝기고 또 헝기어 알알이 닦인 모래
고운 옥과 같이 갈리고 갈린 바위
그려도 더럽일까봐 물이 씻어 흐른다.
(4)
폭포 소리 듣다 귀를 막아도 보다
들을 베개 삼아 모래에 누워도 보고
한손에 해를 가리고 푸른 허공 바라본다.
(5)
바위 바위 위로 바위를 업고 안고
또는 넓다 좁다 이리저리 도는 골을
시름도 피로도 모르고 물을 밟아 오른다.
(6)
얼마다 험하다 하리 오르면 오르는 이 길
물소리 끊어지고 흰 구름 일어나고
우러러 보이던 봉우리 발아래로 놓인다.
이 작품은 각 수가 제각각 다른 자수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3․4조를 기준으로 하여 증감하되 시조가 가지는 틀 안에서 자유자재로 구사한 유기적 형태이다. 계곡을 따라 오르면서 시인이 보고 듣고 느낀 ‘절실한 감정이나 색체가 가득한 감각적 광경’을 나타내고 있다.
첫째 수에서 맑은 시내와 소나무숲, 그리고 햇빛에 반사된 솔잎 등 계곡의 입구를 한 장면으로 시작하여 둘째 수에서는 지저귀는 새소리도 없이 물소리만 울리는 고요한 어느 법당의 뜰을, 셋째 수에서는 정갈한 모래와 고운 자태의 바위들로 된 신비로운 계곡의 순수한 모습을 차례로 한 장면씩 옮겨가고 있다. 이렇게 마치 카메라의 필름처럼 연속된 이 작품은 계곡에서 봉우리에 이르기까지 총 여섯 폭짜리 병풍을 세운 듯하다. 초장과 중장이 각기 다른 소재로 구성되어 있고 종장에서는 의미가 강조된 전개를 보이는 객관적 태도의 순수 서경시이다.
특히 관념이 배제된 평이한 감각적 시어들을 사용하여 사실 그대로의 객관적 묘사는 아름다운 경치를 더 명료하게 해 준다. 종장의 첫구는 고시조의 투를 벗어난 의미있는 말을 사용하고 종결사에도 서술형 어미 〔-다〕를 사용하여 〔-하더라〕,〔-하노라〕의 투어를 배제하고 있어 더욱 선명한 느낌마저 든다.
이 작품에는 색체 감각을 통한 시각적인 묘사가 두드러진다. 먼저 직접 색체를 나타내는 말로 ‘청/ 푸른/ 흰’이 있고, 색체를 띠는 대상으로 ‘소나무/ 은바늘/ 모래/ 옥/ 바위/ 폭포/ 해/ 구름’ 등이 있다. 또 그 모습을 나타내는 ‘반짝인다/ 고운/ 갈리고 갈린/ 씻어/ 닦인/ 헝기고 헝기어’에서도 섬세한 묘사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보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에서는 사물의 전경화만 일어날 뿐 대상에 대한 주체의 감정은 전혀 노출시키지 않는 지시적 서정을 낳고 있다.
이처럼 실제 체험을 통한 기행 시조 〈계곡〉은 사물이 전경화된다. 객관적 묘사의 양식이 충실히 반영된 이러한 서경적 구조의 작품은 언어로 그려진 풍경화의 형태이다. 그리고 그 풍경화는 세밀 묘사를 통해서 리얼리티의 국면을 갖는다. 독자는 담담하게 대산을 바라보고 그림으로써 자연의 순진무구와 고요함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이것이 과거의 추상적인 시조와는 변별적으로 가람시조만이 갖는 현대적인 면이라 할 수 있다.
Ⅴ. 역사와 현실 의식 표출 <내 한 생>
가람은 한국적 풍토에 민감한 시인이었다. 자연과의 교감을 이룬 감성적인 작품들이 그의 시의 본령임에는 틀림없지만, 후기에 들어서는 역사와 당대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서 창작한 작품들이 다수 있다. 시조혁신론에서 소재를 확장하자고 주장한 가람은 점점 더 자연물 뿐 만 아니라, 인정과 생활시조를 많이 쓰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자기체험의 주체적 개별화를 이룩한 이 시기에는 사생법에 익숙해진 경지를 드러낸다. 즉 감각적인 이미지들이 자연물을 대상으로 한 시조 뿐 아니라, 세태시조, 인정과 생활의 서정을 노래한 작품에서도 잘 표출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들은 표현적 서정과 지시적 서정과 함께 가람 시조의 實感實情的 모습을 담아내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1)
한몸에 지은 짐이 너무나 무거웠다
그 짐을 다 버리고 이리저리 오고 가세
새로이 두 어깨 밑에 날개 단 듯하고나
(2)
쌀값은 높아가며 양화는 범람하고
걸 거리에 자동차 트럭 버스
이것이 서울특별시 새 풍경이로고나
(3)
늙어 가면서도 술잔은 놓을 수 없고
늙어 가면서도 분필은 던질 수 없다
분필과 술잔으로나 내 한 생을 보낼까
이 작품은 가람의 생애를 알 수 있게 한다. 일제 치하와 전쟁을 겪은 서울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러한 역사적 시련 속에서의 삶의 무거움을 토로하고 있다. 그는 역사적으로 혼란하고, 시련의 연속이었던 시대를 부대끼면서 겪었던 마음의 짐을 1연에서 ‘너무나 무거웠다’라고 직정적으로 표현한다. 1연의 종장에서는 그러한 무거운 짐을 때로는 벗어나 ‘이리 저리 오고 가며’ ‘새로이 두 어깨 밑에 날개 난 듯한’ 감정을 느끼기도 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2연에서는 전쟁을 겪은 후 서울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물가의 폭등을 꼬집고, 급성장한 거리의 모습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노출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는 술잔과 분필과 더불어 산 자신의 삶에 대한 애환을 노래한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가람의 자전적 생애가 한 편의 영화처럼 상영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가람의 시조에는 해방 후로 갈수록 ‘전쟁/ 강도/ 양화’등 비시적인 언어와 ‘워싱턴/ 처칠/ 화장품/ 나일론/ 자동차/ 트럭/ 버스’ 등의 외래어와 문명화된 상품명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그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소재들을 시화하면서 시조의 영역을 넓혀 가는 노력을 한 것이다. 가람은 자연 관조에만 머물러 있는 시인이 아니라, 역사와 현실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비전을 가지고 시조로 그것을 실천적으로 부단히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해야 한다.
Ⅵ. 나오며
가람은 實感實情의 표현을 통하여 복잡한 현대의 감정을 실제 체험을 기반으로 주체적인 수용과 변용을 이룰 수 있는 연속 구성의 ‘짓는 시조’를 창작하였다. 가람 연시조는 구체적이고 감각적 이미지를 통하여 관념과 사물이 만나게 된다. 그는 현대적 표현법인 묘사를 감각적으로 사용하여, 그가 주장한 사생법(寫生法)을 실현시켰다. 이는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이 선명한 문학의 도상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형상화들이 어우러져서 만들어지는 가람의 서정은 전통적인 주관적 서정으로서의 ‘표현적 서정’에서 현대적인 ‘지시적 서정’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즉 객체의 모사적(模寫的) 재현에만 그치지 않고 자신의 정서를 축으로 재구성된 대상을 그리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實感實情을 바탕으로 재현한 시적 형상과 시적 화자의 정서의 융합을 이루는 경지에 다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시조를 현대 감각의 창작 기법으로 변화시키면서도 시조의 본질을 지켰다. 가람 시조의 저변에는 우리 민족만이 동감할 수 있는 삶의 애환적 감정들이 고스란히 배어난다. 또 시조의 본질적 측면으로 나타나는 것은 병렬 구성에서 보이는 음악적 특성을 지니는 반복적 표현과, 자연과 합일을 보이는 동양적 서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가람 시조의 시조성이라고 할 수 있다.
가람은 역대 시조의 가치 있는 작품성과 유기적 시형을 지속적인 내면 요소로 하면서도, 그러한 형식에 가람의 개인적인 특성을 가함으로써 이미 이루어져 있는 시조적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섰다. 實感實情의 사실적 감각으로 이루어진 창작 기법을 변화 요소로 존폐 위기에 놓였던 시조를 현대 문학에 위치 할 수 있도록 이바지하는데 공헌한 것이다. 그리고 시조사에 있어서 현대 시조라는 새로운 장르를 확보하여 우리 민족의 전통시가가 문학으로 지속될 수 있게 되었음은 그가 이룬 문학적 전통의 큰 성과이다.
◈ 참 고 문 헌 ◈
이정환, 『현대시조교육론』, 만인사, 2005.
최승호, 이병기, 근대에 대한 서정적 대응방식, 대구어문론총 p.473~p.489
이선희, 가람 이병기 시조에 나타난 전통성 연구, 한국교원대학교대학원, 1993.
고 은, 가람 이병기 시조 연구-연시조를 중심으로, 서강대학교 대학원,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