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머물던 토굴 주위엔 대나무가 많았다.
토굴 뒤에는 아름드리 고송(古松)이 둘러져 있었고,
앞과 주위로는 대나무가 감싸고 있어 아늑하고 운치가 있었다.
봄이 되면 동토의 한기를 삭힌 죽순이
새봄의 기운을 한껏 머금고 기운차게 솟아오른다.
식재료로서도 죽순은 고급 재료로 치는 듯하다.
담백하고 상큼한 대나무 향과 함께 씹으면 사각거리는 느낌이
새봄의 햇살 받은 푸르른 대나무만큼이나 싱그럽고 맛깔스럽다.
특히 살짝 대쳐서 잘게 찢어서 초장에 버무리면 별미이다.
그런데...문제는...
주로 된장에 버무리거나, 혹 된장에 끓인 된장죽순을
하루, 이틀...일주일...이주...보름...을 먹는 다고 생각해보라.
나중엔 입에서 대나무의 비릿한 비린 냄새,
일명 “대비린내”가 풀풀 난다.
정말 물고기처럼 대나무에서 비린내가 난다.
보름이상 먹으면...
그것이 그 토굴인의 사명. 죽순이 다 자라 대나무가
되어 끓이고 또 끓여도 질겨서
갈비처럼 뜯어야 될 정도까지 죽순을 먹어 주어야 하는 운명...
문제의 그날,
아침 명상을 하고 있었다.
거의 끝나 갈 때쯤 영안(미간)에서 총천연색 비젼이 보였다.
뱀이었다.
그 토굴주변에 자주 출몰하는 붉은 색과
밝은 초록색이 잘 얼룩진 풀뱀이었다.
선명하게 잠깐 스치다 사라졌다.
‘왠 뱀이지...쿤달리 에너지인가?...’
약간의 의문 속에서 명상을 마쳤다.
아침을 먹고, 그날은 죽순 국과는 다른 뭔가
색다른 먹거리를 찾아 하산 하였다.
산 아래 동네 주변의 묵은 밭에 듬성듬성 있던
시금치가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큰 기대를 품고 내려왔는데 밭 주변에서
동네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차마 자존심 때문에 시금치는 캐지 못하고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궁색한 모습으로 수행자의 품위를 잃고 싶지 않아서...
산을 오르는데 문득 아침에 명상 속에서
보았던 비젼이 생각났다.
뱀,뱀, 뱀...계속 뱀을 생각 하다가 급기야
몸도 허한데 '뱀을 한번 잡아먹어 볼까’라는
생각으로 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비젼은 암시적으로 보여 짐으로 해석을 잘해야 됨.
무지한 단다처럼 되지 말고...흐흐).
그리고 점심시간.
색다른 반찬 추진이 좌절 되어 잔뜩 심통이 났었다.
보름 째 변함없는 식단,
야외 평상에 앉아 예의 그 된장죽순을
질겅질겅 거칠게 뜯고 있었다.
문득. 눈을 들어 앞을 보았다.
그 순간, 빠르게 앞을 지나던 풀뱀 한마리가
자기도 놀랐는지 멈칫 멈추는 게 아닌가.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팽팽한 정적이 흘렀다.
나는 반사적으로 옆에 벗어 두었던 등산화를 직사포로 던졌다.
그런데 말이지...신의 뜻으로...
바닥에 있던 바위와 뱀 머리와 등산화 뒤축이
절묘한 타이밍을 이루며 그의 머리 부위는
심하게 형태가 변형되어 버렸다.
한마디로...쭉 뻗어버렸다.
단 한방에. 허무하게. 왜 멈추냔 말이지.
평소처럼 빛살처럼 빠르게 지나가지...
힘없이 길게 늘어지는 그를 보자 살생계를
범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며 두려움이 밀려왔다.
죄지은 자들이 그러듯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다행이 아무도 보는 사람은 없었다(신께서는 보고 있었겠지..).
‘비젼이 이것 때문이었구나. 확실히 보여 주던지...
살려야 할지, 죽여야 할지 판단은 내가 하라는 것인가?’
그런데... 하나의 갈등이 일었다.
이것의 처리를 어떻게 하느냐.
그냥 묻느냐 아니면...까짓껏! 이왕 죽은 것.
이왕 죄지은 것. 삶아 먹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결론이 서자 신속히 몸이 따랐다.
갑자기 가치를 잃어버린 죽순된장국은 땅에 가차 없이 버려졌다.
그곳에 죽은 그를 통째로 넣었다.
그리고 불을 지폈다.
이상한 일은...사(巳)국이 삶아 지는 것을 보고 있으니
왠지 몸에 엔돌핀이 도는 것 같고 기분이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했다.
본능적인 반응 같았다.
풀만 먹던 거친 피부에 뭔가 정력적인
단백질을 공급한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계를 어긴 전형적인 타락 수행자의 모습인 것을 망각한 체....
팔팔 끓는 것을 보고 소금을 넣기 위해 뚜껑을 열었다.
뜨거운 김과 함께 확! 끼치는 역겨운 노린내!
속이 울컥했다.
과연 이것을 먹을 수 있을 까하는 의구심을
애써 덮으며 소금을 넣고 주걱으로 휘휘 저었다.
그런데...젓다 보니 작은 검은색 잎들이
둥둥 뜨는 것이 아닌가.
이상해서 몸통을 휘저어 보았다.
그랬더니 한 뭉치의 검은 잎들이 솟아올랐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파리 날개였다!
죽어 둥둥 떠오르는 파리들을 보자 코끝이 찡해 지며
심한 죄책감이 밀려 왔다. 동병상련!
‘아. 미안하다. 너도 먹을 것이 없어 파리밖에 잡아먹지 못했구나.
나랑 같은 처지 였구나. 미안 하다. 미안하다!’
그랬다. 그도 동면에 깨어 난지 얼마 안 되는지
힘이 없어 파리 밖에 잡아먹지 못했던 것 같다.
뱃속을 헤집어 보니 전부 파리 밖에 없었다.
땅을 파고 그대로 묻어 주었다.
삶은 장례식을 치르고 티벳 불교의 위대한
성자 밀라레빠처럼 이렇게 말했다.
“미안하다. 내가 언젠가 깨달음을 얻는 다면
너를 나의 제자로 받아 주마.”
(밀라레빠는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흑마술을 배워 한 동네 사람들을 모두 몰살 시켜버렸음.
그리고 후에 깨달음을 얻고 자기가 죽인
사람들을 모두 제자로 다시 받아 주었음.)
-------------------- 그리고 6~7년이 흘렀다 ------------------
히말라야 바바지 동굴이 있는 카타고담 아쉬람을 방문 하였다.
바바지 동굴을 공식 방문하기로 한 그날 아침
명상을 끝내고 잠이 살짝 들었는데 생생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명상을 하기 위해 길가의 돌에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큰 뱀 한 마리가 숲속에서 나타나
안쪽 허벅지를 심하게 물고 놓지를 않는 것이었다.
나는 고통 속에서 뱀을 떼어내 길가로 던졌다.
뱀은 살아서 도망쳤고, 허벅지를 보니 붉은 피멍과
함께 선명하게 이빨자국 두개가 찍혀 있었다.
놀라며 잠을 깨었다.
잠이 깬 상태에서도 허벅지가 저려 왔다.
식은땀이 났고 정말 현실 같은 꿈이었다.
에스트랄 체의 공격 같았다.
가슴 한켠에 앙금져 있던 지리산에서의 그 뱀이 생각이 났다.
보복인가?
그리고...아침 6시에 동행한 YSS 헌신자들과 함께
바바지 동굴을 방문하게 되었다.
라히리 마하샤님께서 전생에 수행하셨던
성지 중의 성지.
동굴 속에서 명상도 하고, 참배하고,
다시 산 정상의 아쉬람 판두 콜리(판두의 영역)를
향해 등산을 하였다.
산 정상은 주변의 산들을 모두 압도하듯
가파르게 솟았으며 평풍처럼 펼쳐지는
히말라야 만년설의 능선들이
장관을 이루었다. 그런데 그 멋진 풍경과는
대조적인 소음이 있었으니...
바로 개짓는 소리였다.
아쉬람 입구 옆에 개가 한 마리 묶여있었는데
사람들을 보자 미친 듯이 짖기 시작했다.
덩치도 큰 밤색 개였는데 인상도 험악하고 한 성질 해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개를 피해 아쉬람 안으로
모두 들어갔는데 나만 들어 갈 수 없었다.
내가 다가가기만 하면 이것이 거의 발광을 하며
미친 듯이 하늘로 뛰어 오르며 짖는 것이었다.
너무 사력을 다해 나의 출입을 막는 것 같아
들어가기를 포기하고 서 있는데 아쉬람 관리자가 나와서
아쉬람 밖 공터로 끌고 가서 묶어 두었다.
아쉬람 내부를 모두 참배하고,
먼저 밖으로 나와 개가 있는 공터로 갔다.
평소에 개를 좋아하는 지라 처음 보는
개하고도 곧잘 친해지는 편이었다.
그는 내가 다가가서 호의의 미소를 보내자 짖던
것을 멈추고 꼬리까지 흔드는 것이었다.
나는 전혀 공격성을 감지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를 쓰다듬어 주기 위해 개줄 반경 안까지
들어가서 어루만지려 했다.
그 순간, 녀석이 그대로 뛰어 오르며 나를 공격했다.
나도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젖히며 피했는데,
이미 허벅지가 녀석의 입속에 들어가고 난 뒤였다.
안쪽 허벅지가 심하게 물려버렸다.
불같은 화가 솟구쳤다.
"개()끼가 감히! ...으...참자 여긴 인도지..."
잠시...화를 삭이며 녀석을 보고 나직이 말했다.
"너! 한국 같았으면 벌써 죽은 목숨이다...!"
허벅지 통증이 심해 허리춤을 열어 안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하얀 피부에 붉은 피멍과 함께
선명하게 찍힌 이빨자국 두개!
번쩍, 새벽의 꿈이 떠올랐다.
물린 위치도 꿈과 똑 같았다.
전율이 흘렀다. 나는 개를 보며 소리쳤다.
"그럼. 네가 그 뱀이란 말이냐!"
녀석은 전혀 적의도 드러내지 않은 체
자신의 임무는 이제 끝났다는 듯 편안히
누워 혀를 빼고 헤~헤~ 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녀석을 바라보고 합장하며 말했다.
"나도 너의 지금 이 행위를 용서하마.
그러니 너도 옛날에 나의 잘못을 용서해다오. 미안하다. "
뭔가 가슴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하늘과 눈 덮인 산과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슴 속에서 응어리진 염체덩어리 하나가 빠져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며 정말 가슴 속이 시원해지고 환해 졌다.
상승기류를 타고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느낌...
이렇게... 오랫동안 가슴속에 응어리 져 있던
작은 인과 하나가 풀어진 것일 까?
그는 보복했지만 나는 지금 용서하였다.
이제 풀어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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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께서 말씀하시길,
신의 법칙으로 만들어진 카르마의 결과는
절대 소멸되지 않는 다고 했다.
예수 같은 위대한 성자도 제자들의 나쁜 카르마를
단지 자신의 몸으로 옮길 뿐이라고 했다.
그래서 예수는 십자가를 짊어 졌고,
제자들은 모든 죄가 씻겨 예수처럼 순결해져서
그와 똑같이 죽은 자를 살리고
기적을 행하며 복음을 전파 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하물며 나 같은 범인은 어떡하겠는가.
아무리 명상을 하고 신에게 헌신하고,
성지로 피한다고 해도
카르마의 칼날은 정확히 뒤를 추적한다는 사실...
그것을 이해하였다. 성지 중의 성지에서...
다른 이들은 성스러운 기운에 충만 되어
가벼운 걸음으로 즐겁게 하산 하였지만,
살생부를 진 죄인은 다리를 절며 하산해야 했다.
그리고 몇 칠 통증을 견뎌야 했다.
신이여. 이 죄인에게 용서를.... 옴 샨티.
첫댓글 단다님...아프셨겠어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예전에 전생에 관한 꿈을 꾸었는데 구루지 가르침에 전생에 대한 그런 꿈은 사실이라고 하더군요...근데 그것이 일곱생전이라고 해도 한끼의 음식을 빚진 것을 지금까지 갚고 있습니다...문득 명상중에 느꼈습니다. 그렇구나, 그런 것이구나. 제가 왜 수행자의 삶을 살았으면서도 다시 속세의 짐을 짊어져야 하는지 이해가 되더라구요...이번 생에서 하루 속히 갚음이 끝나고 오직 신과 구루지를 향해 헌신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예. 항상 그 밥값이 문제지요...
고맙습니다단다님덕분에저도에전에전생꿈을꾼적있습니다성경에복있는자는오만한자리에않지안는다는말이생각남니다
감사합니다, 단다님의 수행기는 늘 재미있으면서도 깨우침을 줘서요,^^
재미있고 교훈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감사합니다.
이미정해져있는것 서로가 전생빛을 주거니받거니 하셨네요.
단다님.참부럽습니다. 열심으로 수행하시는 모습이 건강하시고 좋은글많이 볼수있게해주세요 하이팅//
깨달음에 가까워지는 사람은 카르마의 갚음이 빨리 나타난다고 합디다. 하하하하!!!
많은것을생각나게하네요
눈팅만하고있는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