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듬
머리 감을 때 박박 긁으면 얼마나 시원한지 모른다. 그리 문지르면 피가 날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았다. 아프고 상처 나면 그러겠냐마는 그 감질나는 머리 감기를 왜 세게 문질러야 하는지... 손 지문으로 살살 달래야 한다는데 하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손톱으로 짓이긴다. 하고 나선 이러면 안 되는데..
욱신거리고 얼얼해도 무엇이 쓸려나간 기분이다. 속이 다 휑하다. 며칠 지나면 또 근질근질하다. 그 안에 뭣이 들앉아 이리 시끄럽게 구는가. 성가시고 구차하다. 땀이 나거나 비를 맞아 눅눅하면 이내 가렵다. 가끔 손으로 살짝살짝 긁는다. 그러지 말자 맘먹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저절로 부스럼을 만든다.
목욕할 때 처음은 조심해서 머릿살을 보호하느라 살살 하다가 그만 어느새 좌우에서 위아래로 마구 대한다. 삼수갑산을 가드래도 참을 수 없어 막 해댄다. 이 시원함을 어디에 비길까. 머리카락이 빠져 대머리거나 툭 불거져 혹이 생길까 걱정이다. 하나 생겼다. 앞머리 쪽에 콩알만한 게 났다. 이게 뭘까. 없어지지 않고 계속 굵어만 간다.
아내가 이건 이상하다며 암 같으니 빨리 병원에 가 보란다. 그러고 보니 이마에도 여러 개 나서 만지작거린다. 몸의 제일 위에 있는 사령탑을 제멋대로 괴롭히고 함부로 대해서 성깔을 부리는 모양이다. 다대포 피부과를 찾았다. 큰 병일까 위태위태한 맘으로 들어갔는데 보더니 사마귀라며 지져 없앴다. 이마의 잔잔한 것들도 모두 해치워 말쑥하다.
어릴 때 겨울날 머릿니가 있어 가려웠다. 쎄가리(서캐)가 붙어 희끗희끗한 게 열매처럼 머리카락에 주렁주렁 붙어 있다. 즐비한 참빗으로 싹싹 빗으며 내쫓았지만 진드기처럼 남아 겨우내 함께 지난다. 삼단처럼 긴 여자 머리는 엄청 고생이었다. 몸에 이는 겹쳐진 바느질 구석에 많이 엉겨 살고 알도 조롱조롱 낳아 하얀 것이 덕지덕지하다.
이게 밤새도록 얼마나 파먹었는지 가려워 견딜 수 없다. 엄지손톱으로 눌러 죽이고 알은 톡톡 터뜨린다. 아무리 씻고 갈아입어 깨끗이 해도 자고 나면 또 엉망이다. 밤사이 온 동네를 싸다니며 옮기는가 보다. 하룻밤에 천 리를 간다니 이와의 전쟁이다. 바깥에 내놓아 얼어 죽게도 했지만 소용없다.
그 몸서리나는 이 토벌도 디디티가 나오고 생활이 좋아지며 청결해지자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몸에 기생하는 흰빛의 이와는 달리 머릿속을 가렵게 하는 머릿니는 작고 가무잡잡하다. 옛날 긴 머리를 둘둘 말아 상투 올리고 비녀로 질끈 꽂아 다닐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득실득실했을 것이다. 겨우 물러가니 이번엔 비듬이 말썽이다.
예전엔 비듬이 없었는가 그런 말 없이 지났는데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며 머리 깎아주는 이동 이발사가 있었다. 거기에 맡기고 나서 가렵기 시작했다. 다니면서 비듬을 옮겼다. 머리카락이 찡겨 손기계가 잘 돌아가지 않으면 풀어 솔로 털고 기름칠해 다시 한다. 칼로 끊거나 가위로 싹둑 자르던 이발은 기계가 생기면서 쉬워졌다.
이 사람 밀고 저 사람에게 쓰던 기계는 그만 전염병을 옮겼다. 한번 걸린 비듬은 평생 고질이다. 온갖 좋다는 것을 써도 소용없다. 죽은 피부 세포가 쌓여 떠들썩하게 올라온다. 흰 눈처럼 검은 머리에 쉽게 드러나 보인다. 목덜미와 양 어깨에 쌀겨 모양의 하얀 가루가 떨어져 앉는다. 예배 시간에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앞사람 등을 본다.
그게 그리 지저분해 보일까. 남의 일이 아니라 내가 그러지 않나 걱정이다. 손톱으로 긁은 자리에 비듬이 소복이 쌓인다. 이내 하나둘 떨어져 부스스 머리에 올라오고 스르르 떨어져 옷과 베개에 내린다. 반백이어서 조금 덜 하나, 둘 다 희끗거린다. 이틀이 멀다하고 감아제쳐도 기승을 부린다.
병원 치료 약이 참 잘 듣는다. 좋은 세상에 늘 감사하며 산다. 그런데 왜 비듬약은 없을까. 뿌리거나 바르면 비듬균이 사라져야제. 건선과 두부백선이 탈모도 일으킨다는데 자고 나면 베갯머리와 위를 만져본다. 혹시 빠지지나 않나 해서이다. 죽은 피부세포가 쌓이는 지루성피부염은 대개 만성이란다.
비듬 샴푸와 항진균제 샴푸를 사용하고 스테로이드제를 바르고 샴푸를 써 본다. 잠시 멈칫할 뿐 이내 가렵다. 두피와 국소 소양으로 비듬(鱗屑)이 생겨 추접스러움이 대단하다.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 피 끓는 20대가 심하고 중년을 넘어서면 덜 하다는 데도 여전하다. 곰팡이 진균이 이리 무서울까 모질다.
좋다는 것을 해본다. 자색 양파를 갈아 바르고 아스피린도 묽게 섞어 뿌렸다. 베이킹소다와 레몬즙도 비트와 민트를 갈아붙이기도 했다. 또 맥주가 좋다 해서 발랐다. 아보카도를 오일과 섞어도 해 보고 꿀과 달걀도 사용했다. 피부에 좋다는 비누를 사용하고 레몬즙을 철갑을 해서 낫길 바랐지만 더 심하다.
비듬나물이 있다 해서 찾아보았는데 비름이라고도 하는 나물이다. 개비름 털비름 색비름 참비름 들비름 쇠비름 가시비름 청비름 눈비름 등 많다. 참비름을 주로 먹는다는데 사진으로 보니 참깨 잎처럼 생겼다. 이름도 비듬나물이 뭔고 더러운 피부병 이름인데 그걸 데쳐 먹는단 말인가.
혹시 아나 온갖 것을 발라도 안 되니 저걸 먹으면 좋아질까. 밭에다 심어서 키워보련다. 선인들이 만든 이름은 대개 중요하다. 금자가 들어간 지명은 금이 나오고 산 포 진이 든 이름은 거기에 걸맞았다. 비듬에 좋아서 그런 나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그 무섭던 천연두 홍역 나병 결핵이 좋은 약으로 사라지는데 쉽게 고칠 수 있을 비듬병은 이리 더딜까.
도모호론액을 바르며 비듬아 이제 멀리 가라 가래이.
첫댓글 재밋게 읽어서요
요렇게 맛갈나게...
호롱불 아래서 이 토벌했던 시절 한참 웃고 갑니다
우리 어릴 때 그랬어요.
지금 아이들은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머리 긁지 말고 손가락 바닥으로 머리카락을 비벼서 감고 두피샴푸로 마감을 합니다. 처음에는 전과 같이 긁어야 하나 계속 하면 괜찮아집니다. 감고 나서 식초를 물에 물게 풀어서 머리에 바르거나 구연산을 풀어녹여서 바르거나 합니다.
졸업생 피부과 의사가 약을 줘서 바르니 많이 좋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