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한 장정 수십명과 한 사람의 기사가 싸워서, 기사가 이길 수 있었을까요? 영화를 보면 이런 장면이 종종 등장하곤 하죠? 아름다운 여인 한 사람이 외로이 서 있는데, 갑자기 산도적 수십명이 나타나 겁탈하려고 덤벼드는 거예요. 그 때 어디선가 백마 탄 꽃미남 기사 하나가 홀연 나타나 도적을 무찌르고서 미녀를 구출하는 거죠.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기사라고 하지만, 한 사람이 수십명이랑 싸워서 정말 이길 수 있었을까요?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한 일이었을까요?
답은 ‘그렇다’ 예요. 이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었어요. 중세 기사의 전투력은 엄청난 것이었거든요. 한 사람의 기사는 현대의 장갑차에 비유될만한 무지막지한 파괴력을 갖고 있었어요. 장갑차 한 대만 있으면 무장 강도 20~30명 정도는 우습게 무찌를 수 있지 않겠어요? 옛날의 기사는 요즘으로 치면 장갑차처럼 막강한, 당시로선 최신형 전쟁 무기였어요.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비밀 중 하나는 기사들이 입었던 갑옷에 있었어요. 기사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윗도리 위에 바지를 입고, 그 위에 동물의 털과 가죽으로 만든 패드를 댄 뒤, 다시 그 위에 호버크(hauberk)라는 갑옷을 입었어요.
호버크는 철사를 동그랗게 말아서 연결한 방어복이예요. 그런데 놀라지 마세요. 호버크 한 벌을 만드는 데엔 무려 수만개의 쇠고리가 사용됐어요. 수만개의 쇠고리와 털가죽 패드의 역할은 짐작하는 것과 같아요. 적의 칼이나 창이 몸을 꿰뚫지 못하게 막는 것이었죠.
동그란 고리를 하나씩 엮어 만든 호버크는, 찔러 들어오는 적의 칼날을 매우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었어요. 기사들은 이 호버크를 입은 위에 다시 서코트(surcoat)라고 부르는 털코트를 겹쳐 입었죠. 그리고 그 위에 다시 코트 오브 플레이트(coat of plate)라고 부르는 쇠조끼를 겹쳐 입었어요. 그러니까 웬만한 칼엔 찔려봐야 끄덕도 안했던 거죠.
그런데 중세 기사들의 중무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당시 기사들이 가장 쉽게 다치는 부위는 바로 손이었어요. 창이나 칼 같은 무기를 들고 싸우다 보면, 제일 잘 노출이 되는 부위가 손이었거든요. 그래서 서양 기사들은 손을 보호하기 위해 쇠조각을 이어 붙인 쇠장갑을 끼었어요. 그리고 발에는 발목을 보호하기 위해 쇼스(chausses)라고 부르는 각반을 복숭아 뼈에 찼지요.
이렇게 중무장을 하고 있으니, 산도적 같은 오합지졸이 휘두르는 무기로는 아무리 해도, 기사를 해칠 수가 없었던 거예요. 기사에게 상처를 입히기는 커녕 기사가 휘두르는 무기에 맞아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었죠.
그런데 문제는 기사의 갑옷이 엄청 무겁고 불편했다는 점이었어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한여름에 오리털 파카만 입어도 활동하기가 불편하잖아요? 그런데 온 몸에 동물 가죽과 털로 된 패드를 감고, 철사 고리로 몸을 칭칭 감싸놓고는, 그 위에 다시 쇳조각을 주렁주렁 달아놨으니 얼마나 활동하기가 불편했겠어요?
여름이 되면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었어요. 더운 것으로 치면 그야말로 끝장이었죠. 비오듯 땀이 흘러내렸지만, 온 몸을 쇠로 감싸 놓았으니 제대로 땀을 닦지도 못했던 거예요. 호버크는 엄청나게 불편한 방어복이었어요. 그래서 나중엔 ‘플레이트 메탈(plate metal)’이란 갑옷이 유행했죠. 플레이트 메탈이란, 말 그대로 쇳조각을 잘라 이어 붙인 갑옷이예요. 가슴, 등, 팔, 다리 등에 쇳조각을 붙여 만든 옷으로, 무겁긴 했지만 그래도 호버크보다는 움직이기가 편했어요.
기사들은 호버크나 플레이트 메탈을 입고, 그 위에 다시 헬멧을 썼어요. 당시 헬멧은 대부분 양동이를 엎어놓은 듯한 모양을 하고 있었어요. 기사들이 헬멧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안감을 덧댄 모자를 쓰고 나서, 목을 보호하기 위해 목 주위에 쇠로 된 보호대를 둘러야 했어요. 그러니까 쇠로된 목도리를 감고 있는 셈이었죠. 그러니까 숨을 쉬기도 버거웠죠. 그래서 헬멧에는 십자가 모양의 작은 구멍이 나 있었어요. 기사들이 앞을 보고 숨을 쉴 수 있게 하려고 뚫어 놓은 것이었지요.
중세 기사들이 입었던 갑옷의 무게는 약 20~30kg에 달했어요. 웬만한 초등학생 한 명의 몸무게였던 거죠. 기사들은 이렇게 중무장을 하고선 칼이나 창을 휘두르고 다녔는데, 당시 칼 한자루의 무게는 약 15kg에 달했어요. 그러니까 갑옷과 칼만 합쳐도 무게가 35~45kg나 나갔던 거죠. 이 정도 무게라면 웬만한 사람은 가만히 들고 서 있기도 힘든 무게예요. 기사들은 이 뿐만 아니라 철퇴, 쇠도끼, 쇠망치와 같은 각종 무기를 추가로 갖추고, 여기에 다시 방패를 들고 전투에 참가했어요. 어떤 기사들은 자기가 타고 다니는 말을 보호하기 위해, 말에게 까지 쇠로 만든 갑옷을 씌워줬죠.
그러다 보니, 기사와 말이 함께 견뎌야 하는 무게는 50kg를 훌쩍 넘기기 일쑤였어요. 기사들은 이 엄청난 무게를 이기지 못해 허우적거릴 수 밖에 없었죠. 영화에서 보면 한번 넘어졌던 기사가 재빠르게 다시 일어나 힘차게 싸우죠? 심지어는 말 위로 ‘훌쩍’ 올라타는 기사까지 나오잖아요. 하지만 실제는 영화와 달랐어요. 싸우던 기사는 일단 넘어지면 끝장이었어요. 갑옷과 무기의 무게 때문에 일어나지 못해 ‘뒤뚱 뒤뚱’ 허우적거리는 우스꽝스런 상황이 곧잘 벌어지곤 했거든요.
이렇게 중무장한 기사가 일반 병사들과 싸우면 어떻게 될까요? 넘어지지만 않는다면 기사를 당해낼 사람은 없었어요. 엄청난 무게 때문에 웬만한 사람은 부딛치기만 해도 그냥 나가 떨어져 버렸거든요. 그러니까 일반 병졸들은 도저히 상대가 될 수 없었어요. 하물며 강도나 깡패 같은 사람들은 말할 나위도 없었어요.
온 몸에 쇠철판을 두르고 있으니 마땅히 공격할 곳도 없었고, 칼이나 창으로 베거나 찌를 수도 없었으며, 활로 쏴도 화살이 튕겨져 나왔으니,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말을 탄 기사가 칼이나 쇠도끼를 휘두르며 돌진해 오면, 일반 보병들은 도무지 어떻게 상대를 해 볼 수가 없었던 거죠. 한마디로 도망치느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던 게 당시의 현실이었어요.
갑옷을 입은 기사는 웬만해선 죽일 수도 없었어요. 머리에도 헬멧을 쓰고 있으니까 공격을 할 데가 없었거든요. 기사를 죽일 수 있던 방법은 기사를 넘어뜨린 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붙잡는 것이었어요. 몇 사람이 기사의 팔 다리를 꽉 붙잡아 못움직이지게 하고, 다른 사람이 넘어진 기사의 머리를 꼭 붙든 뒤, 또 다른 사람이 기사의 투구를 벗겨내면, 나머지 사람이 칼로 기사를 찔렀어요. 그게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죠.
그런데 헬멧을 벗겨내는 일도 장난이 아니었어요. 쇠도끼와 철퇴가 날아다니던 중세 전투에선, 싸움 도중 헬멧이 찌그러지는 일이 자주 생겼죠. 그런데 문제는 찌그러진 헬멧을 벗기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다는 거예요. 한번 생각을 해 보세요. 머리에 쇠로 된 철통을 뒤집어 씌워 놨는데, 여기저기 우그러지면 그걸 어떻게 벗겠냐고요. 기사 입장에서도 찌그러진 헬멧을 계속 쓰고 살 수는 없잖아요? 당장 밥을 먹어야 할 텐데, 먹을 수가 없으니 말이에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대장장이를 불러서 헬멧을 두드려 펴는 수 밖에요.
실제로 당시에는 전투를 치르고 난 기사들이 돌아와선 쇠로 된 철판에 머리를 대고 엎드려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해머로 헬멧을 두드려 펴서, 머리를 빼낼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말이죠.
기사의 헬멧을 벗기기 힘든 것은 적들도 마찬가지였어요. 기사를 사로잡았더라도 헬멧이 찌그러져 있으면 벗겨내기가 힘들었던 거예요. 그리고 헬멧을 벗기지 못하면 그 기사를 죽이기가 어려웠지요. 그래서 당시의 병사들은 가늘고 긴 칼이나 꼬챙이를 갖고 다녔어요. 끔찍한 이야기지만, 기사를 죽이기 위해서였어요. 사로잡은 기사의 턱 밑이나, 투구에 뚫려 있는 눈 구멍 사이로 꼬챙이를 찔러 넣는 용도였지요.
중세의 기사는 넘어져서 사로잡히면, 적에게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매우 컸어요. 하지만 일단 말을 타고 달리면 그야말로 천하무적이었어요. 일반 보병은 중무장한 기사 근처로 접근하지도 못했죠. 다가가기는 커녕 기사가 휘두르는 철퇴에 맞아 머리가 부서지기 십상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중세의 기사는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전투력을 가진 첨단 무기였던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