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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궁리 유적 - 익산 천도설 뒷받침 '왕궁리성지'라고도 불리는 왕궁리 유적은 마한도읍지설, 백제 무왕의 천도설이나 별도설, 안승의 보덕국설, 후백제 견훤의 도읍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발굴조사한 결과, 이 유적은 적어도 세 시기(백제 후기∼통일신라 후기)를 지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석탑 동쪽으로 30m 지점에서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보이는 기와 가마 2기를 발견했다. 특히 탑을 에워싼 주변의 구릉지를 중심으로 직사각형 모양의 평지성으로 생각되는 성곽 유물을 찾았다. 이 지역 안에 있는 왕궁리 5층석탑(국보 제289호)과 절터의 배치를 알 수 있게 하는 유물, 바깥쪽을 둘러싸고 있는 직사각형의 성이 발견되어, 백제 후기의 익산 천도설이나 별도설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유적으로 떠오르고 있다. ■ 제석사지 - 수도 옮기려 세운 절 백제 무왕이 수도를 왕궁평으로 옮기려고 지은 궁궐 근처에 불교의 수호신인 제석천을 중심 불상으로 모신 절이 있던 자리이다. 기록에 의하면 무왕 40년(639)에 벼락으로 절이 모조리 불에 탔을 때 탑 아래 넣어 두었던 동판에 새긴 금강반야경과 불사리만은 보존되어 다시 절을 지은 후 보관하였다고 한다. 탑터로 생각되는 지역에서 제석사라고 적힌 기와조각이 발견됨으로써 절의 이름이 밝혀졌다. 주목되는 점은 1965년 백제 무왕의 궁터라고 전하는 왕궁평 성안의 석탑에서 발견한 유물과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이 비슷하다는 점이다. ■ 쌍릉 - 무왕-선화공주 묘 추정 남북으로 2개의 무덤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어 쌍릉이라고 부른다. 무덤 안의 구조는 백제 후기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이며, 무덤의 봉분과 돌방의 크기가 큰 북쪽의 것을 대왕묘라 하고, 남쪽의 작은 것을 소왕묘라고 부른다. 약간의 크기 차이가 있지만 2기 모두 원형의 봉토무덤으로 흙을 높이 쌓아 만든 봉분 이외에 별다른 장식이 없다. 1916년 조사할 당시 무덤은 이미 도굴이 되어 유물이 남아 있지 않았다. 다행히 대왕묘 안에서 나무로 만든 관이 일부 발견되어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 할 수 있었다. 출토유물은 없지만 무덤 안의 구조로 보아 백제 후기의 것이 틀림없으며, 근처에 미륵사가 있어서 미륵사를 처음 만든 백제의 무왕과 그 왕비인 선화공주의 무덤일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입점리고분 - 5세기께 조성 익산시 입점리 칠목재 구릉 중턱에 있는 백제 무덤들로, 1986년에 마을의 한 고등학생이 칡을 캐다가 금동제 모자 등을 발견·신고하여 알게 되었다. 긴급발굴을 하여 8기의 무덤을 확인하였는데, 1호를 제외하고는 파손이 심하다. 출토된 유물로는 토기류·금동모자와 금귀고리, 유리구슬 등의 장신구류·말갖춤(마구)·철기들로서 백제 중요 유물이 수습되었다. 유물들로 보아 5세기경 만들어진 무덤으로 보이며, 금동제 관모는 일본에서 나온 것과 비슷하여, 당시 백제에서 일본으로의 문화교류를 짐작하게 한다. /최우중 문화전문객원기자(전주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
첫댓글 백제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것을 이 글을 통해 느끼고 있습니다.
감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