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이나 부부 사이에 사랑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것은, 서로의 투사를 자각하고 철회하는 과정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병에 걸리고, 자신도 노년에 따른 건강 문제가 악화되고 있을 때,
아내의 건강을 걱정하고 병을 간호하고, 치료를 잘 받으라고 채근하면서,
정작 그것이 자기 자신의 체력과 건강이 나빠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저항감을,
병든 아내에게 투사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자신의 건강 불안을 자각하기 보다 아내의 병을 걱정하는 거야!라고
전가하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고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요.
내 염려를 자각할 때, 아내의 병도 있는대로 잘 보살피게 됩니다.
이런 작은 차원이 있고 또한 다른 큰 차원은요.
아내가 가진 지혜를 보면서 이게 신성한 것이다. 기적적인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데요.
이럴 때 아내가 가진 지혜가 사실이어 신성하고 기적적인 일이면서,
그것 때문에 제가 영향을 받아 나를 계발하는 에너지가 되기도 하는 것이 투사의 한 특성이고,
또한 내 안에 있는 딱 그만큼만 아내를 보면서,
실제로 아내가 가진 지혜의 전체 진면목을 보는 것이 무척 어렵기도 합니다.
하나는 작고, 하나는 굉장히 큰 투사라 말할 수 있는데,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 이 두 투사 모두 제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거기에 영향을 받아 어떤 에너지를 쓰는지를 조금 봤기에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거고, 분명히 아직 말로 하기엔 무르익지 않은 깊은 차원의 투사들이 또 더 있을 것입니다.
흔히 부부 사이에서,
"결혼 생활에서 배우자와 감정이 상할 때, 이건 내 투사지, 혹은 저 사람이 나한테 투사하는 거 아닐까? 하면서 상황을 개선하려 노력하는데요. 그러면서도 감정이 너무 격해지고 미워져서 더 이상 진전이 없기도 하고, 뭔가 배워서 알고 있는 내가 제대로 못하는 것에 대해 미안하기고 하고, 상대도 뭔가 해야 하지 않나?하는 원망도 있다." 는 말을 듣습니다.
저도 충분히 겪었고 공감하는 일이면서,
제 아내의 병을 내 몸의 병으로 보아 투사를 인식하는 것과,
아내의 지혜를 내 안의 지혜로, 또한 아내 자체의 본질로 보는 것이 어려우면서 점차 자각하는 일이,
대부분의 부부에게 일어나는 보편적 일은 아닐 것입니다.
많은 부부가 대개 갈등과 미운 감정으로 괴로움을 겪으면서, 저희 부부에게도 없었다고 할 수 없고요.
이런 갈등 해결에서 중요한 것은 심리, 투사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상상력이라 생각합니다.
뭔가 내 감정이 격해졌을 때, 이것을 인식하고,
"이것이 내 안의 무엇이 투사되어 이런 감정을 일으켰구나! 내가 좌절하고 나를 혐오하게 하는 것이 내 안에 있지. 내가 내 안의 어떤 일부에 대해서 좌절하고 혐오하고 있구나!"
라고 인식하는 것까지는 투사에 대한 지식으로 성찰 가능한 영역입니다.
이 다음 이것을 진정 내 것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고,
또 그렇기에 그것으로 진정 뭔가 변화된 행동을 하기까지는 더욱 어렵습니다.
이런 감정은 투사를 주고받는 상대의 어떤 행동이 있기에 촉발되는 것이 사실이기도 한데요.
실제로 개인과 사회의 집단적인 제약과 압력이 너무 커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거의 없는 경우에는
내가 겪는 감정의 파장과 고통이 상당히 큽니다.
내 상상 속에서 내 심리 상태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도 하면서, 견딜 수 없는 물리적인 실제 상황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것을 외부는 외부대로 두고, 내가 다룰 수 있는 내 내면으로 돌아오면,
이 때 느끼는 분노나 좌절은 내 생이 앞으로 미래까지 계속 온전하지 않고 망가지는 것에 대한 비극적 감정입니다.
그리고 이런 분노나 좌절을 느끼는 상황을 개선없이 살았을 때,
오랜 시간이 지나 미래 어느날, 온전한 삶에 비추어 내 삶을 되돌아볼 때,
아 그 때 그 사건 이후로 내 삶이 망가졌구나! 하는 후회가 될 그런 감정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해결책은, 지금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런 문제가 해결되는 미래의 넓고 큰 세상을 상상하고, 그런 세상을 시로 표현해 보는 것이 한 방법입니다.
시인의 시가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직 설명할 말이 없는 세상을 시인이 세상의 말이 아닌 시의 은유로 보여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가 쓴 시를 아무도 안 읽을지라도, 해결에 대한 내 상상력이 나를 변화시키기에는 충분합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상상력을 시로 표현하는 일이
이런 문제에 대한 분명한 해결책이 없고, 쉬운 해결책도 없다는 딜레마면서
그 어려운 해결책은 내 상상력에서 나온다는 것이 아이러니이기도 합니다.
해결책은 기존의 어떤 것이 아닌,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우리의 영혼 속에
상상력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역설입니다.
이런 상황에 대한 꿈 이미지는 다리입니다. 다리가 끊어진 두 곳을 연결하여 이동이 가능하게 하듯이, 서로 다른 나와 상대를 연결하고, 상반된 이 쪽과 저 쪽의 역설을 견디고 그것을 통합하려는 노력을 한다는 것의 상징으로 다리가 나옵니다. 꿈에서 다리를 건너거나, 혹은 배경으로 희미하게 다리가 나올 때라도 꿈꾼이의 이러한 상황과 노력에 대해 질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부 갈등의 예를 하나 더 들면, "남편이 술만 먹으면 자기가 성공 못한 건 오로지 아내인 나 때문이라고 원망합니다. 이 고통을 꿈을 통해 해결하려고 노력하는데 쉽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경우인데요.
먼저, 남편의 비난이 내게 짐이 되고 그런 상황이 꿈으로 나왔다면, 이 꿈에 관심을 기울이면 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조금이라도 깨어있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없으면 꿈을 꾸거나 기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내가 비난 받으면서, 은밀하게 내가 무의식적으로 받는 보상은 무엇이지?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미움이든, 찬탄이든 투사 받는 사람은 투사를 계속 일으키는 어떤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의식하든 못하든 그 행위를 반복하며 얻는 내밀한 이득이 있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망했어"라고 말하는 것이 반복된다면, "내가 남편을, 남자를 망칠 정도로 힘있는 존재야"를 내밀하게 즐기며 이것을 온존시키는 게 나인지도 모른다고 상상해 봅니다. "나한테 못 되게 굴어서 넌 벌을 받은거야. 이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 내 복수야" 라는 내 무의식적 보상이 이런 행위를 지속하게 하는 내 안의 동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의식적 투사 드라마의 막을 닫으려면, 이 드라마에서 내 역할은 무엇인가? 복수인가? 희생자인가? 그 외피를 벗은 진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부부 커플에게도 친구, 동료간에도 언제든 유용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물흐름님 감사해요.
감사해요^^ 많은것들을 생각하게 되네요 담아갈께요
감사 감사 잘보고갑니다.
대충 이해는 되는데 자신에게 적용하려니까 너무 어렵네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외피를 벗은 진짜 나는 누구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