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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8일
지난 10월 14일 경주 서악마을 구절초를 보기위하여 출동했는데 그때는 구절초가 반도 피지 않아 실망하고 왔다. 그래서 28일 구절초와 며칠전 노블래스팀이 갔던 통일전의 은행나무길 단풍을 보려고 출동했다.
28일 새벽 이왕이면 편안한 우등버스가 좋다 싶어 표를 예매할려고 '버스타고' 사이트에 접속했는데 표가 동이 나버렸다. 할 수없이 일반버스 타고가서 터미널에서 택시타고 태종무열왕릉까지 갔다.
지난번에는 서악서원까지 택시 타고 가서 골목길을 물어 물어 갔는데 이번에는 좀 더 쉬운 방법이 생각나서 태종무열왕릉 앞으로 간것이다. 태종무열왕릉은 예전에 구경한적이 있지만 서악마을로 가기위한 지름길 이기때문에 왕릉도 구경하고 일석이조인 샘이다.
왕릉으로 들어가서 서악마을로 가려면 왕릉 오른쪽 멋진 소나무길을 따라 끝까지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서악마을이 보이는데 그리로 슬슬 가면된다.
서악마을의 구절초는 신라문화원 문화재돌봄사업단이 몇년전 변산반도에서 서악동 3층석탑 주변으로 구절초 2만7,000여 송이를 이식해서 생겨난 것인데 힐링산책 명소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인근에 무열왕릉-진흥왕릉 산책로가 있고, 보희, 문희의 꿈이야기가 전해오는 선도산, 그리고 설총, 김유신, 최치원을 배향하고 있는 서악서원이 있어 신라 천년의 정취를 걸으며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각광을 받으며 가족, 연인들이 가을 정취를 만끽하고 있다.
특히 지난 13일과 20일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구절초 꽃밭 무대에서 ‘서악마을 구절초 달빛음악회’가 열렸는데 그때는 꽃이 덜 피고 또 나의 관심사항이 아니어서 패스했다.
이날의 구절초 상태는 절정기가 지났지만 볼만했다.
서악서원등 문화재를 구경할려면 마을길을 따라 내려오면 되고 무열왕릉 주변에 버스정류소가 있어 택시 못잡으면 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가면 된다.
서악마을
그녀, 길순이!!
여든을 훌쩍 넘기고도 시어머니의 목소리에는 늘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날이 선 목소리는 그녀가 예언했던 바가 현실이 될 때 유독 날카로웠다. 그 서슬에 며느리가 몸을 움찔했다.
“인제 와서 멀 우짜겠십니꺼? 그냥 받아들이야지예.”
“받아들이긴 멀 받아들이노? 지금이라또 내치라.”
“저걸 우째 내칩니꺼?”
“와 몬하노? 끌어다가 길바닥에 내치믄 그만인기라. 니가 몬하겠시믄 마 내가 할끼다.”
“아이고, 어매요, 저래 배 불러가 있는 걸 우째 내쫓십니꺼?”
“어데서 굴러먹다가 내 집엘 들어와가 이 사단이고, 사단이, 어이?”
“그라모 우짭니꺼? 몸 풀 때 까지만 이라도 그냥 둡시더, 어매요, 야?”
“족보는 고사하고 지 어매, 아배가 누군지도 모르는 천것을 그냥 두라꼬? 하이고, 인심 한 번 좋네. 니가 이래 물렁하이께네 집안에 저런 잡년이 다 들어온기라. 조강지처가 눈 시퍼렇게 뜨고 버티고 있는데도 남자 꼬시가 임신한 거 봐라.”
“그기 어데 길순이 잘못만이겠십니꺼? 삼복이도 맴이 있시니께 둘이서 마 그런기지예.”
“니 지금 저 화냥년 편드나? 우리 삼복이가 먼 잘못이고? 길수이 저 년이 살랑살랑 꼬리치메 암내를 풍깄시니께 가가 넘어간기제. 얼굴이나 반반하믄 내 말을 안 한다 아이가. 어데 저 따우로 생기가 남정네를 꼬시노 꼬시길. 삼복이 일마도 비위 한 번 조타 아이가”
“으쨌거나 일은 진즉에 벌어졌고, 길순이는 배가 산 만 하고, 다행히 삼복이 처도 그래 상심한 거 같지는 않으이께네 그냥 집에서 몸 풀게 하입시더, 어매요. 야?”
“순덕이 이년도 참 속 좋은 년이지, 저런 년한테 지 서방 뺏기고도 저래 멀쩡하이, 참말로.......”
며느리는 마침내 잠잠해진 시어머니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방을 빠져나갔다. 일이 좀 복잡해지기는 했지만 어차피 이리 된 거 서로 이해하고 어울렁더울렁 살면 또 살아질 것도 같은데 시어머니는 도무지 여지를 주지 않는다. 하긴 같이 산 30 여 년 동안 시어머니가 대충 넘어간 일이란 없었으니까. 늘 날을 세우고 세상 모든 일들을 두부 모 내듯 반듯반듯하게 썰어놔야 직성이 풀리는 양반이니 이번 길순이와 삼복이 일을 그냥 넘긴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시어머니 말대로 길순이를 들이지 말 것을, 며느리는 때늦은 후회를 한숨에 섞었다. 그러나 그날의 길순이를 생각하면 지금 다시 선택하라 해도 역시 집으로 데리고 올 수밖에 없을 거라고 며느리는 생각했다.
그날은 아침부터 날이 꾸물거리더니 오후가 되자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한 번 내리기 시작한 비는 점점 굵어졌고 하필 읍내에 나갔던 며느리는 잠시 동안 발이 묶였다. 우산을 뚫을 기세로 쏟아지는 비에 놀라 식당 처마 밑으로 몸을 피했는데 바로 거기에 길순이가 있었다. 흠뻑 젖은 몸을 바르르 떨면서 앉아 있던 길순이 선한 눈빛으로 며느리를 바라보았다. 한 눈에도 쇠꼬챙이처럼 비쩍 마른 몸에 남루하기 그지없는 것이 오갈 데 없는 신세인 것 같았다. 보나마나 춥고 배고플 마당인데도 순하디 순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길순이가 며느리는 몹시 안타까웠다. 처지가 저쯤 되면 아무에게나 빌붙어 사정이라도 할 만 한데 길순이는 그래도 괜찮다는 듯 장대비 내리는 세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이 며느리는 가슴 아팠고 결국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하게 만들었다.
“니, 내랑 갈래? 내랑 같이 우리 집에 가까?”
시어머니가 길순이를 보자마자 노발대발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디서 근본도 모르는 천것을 집에까지 끌어들이느냐, 저 더럽고 흉한 몰골을 보고도 데려온 것이냐, 머리 검은 짐승을 거두자는 것이냐, 면도칼처럼 험한 말들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그러나 길순은 모든 걸 다 이해한다는 듯 의연했고 며느리는 길순을 위해 뜨뜻한 국밥을 말았다. 길순이가 집에서 함께 동거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시어머니에게 달려있었고 희망은 없는듯 했다.
다음 날 아침,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마당 한 구석에 쌓여있는 쥐 네 마리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길순이가 다가와 시어머니 앞에 다소곳이 섰다. 여전히 순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뭐꼬, 저게? 니가 잡아놨나?” 며느리가 물었다.
“자가 뭔 괭이라도 되나, 쥐를 잡게? 게다가 사내자슥도 아이고.”
“엄니요, 엄니가 쥐라믄 질색팔색 하는 걸 야가 우째 알고 이쁜 짓 할라 그켔나보네예.
쪼매 이뻐해 주이소.“
그네들 집에는 유난히 쥐가 많았다. 며느리 말대로 쥐라면 경기를 하는 시어머니 때문에 안 해본 방역이 없을 정도였지만 어쩐 일인지 쥐들은 나날이 출몰했고 시어머니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으며 그리하여 집안은 조용한 날이 없었다. 그런데 길순이가 오자마자 쥐를 잡아 놓은 것이었다. 그것도 네 마리 씩이나.
“몸도 성치 않은 가시나가 용케도 쥐를 다 잡았데이. 와? 밥값은 해야겠드나?”
며느리의 말에 길순이도 시어머니도 대꾸가 없었다. 그것으로 길순이와의 동거가 허락되었고 길순이만 보면 눈을 부라리던 시어머니의 시선도 어느덧 무뎌졌다. 그렇다고 시어머니가 길순에게 살뜰한 말을 건넨다거나 하다못해 인사 한 마디를 건넨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며느리는 그것만으로도 천만 다행이라 여겼다. 그런데 결국 이런 일이 터진 것이었다. 시어머니가 애지중지 위하는 삼복이가 덜컥 길순이를 임신시킨 것이었다. 시어머니 성깔에 길순이에게서 난 자식을 가족으로 인정하지도 않을뿐더러 더욱 심각한 문제는 배가 남산만 한 길순이를 당장에 내치려 한다는 것이었다.
‘우찌되었든 간에 몸은 풀고 내보내야 할낀데, 이 일을 우짤끼고.’
천근같은 한숨을 내쉬며 며느리가 부엌으로 들어갔다.
“이기 무신 냄새고? 니 혹시 닭 삶나?”
냄새를 맡은 시어머니가 용수철처럼 부엌으로 튀어 들어왔다.
“이기 다 머꼬? 니 저 년 멕일라꼬 닭 삶는기가?”
“우에 되았든 몸보신은 좀 시키야 안 되겠십니꺼? 저래 몸이 허해가 어째 몸을 풀까 싶어서예. 힘 줄 맹큼은 되야 안하겠십니꺼?”
“머 이쁜 짓 했다꼬 닭을 삶아주나, 어이? 내 이 참에 니도 같이 내쫓아 주까? 그래 저 년이 이쁘믄 저 년이랑 같이 나가라.”
“어매도 참.”
“삼복이 일마를 내 칵 죽이뻐리야지. 어데서 바람을 피고 지랄이고, 지랄이, 어이? 눈깔은 다 삐아갔꼬. 내가 지를 어째 키았는데.”
길순이가 몸을 푼 건 그로부터 열흘 뒤였다. 영양실조를 오래 앓아서 그랬는지 새끼는 달랑 두 마리가 다였다. 그 중 한 마리는 애비 삼복이를 닮아 때깔 좋은 누런색이었고 다른 한 마리는 어미 길순이를 닮아 머리는 검은색, 몸은 얼룩덜룩한 회색이었다. 시어머니가 길순이를 두고 머리 검은 짐승이라 반농담조로 비난하는 이유였다. 어쨌거나 아직 눈도 못 뜨고 꼬물거리는 것들을 쳐다보고 있자니 며느리 자신도 모르게 배실배실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이고, 좋단다. 순종 진돗개가 혈통 보존도 몬하고 잡종을 두 마리나 질러났는데도 누구는 좋다고 웃는다. 집안 꼴 잘 돌아간다, 잘 돌아가.”
삼복이, 순덕이 모두 순종 진돗개 중에서도 상급으로 시어머니가 믿을 만 한 지인을 통해 적잖은 돈을 들여 사온 녀석들이었다. 사람이고 짐승이고 족보는 있고 봐야 한다는 게 시어머니의 지론이었고 버젓한 족보가 딸린 삼복이, 순덕이는 시어머니의 관심과 사랑 속에 무럭무럭 자라나 가끔씩 혈통 좋은 새끼를 치는 것으로 시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었다.
“저 잡종들을 우째 치우노, 어이? 족보도 없는 노무 시끼들을 누가 돈 주고 사겠노? 눈 뜨마 갔다 버리라.”
“어매도 참, 우째 그리 모진 말씸을 하십니꺼? 야들도 다 살아있는 생맹들인데예. 안 그래도 마 데불고 가겠다는 사람들 다 찾아놨심더. 걱정 마이소.”
“누꼬? 누가 이런 잡종을 델따 키운다드나?”
“잡종이믄 어떡코 순종이믄 어떻심니꺼?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고 살믄 그만인거지예. 우쨌거나 마 읍내에 그 뜨개질방 하나 안 있심니꺼? 그기 정씨 아주매가 한 마리 달라케서 그런다켔심더. 아 하나 읎이 살다 남편꺼정 저 세상 가고 마이 외로웠다 아입니꺼. 그라고 저그 홍철네도 한 마리 달라켔고예. 그 집 사람들이 원체 개를 좋아 안함니꺼? 마, 두 마리 밖에 안 낳았으이까네 종식이네는 몬 줄 것 같고예. 그래도 다들 진즉에 임자를 만나씨니 다행이라 아임니꺼? 인자 길수이 저거 하나 남았는데, 강아지도 아이고 성견이라 어데 키우겠다는 사람이 있을까 싶네예.”
며느리는 그렇게 말하며 슬쩍 시어머니 눈치를 살폈다. 인연이 닿아 제 집에 데려와 키우다 새끼까지 낳은 개였다. 시어머니 말대로 잡종인데다 인물도 영 박색이라 데려가겠다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게다가 성격도 다부지지 못하고 유순해서 어딜 가나 제 밥그릇 찾아 먹긴 그른 것 같은데 그런 걸 다시 내친다고 생각하니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시어머니를 설득해야 할 텐데 하고 걱정하며 며느리는 삶은 닭의 살을 발라냈다.
“하이고, 넘 서방 훔친 년이 머가 이쁘다꼬 또 닭이고? 저 년이 이 동네 닭이란 닭은 아주 다 해 쳐먹는갑다. 그래, 마 즐기라. 인자 내 집 나가고 나믄 또 어데서 닭고기를 묵어보겠노?”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며느리도 길순이를 지켜줄 수 없을 터였다. 착잡한 마음으로 며느리는 개 밥그릇에 발라낸 닭고기를 수북이 담아 길순이 앞에 놓아주었다. 어찌된 일인지 길순이가 닭고기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순하디 순한 그 눈으로 그저 며느리를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와? 묵으라. 마이 묵어야 몸도 빨리 낫고 젖도 돌고 하제. 그래 보지만 말고 쫌 묵으라, 어이?”
며느리는 길순이의 그 눈길이 부담스러웠다. 힘이 되어줄 수도 없는 다음에야 그 고운 눈빛은 오히려 며느리의 죄책감만 부추길 뿐이었다. 그녀는 밥그릇을 길순이 쪽으로 바싹 밀어주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 눈빛과 마주할 용기가 더는 없었다.
다음날 아침,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마당에 서 있었다. 기진맥진해 보이는 길순이가 죽은 쥐 한 마리를 물어와 시어머니 앞에 내려놓고는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길수이, 니, 그 몸을 해가 쥐를 잡은기가?” 며느리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새끼를 낳은 지 고작 이틀이 지났을 뿐이었다. 젖을 보아하니 첫배가 분명했고 몸도 허해서 쉬이 새끼를 뽑지 못해 밤새 그 고생을 했는데, 재미로 쥐를 잡아놓았을 리 없었다. 더는 생각할 틈도 없이 며느리 눈에 핑하니 눈물이 고였다.
“어무이요, 저게 어무이한테 잘 보일라꼬 저 몸을 해가.......” 며느리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길순이는 앉아있는 것도 버거운지 자꾸만 힘이 풀리는 앞다리를 애써 그러모으며 고개를 들어 시어머니를 응시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이런 것뿐인데 이걸로는 부족하겠느냐고, 아무래도 나는 안 되겠느냐고 그 순하디 순한 눈이 묻고 있었다.
“저게....... 얼매나 간절했시믄 저 몸을 해가 쥐를 잡아왔겠는겨, 야? 어무이한테 얼매나 잘 보이고 싶어쓰믄 밤새 지 몸 상해가면서 쥐를 잡았겠는겨? 어무이는 저게 불쌍하지도 않심니꺼? 지는 마....... 가심이 다 턱 막히는데 어무이는....... 아무렇지도 않심니꺼? 사람이 어째 그랍니꺼, 예?”
시집 와서 이제껏 시어머니에게 이렇게 대놓고 언성을 높인 적은 없었다. 반역이라면 반역이고 혁명이라면 혁명이라 할 만 했으나 이상하게도 뒷일 걱정 따위는 떠오르지도 않았다. 웬일인지 시어머니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길수이 니 이리 온나. 가서 쫌 눕자, 어이? 닭도 쫌 묵고 눈 좀 붙이고 하자.”
며느리의 채근에도 길순이는 영 내켜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저 사면을 바라는 죄수처럼 시어머니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는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 결국 시어머니가 먼저 자리를 뜨며 한 마디 했다.
“인자 쥐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괭이보다 낫다.”
날이 서지 않은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며느리의 눈시울이 다시 한 번 붉어졌다.
“엄니요!”
“못돼 먹은 니 시애미는 와 또 부르노? 시끄릅다, 마.”
눈물 때문에 시어머니도 길순이 얼굴도 잘 보이질 않았다. 며느리는 소매로 눈을 한 번 쓰윽 문지르고는 길순이를 껴안았다.
“길순아, 되았다. 인자 되았다. 그라이께네 걱정 말고 언능 닭 묵자.”
부엌에서는 어느새 닭 삶는 냄새가 구수하게 풍겨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