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10.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2024.08.10 07:21
- 어차피 죽을 인생이라면
성 라우렌시오 축일-2024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입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식이 불의의 사고로 뇌사 상태가 되었을 때
자기 자녀의 장기를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기증하는
부모의 얘기가 미담으로 뉴스에 나오는 것을 가끔 보았습니다.
과연 훌륭한 행위이고 사랑의 행위이지요.
그런데 그 사랑은 이웃에게도 사랑이지만
그보다 먼저 자기 자식에게 사랑입니다.
어차피 죽은 자기 자식의 죽음을 아주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차피 죽을 우리 인생도 이렇게 의미 있게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것이 지혜로운 인생이고 행복하게 사는 인생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도 전신을 기증했고 이왕이면 저의 시신이
구더기 밥이 되거나 재가 되기 전에 하나도 빠짐없이,
뼈까지 다른 사람을 살리는 데 모두 쓰이길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라도 저는
도움이 되는 인생을 넘어 살리는 인생이 되고, 살리는 인생을 살고 싶은데,
죽게 되었을 때, 그때가 되어서야 막차 타듯 나를 내어주는 인생이 아니라,
지금부터 도움이 되는 인생을 넘어서 살리는 인생을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이런 바람은 낭만입니다.
어차피 죽게 되었을 때 나를 내어주는 것은, 큰 사랑이 없어도 가능하지만
더 살 수 있고 아직 더 살고 싶은데도 나를 내어주는 것은
큰 사랑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바람이 낭만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죽음보다 큰 사랑이어야 하고 타오르는 사랑이 되어야,
그러니까 꺼져가는 사랑이 아니라 타오르는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축일로 지내는 라우렌시오 성인이 바로 그런 사랑의 소유자였습니다.
석쇠 위에서 불에 타 죽을 정도로 사랑이 불타올랐습니다.
먼저 순교의 형장으로 끌려가며 3일 후에 같이 순교하게 될 것이라며
교황이 순교에 초대하였을 때 라우렌시오는 살 궁리를 하지 않았고,
하느님을 위해 그리고 교회를 위해 영웅적으로 죽을 각오를 했으며,
교회 보물을 황제에게 빼앗기느니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부제로서의 마무리 작업을 죽기 전까지 차분하고 깔끔하게 했습니다.
이제 이런 라우렌시오 부제에게서 시선을 돌려 저를 봅니다.
꺼져가는 나이에 사랑이 불타오를 수 있을까요?
기력이 점점 쇠하고 죽음으로 나아가는데 사랑이 불탈 수 있을까요?
저의 선택입니다.
근근이 연명하는 쪽이 아니라 라우렌시오처럼 죽는 쪽으로 선택하면 됩니다.
남은 인생 그리고 어차피 죽을 인생,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인생 곧 씨 뿌리는 인생이 아니라
아예 내가 씨가 되고 밀알이 되는 쪽으로 선택하면 됩니다.
어차피 죽을 인생, 멋지게!
이러려는 저에게 주님, 자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