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 카페>에서 퍼온 글입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의 매력은 날 것 같은 느낌에서 오는 신선함이 아닐까합니다
기승전결로 잘 짜진 구성이 아니라 그냥 타인의 일상 그대로를 엿보는 느낌이죠.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의 작품들은 삼류 스토리로 보여 질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신선함을 주는 건 홍상수 감독만의 독특한 기법과 그 보다 앞서는 사실적 표현에 대한 진지한 탐구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합니다.
이러한 감독의 자세는 작품들 속에서의 일관되고 공통된 설정들을 통해 잘 표현되고 있죠.
우선 그의 작품들 속에는 교수, 제자, 영화감독, 영화배우 등 과 같은 인물설정이 대부분입니다.
이건 아마 감독 자신이 가장 잘 알 수 있고 또 가장 많이 경험한 것을 영화의 소재로 삼을 때 가장 진솔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걸 겁니다.
동시에 이시대의 지식인과 유명인들의 지성과 본능 사이의 이율배반적 모습 과 권력자의 욕망 그리고 피권력자의 순응 같은 사회적 병폐를 보여 주려는 의도인거 같기도 하네요.
2012년 작품일 건데요 '누구의 딸도 아닌 혜원'에서 제자인 혜원과 감독이자 교수인 유부남으로 나온 이선균과 같은 인물 설정도 그렇고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도 교수로 나온 유지태와 제자의 여관 성관계 장면도 또 '강원도의 힘'이나 '오! 수정'속의 인물들 설정도 다 그 일맥상통하는 거죠
다음으로 여자 한명에 다수의 남자로 애정관계가 그려지거나 아니면 한 남자가 다수의 여자를 상대하는 걸로 다루어지죠.
전자에는 '오! 수정'과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그리고 '누구의 딸도 아닌 혜원'과 '우리 선희'가 해당되고 후자에는 '생활의 발견'이 해당된다 할 수 있죠.
이것 또한 우리 사회의 권력자와 피권력자의 불균형을 얘기하는 거라 할 수 있죠.
또 하나의 공통점은 불륜입니다
'생활의 발견'에서 김상경은 친한 형과 그 형의 여자인 예지원과 첫번째 만난 자리에서 형을 먼저 보내고 예지원과 관계를 하죠.
그리고 그곳을 떠나 기차를 탄 김상경은 배우인 자신을 알아보는 대학교수의 아내인 추상미를 만나 또 관계를 합니다.
또'누구의 딸도 아닌 혜원'에서는 영화과 제자인 혜원과 교수이자 감독인 유부남 이선균이 연인 사이로 나오고 혜원의 친한 언니인 예지원과 유부남인 유준상은 8년 된 불륜 관계로 나오죠.
이건 이 사회에 많은 불륜이 존재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동시에 그 이유 또한 많다는 얘기기도 하죠.
하지만 이러한 소재나 스토리가 삼류에 머물지 않는 거는 또 다른 일관된 영화기법을 사용하기 때문 일겁니다.
이 영화 기법은 나중에 다시 알아보는 걸로 하죠
그리고 재밌는 공통분모가 하나 더 있죠.
그건 술입니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두 남자 주인공이 옛 여자인 지금은 술집 주인이 된 성현아를 찾아가는 계기가 술자리 때문이죠.
'생활의 발견'에서 예지원과 김상경이 하룻밤 불타는 것도 술 때문이고
'극장전'에서 유명 여배우가 영화판 풋내기인 김상경과 사고를 치는 것도 시장 횟집에서의 술 때문이죠.
술과 술자리는 이성에서 본능으로 넘어가는 그 경계에 있는 한 지점이라는 걸 감독은 얘기하는 거죠.
동시에 술은 본심을 잘 보여 주는 매개가 되기도 하는데 '누구의 딸도 아닌 혜원'에서 술이 된 혜원은 교수인 김상경과 관계를 친구들에게 실토하기도 하죠.
이처럼 소재나 인물설정 그리고 스토리에 있어 홍상수적인 많은 공통적인 부분들이 있지만 아주 중요하면서도 모든 작품에 일관되고 다양하게 사용되는 영화적 기법이 하나 더 있죠.
그건 영화를 관객들이 보고 있을 때 영화를 낯설게 보게 하는 장치들이죠. 이렇게 낯설게 보이게 하는 것을 소외 효과라고 하죠.
소외 효과는 관객들이 이성을 유지하게 끔 해서 극으로 부터 소외되는 즉 극에 몰입되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를 말하는 겁니다.
이런 효과를 노리는 극을 서사극이라고도 하죠.
'강원도의 힘'에서 처음에는 남자의 시선에서 스토리를 진행하다가 나중에는 똑같은 상황을 여자 시선에서 다시 그려나갑니다.
이 기법은 연극에 있어서 전통적인 서사적 기법인데요. 국내 영화에 처음으로 도입한 게 홍상수 감독이 아닌가 합니다.
요즘 이러한 기법들은 티비 드라마나 오락 영화에서도 많이 쓰이죠.
최근 ' 또 하나의 약속'에서 유미가 백혈병으로 목숨을 잃은 뒤 동생을 통해 일기장의 내용이 읽혀지면서 이러한 기법이 사용되죠.
한편 '오! 수정' 등의 영화에서는 자막을 이용해서 다음 신이나 인물의 심리 같은 걸 설명하는 기법도 쓰죠.
또 카메라를 이용해서 소외효과를 유도하기도 합니다.
카메라가 배우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카메라는 고정시켜 놓고 배우들이 카메라에 들어 왔다가 연기를 하고 사라지고 그 배우가 사라진 공간을 한 동안 잡고 있기도 하고 때론 공원에 우뚝 서 있는 나무나 구조물 등을 의미 없이 비출 때가 있죠. 이럴 때 관객은 생각을 하죠. 이 장면은 무슨 의미지라고요. 이 순간 이성과 객관적 관점이 유지되는 거죠.
또 인물들의 이야기나 갈등이 고조되는 순간 클로즈업을 컷으로 잡는 게 아니라 스마트 폰이나 디지탈 카메라로 쥼으로 땡기듯이 처리합니다. 관객이 촬영기사의 인위적 조작을 느끼게 하여 극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하는 거죠.
특히 여러 대의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한 대의 카메라를 이용하는 것도 이런 효과를 위한 것이죠.(롱 테이크)
또 배우들에게 구체적인 대사를 사전에 주지 않고 촬영 당일 부여하고 즉흥적으로 연기하게 하는데 이 것 역시 낯설게 보이게 하기 위한 기법으로 보입니다.
'우리 선희'에서 정재영이가 영화감독이자 선희의 선배라는 인물을 배역하는 게 아니라 그냥 정재영으로서 주어진 상황에 대해 즉흥적으로 연기를 하게 하는 거죠.
이러한 기법이 자칫하면 통속적인 스토리로 흐르거나 전형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것을 막는 장치라고 할 수 있죠.
홍상수 영화에서는 관람자가 티비 드라마처럼 불륜장면에 몰입되어 광분하거나 분개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죠.
이러한 낯설게 보게는 하는 기법은 관객들이 극에 몰입되어 이성적 관점을 잃는 걸 방지하려고 하는 서사적 기법인거죠.
스토리의 기승전결이 없고 관객입장에서 카타르시스가 없는 것도 다 이러한 서사극 성격을 띠기 때문이죠.
근데 이러한 서사적 기법이라는 것이 단지 그냥 테크닉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고요
그건 사실적 표현을 추구하는 감독의 외로운 싸움이라고 할 수도 있죠.
극영화는 드라마틱하거나 스펙타클하거나 해야 대중적 관객을 확보 할 수 있고 흥행에도 성공할 수 있으니까요.
최근 천만 관객을 넘긴 '변호인'도 아주 드라마틱한 걸 보면 홍상수 감독의 작업이 얼마나 힘겨운 길인지는 알 수 있죠.
한마디로 홍상수 감독은 관객이 작품에 빠져들지 않고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게 끔 해서 현상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유지하게 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우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담으로 ‘우리 선희’를 김기덕 감독이 만든다면 어떨까요?
네 명의 주인공 중에 최소한 두 명 정도는 죽겠죠.
나머지 두 명도 생활과 삶이 파탄이 나서 미치광이가 되겠죠.
하지만 홍상수 감독의 작품들 속의 주인공들은 극이 끝나도 아주 멀쩡하죠. 아무것도 변화가 없는 거죠.
어쩌면 이게 더 섬뜩한 건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