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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경순왕능의 묘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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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알지계는 경주김씨(慶州金氏)를 주종으로 하고 신라· 고려· 이조에 걸쳐 6백여 본관으로
분적되었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 일화에 의하면 신라제 4대 탈해왕 9년 봄 어느날 새벽 경주의 계림에서
기이한 닭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 가보았더니 울창한 송림 높은 가지에 금빛 찬란한 작은 궤가 걸려 있고,
그 밑에서 흰수탉이 울고 있었다.
그 궤를 가져와 열어 보니 뜻밖에도 용모가 단정한 비범한 사내아이가 들어 있는지라
〈하늘이 내리신 아들〉이라 하여 기뻐하며 길렀다.
이가 곧 알지이며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김(金)이라 하고, 이를 기특히 여긴 왕으로부터
태자로 책봉하였으나 사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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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씨는 거의 모두가 가락국(駕洛國) 수로왕(首露王)을 시조로 하는 김해김씨계와
신라의 알지(閼智)를 시조로 하는 경주김씨계의 어느 한쪽에 연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 두 갈래로 대별된다. 김해김씨로 대표되는 수로왕은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알이 동자(童子)로 변하여 가락국의
임금이 되었다는 인물이다. 이 수로왕 후손 가운데에는 김해김씨 외에 허씨(許氏) 및 인천이씨(仁川李氏)와
함창김씨(咸昌金氏) 등이 있고, 진주김씨(晋州金氏)·수원김씨(水原金氏)·영동김씨(永同金氏)
등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이 중 허씨는 수로왕의 두 아들에게 비(妃)인
허왕후의 성을 계승하게 한 것이므로 이성(異姓)이면서 혈족이 된다. 이 허씨의 후손인 기(奇)가 신라 때 사신으로 당나라에 갔다가 천자로부터 이씨로 사성(賜姓)을
받아 뒷날 인천에 관적(貫籍)하게 되어 인천이씨가 되었는데, ‘가락중앙종친회’에서는 이들
허씨와 인천이씨를 종친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동성동본이지만 이족(異族)인 김해김씨도 있는데, 신라 경순왕의 제7대손인
시흥(時興:金寧君)의 후손금녕김씨(金寧金氏)와 임진왜란 때 왜병 3,000명을 이끌고 항복,
귀화하여 김해김씨로 사성된 왜장 사야가(沙也可:金忠善)의 후손이 그것이다.
금녕김씨는 처음에 김해김씨와 혼동되어 ‘선김(先金)’ ‘후김(後金)’이라 하다가 조선 고종 때
금녕김씨로 확정되었다.
▶ 경주김씨계의 원조인 김알지는 65년(신라 탈해이사금 9) 경주 계림(鷄林)의 소나무가지에
걸려 있던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탈해왕이 ‘김’이라 지어 주었다고 《삼국사기(三國史記)》
등에 전하고 있는데, 신라 초기의 김씨왕인 미추이사금(味鄒尼師今)이 알지의 제7대손이 된다. 알지계는 신라· 고려·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600여 관향(貫鄕)으로 분종(分宗)되고
<<김씨대종사(金氏大宗史)>>에도 266본을 기록하고 있으나, 그 중 뚜렷이 현존하는 본관은
대략 50여 본이 되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 중에서 헌강왕계(憲康王系)의 광산, 무열왕계(武烈王系)의 강릉,
신무왕계(神武王系)의 영동김씨를 제외한 나머지는 거의 경순왕의 후손으로 되어 있다.
▶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에게는 아들 9명이 있었는데,이 중에서도 셋째 은열(殷說)의 후손이
가장 번창했던 듯하며, 구안동(舊安東)· 청풍(淸風)· 금녕(金 寧)· 도강(道康)· 전주· 양근(楊根:益和)·
영광· 안산 등이 모두 은열의 후손인 것으로 전하고 있다.
이 밖의 경주 김씨계로는 선산(善山)· 의성(義城)· 언양(彦陽)· 울산· 나주· 상산(商山)· 수원·
안로(安老)· 연안· 순천(順天)· 고령· 양근 등을 들고 있다. 고로(古老)들은 흔히 명문(名門)을 말할 때 ‘ 연이(延安李氏)· 광김(光山金氏)·
의김(義城金氏), 문소(옛 의성)김씨. 달서(達城徐氏)…’ 식으로 명문의 서열을 꼽아
많은 김씨 가운데서도 ‘광김’을 으뜸으로 꼽았는데, ‘금관자(金貫子)가 서 말’ 이라는 안동김씨를
비롯, 청풍· 연안· 경주. 의성 김씨 등 지난날 이름을 떨친 명문이 많이 있다.
▶ 김씨 중 조선시대의 문과 급제자수를 보면 안동이 315명, 광산 265명, 경주 202명, 연안 163명, 김해 123명, 청풍 110명, 강릉 96명, 의성96명,
선산 60명, 상산 55명의 순이다.
▶ 신라의 왕실 계보를 보면, 역대 56왕 중에 박씨가 10왕, 석씨가 8왕, 나머지 38왕이 김씨이다.
그러나 김씨가 왕위에 오른 것은 알지의 7세손이며 신라 13대 왕인 미추왕이 시초가 된다.
김알지계 202본 중에서,
신라 제29대 무열왕의 5세손 김주원(金周元)을 시조로 하는 강릉김씨(江陵金氏)와
신라 제45대 신무왕의 제3자 김흥광(金興光)을 시조로 하는 광산김씨(光山金氏), 그리고
신무왕의 후예 김영이(金令貽)를 시조로 하는 영산(永山: 永同) 김씨(金氏)를 제외한 그 나머지는
거의가 신라 제56대 경순왕의 후손이라 할 수 있다.
경순왕은 927년 후백제 견훤(甄萱)의 침공으로 경애왕이 죽은 뒤에 왕위에 오른
신라의 마지막 왕이다.
경순왕(김알지의 28세손)은 후백제 견훤이 경애왕을 죽게한뒤 왕위를 오르게 하였으나,
그가 존위하는 동안 군웅(群雄)이 각처에 할거하여 국력이 쇠퇴하고, 특히 빈번하게 침공하여
약탈을 자행하는 견훤 때문에 국가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었다. 국사는 날로 줄어들고 민심은 완전히 신흥 고려로 기울어지자 할 수 없이 935년 고려 태조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고려 태조는 그에게 유화궁(柳花宮)을 하사하고 자기 딸 낙랑공주(樂浪公主)를 하가시켰으며,
정승을 봉하고 경주를 식읍으로 하사하였다.
경순왕은 935년에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항복하고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하여 경주를
식읍으로 하사받아 사심관(事審官)으로 여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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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김씨는 어느 특정 종문(宗門)의 성관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고, 대보공(휘 알지)의 후예,
즉 신라의 김씨제대왕(신라 56대왕 중 38대왕)과 그 모든 후손들을 총괄하여 일컫는 말이다.
▶ 경순왕 + 죽방부인 첫째 일(鎰:마의태자) 둘째 굉( ) ▶ 경순왕 + 신란공주(낙랑공주) 셋 째 은열(殷說:대안군) 넷 째 석(錫:의성군) 다섯째 건(鍵:강릉군) 여섯째 선(鐥:언양군) 일곱째 추(錘:삼척군) 여덟째 명종(鳴鍾:? ) ▶ 경순왕 + 순흥안씨 아홉째 덕지(德摯:학성군)
☞ 본관/관계/시조/집성촌 ▶ 첫째 일(鎰:麻衣太子) 부안·부령 김씨 / 마의태자의 5세손 경수 / 김 일 / 전북 부안 통천·통주 김씨 / 마의태자의 둘째 아들 / 김 교 / 충남 서천
▶ 둘째 굉(굉) 교화 김씨 / 굉의 아들인 운발의 후손 / 김맹정 나주 김씨 / 굉의 아들 / 김운발 / 충남 청양 안로 김씨 / 굉의 후손 / 김지경 / 전남 나주 해주 김씨 / 굉의 후손 / 김사영·김헌 오천·연일 김씨 / 굉의 7세손 / 김서흥
▶ 셋째 은열(殷說, 후에 :대안군) 경주 김씨 / 경순왕의 셋째 아들 / 김은열 / 경북 월성 금령 김씨 / 은열의 8세손 / 김시홍 김제 김씨 / 은열의 12세손 / 김천서 / 대구 김씨 / 은열의 후손 / 김달·김호견·김태성 밀양 김씨 / 은열의 13세손 / 김승조 / 전남 영암 서흥 김씨 / 은열의 6세손 / 김 보 / 경남 창녕 수원 김씨 / 은열의 손자 / 김풍언 / 전북 순창 안산 김씨 / 은열의 후손 / 김긍필 / 전남 강진 양근 김씨 / 은열의 후손 / 김인찬 / 전남 강진 양주 김씨 / 은열의 9세손 / 김원보 연기 김씨 / 은열의 후손 / 김준손 / 영광 김씨 / 은열의 5세손 / 김심언 / 전남 장흥 영덕·야성 김씨 / 은열의 14세손 / 김취린 영해 김씨 / 은열의 14세손 / 김억민 전주 김씨 / 은열의 9세손 / 김태서 / 경북 의성 정산 김씨 / 은열의 16세손 / 김복수 / 청도 김씨 / 은열의 8세손 / 김지대 / 청송 김씨 / 은열의 14세손 / 김정기 청풍 김씨 / 은열의 18세손 / 김대유 / 전북 익산 풍기 김씨 / 은열의 후손 / 김숭원
▶ 넷째 석(錫:의성군) 의성 김씨 / 경순왕의 넷째 아들 / 김 석 / 경북 봉화군 봉화면 해저리.
충북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개성 김씨 / 석의 8세손인 공우의 3째 / 김용주 / 충북 영동 경산 김씨 / 석의 후손 / 김인궤 고령 김씨 / 석의 9세손인 용비의 손자 / 김기지 광주 김씨 / 석의 6세손인 언미의 3째 / 김녹광 / 경남 밀양 삼화 김씨 / 석의 16세손인 호지의 2째 / 김 통 설성 김씨 / 석의 후손(용주의 증손) / 김지선 예안 김씨 / 석의 10세손인 김의의 3째 / 김 춘 적성 김씨 / 석의 후손인 몽립의 아들 / 김상환
▶ 다섯째 건(鍵:강릉군) 강서 김씨 / 건의 후손 / 김 반 홍주 김씨 / 건의 11세손 / 김인의 ▶ 여섯째 선(鐥:언양군) 언양 김씨 / 경순왕의 여섯째 아들 / 김 선 / 전북 남원 ▶ 일곱째 추(錘:삼척군) 삼척 김씨 / 추의 후손 / 김위옹 / 강원 삼척 선산 김씨 / 경순왕의 일곱째 아들 / 김 추 / 경북 금릉 영월 김씨 / 추의 후손 / 김여생 원주 김씨 / 추의 8세손 / 김거공 / 강원 춘성 진주 김씨 / 경순왕의 일곱째 아들 / 김 추 / 충남 서천 희천 김씨 / 추의 셋째 아들 / 김 우 / 전북 정읍 ▶ 여덟째 명종(鳴鍾:? ) 낙안 김씨 / 명종의 12세손 / 김수징 / 전북 진안 배천 김씨 / 명종의 25세손 / 김 선 영천 김씨 / 명종의 17세손 / 김천일, 김 온, 김지척, 김영장 / 시조를 달리하는 4계통 강화 김씨 / 명종의 7세손 / 김 성, 김 광, 김송학 / 시조를 달리하는 3계통 우봉 김씨 / 경순왕의 여덟째 아들? / 김 오 / 경기 연천 창원 김씨 / 명종의 18세손 / 김을진 / 경기 연천 충주 김씨 / 명종의 16세손 / 김남길 평산 김씨 / 명종의 14세손 / 김승무 해남 김씨 / 명종의 19세손 / 김 일 ▶아홉째 덕지(德摯:학성군) 울산 김씨 / 경순왕의 아홉째 아들 / 김덕지 / 전남 장성 ▶ 기 타 공주 김씨 / 경순왕의 후손 / 김의손 금산 김씨 / 경순왕의 후손 / 김정보 / 충남 금산 금화 김씨 / 경순왕의 5세손 / 김경언 덕수 김씨 / 경순왕의 후손 / 김 니 / 전남 진도 도강 김씨 / 경순왕의 후손 / 김희조 동래 김씨 / 경순왕의 후손 / 김흥도 부평 김씨 / 경순왕의 18세손 / 김을진 사천 김씨 / 경순왕의 후손 / 김 부 / 전북 진안 / (구 안동 김씨 중시조의 6세손) 상산·상주 김씨 / 경순왕 후손 / 김 수 / 경남 산청 수안 김씨 / 경순왕의 후손 / 김 선 / 경북 영덕 구 안동 김씨 / 경순왕의 손자 / 김숙승 / 충남 천안 신 안동 김씨 / 신라말에 고창군 성주 / 김선평 용궁 김씨 / 경순왕의 9세손 / 김존중 / 경남 산청 용담 김씨 / 경순왕의 후예 / 김덕생 월성 김씨 / 경순왕의 후손 / 김이진·김광우 / 경북 영일 은율 김씨 / 경순왕의 후예 / 김상동 진잠 김씨 / 경순왕의 후손 / 김극복 파평 김씨 / 경순왕의 후손 / 김장수 풍산 김씨 / 경순왕의 12세손 / 김문적 / 경북 안동
▶ 참 고 강릉 김씨 / 김춘추의 5세손 / 경기 양주 고성 김씨 / 김수로왕의 막내동생 / 김말로왕 / 전남 강진 광산 김씨 / 신라 43대 신무왕 셋째 / 김흥광 / 남제주 남양 김씨 / 김수로왕의 후손 / 김 적 당악 김씨 / 신무왕의 5세손 / 김 낙 무장 김씨 / 김수로왕의 후손 / 김 선 / 경기 강화 문화 김씨 / 김알지 후손 / 김정달 보령 김씨 / 김극성·김억적 선산·일선 김씨 / 김알지 3세손 / 김선궁 / 경남 창녕 순천 김씨 / 신라의 왕손 / 김 총 / 경북 안동 신천 김씨 / 김득추 안성 김씨 / 신라 17대 내물왕의 후예 / 김재영 안악 김씨 / 김알지의 후예 / 김 영 양산 김씨 / ? / 김 연 / 전남 강진 연안 김씨 / 김알지의 후손 / 김섬한 / 경남 통영 영산·영동 김씨 / 신라 신무왕 후예 / 김령이 영암 김씨 / 고려 / 김 숙 영양 김씨 / 중국 봉양부 여남 출신 / 김 충 예안 김씨 / 고려조에 호장을 지냄 / 김 상 / 경북 영주 우록 김씨 / 일본인(본명: 사야가) / 김충선 / 경북 달성 웅천 김씨 / 김중재 정주 김씨 / 고려조 / 김 수 진도 김씨 / 고려때 토착인 / 김국빈 진천 김씨 / 태종 무열왕의 후손 / 김사혁 창평 김씨 / 김알지 후손 / 김석규 / 전남 나주 청주 김씨 / 김알지 후손 / 김보, 김화룡, 김사지 / 전남 강진 칠원 김씨 / 김영철 / 전북 순창 태원 김씨 / 김학중 / 풍천·영유 김씨 / 김영주 함창 김씨 / 김세순, 김내, 김선 / 충북 옥천 해평 김씨 / 고려 / 김훤술 해풍 김씨 / 고려 / 김숭선 / 경기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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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지계에서 타성으로 갈려 나간 후손이 있는데, 김행(金幸)은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김순식(金順式)은 강릉왕씨(江陵王氏)로, 헌안왕자(憲安王子) 궁예(弓裔)의 후손 종금(宗金)은 광산이씨(光山李氏)로, 헌안왕자 17세손 세광(世光)은 감천문씨(甘泉文氏)로 경순왕자(敬順王子) 은열(殷說)의 13세손 영규(永奎)는 수성최씨(隋城崔氏)로 각각 개성하였다.
김알지(金閼智) 신화
탈해왕 9년 봄이었다. 호공은 대궐에서 밤늦게까지 일을 보고 자기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호공이 집으로 돌아가려면 반월성 너머 서쪽 마을을 지나가야 했다.
그 마을 옆에는 시림(始林)이라고 하는 숲이 있는데
나무가 어찌나 우거졌는지 대낮에도 무시무시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호공은 밤늦게 이곳을 지날 때면 으레 하인을 데리고 다녔다. 이 날도 호공은 조금쯤 긴장한 채 시림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밤이 깊어 숲속은
조용하지만 하늘에는 수없이 많은 별들이 무엇인가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았다.
호공은 조금 전에 대궐에서 하던 일을 생각했다. 그 때였다.
죽은 듯이 조용하던 시림에서 닭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꼬끼오,꼭, 꼭, 꼬..." 호공이 깜짝 놀라 시림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너, 조금 전에 무슨 소리 듣지 못했느냐?" 호공은 자기 귀를 의심하며 뒤에 따라오는 하인에게 물었다.
하인은 자기도 들었노라고 하며 시림 쪽으로 다시 귀를
기울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시림에서 닭이 울다니 그곳에는
늘 신비한 구름과 안개가 서리어 있어서 서라벌 사람들은
상서로운 곳으로 여기고 함부로 드나들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닭의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범상한 일이 아니었다. 호공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닭 울음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힘차고
우렁차서 단번에 들을 수 있었다. 그 순간 호공은 닭이 우는 쪽을 바라보다가 그만 걸음을 멈추었다.
무시무시한 느낌이 들만큼 시커멓던 서림이 온통 환한 광명으로 차있고,
숲 위에는 자주빛 구름이 하늘에서 숲속으로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저건, 아무래도 시림에서 무엇인가 상서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 분명하구나.' 이렇게 생각한 호공은 하인을 데리고 자주빛 구름이 길게 뻗쳐 내린 숲속으로 달려갔다.
"아아!" 호공은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숲속에 드리워진 그 구름 속에는 황금빛깔로 된 궤 하나가
나뭇가지에 걸려 눈부시게 빛나고 있지 않은가. 숲속을 환하게 밝히던 그 광명은 바로
그 황금빛깔의 궤에서 퍼져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궤가 걸려 있는 나무 아래에서 하얀 닭 한 마리가 목을 길게 빼고 우는 것이었다. "아, 저것은 분명 하늘의 닭이 아닌가. 그렇다면 저 황금 빛깔의 궤에는 틀림없이 귀한 것이
들어 있을 것이다." 호공의 가슴은 마구 뛰었다. 호공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대궐로 들어갔다.
아무리 밤이 이슥해졌다 하더라도 이런 일은 임금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탈해왕은 마침 자리에 들지 않고 있었다. 탈해왕은 호공이 다시 돌아온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다가 호공의 이야기를 듣고는 자기도 조금 전에 닭우는 소리를 들었노라고 했다.
그러면서 탈해왕은 호공을 따라 시림으로 거동을 했다. 탈해왕은 숲속으로 길게 뻗쳐있는 자주빛 구름을 보고 나라에 경사가 난 것을 단번에 알았다.
그는 얼마나 기뻤는지 어떻게 할 줄을 몰랐다. 탈해왕은 궤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러자 흰 닭은 다시 한번 목을 길게 빼고 운 다음 하늘로 날아갔다. 탈해왕은 흰닭이 날아가는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흰닭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입을 열었다. "호공은 조심스럽게 저 궤를 내리도록 하시오." 호공은 하인을 시켜 조심스럽게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궤를 내리도록 하였다.
탈해왕은 손수 궤를 열었다. 그랬더니 궤 속에서는 말 할 수 없을 만큼 찬란한 금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는데, 궤 안에는 잘 생긴 사내아이가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 아이는 보통 아이들과는 달리 너무나 빼어나게 잘 생기고 씩씩해 보였다.
탈해왕은 그 아이를 두 팔로 보듬어 안았다. 그리고는 펄쩍 펄쩍 뛰면서 둥구둥구를 했다. 그러다가 탈해왕은 호공을 바라보고는,
"이건, 아무래도 하늘이 나에게 아들을 내린 것 같소." 하고 말했다.
사실 탈해왕에게는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그러하옵니다, 마마." 호공이 이렇게 말하자 탈해왕은 더욱 기뻐하였다. 그리고 이번 일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옛 일과 비슷하므로 박혁거세가 세상에 나타나
처음으로 스스로를 가리켜 말한 <알지거서간(閼智居西干:한번 일어나다)>이란 말에서
'알지'를 따내어 아이의 이름으로 하였다.
알지란 곧 우리나라 말에서 '아기'를 뜻하는 말이다.
알지의 성은 금궤에서 나왔다고 하여 김(金)이라고 하였는데 그의 자손이 바로 오늘날의
경주 김씨들이다. 그리고 금궤가 나온 시림은 숲과 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해서
계림(鷄林)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탈해왕은 알지를 안고 대궐로 향하였다. 그러자 탈해왕의 뒤에는 새와 짐승들이 따라오면서 날고
뛰며 기뻐서 야단들이었다. 탈해왕은 알지를 정성스럽게 길렀다.
알지는 점점 자라면서 총명하고 지혜로와 탈해왕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탈해왕은 마침내 좋은 날을 골라서 알지를 태자로 세우고 장차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다. 그러나 알지는 뒷날 왕위를 유리왕의 둘째 아들 파사에게 사양하고 왕이 되지는 않았다.
이처럼 그는 도량이 넓었다. 알지는 그 뒤 대보의 벼슬에 올라 다만 왕을 도왔을 뿐이다. 그 뒤, 알지의 7대 후손인 미추에 이르러 김씨가 왕위에 올랐는데
그로부터 신라는 박(朴), 석(昔), 김(金) 세 성이 임금을 번갈아 하였는데,
그 중에서 알지의 후손으로 왕위에 오른 이는 무려 30 여명이나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