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채비빔밥이 얌체 밥이 돼서야
남상선 / 수필가
며칠 전에 둔산여고 재직했던 퇴임 교사 7명이 덕유산 산행을 했다. 산행 축복 날씨였던지 겨울 날씨치고는 제법 포근한 한 것이 산행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오전 9시에 출발한 우리 일행은 10시 반도 안 되어 덕유산 무주 관광 곤돌라를 타고 향적봉으로 향했다. 상제루(설천봉 1525m)(곤돌라 탑승 승하차장)에서 향적봉까지는 도보로 20분 거리라 했다. 곤돌라 타고 올라온 거리는 20분이 더 걸렸으니 걷는 거리보다 먼 거리임에 틀림없었다.
입산할 때엔 볼 수 없던 눈이 설천봉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눈 때문에 산봉 이름이 무색하지 않을 것 같았다. 설화 눈요기에 뽀드득 발자국 소릴 내며 굽어보는 세상은 세속이 아닌 듯도 싶었다.
덕유산 향적봉 설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올해는 아직 눈다운 설경을 보지 못했기에 그랬는지 딴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시야가 훤하게 보이는 날씨 덕분이었는지 가야산, 지리산, 마이산, 대둔산의 진면목을 훔쳐보는 기분도 싫지는 않았다.
쫓기는 일정이어서 모든 걸 뒤로하고 아쉬운 하산 곤돌라를 탔다. 시장기를 이기기가 어려웠는지 바라보는 눈빛 모두가 식당을 향하고 있었다. 승용차 두 대가 가까운 맛 집을 찾고 있었다.
식당에 도착한 일행들의 시선 모두는 식단 메뉴판에 가 있었다.
산중에 들었으니 점심은 산채비빔밥이 제격이란 생각이 들었다. 7명 일행 모두가 같은 생각이라서
산채비빔밥으로 통일했다. 5분 정도 됐을까 하는 시간에 주문한 비빔밥이 나왔다. 출출한 참이라 모두들 시장기를 달래가며 열심히들 비비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
우리가 비비고 있는 비빔그릇은 산채비빔밥그릇이 아니었다. 비빔 대접마다 담겨져 있는 내용물이 번지를 잘 못 찾았는지 생채에, 상추, 데친 콩나물, 계란프라이 1개, 가위로 자른 고사리 몇 도막, 고추장 1스푼이 고작이었다. 분명히 산채비빔밥을 시켰는데 산채라 하는 것은 고작 고사리 몇 도막이 전부였다.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다.
산채비빔밥이라는 게 얌체 밥으로 둔갑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일행 모두는 달갑잖은 표정들이었다. 살기가 어려운 세상이니 먹거리 재료조차 속여 파는 상행위로 생각되었다.
악덕상인 얘기는 많이 들어 보았지만 먹는 걸로 이런 기만을 당해보기는 처음이었다.
비빔밥그릇을 산채로 다 채웠다간 돈벌이가 안 돼 잡동사니 푸성귀로 비빔그릇을 채운 것 같았다.
‘ 산채비빔밥이 얌체 밥이 돼서야. ’
산채비빔밥을 얌체 밥으로 만들어 파는 식당 주인을 생각하니 왜 이리 가슴이 아픈지 모르겠다. 돈을 위해선 양심도 배려심도 내 팽개치고 사는 사람들이 안타깝기만 했다. 거짓을 일삼는 위선자로, 따듯한 가슴이, 양심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고 있으니 이 어쩌면 좋단 말인가 !
오늘 따라 SBS TV에 방영됐던 용산의 국수집 할머니가 왜 이리 그리운지 모르겠다.
돈은 고사하고 불쌍하고 가난한 약자를 위한 온정과 배려심으로 심금을 울리던 그 천사 할머니가 왜 이리 보고 싶은지 모르겠다. 가슴 뭉클한 사연이라 소개해 보겠다.
서울 용산의 삼각지 뒷골목엔 '옛집'이라는 허름한 국숫집이 있다. 달랑 탁자 4개뿐인 그곳에서 할머니는 25년을 한결같이 국수를 팔고 있다. 연탄불로 진하게 멸치 국물을 우려내어 그 국물로 국수를 말아내고 있다. 10년이 넘도록 국수 값을 2천원으로 묶어놓고 면은 얼마든지 달라는 대로 무한리필이다. 몇 년 전에 이 집이 SBS TV에 소개된 뒤, 나이 지긋한 남자가 담당 PD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사연을 말했다.
< 15년 전 저는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고 아내까지 저를 버리고 떠나버렸습니다. 용산역 앞을 배회하던 저는 식당들을 찾아다니며 끼니를 구걸했지만 찾아간 음식점마다 저를 쫓아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잔뜩 독이 올라 식당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지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 국숫집에까지 가게 된 저는 분노에 찬 모습으로 자리부터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나온 국수를 허겁지겁 다 먹어갈 무렵, 할머니는 국수 그릇을 낚아채더니 국물과 국수를 다시 듬뿍 넣어 주었습니다. 그걸 다 먹고 난 저는 국수 값 낼 돈이 없어 냅다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가게 문을 뒤따라 나온 할머니는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 그냥 걸어가, 뛰지 말고, 넘어지면 다쳐, 괜찮아 …! ’>
도망가던 그 남자는 배려 깊은 할머니의 그 말 한 마디에 그만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고 했다. 그 후 파라과이에서 성공한 그는 한 방송사에 전화를 하면서 이 할머니의 얘기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할머니는 부유한 집에서 곱게 자랐지만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해 이름조차 쓸 수 없었다. 허나, 그녀는 분에 넘치게도 대학을 졸업한 남자와 결혼을 했다. 건축일 하며, 너무도 아내를 사랑했던 남편은 마흔 한 살이 되던 때, 4남매를 남기고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할머니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어린 4남매를 키우느라 너무도 극심한 고생으로 어느 날은 연탄불을 피워놓고 4남매와 같이 죽으려고 결심도 했다.
그러던 중 옆집 아줌마의 권유로 죽으려 했던 그 연탄불에 다시다 물을 우려낸 국물로 국수장사를 시작했다. 처음엔 설익고 불어서 별로 맛이 없던 국수였다. 계속 노력한 끝에 은근히 밤새 끓인 할머니 특유의 다시다 국물을 만들어 냈다.
그 국물로 맛을 내서 새벽부터 국수를 말아 팔았다. 컴컴한 새벽에. 막노동꾼, 학생, 군인들이 주된 단골손님이었다. 할머니는
< 하나님! 이 국수가 어려운 사람들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 건강하게 하소서.>
라고 눈을 뜨면서 기도한다고 했다. 고작 네 개 테이블로 시작한 국숫집이 지금은 조금 넓어져 궁궐처럼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 테이블은 밤이면 이 할머니의 침대가 된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이 국수가게에서 일하던 아줌마를 데려다 주러 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심장마비로 죽은 것이다. 그러자 할머니는 가게 문을 닫고 무려 넉 달을 열지 않았다. 그러자 대문에는 이런 쪽지가 붙어 있었다.
< 박중령입니다. 어제 가게에 갔는데 문이 잠겨 있더군요. 댁에도 안 계셔서 쪽지 남기고 갑니다. 제발 가게 문 열어주십시오. 어머니 국수 맛있게 먹고, 군대 생활하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끓여 준 국수, 계속 먹고 싶습니다. 어머니 힘내세요. 옛날처럼 웃고 살아요. 가게 문 제발 여세요. >
사람들로부터 온 편지와 쪽지가 어떤 날은 세 장, 또 어떤 날은 네 장씩이나 붙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힘을 내시라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쪽지로 힘을 얻은 할머니는 그제서야 다시 국수가게 문을 열었다. 할머니 가게는 이제 국민의 국숫집으로 불리워지게 되었다. 할머니는 오늘도 배려와 사랑의 다시다 국물을 밤새 우려내고 있다. 할머니는, 이 모든 게 다 그 파라과이 사장 덕이라는 것이다.
< 그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이 난리냐 ? > 는 것이다. 할머니는 오늘도 < 모든 것이 감사하다.> 고 하신다.
할머니는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행복으로 만들고 있다. 그 비결은 다른 사람을 향한 배려와 연민의 정에서 비롯된 거였다. 딱할 정도 가난하게 살면서도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와 온정으로 한 그릇에 2천 원 하는 국수로 수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선사하고 용기를 준 것이다.
할머니에겐 돈보다는 인간미어린 따뜻한 가슴으로 살았기에 그리워하는 대상이 됐는지도 모른다. 각박한 세상이라지만 그래도 이런 할머니의 체온이 예서제서 숨 쉬고 있기에 세상은 춥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살만한 것이 아니겠는가?.
‘ 산채비빔밥이 얌체밥이 돼서야. ’
우리는 돈도 좋지만 거짓으로 양심을 팔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부자로 잘 살고,
권세가로 명성을 누리는 것도 좋지만,
어둠의 후예가 되어 사람처럼 생긴 동물로 살아서는 안 된다.
국수 값 낼 돈 없어 도망치는 청년에게
걱정스런 목소리로
‘ 그냥 걸어가, 뛰지 말고, 넘어지면 다쳐, 괜찮아 … ! ’
하는 할머니 음성이 왜 이리 환청으로 어렵게 하는지 모르겠다.
첫댓글 저도 예전에, 그 가슴따뜻한 '국수할머니'의 사연을 간접적으로 들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세상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따뜻해져야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기술이 발달하고 개인화가 되어가면서, 사람사이의 인정과 따뜻함은 더욱 느끼기 힘들어져가는 게 현실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글 덕분에, 저 자신도 저의 모습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네요. 진지한 묵상이 되는 좋은 글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누구할것 없이 돈 문제로 사람냄새를 잃지 않는 삶이었으면 좋겠습니다.김정숙님 응원해 주시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