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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比스님이 읽어주시는 화엄경(2021.2.25.PM2시)
광명각품(光明覺品)
정각의 팔상(八相)
화엄경 한단락 공부하겠다. 오늘도 광명각품(光明覺品) 광명으로 깨달음을 보이다 하는 내용이 되겠다. 그새 2월달이 끝나가고 이 유튜브 방송을 시작한 것이 9월초부터 시작했는데 9월 10월 11월 12월 1월 2월 이렇게 6개월이 꽉 찼다.
그리고 내일이 음력으로 1월 보름 대보름날이고 사찰로서는 동안거 해제날이다. 오늘 해제한 데도 많고, 내일 날짜 맞춰서 해제하는 곳도 있다. 강원은 방학으로 들어가고, 선방은 해제 들어가서 3개월간 결제 동안에 참선을 열심히 했으니까 해제하면 ‘육도만행을 펼쳐라’ 하는 시간이다. 이 3개월이 그렇다. 그래서 6바라밀을 상징하는 육환장을 짚고 세상에 나가서 불법을 펴도록 의무화가 되어 있다. 참선을 많이 했으면 참선 가지고 세상을 교화하든지, 아니면 경전을 공부했으면 경전의 가르침으로써 세상을 교화하든지, 각자 자기가 불법 가운데서 마음에 딱 짚이는 것, 좋아하는 것, 자신의 어떤 소신 이런 것을 가지고 3개월은 최소한도 세상 사람과 만나면서 보살행을 펼치고 불법을 펼치라고 하였다.
부처님 같은 경우는 ‘두 사람이 한 길로 가지 말고 각각 따로 흩어져서 가라’ 한 사람 한 사람의 포교가 그렇게 귀한데 두 사람이 같이 가면 중복이 되니까 그만치 손해를 보지 않느냐는 뜻에서 ‘흩어져서 한사람씩 가라’고 하셨다. 이렇게까지 당신의 깨달으신 진리를 값지고 소중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그 진리의 가르침을 정말 소중하게 ‘쉬지 말고 전법활동을 하라’고 신신당부 하셨다. 그래서 해제중에는 여하한 일이 있더라도 세상에 나가 다니면서 이 귀한 불법을 펴도록 하라는 이런 당부의 말씀을 하신 일이 있다.
내일은 공식적으로 해제를 하고 점심을 먹고 그다음에 바로 오후부터 세상을 향해 나가서 진리의 가르침을 펴도록 하는 기간이다. 전통적으로 해석을 하면 그렇다. 요즘도 그렇게 하느냐, 안하느냐는 별개의 문제고 옛 법은 그렇다 하는 것을 말씀드린다.
오늘은 광명각품 세 번째 시간이다. 정각의 팔상이라. 정각의 여덟 가지 모습에 대해서 살펴볼 차례다.
3. 정각의 팔상(八相)
1) 광명변조(光明徧照)
이시(爾時)에 광명(光明)이 과십세계(過十世界)하야 변조동방백세계(徧照東方百世界)하고 남서북방(南西北方)과 사유상하(四維上下)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시니 피제세계중(彼諸世界中)에 개유백억염부제(皆有百億閻浮提)와 내지백억색구경천(乃至百億色究竟天)이라 기중소유(其中所有)가 실개명현(悉皆明現)하니
그때에 광명이 열 세계를 지나서 동방의 백 세계를 두루 비추고 남서 북방과 네 간방(間方)과 상방(上方) 하방(下方)도 또한 다시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그 모든 세계 가운데에 모두 백억의 염부제와 내지 백억의 색구경천(色究竟天)이 있는데 그 가운데 있는 것들이 다 모두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앞에서 있었던 내용과 똑같다.
2) 세존이 자리에 앉다
이것도 역시 같은 내용이다.
피일일염부제중(彼一一閻浮提中)에 실견여래(悉見如來)가 좌연화장사자지좌(坐蓮華藏師子之座)어시든 십불찰미진수보살(十佛刹微塵數菩薩)의 소공위요(所共圍遶)라 실이불신력고(悉以佛神力故)로 시방각유일대보살(十方各有一大菩薩)이 일일각여십불찰미진수제보살(一一各與十佛刹微塵數諸菩薩)로 구(俱)하야 내예불소(來詣佛所)하시니 기대보살(其大菩薩)은 위문수사리등(謂文殊師利等)이며 소종래국(所從來國)은 위금색세계등(謂金色世界等)이며 본소사불(本所事佛)은 위부동지여래등(謂不動智如來等)이니라
그 낱낱의 염부제 가운데 다 여래가 연화장 사자좌에 앉으셨는데 열 불찰 미진수의 보살들이 함께 둘러싸고 있었느니라. 모두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시방에 각각 한 큰 보살이 있고, 그 보살들이 낱낱이 각각 열 불찰 미진수의 모든 보살들과 함께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 가니라. 그 큰 보살은 문수사리 등이며, 좇아온 바의 국토는 금색세계 등이며, 본래 섬기던 부처님은 부동지(不動智) 여래 등이었습니다.
광명각품의 세 번째에서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신 여덟 가지 현상을 밝히는데 먼저 광명을 놓아 시방세계를 환하게 비추는 내용과 다시 세존이 자리에 앉으시는 내용을 거듭 밝혔다. 역시 문수보살은 금색세계에서 왔으며, 섬기면서 수행하셨던 부처님은 부동지여래이시다.
그다음에 또 유명한 일체처 문수보살의 게송
3) 일체처 문수보살의 게송
이시(爾時)에 일체처문수사리보살(一切處文殊師利菩薩)이 각어불소(各於佛所)에 동시발성(同時發聲)하사 설차송언(說此頌言)하사대
그때에 일체처(一切處)의 문수사리보살이 각각 부처님 계신 곳에서 동시에 소리를 내어 이 게송을 말하였습니다.
일체처(一切處) 문수사리보살이다. 이 뜻대로라면 이 삼라만상, 세상만물, 현상에 드러나 있는 이 모든 것들이 일체처며 그 그대로가 문수사리보살이며 그 그대로가 게송을 함께 설하고 있다.
그러면 여기 이 화엄법회에 동참해서 듣고 있는 여러분들도 역시 일체처 문수보살에 해당되고, 뿐만아니라 두두물물 온갖 삼라만상 모두가 우리들 사람과 아울러 함께 일체처 문수보살에 해당된다.
깨달은 사람의 안목에서 보니까 분명히 그렇게 되어 있기에 경을 결집한 분이 그대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고 그렇게 기록한 것이다.
그것이 우리 마음에 와닿느냐, 안닿느냐 하는 것은 우리 각자의 몫이다. 우리의 깨달음 우리의 수행 우리의 안목이 얼마나 거기에 가닿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의 안목에서 볼 때 분명히 일체처 문수보살이 이러한 내용을 설파하고 계신다, 이런 뜻이다.
다 표현하고 있다, 산천초목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그대로 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런 뜻이다.
가. 부처님 덕의 충만
불요법여환(佛了法如幻)하사 통달무장애(通達無障礙)하고
심정이중착(心淨離衆着)하사 조복제군생(調伏諸群生)이로다
부처님은 법이 환술과 같음을 아시고
통달하여 장애가 없으며
마음은 청정하여 온갖 집착 떠나사
모든 중생을 조복하시네.
부처님은 법이 환술과 같음을 아시고
모든 존재, 법이라고 하면 일체 법이고 일체 존재다. 그것이 환술과 같음을 아시고 그 사실을
통달하여 장애가 없으며
환술과 같으면 나에게 어떤 횡재가 생겼든지 아니면 어떤 큰 문제가 생겼든지 전부가 환술이다. 환영이다. 꿈에 나타난 모습과 똑같다. 그런 사실을 확실히 깨달아 알았다면 거기에 무엇이 있든 무엇이 없든 이익을 봤든 손해를 봤든 아무런 장애가 없을 것이다. 그저 빙긋이 웃을 뿐이다.
그림자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 모든 인생사가 그림자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해제를 앞두고 그쯤의 단계에 올라서 빙긋이 한 번 미소로써 표현할 수 있는 차원이 되어야 하리라고 믿는다. 통달하야 장애가 없으며
마음은 청정하여 온갖 집착 떠나사
마음은 텅 비어서 온갖 집착을 떠났다. 손해를 봤든 이익을 봤든 대통령을 열 번 하든 국회의원을 천 번 하든 만 번 하든 이 세상의 대그룹 회장을 여러 수천 번을 했든지 간에 아무 관계없이, 스치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이 보고 마음은 텅 비어서 온갖 집착 떠나서
모든 중생을 조복하시네
그런 도리를 가지고 자기 중생도 조복하고 다른 중생도, 이웃 중생, 옆에 있는 중생도 그런 도리를 가지고 조복한다, 이런 뜻이 되겠다.
일체처(一切處)의 문수사리보살이 각각 부처님 계신 곳에서 동시에 소리를 내어 이 게송을 설하신다. 그러므로 문수보살이 설하시는 이 게송은 비단 한 곳, 한 회상의 대중들만 듣는 것이 아니라 시방세계의 모든 대중이 다 듣는다. 일체존재의 광대성(廣大性)과 진여불성의 광대성과 생명의 광대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법이 환술과 같음을 알면 모든 장애를 떠난다. 마음은 청정하기 때문에 청정성을 작용하여 온갖 집착에서 떠나버린다. 이것이 자심(自心) 중생을 조복하는 길이다.
나. 팔상(八相)
부처님께서 팔상성도 하신 모습을 또 일체처 문수보살의 안목으로 이렇게 게송으로 표현하고 있다.
혹유경초생(或有見初生)에 묘색여금산(妙色如金山)하사
주시최후신(住是最後身)하야 영작인중월(永作人中月)이로다
혹은 보니 처음 태어날 때
미묘한 빛이 금산(金山)과 같으사
최후신(最後身)에 머물러서
길이 사람 가운데 달을 지으셨도다.
혹은 보니 처음 태어날 때
처음 부처님이 태어날 때
미묘한 빛이 금산(金山)과 같으사
큰 산이 있는데 그것이 온통 황금으로 됐다. 거기에서 비치는 빛 같았다. 부처님이 태어나실 때 위대한 인격자인 부처님이 되실 분이니까 그 어린아이의 모습이 이렇게 큰 황금산과 같이 보였다.
최후신(最後身)에 머물러서
더 이상 중생의 몸을 받지 않으니까 최후신에 머물러서
길이 사람 가운데 달을 지으셨도다
인중월(人中月)이다. 밤하늘에 별이 많다. 그런데 그 가운데 둥근 보름달이 하나 뜨면 주변에 있는 별은 전부 빛을 잃어버린다. 달빛에 가려서 빛을 행세할 수가 없다.
부처님이 처음 탄생하셨을 때의 모습을 그렇게 표현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별과 같고 부처님은 그 가운데 밝은 보름달과 같은 것이다, 그렇게 비교를 했다.
처음 태어났을 당시에 그렇게 아셨을까? 약간 그런 것을 알 수도 있었겠지만 그 사실들을 다 우리가 경험한 이후에 지금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렇게 표현하고도 남을 분이다.
혹은 보니 처음 태어날 때
미묘한 빛이 금산(金山)과 같으사
최후신(最後身)에 머물러서
길이 사람 가운데 달을 지으셨도다
혹견경행시(或見經行時)에 구무량공덕(具無量功德)하시며
염혜개선교(念慧皆善巧)하사 장부사자보(丈夫師子步)로다
혹은 보니 경행(經行)할 때에
한량없는 공덕을 갖추시며
생각과 지혜가 매우 공교하사
대장부의 사자걸음 걷도다.
혹은 보니 경행(經行)할 때에
태어나서 어떻게 했는가? 사방으로 일곱 발을 걸으면서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고 부르짖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을 경행할 때에
한량없는 공덕을 갖추시며
생각과 지혜가 매우 공교하사
대장부의 사자걸음 걷도다
혹은 보니 경행(經行)할 때에
한량없는 공덕을 갖추시며
생각과 지혜가 매우 공교하사
대장부의 사자걸음 걷도다
사자가 걷는 것 같은 걸음으로 일곱 발을 걸었다, 그런 내용이다.
혹견감청목(或見紺靑目)으로 관찰어시방(觀察於十方)하고
유시현희소(有時現戲笑)하사 위순중생욕(爲順衆生欲)이로다
혹은 보니 검푸른 눈으로
시방을 관찰하고
어떤 때는 웃음을 나타내어
중생들의 욕망을 수순하도다.
혹은 보니 검푸른 눈으로
우리가 사람에게서 여러 가지 모습을 다 귀중하게 거론할 수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첫째가는 것이 눈이다. 그래서 눈부터 이야기하는데 감청목(紺靑目)이라, 푸른 연꽃과 같은 눈이다.
혹은 보니 검푸른 눈으로
시방을 관찰하고
어떤 때는 웃음을 나타내어
중생들의 욕망을 수순 하도다
앞으로 저 어린아이가 이 세상 중생들에게 어떤 큰 공덕을 베풀고 어떤 가르침을 내릴 것이다, 라고 하는 의미가 그 웃음 속에 담겨있다.
혹견사자후(或見獅子吼)와 수승무비신(殊勝無比身)으로
시현최후생(示現最後生)하사 소설무비실(所說無非實)이로다
혹은 보니 사자후와
수승하여 비할 데 없는 몸으로
최후생(最後生)을 나타내 보이사
하시는 말씀 모두 다 진실하도다.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
삼계개고(三界皆苦) 아당안지(我當安之)
천상천하에 내가 오직 홀로 존귀한데 삼계는, 이 세상은 전부 고통으로 되어 있다. 그것을 내가 마땅히 편안하게 하리라 라고 하는 말씀을 하신 내용이다. 사자후, 그 사자후의 내용이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 삼계개고(三界皆苦) 아당안지(我當安之)라고 하는 그 사자후다.
수승하여 비할 데 없는 몸으로
최후생(最後生)을 나타내 보이사
하시는 말씀 모두 다 진실하도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탄생하셔서 나중에 성장하고 출가해서 정각을 이루시고 만중생에게 깨달음의 진리를 펼쳐 보이셔서 그 진리의 가르침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진리에 눈을 뜨게 된 어마어마한 공덕, 그런 교화 불사를 우리가 생각할 때에, 부처님의 일생을 우리가 천 번 만 번 표현해도 이렇게 표현하고 저렇게 표현하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좀더 아름답게 좀더 부처님의 하신 일에 잘 맞게 그것을 좀더 아름답고 근사하게 표현했으면 하는 것이 후대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런 후대 사람들의 마음이 경전을 결집하는 사람에게 전해져서 표현된 것이다, 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혹유견출가(或有見出家)하사 해탈일체박(解脫一切縛)하고
수치제불행(修治諸佛行)하사 상락관적멸(常樂觀寂滅)이로다
혹은 보니 출가하사
일체 속박에서 해탈하고
모든 부처님의 행(行)을 닦으사
항상 즐거이 적멸(寂滅)을 관(觀)하도다.
혹은 보니 출가하사
이제 출가하신다.
일체 속박에서 해탈하고
어디에 있은들 출가의 정신을 잘 가지고 살면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출가한 것과 출가하지 않은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혹은 보니 출가하사
일체 속박에서 해탈하고
벗어나면 일단은 해탈이다.
모든 부처님의 행(行)을 닦으사
과거 부처님이 닦으신 그 행을 그대로 다 닦았다.
항상 즐거이 적멸(寂滅)을 관(觀)하도다
고요한 선정에 들어가셨다. 그런 고요한 선정에 들어갔다. 세상에 살다보면 아무리 지위가 높다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해야할 일을 다 해야하고, 보통 사람이라면 의식주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가정도 꾸려가야 되고, 직장도 있어야 하고, 온갖 사람들이 살아가는 내용대로 그대로 살게 될 것이다. 그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출가를 해버렸으니까 일체 속박에서 해탈하고 모든 부처님의 행을 닦으사, 과거 부처님이 행하신 행을 그대로 닦았다.
항상 즐거이 적멸을 관하도다. 고요한 것, 고요한 선정을 닦고 있다.
혹견좌도량(或見坐道場)하사 각지일체법(覺知一切法)하고
도공덕피안(到功德彼岸)하사 치암번뇌진(癡暗煩惱盡)이로다
혹은 보니 도량에 앉으사
일체 법을 깨달아 알고
공덕의 저 언덕에 이르러
어리석고 어두운 번뇌를 다하였네.
보리수 나무아래에 앉아서 깨달음을 성취하는 마지막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혹은 보니 도량에 앉으사
그 보리도량에 앉아서 화엄경을 처음으로 설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일체 법을 깨달아 알고
정각을 이루었다, 라고 하는 그 내용을 일체 법을 깨달아 알고, 각지일체법(覺知一切法) 그랬다.
공덕의 저 언덕에 이르러
공덕의 저 언덕에 이르러
어리석고 어두운 번뇌를 다하였네
부처님이 마지막 보리수하에 앉아서 깨달음을 성취했다. 그것을 다섯 자 네 구절로 어떻게 표현하면 적절한 표현이 될까? 이것은 화엄경뿐만 아니라 다른 경전에서도 더러 표현이 되고 있다.
우리도 한 번쯤 표현해 보고 싶다면 한 번 이런 것을 시도해 볼 필요는 있다.
화엄경이라고 해서 너무 우리들 보통 중생하고는 거리가 먼 이야기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나도 한 번 그 순간을 내가 이해하는 것만치만 한 번 표현해 보자’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혹견승장부(或見勝丈夫)가 구족대비심(具足大悲心)하사
전어묘법륜(轉於妙法輪)하야 도무량중생(度無量衆生)이로다
혹은 보니 훌륭한 장부가
큰 자비의 마음을 구족하사
미묘한 법륜을 굴려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도다.
여기는 깨달음을 이루고 나서 맨처음 화엄경을 설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미묘한 법륜을 굴렸다, 라고 하는 것이 화엄경을 설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화엄경이 설사 아니라 하더라도 깨닫고 났으니까 깨달음의 진리를 만중생에게 다 가르쳐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것을 여기서 표현한 것이다.
혹은 보니 훌륭한 장부가
큰 자비의 마음을 구족하사
미묘한 법륜을 굴려서
미묘한 법륜을 굴리는 것은 자비의 마음 때문이다. 저는 매일매일 뉴스를 안 볼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처지인데, 온갖 사람들의 부정부패 온갖 비리 이런 것만 끊임없이 소개되고 있는 것이 뉴스 아닌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전부가 그렇다. 그것도 보통 서민들의 이야기가 아니고 대통령, 그 밑에 있는 사람들, 장관들, 국회의원들 아니면 큰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 소위 사회 지도층에 있다고 하는, 지도층에 있는 한 1프로? 0.1프로쯤 되는 전국민의 상위 0.1프로에 해당 되는 사람들, 대통령에서부터 국회의원 장관 각계 지도자 등등 그런 사람들, 그 사람들이 잘해야 되는 것이다. 대통령 혼자서만 잘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특히 오늘날 사회는 돈을 우선으로 하는 사회다 보니까 큰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제대로 하면 그 밑에 딸린 직원들이 얼마인가? 큰 기업은 수십만이 되지 않는가? 그 사람들에게 잘 가르칠 수 있지 않은가? 그저 기업만 운영하고 돈벌이만 할 것이 아니고, 자기에게 딸린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더라도 바른 생각을 넣어서 세상이 좀 정직하고 바르게 돌아가도록 하면 어떨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운영한다면 참 바람직하겠다 하는 생각을 한다.
0.1프로 되는 최상의 지도자들 그 사람들에게 인과의 이치, 정직하게 살고, 옛날에 초등학교나 이런 데 교훈이니 급훈이니 하는 것을 써붙여 놓았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첫째가 정직 아닌가? 정직, 사람들이 정직하면 정말 모두가 정직하게 살면 다른 사람들이 억울할 일이 없다. 그리고 원망할 일이 없다. 모두가 정직하지 않기 때문에 억울하고 원망하는 일이 생긴다.
성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그러한 것을 가르쳐서 세상이 좀 살기 좋은 곳이 되도록 하자고 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기업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더라도 돈을 많이 벌어서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도록 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꿈이다.
그런데 성인들은 어떤가? 사람들이 모두가 사람이 제대로 할 일을 행하고 정직한 마음을 쓰고, 인의예지를 잘 지키고, 불교적으로 말하면 6바라밀을 잘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사람들이 다 행복하게 살도록 하자는 것이 성인들의 꿈이다,
대통령이나 기업가들이나 그런 이들의 꿈과 성인들의 꿈은 그렇게 다르다.
혹은 보니 훌륭한 장부가
큰 자비의 마음을 구족하사
미묘한 법륜을 굴려서
잘 가르쳐서 법의 바퀴를 굴린다.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 하도다
부처님이 수행을 해서 성불해서 설법을 통해서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나, 아등바등 돈을 많이 벌어서 수십만 명 수백만 명 직원을 둔 대기업가가 되거나, 아니면 대통령이 되거나 어떻게 보면 그 꿈은 거의 비슷비슷하다.
그런데 이 성인의 꿈과 보통 범부가 어떤 성공을 이룬 뒤에 하고자 하는 꿈은 그런 차이가 있는 것이다.
부처님은 뭐라고 했는가? 미묘한 법륜을 굴려서 진리의 가르침을 잘 가르쳐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는 것, 그것이라고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혹견사자후(或見獅子吼)가 위광최수특(威光最殊特)하사
초일체세간(超一切世間)하야 신통력무등(神通力無等)이로다
혹은 보니 사자후(獅子吼)하심이
위엄과 광명이 가장 수승하사
일체 세간에서 뛰어나서
신통력이 같을 이 없도다.
혹은 보니 사자후(獅子吼)하심이
법문하는 것을 사자후라고 한다.
위엄과 광명이 가장 수승하사
일체 세간에서 뛰어나서
일체 세간에서 뛰어나서
신통력이 같을 이 없도다
신통력이 같을 이 없도다.
혹은 보니 사자후(獅子吼)하심이, 진리의 가르침을 펴신 것이, 부처님 일생 동안 49년간 설법하셨다고 일반적으로 되어 있으니까, 제일 공을 많이 들인 일, 시간을 많이 보낸 일, 그리고 거기에 노력을 많이 기울였고 애를 많이 쓰신 일이 49년간 설법하신 일이다.
왜 아니겠는가. 삼아승지겁이라고 하는 길고 긴 세월동안 수행을 쌓아서 결국은 어떤 그 꿈의 표현이 바로 49년간 설법에 있다. 49년간 설법하신 내용 속에 다 들어 있다. 그중에서도 화엄경, 화엄경이 모든 경전을 대표할 수 있는데 그 화엄경 안에 그러한 마음이 고스란히 잘 담겨있다. 정말 치우치지 않고 고스란히 잘 담겨있다.
혹견심적정(或見心寂靜)이 여세등영멸(如世燈永滅)호대
종종현신통(種種現神通)하시니 십력능여시(十力能如是)로다
혹은 보니 마음이 고요한 것이
마치 세간의 등불이 아주 소멸한 것과 같되
가지가지로 신통을 나타내시니
열 가지 힘이 능히 이와 같도다.
이것도 부처님을 이러한 입장에서 바라본 것이다.
혹은 보니 마음이 고요한 것이
혹은 보니 마음이 적멸하다. 아주 고요하다.
마치 세간의 등불이 아주 소멸한 것과 같되
등불이 다 꺼져버린 것과 같다. 어떻게 보면 열반이다. 열반을 그렇게 표현했는데 열반이 불어서 끄다, 불이 있는데 촛불이 있는데 그 촛불을 불어서 끄고 거기의 열기마저 연기도 다 사라지고 초에 있던 열기마저 다 식어버린 상태를 열반, 그렇게 말한다.
부처님의 열반도 그것이 100퍼센트 맞는 표현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부 맞는 내용이니까 그래서 이렇게 표현한다.
혹은 보니 마음이 적멸한 것이 마치 세상의 불이 탁 꺼져서 철저하게 소멸한 것과 같더라. 그러면서
가지가지로 신통을 나타내시니
그 나머지 일생동안 쌓으신 업적, 그 활동하신 교화의 공력이 남아있어서
열 가지 힘이 능히 이와 같도다
온갖 신통을 다 나타내신다. 부처님은 지금도 그 영향력이 얼마나 큰가. 부처님 열반 이후에, 정작 49년동안 설법하신 공이 대단하지만 그 후에 제자들이 그 부처님의 가르침을 더 발전시키고, 발전시키고 시대에 따라서 더 발전시키고 그래서 대승불교로 밀교로 선불교로 우리나라 같으면 호국불교로 무슨 심지어 기복불교 기도불교까지로 백방으로 변화하고 발전하지 않는가? 그것이 얼마나 큰 신통인가?
가지가지 신통을 나타내시니, 저는 이러한 한 구절에서 그러한 것을 본다.
부처님은 2600년 전에 열반하셨지만 그 가르침의 위대성 때문에 그것이 자꾸 발전하고 발전하고 아주 훌륭한 제자들이 계속 계속 나오면서 그것을 더 발전시키고 더 발전시키고 해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이런 불교가 된 것이고 화엄경 같은 이런 위대한 경전이 세상에 빛을 많이 보고 있는, 이러한 사실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열 가지 힘이 능히 이와 같도다.
열 가지 힘은 부처님을 뜻하는 것인데 부처님의 힘이 이와 같이 오늘날 이렇게 세상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위대한 사업가가 되었다. 교화사업가가 되었다. 이렇게 정의할 수가 있다.
오늘은 화엄경 공부 여기까지 하고 내일은 정월보름이고 해제다. 우리 불자들은 그러한 것도, 해제의식에 참석하고 안하고는 그다음 문제로 치더라도 그러한 것을 알고는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아시고 정월보름 잘 맞이하시기 바란다.
오신 분들 한 번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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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동참해주셔서 화엄회상이 아주 풍성하다.
지금도 88명이나 동참하고 계신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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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성불하십시오.
첫댓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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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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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처 문수사리보살. 삼라만상, 세상만물, 현상에 드러나 있는 이 모든 것들이 일체처며 그대로가 문수사리보살이다. 문수보살이 설하시는 게송은 비단 한 곳, 한 회상의 대중들만 듣는 것이 아니라 시방세계의 모든 대중이 다 듣는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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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