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을 걷다. 군산, 김제, 서천, 보령

[이준태 안터 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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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옛길을 돌아보다

서천 유스호스텔에서 자고 군산으로 향했다. 월명공원에 올랐다. 수시탑에 이르니 군산항을 대표하는 지형지물들에 한눈에 들어온다. 해망동, 째보선창, 금강하구뚝등 군산을 대표하는 월명공원에 세워져 있는 수시탑은 독특하다. 어디가나 위렵탑이나 충혼탑이나 참전용사의 탑이 도심 공원의 한 가운데 세워져 있는 것이 흔히 접하는 풍경인데, 군산의 월명공원에는 군산 수호와 안녕을 기원하는 수시탑이 세워져 있다.

 충혼탑 보다는 더 포근하고, 덜 무섭다. 월명공원에서 내려와 군산의 근대문화유산들을 돌아다 보았다. 동국사, 조선 식산은행, 영화동, 세관자리등. 동국사는 현재 조계종에서 사용하고 있지만 순수한 일본식 절집이고, 일정 때 일본인 중놈들이 쓰던 절집을 조계종사찰로 쓰고 있다. 동국사, 영화동, 째보선창, 해망동 이런 지명들은 고은 시인의 만인보에서 눈에 익혀진 지명들이다.

고은이 청소년기에 보았던 고향의 모습은 전쟁이 훑고 지나간 참담한 상흔만이 남아 있었다. 이념의 소용돌이에 쫓기고 쫓던 고향 사람들, 고은이 짝사랑했던 곱고 순결한 이웃동네 여학생이 좌익활동에 연루되어 참살을 당했고, 한 동네에 살던 고향친구가 가족과 함께 잡혀가 어느 날 죽은 시체로 발견이 되었다. 그때 잡혀가는 친구의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소년 고은에게 이데올로기가 무엇이고, 왜 동족간에 피를 흘려야하는 알 수도 없었고, 기막힌 현실만이 전쟁의 후유증으로 남아 있었다. 정신적인 공황상태가 온 것이다. 어느 날은 밤새도록 공동묘지에 앉아 있다가 내려오기도 했고, 선창에 몸을 던져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그런 방황중에 고은의 정신세계를 위무해주는 고승이 나타났다. 그가 동국사의 주지였던 혜초였다. 동서양의 철학에 통달하였고, 특히 칸트에 대해서 조예가 깊었다. 고은은 혜초가 자신의 삶에 등대가 되리라 생각하고 똘만이를 자처하고 따라 다녔다. 그렇게 절대적이었던 정신적 지주 혜초가 어느 날 애인과 함께 줄행랑을 쳐버린 것이다. 엄청난 배신이었고, 좌절이었다. 청소년기에 그러한 삶의 질곡을 겪으면서 당시 고향사람들의 면면을 지켜보았고 그들의 질박한 삶이 만인보에 그려져 있다. 그가 삶을 포기하고자 바다에 뛰어들었던 부둣가가 해망동 선착장이었고, 그가 한때 빈대 붙어서 지내던 영화동이 군산 비행장 미군들의 양공주 촌이었고, 그가 최초로 스님이 되고자했던 절이 동국사였다. 동국사로 들어가는 길초의 담벼락에 고은 시인의 ‘세노야’와 ‘선재리 여인’들이 시화로 그려져 있다.

군산은 미곡을 실어 나르던 일정 때는 최고의 항구도시였고, 해방 후 1970년대까지 호황을 구가 했지만 지금은 별로 특징이 없는 도시이다. 통영이나 여수 같이 아름다운 항구 도시도 아니고, 울산이나 포항처럼 대단위의 임해공업 단지가 있어 번창하는 항구도시도 아니다. 새만금 간척지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언제 현실화 될지는 아득하다.

그러면 군산을 대표하는 풍광이 무엇인가? 은파유원지? 월명공원? 금강하구둑? 아니면 이성당빵집?

 나의 글에 수많은 상상력과 영감을 불어넣어준 고은 시인을 생각하여 군산의 가로를 걸었다. 다음에 기회가 주어지면 고은 시인의 고향 선재리와 미제방죽을 가봐야겠다.

금강하구둑을 넘어와 장항에서 해물칼국수로 점심을 해결하고 해안을 따라 걷기 시작하였다. 서천군 장항읍은 행정구역이 충남이지만 대전과는 멀리 떨어져 있고, 군산에 가까워서 군산 영향권에 있는 고을이다. 서천 출신의 명사들 중에는 학교를 군산에서 다닌 사람들이 많다, 옛날 장항역에서 지금은 폐선이 되다시피한 철로를 따라 걷는다. 금강하구둑이 막아지기 전에는 장항선의 종점이 여기 장항역이었고 여기서 내려 바로 옆에 있는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금강을 넘어 군산을 갔다. 지금은 군산, 익산까지 가는 열차편이 있다. 장항의 랜드마크는 단연 제련소 굴뚝이다. 현재는 굴뚝공장이 대기오염을 시키고 지구온난화의 주범 CO2를 뿜어대는 공해공장이어서 눈치꾸러기가 되었지만, 산업 기반이 아주 허약했던 우리초등학교 시절에는 산업화의 상징이 장항 제련소의 굴뚝이어서 자연교과서에 실렸었다. 그만큼 장항 사람들은 제련소 굴뚝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오후 내내 돌아보면 제련소의 굴뚝이 보이곤 했다.

한 낮 오후의 땡볕이 작열하고 아스팔트의 복사열이 턱에 차오른다. 포장도로를 벗어나 해안가 송림으로 들어섰다. 동네 이름이 송림리이다. 명사십리 모래사장에 송림이 울창하다. 소나무 숲 사이로 우뚝 솟은 철구조물이 보이는데 아직 공사가 덜 끝나서 올라가 보지는 못했다. 스카이 워크라고 하는데 공중에서 바다를 볼 수 있고, 주위 경관을 조망을 할수 있는 시설이다. 해운대와 동강에 스카이 워크가 설치되어 있다는데 여기 송림 모래사장 스카이워크도 서천의 명소가 될 것이라 기대를 해본다.

모래사장에서 송림으로 들어섰다. 바람 솔솔 불고, 소나무는 울창하며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걷기에 최적이다. 3킬로 정도 걸어가니 송림이 끝나고, 송림2리 언덕길을 올라가다. 길가에 몇채의 농가주택이 소담스럽다.

바다가 훤하게 보이는 언덕길 채마밭에 참깨와 고추가 정갈하게 자라고 있고, 감자는 이미 수확을 하여 줄기가 걷어져있고, 잔챙이 감자알들은 버려져 나뒹글고 있다. 언덕길을 올라서니 군인들 초소가 막아선다.

다시 돌아 내려와 포장된 길을 걸어서 방조제 둑길을 넘어서 옥남면 솔리에 이르다.

갯벌 간척지를 지나 솔숲으로 올라서니 길이 없다. 솔숲이 있고, 모래언덕 너머에 바닷물이 남실대고 있지만. 불편하여 다시 밭으로 내려섰다. 보리수확이 끝난 텅빈 들판이다. 숲 사이 너른 들이 있고, 농가주택이 있는 풍경이 잠시 이국적인 느낌이 온다. 베트남 이었던가? 아니면 제주도 였던가? 잠시 기억을 더듬어본다. 아니다! 언제나 이렇게 낮선 지방을 여행하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솔리 농가주택을 지나서 솔밭에 이르니 수박파티가 준비되어 있다. 등받이 없는 프라스틱 의자가 열대여섯 개 놓여 있고, 접이식 테이블에 수박이 쑹덩쑹덩 잘라지고 있다. 기사님 솜씨도 능숙하시다. 독일제 장미표 식칼이 날렵하게 움직이며 수박 조각을 만들어 내고 있다. 도반들 서로를 쳐다보며 웃음 짓는다. 이렇게 호사스런 여행을 즐겨도 되는 것인지 하며

마전면 남전리 바닷가 교회당에서 길을 묻다.

그 사이 몇몇 도반들은 교회에서 손님맞이하려 청소해 놓은 화장실에 가서 실례를 하였지만, 예배당 도우미 할매들이 불시에 몰려든 나그네에게 회정사납지는 아니하다. 동네 꼬마가 자전거를 타고 앞장서서 길을 안내한다고 나섰는데 엉터리 였고, 남전리 뒷잔등에 올라 길을 놓고 설왕설래하다가 건너편 농가 주택까지 무찔러 가기로 하고 논두렁 밭두렁을 타고 농가에 이르니 개가 요란하게 짖어댄다. 정작 아버지와 아들 사이로 보이는 남정네들은 본 듯 만 듯 자기들 일 외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 동안 겪어왔던 여행길에 보기 드물게 쿨한 사람들이다.

개짖는 소리를 뒤로 하고 외딴집을 지나니 다시 숲길이다. 숲길을 내려서니 올포 마을에 이르고 여기 저기 김 가공 공장이 멈춰있다. 썰렁하다. 동네 사람들에게 물으니 팔월이 지나야 가동된다 하였다. 죽산리 하소 마을 나무그늘에서 잠시 쉬었다가 논을 가로 질러 바닷가로 향하다. 없는 길을 만들어가던 중에 새우 양식장을 지나게 되었다. 양식장 관리인 인듯한 사람이 두엇 있었는데 인심이 아주 사나웠다. 거의 양식장을 나설려고 하던 참에 고함을 지르고 난리를 쳐서 오던 길을 되돌아 개울 진창을 건너왔는데, 신샘이 그만 진창에 발이 빠져 버렸다. 몇 발자국만 더 왔다면 진창을 지나지 않고 편하게 건너왔을 것인데 그 인간들이 심술을 부리는 바람에 낭패를 당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신샘의 발을 볼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못된 인간들!

그래도 여행은 즐거운 것이다. 햇빛이 수그러 들었고 밀물이 밀려 들어오는 시간이라 바닷 바람이 시원하다. 죽산리에서 해안길로 내려서다. 솔숲이 울창해서 숲으로 들어섰지만 길은 없었다. 숲 사이를 헤매다가 다시 바닷가로 내려섰다. 마서면 송석리 해변가에서 오늘 일정을 마치다. 우리가 보면서 걸어왔던 섬이 아왕도 이고, 모래 사장에는 갈매기들이 먹이를 찾아 모여 들고 있다.

고향에 찾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로다.

오늘 남은 나에게 주어진 과업이 있다. 고향 김제를 안내하기로 되어있다. 서해안길을 걸으면서 지난번 기행에 부안에서 군산으로 건너뛰는 바람에 우리 고향김제는 지나쳐 버리게 되었다. 새만금 간척지를 지나니 어쩔수 없는 여정이었다. 새만금 신시도에서 뒷풀이 하는 자리에서, 어차피 일정을 바꾸기도 쉬울 것 같지 않아서 반은 허세로 반은 빈말로 “ 우리 고향을 그냥 지나치게 되어서 대단히 서운합니다. 여러분들이 제 고향을 들리셨다면 진하게 술과 밥을 대접할려고 했는데 말입니다.”하니 웬걸 이 말이 씨가 되었다.

신샘이 정색을 하며 “이형이 그렇게 서운타면 일정을 좀 바꾸는 일이 대수겠냐?”고 하시면서 일이 심각하게 진행되었다. 한번 뱉을 말을 주어 담을 수는 없고, 적지 않은 고민이 시작되었다. 첫째는 적지 않은 비용, 모처럼 우리 도반들을 고항에 초대하는데 적당히 한 끼 때우는 식으로 대접하느니 차라리 언제 그런 일이 있었야는 듯 얼버무리고 지나가는 것이 상책일 것 같고, 두 번째는 기행 한 주 전에 우리 큰딸아이 혼사가 잡혀 있었다. 큰 일을 앞두고 매사에 삼가며 조심해야 된다는데 고민이었다.

한 일주일 정도 고민하다 명쾌하게 결론을 내렸다.

“그래! 고향에 우리 도반들을 모시고 가서 고향을 보여드리자. 이번 아니면 다시 언제 기회가 주어져서 고향을 보여드릴 수 있겠는가? 몇푼 드는 비용이야 내 용돈 몇 달 아껴 쓰면 되는 것이고, 그리고 딸램이 결혼식은 제반 비용은 이미 건네졌고 행사는 제가 시집가는 것이니 제가 알아서 하는 것이고, 딸램이 시집 보내는 애비 마음을 간절히 담아서 축가나 잘 불러주면 되겠다.“

그리고 고향친구 두꺼비회관 여사장 박옥진 여사하고도 의기투합이 되었다. 박여사는 통이 큰 여장부다. “친구야!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은 도울 것이니 괘념하지 말고 진행하거라. 우리 남편도 자네가 온다니 대단히 좋아하더라.”

정작 당일 날 다섯시에 기행을 끝내고 김제로 향하기로 했는데 사십분이 넘게 지체되어 서천을 출발하였다. 빡빡한 시간 일정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나는 속으로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우리땅의 키맨 타이슨. 서래봉, 수렉 세 사람이 빠져 버렸다. 너무 앞서가 되짚어 오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박동규형에게는 미안한 마음 그지 없다. 그동안 수차례 얻어 먹기만하여 이번에 반에 반이라도 갚아볼까 했는데

서천에서 김제까지 사십여분 정도 걸렸다. 예정보다 늦어서인지 두꺼비 회관에 도착하니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었다.

어느 음식점을 가든지 그 음식점의 밑반찬을 맛보면 그 음식 맛을 가늠할 수가 있다. 두꺼비 회관의 김치나 깻잎 장아치나 나물류나 양념등의 맛을 보면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인공조미료를 거의 쓰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메인 메뉴인 불고기 전골 맛은 으뜸이었다고한다. 우리땅의 파워블로거 청솔객 최만호님의 음식평이다.

감자, 수수떡, 홍어회 무침은 서비스로 나왔고, 술값은 몽땅 공짜였다. 거기다 찰옥수수까지 한보따리 안겨주었으니, 이정도면 음식을 준비한 사람이나. 음식을 대접 받은 우리 도반들이나, 이런 자리를 마련한 사람이나 다 흡족한 상태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여기 저기 술잔이 쏟아졌지만 다 받을 수가 없었다. 취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취해버리면 그 다음 일정을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김제 문화체육공원으로 향했다. 지금은 공원이 되었지만 옛날 사람들에게는 수원지라는 명칭이 더 익숙한 곳이다. 1960년대 까지 김제읍의 수돗물을 공급했던 저수지 이다. 들이 넓고 산지가 없었던 김제에 물이 있고 전원풍의 구릉지대가 전개되는 곳이 이 곳 수원지 였다. 그래서 학교 소풍이라면 으레 수원지나 여기서 오리정도 더가는 흥복사였고, 수원지 제방은 그 당시의 포토존이었다. 나보다 열일곱살이 많았던 형님도, 여덟 살 위의 누나도 , 나도 여기 수원지 제방에서 찍은 사진이 있다.

이 저수지가 수원지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리면서 공원화 작업이 시작되었다. 수원지 옆에 종합경기장이 들어섰고, 호반에는 갈대와 연꽃이 피어나고, 공원 곳곳에 유명시인들의 시비가 세워져있며, 저녁녁 치솟은 메타세콰이어 숲이 호수에 비치는 장면은 과히 선경이라 할수 있겠다. 오랜 시간에 걸쳐 애써 만들어 아름다운 공원이 되었다. 지금은 김제시민 뿐만아니라. 전주, 익산, 군산 등의 인근시민들도 애호하는 명소가 되었다.

공원에 도착하니 땅거미 짙어가고 호반의 가로등이 켜져 황홀한 야경이 전개되고 있다. 예정시간 보다 많이 늦어 있다. 호반의 수상데크 위에서 신샘의 전용마이크를 넘겨 받아 고향김제를 간단히 소개하고 호반을 걷기 시작하여, 호반을 한바퀴 돌아 뷰포인트에 앉아 잠시 쉬었다. 도반들이 노래를 청하였지만 시간여유가 없어 아쉽게 접수하지 못하고 일어서야 했다. 다음 일정 때문에 바빴다. 이미 어두워졌고, 흥복사까지의 거리는 2.2키로 남아 있다.

몇몇의 여성회원들이 귀로에 오르자고 종용하기도 하여 전반적인 여론을 수렴하니 멀지않은 길이니 그냥 예정대로 진행하자 한다. 밤에 별만 총총한 길을 후레쉬를 밝히며 걸었다. 어두운 밤길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소쩍새 우는 밤길을 걷는 기분도 그 동안 느낄 수 없었던 호젓함이었다.

읍사무소를 거쳐 김제여고 담 길을 돌아 수원지를 바라보면서 흥복사까지 걸었던 십리 길은 고향을 김제로 둔 사람들에게는 추억의 길이다. 사방이 온통 너른 들판이고 산이라고 해야 고작 해발 20미터가 넘지 않은 야산이고, 큰 강이 흐르고 있는 것도 아니여서 김제는 내세울 만한 풍광이 없다. 그래도 여기서 백산과 공덕, 청하로 이어지는 구릉지대를 걸었던 것을 회상하면 포근하고 안온한 고향의 그 시절이 떠오른다.

구릉지대 좌우로 과수원과 밭이 있고, 저지대에는 논과 저수지가 있고, 야산자락에 마을이 있는 전원이 전개된다. 봄에는 농부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여름에는 오곡이 무성하게 자라고, 가을에는 추수를 하고, 겨울에는 텅빈 들녘이 되는 계절의 수레바퀴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굴러가는 것을 담담히 지켜보며 삶과 자연섭리를 생각하며 이 길을 걷곤했다. 언제나 걷고 나면 힐링이 되고, 마음이 맑아지는 명상의 길이었다. 오늘 전원의 넉넉함과 풍요로움을 보여주고 싶어 이 길을 안내했는데, 밤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힐링은 충분히 되셨을 것이다. 오랜만에 별이 총총한 밤길을 걸으며, 아스라이 보이는 불빛과 멀리서 들려오는 개짓는 소리를 들으며 고향생각, 옛 추억 충분히 되살리고, 고운 마음을 가지셨을 것이니.

오늘 기행의 마지막 기착지였던 흥복사의 주지스님은 아닌 밤에 홍두깨였을 것이다. 초저녁 잠에 들었다가 소란함에 깨어났을지도 모른다. 야밤에 아흔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경내에 몰려왔으니, 그래도 절 인심이라 쫓아내지는 않았고, 무례함만 지적을 받았는데. 맷집이 좋은 이프로님이 다 감당을 하셨다.

둘째 날

일곱시 반에 숙소를 출발하여 비인 오층 석탑을 보고 다시 해안을 거처 장포항을 돌아가는 해안길이다. 바닷가로 내려서니 갯벌에 조개를 캐는 할매들, 조개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니 그냥 하얀조개라 한다. 옆에서 도라지 님이 모시조개라 명칭 정정을 해주시고 아침 바닷바람이 상쾌하다. 열시쯤 비인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수박파티가 열리고 있다. 비인 해수욕장 이나 동백정은 대학시절, 연애에 이골난 친구들이 먼곳으로 데이트 코스를 잡아서 오던 추억의 명소로 기억하고 있다. 나는 숙맥이라 꾼들이 자랑하던 것을 듣기만 했을 뿐이다. 오랜 추억의 그림 속에 멋진 해수욕장의 풍경을 기대했는데 시멘트 콘크리트 구조물만 요란했다. 아마 모래나 토사 유실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겠지만 썩 보기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해수욕장 전면에 쌍도라고 두 개의 작은 섬이 있고, 지금은 물이 빠져 섬에 이르는 길이 나있다. 월하성 포구, 띠섬목 해변을 거쳐 남천 해변가에서 오전 일정을 마치다.

어제 우리숙소였던 목원대학교 춘장대 수련원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고 동백정에서 차를 내렸다. 동백정은 바로 옆에 거대한 화력발전소가 들어서는 바람에 낭만의 명소로서 명성이 퇴색되었다. 모처럼 점심식사 후 오침 시간을 가졌다. 바닷가 벼랑위에 서있는 정자라서 바람이 시원하다 못해서 추웠다. 난간에 기대어 졸다가 몸이 시려서 내려왔다. “하도 바람이 시려서 배낭에 들어있는 물이 얼었다” 너스레를 떨며

동백정에서 오침을 마치고 홍원항까지 걸었다. 오후 두시반의 아스팔트 길 복사열이 대단하다. 홍원항에서 부시 방조제 끝까지 차량으로 이동을 하다. 소황사구에서 내려 다시 해변을 걷기 시작하다. 여기서부터 보령이다. 해안가에서 발을 벗고 파도에 발을 식히며 걸었다.

중간에 거북이 한 마리가 파도에 밀려와 구경거리가 되었다. 사지는 멀쩡하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 걸 보니 숨이 멎은 지 오래되었다. 입탈좌망한 것이다. 물에 띄워 보내려했지만 다시 파도에 밀려온다.

어느 해변 모래사장에서 태어나 대양을 헤매다 여기까지 떠밀려왔을까? 고향을 떠난 나그네는 파도에 밀려 모래사장에 묻혀 분해되고 자연의 일부가 되어갈 것이다. 혼백이라도 고향에 가겠지.

소황사구가 끝나는 지점에 독대섬 레이다 기지가 있었고, 거기에서 한시간 정도 더 걸어서 무창포에 도착했다. 이번 기행의 마지막 목적지이다.

[유희영.카페지기(두레박)]

지난번 읽었으나 대충 읽고 오늘 다시 정독한 기행문 댓글 달아야 하는데 글재주가 없어 그저 " 잘 읽고 간다,, 라는 말 밖에 할줄 모르니... 군산,장항,서천,우리고향 김제.홍원항, 무장포등 모두 기억속에 있는곳이라 더 실감나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