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 시대의 찬양
1. 복음 시대 시대 찬양
그리스도 시대에는 찬양의 생활은 구원 받은 자들의 본분이었고 생활이었다. 복음 시대에 여러 찬양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 잉태시 마리아의 찬양(눅1:46.) 그리스도 탄생을 찬양하는 천사들의 찬양(눅2:28.) 양치던 목자들의 찬양(눅2:20.) 소경을 눈을 떴을 때에 찬양(눅18:43.) 그리스도가 평화의 왕으로 예루살렘이 입성할 때 찬양(눅19:37. 마21:9.)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말씀을 전할 때 찬양(행13:48.) 그리스도가 성만찬을 마치고 감람산에 가면서 제자들이 찬양(마26:30.)
2. 초대교회 찬양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고쳤을 때 찬양(행3:8-9.) 바울과 실라가 빌립 감옥에 갇혔을 때 찬미(행16:25.) 이 외에도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는 곳에 찬마가 항상 있었다.
초대 교회 구원 받은 자들의 신앙 생활은 찬미의 생활이었다. 믿는 자들의 본분이었다. 바울은 우리를 구원하신 뜻이 찬미를 받으시기 위함이라고 했다.
(엡 1:6)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 1:14)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찬양 생활은 구원 받는 자들의 본분이며 생활이라 했다.
(엡 5:19)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골 3:16)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찬양은 신앙의 입술의 열매라 했다.
(히 13:15)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그리스도 시대와 사도시대는 찬양의 생활이 구원 받은 자들의 당연한 본분이고 생활이었다. 초대 교회 시대의 신앙생활은 예배 생활, 말씀 배우는 생활, 기도생활, 찬양의 생활이 기본 생활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마다 새 노래로 찬양하라 했다.
3. 고대 기독교 시대
고대 기독교 시대는 그리스도 시대에서 주후 604년 까지를 한정한다. 복음 시대에는 전례적인 찬송을 고수했다. 그러면서도 의식적 율법적 찬송에서 영적 찬송으로 승화한다. 즉 영송으로 발전하게된 것이다. 이는 성령 받은 사람들의 새 노래, 또는 신령한 노래라고 말한다.
이 당시 노래는 신앙 고백적인 의미가 나타나며 감사의 응답송 능력의 예찬 구속의 은혜가 나타나며 선교적인 수단으로 발전한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한 곳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시대(주후100년)에는 종교적으로 유대인들의 박해와 정치적으로는 로마인들의 학정 사상적으로는 그리스 문화권 아래 있었다.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 기독교 문화는 여물어 갔다.
특히 그리스 문화는 극단적인 탈속 적이고 육체적인 의식 또는 예식 등을 부인하는 정신주의적이고 세상을 등진 금욕적인 마니교의 사상적 배경으로 이루어 졌다. 여기에 반하여 기독교 문화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 세속에 빠지지 않고 세속에 지배받지 아니하고 독창성을 가지며 누룩처럼 번져 나갔다.
기독교 음악은 감각적인 쾌락적인 것이 아니라 신앙 사상에 기인하여 신앙 대상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세속과 병행할 수 없었다. 여러 자료에 나타난 바에 의하면 이 시대의 찬송가 가사는 다윗의 시편을 바탕을 하여 이루고 이를 예배에 채택했다.
창법은 시편을 가창 형식으로 사제에 의한 독창, 회중의 응창, 가창 자들의 교창, 세 가지로 나타난다. 찬송의 종류는 시편에 의한 복음서의 송가, 초대 신학적인 찬가, 유월절 절기의 찬미가가 있었다. 곡은 성질에 따라 불리워졌는데 저음, 고음, 부 부분으로 이루어 졌다. 음악의 성격은 그리스나 로마 헬라의 미적 감각적인 조화나 관념에 치우치지 아니하고 자유로운 내심의 자유의 표현이었다.
4. 기독교 공인시대 찬양.
기독교 공인 시대는 콘슨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 국교로 공인한 주후 313년에서 500년까지를 한정한다.
콘슨탄틴 황제로 인하여 기독교가 공인되자 공공연하게 지상에 나타난 기독교는 급기아 성장을 한다. 장엄한 성당들이 곡곳에 세워지고 예배의 형태도 점점 갖추어 짐에 따라서 음악의 발전은 거듭한다. 그리하여 음악의 수준이 점점 높아져 갔다.
이 시대에 음악의 선구자라고 불리우는 밀라노 주교인 성 암부로시우스(Ambrosius)주고가 있다. 이는 고대 교회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울 만큼교회 음악의 공헌자이다. 그의 공적은 두가지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창법개발이며 하나는 음악책을 만들어 교회 음악을 굳힌 것이다. 서방서 불려지는 응송과 동방 시실리아 팔레스틴에서 불리웠던 교송을 도입하여 교회 음악으로 채택하였던 것이다.
과거 시편에는 앞뒤에 고, 저,를 가져오는 창법을 이루어 중간 부분에 진행할 때에는 노래라기보다는 낭송에 불과 했다. 그러나 암브로시어스가 대중적인 노래로 선율을 유지하면서 복잡한 면에서 순화하였고 단순한 면에서는 단순하게 순화하여 적극적인 음률로 시도하였다. 그의 음악은 민중적이며 감수성이 있고 다양한 음률을 지닌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암브로시어스의 찬송은 그 당시 이단파의 아리안 파의 투쟁에서 유력한 무기가 되었다. 또한 유명한 신학자 성 어거스틴을 감동 시킨 감화력이 있는 찬송이다. 이렇게 되자 여러 사라들이 암브로시어스를 모방하여 여러 작품이 쏟아지져 나오게 되자 진정한 아므로시어스의 작품을 구별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렇게 기독교 음악은 발전의 기회를 양보하지 아니하고 자랐으며 세속에 녹아들어가지 아니하고 잠자는 영혼들을 깨우며 진리에 대해서는 진리수호의 임무를 담당하며 문화를 지배해 왔다.
5. 기독교 고대시대 찬양(Gregorius 1)
그레고리 1세 시대는 주후 550년에서 604년으로 한정한다. 그레고리는 황제로서 종교음악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이는 전례를 생명으로 하는 베네딕트 수사 이며 576년에 교황의 사절로 590년에 교황으로 즉위하면서 교회 음악사상 특유한 인물이다.
그레고리우스는 전레의 개혁을 시도한 사람이며 시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예배접은 서구 전역에 보급되고 오늘의 예배의식에도 남겨지게되었다.
그레고리우스는 성가 학교를 세워 장려하고 이를 위하여 성 베드로 성당에서 기숙사 건물을 세워 성가대원들을 공동 생활하도록 했다. 또한 성가대들의 효율적인 양성을 위하여 전역에 흩어져 있는 교아원에 인재들을 배당하기도 했다.
이 시대에는 이미 밀라노 암브로시어스(Ambrosius) 성가가 있었고 아퀴나에는 갈리라(Galliere)의 성가가 있었고 스페인에는 모라자비아(Morazarbia)의 성가가 있었는데 이것을 그레고리어스는 통합 구축했다.
또한 그레고리어스가 캔더리에 있는 성어가스틴을 영국에 선교사로 파송하여 선교했는데 그 선교 방법이 그레고리 성가였다. 이 때에 에델비이트(Etelbert)를 비롯하여 많은 영국민이 이 성가에 개종했다. 이 때에 갈리우스의 저작자 여한네스 디아너스(Jonnes Diaenus)가성 베드로 성당의 성가 대장이었다. 또한 유명한 웨미스 수도원에서 로마 성가를 가르쳤 큰 영행을 주었다.
프랑스에서는 페벵(Pepin) 황제의 아들 샐만너스 (Chalemaganus) 대제가 이 성가를 받아드렸고 이그레고리어스의 성가 습득을 위하여 인재를 로마에 파송하기도 했다.
그레고리어스이 성가는 미사제를 위한 것이어서 예배의식이 없이 음악만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리어스 성가는 미사성제를 위한 알렐루야(Allelluya)와 성무일과(聖務日課)성가집인 안토포나날레오(Antoponalleo)였다.
그레고리 미사 노래 순서는 아래와 같다
1. 안트로이루스 (Antoponal= 사제의 입장시에 부르는 입제창)
2. 기례예(Greeae=교인이 부르는 기도송 [불쌍히 여기소서)
3. 글로리아(Glloria=영광의 찬가 1절은 성가대 나머지는 회중이 부름)
4. 그레타일레(Gretalle=전례송 성서 낭독후 부르는찬미)
5. 알렐루야(Allelluya=승계송 성찬자와 회중이 부르는 찬미)
6. 트락투스(Tractus=영송 슬픔을 당할 때 부르는 찬미)
7. 레토(Letor= 신앙 선언송 신앙을 선언할 때에 부르는 찬미)
8. 베네딕투스(Benedicgtus=서창 사제만 무르는 찬미)
9. 옾토르리움(Optorieum=빵과 포도주와 축원과 함께 드리는 찬미)
10. 산크루수베네딕투스(Sancrusbendigtus=감사의 찬미)
11. 주니의 기도문
12. 아그너스레이(Agunnssrei=평화의 찬가)
13. 영성 체송( 신비스런 비적에 이어지는 노래)
14. 종제송( 마지막 기도송) 으로 되어 있었다.
음악적 의식에 있어서는 하루에 정해진 일과에 따라 기도순으로 한다. 이를 어리치움이라 말한다. 오리치움은 아래와 같다. 새벽조가 제 1 시과 오전 1시에서 6시까지. 제 3시과 오전 9시. 제 6 시과 정오. 제 9시과 오후 3시. 그리고일몰 만과 종제송으로 마친다.
이 당시 악보는 뚜렷하지 못햇지만 주로 암기로 했는데 그레고리에의하여 4각 악보가 쓰여졌고 선법은 8선법이 있었는데 주로 4선법을 사용했다.
특히 유명한 것은 265년에 발명된 물 오르간이다. 알랙산드리아 베시오스에의하여 만들어진 것인데 물의 힘으로 공기를 보내고 사람의 손으로 벨부를 열고 닫아 파이프를 울리는 오르간(후트파울루스)가 발명되었다.
이 시대의 음악은 안으로는 하나님을 찬미하는데 중력을 담당했고 밖으로는 선교적 확장을 크게 담당했다.
6. 기독교 중세 시대의 찬양
중세 시대는 주후 800년에서 1400년으로 한정한다. 샬만 황제가 레오 3세로부터 제권을 받아 로마를 재건하고 확립했다. 이 시대에는 아직 인교문화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교회는 고대 문화를 계승하여 문화의 지도적 입장에서 육성하고 보급하였다. 그러는 이 무렵에 새로운 문화적 선구적 약할을 한 자들은 게르칸 족이다. 이들은 기독교 문화의 독창성을 가지고 선구 전역에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이 시대에 있어서 음악적으로서는 그레고리 음악의 벌전기이다.
중세시대는 주후 800-1400년까지로 한다. 초기 중세시대는 주후 800년에서 1000까지로 한다.
살만 대제가 레오 3세로부터 제관을 받아 로마를 제건 하고 확립하였다. 이 시대는 아직까지 이교문화가 존재하지 아니하였기에 교회는 고대문화의 계승 하여 문화의 지도적 입장에서 육성하고 보급하였다.
이 무렵 새로운 문화의 선구적 역할을 한자들은 게르만족이다. 이들은 기독교 적 문화의 독창성을 가지고 서구 전역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이시대에 음악사 적으로는 그레고리음악의 발전기 이다.
새로운 악식으로는 속송(續誦) 또는 경송(經誦)이 나타나고 또한 오르가늄적인 원시적인 다성악이 등장 하였다.
이 시대에 음악의 발전에 기여한자들이 여러 사람들이 있으니 그중에서 이름이 있는 사람들을 소개한다면 다음과 같다.
1) 아퀴니스(Alcuinus 735-804년)
이는 대학자이며 교육자 이며 성자이다. 이는 교회박사라는 별명을 가지리 만큼 유명하였다. 이는 음악 이론가 이며 영국 신학자로서 욕 학교에서 베다의 제자에게 배웠다 766년에 교장이 되었다.
샬만누스 초청으로 프랑스 왕국 르네상스에 활동하였고 궁정 학교에서 궁가들과 기타 자녀들을 가르쳤으며 청년 목사들을 교육하였다.
과학 수학사을 가르치고 음악으로 명성을 떨첬다. 이는 교회 시를 많이 썼고 그의 시는 유명하다. 그는 성마르틴 수도원에서 수도원장으로 있다가 죽었다.
2) 데오돌프(Theodolf. 821년)
이는 스페인 사람이다. 시인이며 프랑스 제국의 신학자이다. 챨스대져에게 알려저 775년 올레앙 감독으로, 781년에 풀루리 수도원장으로, 800년에 챨스대제를 따라 로마로 갔으며 802년에 그의 싱학 고문이 되었다.
811년에 챨스의 이름으로 세례식이라는 책을 집필하였으며 818년에 챨스 후계자들에게 모함을 당하여 혐이를 입고 추방을 당하여 엔젤 수도원에 강금 당하였다. 그러던 중 그의 노래 “종려 주일의 노래, 왕 되신 우리 주께”의 노래로 왕이 석방 히였다. 그의 저서로는 성령(De spiritus Sancto)챨스 궁전의 자손들의 찬송을 썼다.
그의 업적은 교회 제도 개혁 교회증수 신학교 설립 라틴어 성경개정 성서 채색사본 등을 장려하였다.
3) 레오 멘시스(Aurelianus reomensus. AD 850)
이는 이론가로 자신이 쓴 논문 카톨릭 왕조의 전래음악에 관한 음악 규율(Disciplina Reomensus)과 음조가락의 규칙(Tonarius Reqularis)으로 유명하다.
4) 발불루스(Notker Balbulus. AD 912)
이느 추리히주 엘스크에서 태어났다. 예의의 수도원장 크스갈렐에서 수학 하였고 거기에 많은 속송을 쌌다.
이 속송이란 여러가지 길이와 반복을 지닌 것으로 이에다가 자스러운 산문가사를 마추어 산문을 수반하는 속송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에 후계자들이 많이 있어 음악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5) 레키오 포프링(Reginovon Prum. AD 916)
이는 892년 도리히주 근처 수도원장으로 그 후 도리히주 장크스 맥시만 (Sankt Maximim)수도원장으로 지냈다. 이는 작곡자이며 음악 이론가이다. 이는 교회 성가 교송과 응송의 선법에따라 배열한 토나리우스(Tonarius)라 불리우는 책을 저술하였다.
6) 훅 발트(Hucbaid. AD 930)
이는 벨기에 사람이다. 수도승이다. 중ㄹ세기에 대표적안 음악가 이다. 음악 학자이다. 그에게 많은 음악의 저술이 있지만 음악교육론(De Harmonica Instution)외에 타인의 것으로 간주되어 버렸다. 이는 기보법의 선구자로 5선과 그위에 가사를 쓰는 기보법을 내놓았다.
이렇게 중세의 음악은 단성악에서 다성악으로 발전하여 음을 알ㄹ수 있다. 이 시대에 교회음악은 예배에 빼 놓을 수 없는 중역을 감당하였다. 그리고 선교에도 일익을 감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첫댓글 월말이라서 공과금을 내야하는데 후원을 해주셔야
카페도 운영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야 카페도 운영하는데....
여러분중에 도와주시는 분이 계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공과금과 통신료 방세를 내야하는데 도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카페에 후원이 없고 통신료 공과금등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과금과 월세를 내야 해요
카페지기 전화입니다 010.2261~9301
국민은행 229101-04-170848 예금주.황종구
농협 233012-51-024388 예금주.황종구